40.서양사 입문 (독서)/3.서양근현대사

혁명의 지성사 (2023)

동방박사님 2024. 1. 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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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의 혁명!
마르크스의 ‘역사의 기관차’부터 레닌의 미라까지,
볼셰비키에서 마오쩌둥과 호찌민,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까지,
바리케이드와 붉은 깃발, 파리 코뮌의 변증법적 이미지들로
19세기와 20세기 혁명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1917년 10월 26일(율리우스력 기준) 새벽, 볼셰비키 혁명군이 겨울궁전을 점령했다. 하지만 혁명의 역사에서 드물게 성공한 러시아 혁명은 그 직후에 드러난 것처럼, 내전과 반혁명 시도, 국제적 개입으로 인해 자기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789년에 시작된 혁명의 역사는 1917년 세계를 사로잡은 뒤 해방의 잠재력을 스스로 내던지고 어느새 스탈린주의 체제로 화석화되고 말았다. 1989년 소련이 붕괴하자 그나마 제3세계나 탈식민 세계에 남아 있던 혁명의 상상력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러니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혁명’이란 대단히 낯선 개념이다. 이제 당면한 현실적 목표로 ‘혁명’을 생각한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혁명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다. ??러시아 혁명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소련공산당사’가 불티나게 팔렸다. 혁명의 역사를 알기만 한다면, 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곧바로 혁명을 일으켜 완전한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하리라고 자신했다. 서유럽에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엥겔스가 “기습공격의 시대, 의식 있는 소수가 의식이 부족한 대중의 선두에 서서 혁명을 수행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건만,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한국에서 혁명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펼쳐질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30여 년 전 혁명을 계획하고 실천하려 한 사람들은 과거 혁명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공간적?시간적 차이를 탐구하기보다는 성공한 혁명 또는 혁명가와 한국 현실 또는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했다. 혁명의 어두운 면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혁명은 무엇이었고, 무엇일 수 있을까? 인간의 역사에서 이제 혁명은 과거의 흔적으로 사라진 걸까? 아니, 사라졌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혁명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떻게 되돌아봐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은이 엔초 트라베르소는 “순진한 열정이나 도덕적 심판, 이데올로기적 낙인이 비판적 이해를 밀어내는 일이 너무도 잦았”던 혁명에 대해 과거의 교훈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비판적 지식과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1789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혁명의 시대가 마무리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공산주의를 역사화함으로써 그 거대한 모험의 기억을 보존하고 혁명의 해방적 잠재력을 지킬 방도를 찾고자 한다.

목차

약어
도판 목록
감사의 말
서론: 혁명 해석하기

제1장 역사의 기관차

철도 시대
세속화와 시간화
혁명의 개념화
에너지와 노동력
‘미치광이 기관차’
장갑열차
신화의 종언

제2장 혁명적 신체

반란의 신체
동물화된 신체
인민의 두 신체
주권적 신체
불멸
재생
해방된 신체
생산적 신체

제3장 개념, 상징, 기억의 영역

패러다임 바로잡기
반혁명
카테콘
우상파괴
상징
사유-이미지: ‘갈림길에 선 남자’

제4장 혁명적 지식인, 1848~1945

역사의 경계선
국가적 맥락
인상학
보헤미안과 데클라세
지도 Ⅰ: 서구
급진 페미니즘
지도 Ⅱ: 식민 세계
의식적 천민
보수적 반지성주의
‘동조자’
토마스 만의 알레고리
코민테른의 지식인들
결론: 하나의 이상형


제5장 자유와 해방 사이

계보
재현
존재론
푸코, 아렌트, 파농
자유, 빵, 장미
시간의 해방
베냐민의 메시아적 시간

제6장 공산주의의 역사화

시기 구분
공산주의의 얼굴들
혁명
체제
반식민주의
사회민주주의적 공산주의
일리오 바론티니의 여러 이름들

저자 소개

이탈리아 태생으로 20년 가까이 프랑스에서 역사학과 정치이론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 코넬대학교에서 수전 앤 바턴 위노커 인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역사와 로망스어권 문화와 언어, 문학을 가르친다. 『불과 피: 유럽의 내전』(2016), 『좌파의 멜랑콜리: 마르크스주의, 역사, 기억』(2017), 『파시즘의 새로운 얼굴』(2019) 등 여러 저서가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미국의 『자코뱅』, 이탈리아의 『일...
 
역 :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The LEFT』, 『노동계급 세계사』,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불안한 승리』,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E. H. 카 러시아 혁명』, 『핀란드 역으로』, 『미국민중사』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1819년 파리 살롱 이후 200년 만에 〈메두사호의 뗏목〉을 난파선의 강력한 알레고리이자 혁명의 전조로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이 뗏목을?대양을 항해하는 프리깃 범선처럼?미래를 정복하려고 했으나 결국 난파하고 만 어느 운동의 잔해로 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무능한 선장을 어떻게 스탈린주의의 오류와 배신에 대한 암시로 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뗏목에서 서로 잡아먹었다는 소름끼치는 증언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혁명의 은유를 포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뗏목의 폭동을 1921년 크론시타트부터 1956년 부다페스트까지, 1968년 프라하에서 1980년 그단스크까지 사회주의의 권위주의적 전환에 맞서 벌어진 반란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24

반란과 혁명을 정확히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란이 벌어질 테지만, 그래도 이런 구분은 유용하다. 반란을 찬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행동하는 그 서정적 순간을 실체화함을 의미한다. 한편 혁명을 해석한다 함은 한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건설되는 창조적 파괴 과정에 그 파열적 등장을 새겨넣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반란과 마찬가지로 혁명 역시 언제나 즐겁거나 흥분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행위자들이 인류가 갑자기 중력 법칙을 극복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형태의 굴복과 복종을 내던지면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놀라운 무중력 상태로 혁명을 묘사한다. 하지만 혁명은 또한 절망으로부터 힘을 끌어내거나 자체의 모순에 빠져 계속 허우적댈 수 있다. 혁명은 비극으로 치닫기도 하고 일찌감치 어두운 면을 드러낼 수 있다.
--- p.39

어느 유명한 문장에서 마르크스는 근대의 혁명은 “과거로부터 시詩”를 끌어낼 수 없다고 말한 반면, 베냐민은 패배자들을 구원하려는 열망 속에서 혁명의 숨은 동력, 즉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비밀 협정”을 탐지했다. 혁명은 두 시간대를 가르는 칼날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발명함으로써 과거를 구원하는 것이다.
--- p.42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에스파냐의 15-M(5월 15일) 운동, 프랑스의 밤샘Nuit debout 시위,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 시위, 다시 프랑스의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 칠레 젊은이들의 반란 운동,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에서 시작된 전 지구적인 반인종주의 물결, 홍콩부터 민스크까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유사하게 벌어진 여러 운동?이 운동들 가운데 어느 것도 과거에 관한 전략적 토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운동들은 새로운 조직 형태와 동맹을 고안하고 때로는 새로운 지도부도 만들어냈지만, 대부분 자기조직화되었다. 그들은 공공 공간의 재전유, 참여, 집단적 숙의, 요구 목록, 사회적 관계의 상품화 비판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실험하고자 한다. 그들은 정치적 중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좌파는 지난 세기에 걸쳐 상당한 경험을 축적하고 수많은 성공을 기록한 영토?무장 혁명?를 완전히 포기하는 듯 보인다. 이 영역은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가 완전히 독점하고 있는데, 이 세력은 인상적인 역사적 퇴행을 통해 반식민주의와 민족해방을 샤리아(이슬람법)로 대체하고 있다. 20세기 공산주의가 여러 차원에서 쌓은 경험?혁명, 정권, 반식민주의, 개혁주의?은 소진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등장한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은 과거의 그 어떤 좌파 전통과도 공명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계보가 없다.
--- p.50

우리 시대의 혁명이 자신만의 모델을 발명해야 한다면, 백지 상태에서, 또는 지나간 투쟁의 기억, 정복의 기억만이 아니라 더 많은 패배의 기억을 구현하지 않은 채 발명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애도 작업이지만 또한 새로운 싸움을 위한 훈련이기도 하다. 과거를 샅샅이 탐구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벽장 안에 숱하게 많은 해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가 우리에게 내미는 권리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함으로써 과거를 구조한다. 혁명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그 자체 안에 조상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우리가 혁명의 역사를 숙고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p.53

근대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을 창출하면서 도시와 국가들을 대륙 철도 지도에 견줄 만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근대 산업은 분업과 표준화, 동기화된 생산 때문에 확실히 원료와 상품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를 필요로 했다. 실제로 근대 산업은 철도에서 자신에게 고유한 생산적 합리성의 벡터와 거울을 발견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산업자본주의의 부상은 동질적인 세계 시간을 필요로 했고, 철도는 무엇보다도 시계 기술의 개선을 자극함으로써 시간 규정에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했다. 1800년에 시간은 지방이나 지역 차원에서 맞춰졌다?하지만 열차는 전국적인 시간표 없이 달릴 수 없었고, 그러려면 다른 도시들 사이에 어떤 시간 차이도 없어야 했다. 세기말에 이르면 마침내 국제적 차원에서 시간 측정을 조정하고 결국 규정했다. 1855년 영국 공공시계의 98퍼센트가 그리니치 평균시에 맞춰졌고, 이 표준시는?워싱턴(1884)과 파리(1912)에서 두 차례 ‘세계 시간’에 관한 회의가 열린 끝에? 지구의 공식적 표준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회중시계(주머니 시계)의 숫자가 18세기 말 35만~40만 개에서 1875년 25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자본의 시대는 철도의 시대와 일치했다.
--- p.64

1929년 튀르키예 망명지에서 쓴 자서전에서 트로츠키는 한 장章 전체를 할애해서 그가 본부로 만든 장갑열차에 관해 이야기한다. “혁명 당시 가장 힘든 시기에 나 자신의 개인적 생활은 그 열차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묶였다. 다른 한편, 그 열차는 붉은군대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묶였다. 열차는 전선을 기지와 연결하고, 현장의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했으며, 교육하고 호소하고 보급하고 상을 주고 처벌했다.” 그는 “나는 듯이 빠른 행정 기구”처럼 작동하는 이 차량을 자세히 묘사했다. 열차에는 비서와 속기사, 고문 등이 일하는 사무실 몇 곳과 더불어 전신기, 무선국, 발전기, 소규모 인쇄소, 주방, 식당, 기숙사와 침실 등이 있었다. 열차에는 자동차도 두 대 실려 있어서 철도역에 도착한 뒤에 트로츠키가 내륙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붉은군대 총사령관인 트로츠키는 전용 서재가 있어서 거기서 연구하면서 논설과 심지어 책까지 썼다.
--- p.93

달리 말하면, 역사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은밀한 목적인telos이다. 혁명은 굉음을 내며 문명을 전진시키는 기관차가 아니라 종착역에 이르기 전에 이 열차의 비극적 경주를 중단시키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혁명은 시간을 가속화하고 그 내적 논리를 완수하는 대신 이런 직선적인 역사적 시간을 깨뜨리고 새로운 (메시아적) 시간을 열어야 한다. 베냐민의 혁명 정의는 20세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거울처럼 비춘다. 마르크스가 기관차에 매혹된 것이 낙관적인 만큼이나 이 순간은 묵시록적이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주의와 고조되는 노동자 운동의 ‘악마적 에너지’를 찬미했다. 베냐민은 ‘세기의 자정’이던 1940년에 이 글을 썼다. 오늘날 철도는 명예로운 혁명보다는 오히려 아우슈비츠를 환기시킨다.
--- p.102~103

반란은 대개 즐거운 정념의 분출이며,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로를 끌어안고서 집결의 기쁨을 맛보고 따뜻한 공동체로 단합된 느낌을 만끽한다. 정중함과 체면이라는 관습적 형식과 감정 억제를 갑자기 녹여버리는 이런 기쁨의 분출에는 관능이 존재하며, 따라서 익명의 군중 한가운데서 모르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것은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된다. 해방의 희열이 존재하는 것이다. 해방된 광장을 극장으로 변모시켜 방금 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재연하고 카메라로 고정시키는 ?숱하게 많은 혁명에 전형적인? 경향은 이로써 설명된다. 남자들은 무기를 휘두르고 여자들은 들라크루아의 마리안처럼 깃발을 하늘 높이 휘날린다. 많은 이들이 증언을 통해 이런 순간의 격렬한 행복감을 묘사한 바 있다.
--- p.114

칼리닌, 부하린, 트로츠키, 카메네프, 리코프가 참석한 비공식 정치국 회의에서 신임 당서기장 스탈린은 웅장한 장례식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화장?엥겔스가 25년 전에 선택한 방식?은 러시아의 전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몇몇 당원들이 국민이 이런 엄청난 손실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잠시 동안이라도 지도자를 방부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고 언급했다. 이 제안에 트로츠키와 부하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레닌의 유해를 정교회 성자처럼 성골聖骨로 바꾸는 데에 반대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열렬한 무신론자인 레닌 스스로 그런 조치를 허락했을 리가 없다. 이후 며칠간 레닌의 부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도 항의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이렇게 견해차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장례식 동안 레닌의 주검을 전시한다는 원칙을 승인했다(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서기장 그리고리 지노비예프는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서 레닌의 주검은 세계 혁명의 소유물임을 강조하면서 이 제안을 지지했다). 따라서 크룹스카야가 공개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레닌의 시신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 p.142

프랑스 대혁명은 자연권 철학에 바탕을 두었음에도 인류의 다양성을 포용할 수 없는 보편적 인간 개념을 가정했다. 인간의 권리는 사실 여성의 권리와 대립되는 의미의 남성의 권리였다. (중략) 격앙파enrage 코뮌 의장으로 공포정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피에르-가스파르 쇼메트는 여자들이 “가정과 자녀의 요람을 돌보는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고 … 공공장소와 화랑에서 벌어지는 토론, 의사당 참관석에 나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만약 자연이 남자들에게 집안일을 맡겼다면 “우리한테 아이들 젖을 먹일 젖가슴을 주었는가?”라고 반문하며 “남자가 되려고 기다리는 파렴치한 여자들”을 비난했다. (중략) 여성들에게 가장 커다란 진보를 안겨준 것은 한 세기 뒤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었다.
--- p.162~163

러시아 혁명은 외부로 확대?1919년 볼셰비키는 이 과제를 위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창설한 바 있었다?되는 대신 뒤로 물러나서 유혈 내전에 몰두했다. 1792년의 적과 완벽하게 견줄 만한 국제적 연합에 맞서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다. 스탈린주의는 이런 퇴각이 낳은 결과였지만, 혁명의 호소는 20세기 내내 힘차게 울려 퍼졌다. 20세기는 여러 충돌과 파열에도 불구하고 ‘혁명’과 ‘공산주의’가 거의 동의어가 되는 시대였다. 1920년 버트런드 러셀은 볼셰비즘을 프랑스 대혁명과 원형적 이슬람의 종합으로 정의했다. 볼셰비즘의 메시아주의가 가진 매력은 7세기 아랍 세계에서 무하마드가 내세운 메시아주의만큼이나 저항할 길 없이 강했다.
--- p.200~201

군중의 발명품인 바리케이드는 19세기의 혁명을 지배했다. 1830년 7월 혁명 중에 파리에서 다시 등장했고, 벨기에에서도 세워졌으며, 1848년에는 유럽 전역에 나타났다. 그리고 파리코뮌 시기에 정점에 달했다가 점차 쇠퇴를 겪었다. 하지만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1919년 베를린, 1936년과 1937년 바르셀로나, 1944년과 1945년 유럽의 수많은 도시, 그리고 다시 1968년 5월 파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쯤이면 바리케이드의 성격이 바뀌어 실용적·군사적 기능이 대부분 사라지고 상징적 차원만 유지되었다. 바리케이드가 정신에 그토록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집단적 기억에 영원히 새겨진다면, 그것은 언제나 익명의 눈부신 성격 때문이다. 바리케이드에는 지도자가 없으며 위에서부터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리케이드는 긴급한 상황에서 자기조직화 능력에 의지해서 군중이 자발적으로 창조한 구조물이다.
--- p.224~225

붉은 깃발은 1830년에 다시 등장했고, 바리케이드처럼 1848년의 모든 혁명에서 반란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민중의 봄’ 시기에 붉은 깃발은 분명 국기와 대립되지 않았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요구를 넘어서 ‘사회적 공화국’을 위해 싸우는 사회주의 운동을 구별하는 표시였다. 1848년부터 냉전 시대까지 보수 세력에게 붉은 깃발은 입에 칼을 문 볼셰비키가 휘두르는 피와 증오의 상징을 나타냈고, 좌파 운동에게는 평등한 사회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의 상징이었다. 마르크 앙주노에 따르면, 1848년에 붉은 깃발은 “고유한 법률과 의례를 가진 대항사회”를 선언하는, 지배 질서와의 급진적 단절을 가리키는 은유가 되었다. 바리케이드 위에 내건 붉은 깃발은 “일상 세계가 새로운 유토피아적 현실로 변형됨”을 가리키는 신호로 등장했다.
--- p.234

서구에서는 장기간의 평화롭고 민주적인 정치 풍경과 결합된 도시 보헤미아의 종말과 대중 대학교의 도래가 대다수 지식인이 캠퍼스로 도피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지식인들은 공적 역할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대개 자기들만의 사회적 공간에서 소비되는 난해한 저술을 쓰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 사상이 대학으로 도피하는 이런 현상은 공적 영역의 물화와 일치했다. ‘혁명적’ 지식인의 지위를 심대하게 뒤바꾼 치명적인 결합이었다. 전후의 지식인들은 노엄 촘스키나 에드워드 사이드, 장-폴 사르트르 같은 ‘소수 반대파’로, 혁명적 행동에 직접 관여하는 활동가는 드물었다. 후자의 방식은 남반구에서 비교적 흔하지만?아밀카르 카브랄이나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 같은 인물을 생각해보라?, 서구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반란의 시기를 제외하면 대단히 이례적이다.
--- p.262~263

이런 이론적 논쟁의 언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지식인은 부르주아 계층이다. b) 지식인은 자기 계급을 저버림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에 가담할 수 있다. c)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세우기 위해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 d) 몰락한 지식인?룸펜이나 보헤미안?은 1848년 프랑스의 경우처럼 정치적 반동에 가세하기 쉬운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회 계층이다. 이 논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측면을 하나 꼽자면, 자기부정이다. 누구도 마르크스주의 지도자, 활동가, 사상가의 압도적 다수가 몰락한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았다.
--- p.287

여성은 ?소비에트의 많은 포스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노동자와 농민이었고, 페트로그라드를 방어하는 동료 민병대원들 옆에서 무기를 들었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성원으로서만 존재했다. 여성 노동자, 농민, 병사가 전통적인 모성의 상징화에 대립되자 여성을 지식인으로 재현할 여지가 전혀 남지 않았다(초현실주의자 카욍처럼 중성적 국외자는 예외였다). 이는 전형적인 혁명적 지식인이 전통적으로 남성이었음을 의미한다. 여성 혁명가들이 분명 존재했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이는 그들의 젠더를 부정함을 함축했다. 혁명 운동의 위계적 구조는 그들에게 서발턴의 지위를 부여했다. 소련에서 여성은 두 주요 대학을 이끌었지만?클랍디야 키르사노바는 국제레닌학교를, 마리아 프룸키나는 서부소수민족대학을 이끌었다?, 볼셰비키당 정치국에서 여성은 크게 과소대표되었다. 슈투더의 설명에 따르면, 코민테른에서 여성은 대부분 비서나 타자수, 통역자로 활용되었다.
--- p.316

코즈모폴리터니즘. 1848년부터 쿠바 혁명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많은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지식인들을 구별지은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종종 민족적 맥락에 뿌리를 둔 정치적 헌신과 합쳐지거나 그것으로 대체되었다. 호찌민의 사례를 보면, 코즈모폴리턴적 반역자들이 심대한 토양적 성격을 드러낼 수 있음이 드러나며, 멕시코 망명지에서 죽은 트로츠키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붉은군대의 카리스마적 수장으로 변신한 보헤미안이 뿌리 뽑힌 코즈모폴리턴이라는 원래의 지위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블랑키부터 레닌까지, 교조주의자들은 불편한 군복을 만들려고 했지만, 많은 경우에 이 군복은 비판적 사고의 독립성에 열정적으로 집착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실존적 궤적에 들어맞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1956년 소련 탱크가 부다페스트의 평의회 정부를 전복했을 때, 어느 장교가 루카치 죄르지에게 무기를 넘기라고 요구하자 루카치는 펜을 건넸다. 호르티 장군의 탄압과 모스크바 재판을 견뎌낸 늙은 혁명 철학자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지만, 그의 몸짓에는 더 깊은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혁명적 지식인들은 골칫거리인 것이다.
--- p.376

공산주의 경험이 생명을 다하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이 경험을 옹호하거나 이상화하거나 악마시할 필요는 없다. 여러 내적 긴장과 모순에 의해 모양지어지며, 구원의 활력에서부터 전체주의적 폭력에 이르기까지, 참여민주주의와 집단적 숙의에서부터 맹목적 억압과 대규모 절멸에 이르기까지, 더없이 유토피아적인 상상에서부터 가장 관료주의적인 지배에 이르기까지?때로는 짧은 시간 안에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이동한? 폭넓은 스펙트럼의 그늘 속에 여러 차원을 보여주는 하나의 전체, 변증법적 총체로서 이 경험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1년, 프랑스 공산당과 단절한 경험을 서술한 자서전에 새로 서문을 쓰면서 에드가 모랭은 공산주의 경험의 복잡성과 모순적 성격을 동시에 포착하는 스탈린주의의 정의를 제안했다. 스탈린주의는 “세계를 변혁하려는 거대한 모험에서 괴물 같은 단계”라는 것이었다. 이 악몽의 순간은 불가피하게 나머지 시간들에 그림자를 드리웠지만?실제로 스탈린주의는 20세기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모험은 훨씬 전에 시작되어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 p.455~456

우리의 정치·철학 어휘 사전에 담겨 있는 다른 많은 ‘○○주의’들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도 다의적이고 궁극적으로 ‘모호한’ 단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는 이상형도 아니고 하나의 개념도 아니며, 오히려 여러 사건과 경험을 아우르는 무미건조한 포괄적 단어다. 이 단어의 모호성은 ?마르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많은 유토피아 사상가가 정교하게 다듬은? 공산주의 사상을 그 역사적 구현물과 분리하는 차이에만 있지 않다. 그 모호성은 공산주의의 여러 표현이 대단히 다양하다는 데에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이탈리아의 공산주의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비록 지도자와 이데올로기적 참고문헌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많은 공산주의 운동이 심대한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적 현상으로서 공산주의가 그린 역사적 궤적을 고려하면, 공산주의는 여러 공산주의들의 모자이크로 나타난다.
--- p.458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는 마오쩌둥의 이미지는 역사적 사건의 아우라를 내뿜었다. 분명 전체주의 체제의 틀에 박힌 분열식으로 축소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미지는 즉석에서 만든 바리케이드로 도시 전체가 마비된 1919년 1월 베를린의 광적인 혼돈이나 1958년 12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반란군을 환영하기 위해 아바나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의 환희에 찬 흥분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중국에서 혁명 과정은 일본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사회적 해방 조치 및 극도로 권위주의적인 권력의 수립과 결합했다. 공산당은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해방하고 조상 대대로 이어진 지배로부터 농민을 해방하는 한편 민주적 활력 자체를 질식시키는 배타적인 독재를 세웠다. 마오주의는 중국식 러시아 볼셰비즘이 아니라 독특한 혁명 운동이었다.
--- p.481

1976년,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들인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산티아고 카리요, 조르주 마르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한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렇게 그람시를 다시 읽음으로써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을 내팽개치지 않은 채 베른슈타인과 다시 손잡을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개혁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려는 마지막 시도는 1970년대 중반 등장한 유로코뮤니즘 사상이다. 몇몇 지식인들은 20세기 전반기에 오토 바우어, 막스 아들러, 카를 레너, 루돌프 힐퍼딩 같은 사상가들이 구체화한 오스트로마르크스주의의 전통과 이를 연결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었다. 도널드 서순은 오스트로마르크스주의와 유로코뮤니즘 둘 다 소련식 공산주의와 개혁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했다고 주장한다.
--- p.496

물론 많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경향이 레지스탕스에 참여해서 파시즘을 물리치는 데에 기여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확보했다. 가장 중요한 사례만 몇 개 떠올려봐도, 영국에서는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정부가 복지국가를 도입했고, 프랑스에서는 전국레지스탕스위원회가 강령을 작성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독민주주의 세력이 공동으로 1946년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완성된 형태는 스칸디나비아에서만 존재했다. 토니 주트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는 이 지역에서 거의 하나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자기개혁이 낳은 결과였다. 이렇게 ‘인간화된’ 형태의 자본주의의 전제를 선언한 것은 1942년 영국에서 윌리엄 베버리지가 작성한 유명한 보고서다.
--- p.498

1989년의 역사적 전환은 이런 진단을 확인해주었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가 막을 내린 이후 자본주의는 ‘야만적’ 얼굴을 되찾고 자신의 영웅적 시대의 활력을 재발견하면서 거의 모든 곳에서 복지국가를 해체했다. 서구의 대다수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돌아서서 이런 이행의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옛날식 사회민주주의와 더불어 심지어 사민주의적 공산주의도 사라졌다. 1991년 이탈리아 공산당의 자진 해산은 이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었다. 이 당은 고전적 사회민주당으로 돌아서는 대신 중도좌파 자유주의의 옹호자로 변신해서 미국 민주당을 모델로 삼는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 p.499~500

스탈린주의는 비슷한 기술적 근대성 숭배를 계몽주의의 급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형태와 결합했다. 사회주의는 ‘차가운 유토피아’로 변모했다. 새로운 글로벌 좌파는 이런 역사적 경험을 ‘샅샅이 탐구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 이 폐허의 들판에서 공산주의의 해방적 고갱이를 찾아내는 일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작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투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과거가 다시 나타나고 ‘기억이 번쩍 빛나게’ 밝혀주는 새로운 별자리가 필요하리라. 혁명은 일정을 잡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 p.506

출판사 리뷰

‘갈림길에 선 남자’와 변증법적 이미지들의 몽타주

표지 그림을 보라. 전간기의 가장 강력한 ‘사유-이미지’로 손꼽히는 디에고 리베라의 『인간, 우주의 통제자』(1934년)라는 벽화다. 처음 디에고 리베라와 계약한 록펠러 재단 측에서 벽화에 등장한 레닌을 ‘무명의 사람’으로 대체할 것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고 멕시코시티 예술궁전의 벽화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갈림길에 선 남자는 과거와 미래, 악과 행복, 이기주의와 형제애, 병과 건강, 편견과 계몽, 반계몽주의와 진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거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서 있다. 미래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아는 그는 심각해 보인다. 왼편에는 우아한 숙녀와 신사들이 춤을 추고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하고 칵테일을 홀짝거린다(존 록펠러 주니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 옆에서 노동자들이 벌이는 대규모 시위가 기마경찰에게 폭력적으로 진압된다. 더 왼편에서는 교사가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원숭이가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다윈 옆에 있는 발전소와 방사선 사진이 과학의 도구를 통해 자연을 길들이는 인간의 역량을 보여주는 한편, 다인종으로 구성된 학생 청중은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다. 오른편에는 레닌이 있다. 엄숙한 자세를 한 10월 혁명의 설계자 레닌은 노동자와 농민, 병사의 손을 잡음으로써 그들의 동맹을 다짐한다. 더 오른편에는 ‘전 세계의 노동자여 제4 인터내셔널로 단결하라!’ 깃발은 든 레온 트로츠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가 있다. 트로츠키와 마르크스 바로 뒤에 있는 조각상은 목이 잘린 카이사르를 나타낸다. 바닥에 나뒹구는 그의 머리를 의자 삼아 앉은 노동자들이 뭔가를 관람하고 있다. 카이사르의 손에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상징인 나뭇가지 묶음이 쥐어져 있고, 거기에 나치의 만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상징적 가치로 가득한 이 프레스코화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 사회주의의 미래상, 혁명의 패러다임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트라베르소는 혁명의 개념, 경험, 상징, 이미지, 기억 등을 두루 살펴보기 위해 변증법적 이미지들의 몽타주를 그려 보인다. 혁명은 공식적 상징이나 기념물로 고정하기에는 너무도 다채로운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의 기관차’에서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으로서의 성해방, 블랑키의 바리케이드와 붉은 깃발 등 혁명의 여러 이미지는 독자에게 풍부한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 결과 기관차, 신체, 바리케이드, 깃발, 의례, 물질적 장소, 그림, 포스터, 상징적 랜드마크 등 온갖 ‘변증법적 이미지’로 만들어진 매혹적인 역사의 풍경이 펼쳐진다. 현재라는 거친 물결을 헤쳐 나가며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에 연료를 공급하려면 과거를 탐구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얼굴 또는 혁명적 지식인

혁명가의 가장 고전적인 이미지는 아마 아우구스트 잔더의 『우리 시대의 얼굴』(1929)에 실려 있는 사진 〈혁명가들〉(알로이스 린드너, 에리히 뮈잠, 귀도 코프)일 것이다(274쪽의 그림 4-1을 보라). 세 사람의 허름한 옷차림은 가난은 말할 것도 없고 내면의 정신적 동요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그들의 불안정한 현실을 증언한다. 세 사람의 얼굴에 담긴 근엄함은 자기만족 대신 두려움을 드러내며, 한껏 붙어 앉은 모습은 친밀감과 유대만이 아니라 위험 앞에서 서로 도우려는 분위기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들은 주변부로 몰린 뿌리 뽑힌 음모자들, 선동적 보헤미안 삼인조를 이룬다.

19세기 말에 ‘인텔리겐치아’라는 단어가 러시아에서 서구로 들어왔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는 이미 이 단어가 정치에 몰두하는 문필가를 가리키는 의미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마치 복음과도 같은 특정한 삶의 태도를 퍼뜨리는 데 헌신하는 집단, 거의 세속적인 사제단으로 여겼다”. 이 혁명적 지식인들이 아무리 능수능란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국외자로 살았다. 또한 아이작 도이처가 언급한 동유럽과 중유럽의 ‘비유대적 유대인’은 변증법적 인간형으로서 유대교를 거부하는 대신 초월했으며,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의 혁명적 지식인들은 전통과 근대, 조국과 서양, 이론과 행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혁명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역병과도 같은 기근으로 서서히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엄을 획득하는 길이었다.

혁명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그 안에 조상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우리 시대의 혁명이 자신만의 모델을 발명해야 한다면, 지나간 투쟁과 정복의 기억뿐만 아니라 더 많은 패배의 기억을 소환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트라베르소는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베냐민, 그리고 마오쩌둥과 호찌민에서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C. L. R. 제임스를 비롯한 남반구의 반역적 정신들에 이르기까지 혁명을 추구한 지식인들의 삶의 궤적과 이론을 추적하면서 혁명의 이론을 샅샅이 검토한다.

99개의 도판을 통해 혁명의 이미지들을 다룬 탁월한 에세이

발터 베냐민은 혁명을 핵분열에 비유했다. 과거 안에 담긴 온갖 에너지를 해방시키고 증식시킬 수 있는 폭발이라는 의미였다. 이 책은 시대순으로 혁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대신 기성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기대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집단적 분출로 혁명을 해석한다. 혁명은 갖가지 유토피아의 공장이다. 트라베르소는 우리가 사는 근대를 이해하는 열쇠로 혁명 개념을 복원한다. 혁명의 사회적?정치적 구조만이 아니라 혁명의 이념과 집단적 상상, 심지어 미학적 형태까지, 다시 말해 텍스트와 이미지, 이론과 경험, 물질적 유산과 집단적 기억에 담긴 혁명의 지적?정서적 차원을 파악하고자 한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가 막을 내린 이후 자본주의는 ‘야만적’ 얼굴을 되찾고 곳곳에서 복지국가를 해체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강요하는 현실적 위협으로서 힘을 잃고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신했다. “자본주의적 자유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는 것은 19세기 내내 좌파 급진주의의 주요한 주제”(392쪽)였다.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에게 자유와 평등, 존엄을 부여하는 완전무결한 체제가 아니라고 할 때, 누군가는 반대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제어되지 않는 자본주의 아래서 우리는 기후변화에서부터 불평등, 혐오와 극우 포퓰리즘, 초강대국 간 극한 경쟁, 전쟁과 학살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지나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가 진행되면서 인류 문명의 존망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대다. 그 폐허 위에서 파국으로 달려가는 역사에 비상 브레이크를 당길 수 있을까? 19세기와 20세기의 혁명의 역사에서 우리는 유의미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21세기에 혁명은 과연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당대의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 손꼽히는 트라베르소의 ??혁명의 지성사??는 도판 99개의 혁명의 이미지들과 함께 두 세기의 자료를 수많은 선명한 행위자, 사상가와 나란히 엮어 풍부한 태피스트리를 펼쳐 보인다. 마르크스는 근대의 혁명은 “과거로부터 시詩”를 끌어낼 수 없다고 말한 반면, 베냐민은 패배자들을 구원하려는 열망 속에서 혁명의 숨은 동력, 즉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비밀 협정”을 탐지했다. 혁명은 두 시간대를 가르는 칼날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발명함으로써 과거를 구원하는 것이다.

추천평

이 매혹적이고 이단적인 연구에서 그는 과거에 벌어진 혁명들을 이상화하지 않은 채 역사적 경험의 기억을 보전하고자 한다.
- 미카엘 뢰비 (『생태사회주의』의 저자)
엔초 트라베르소는 놀라운 학문적 전문성과 더없이 우아한 필치로 19세기와 20세기의 자료를 수많은 사상가와 나란히 엮은 풍부한 태피스트리를 펼쳐 보인다.
- 앨런 월드 (미시건대학교)
탁월하고 아름다운 책. 이 책이 나온 이상 만약 이 책이 없으면 어떨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 차이나 미에빌 (『이중 도시The City and the City』의 저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를 열망하는 이들이라면 트라베르소의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 웬디 브라운 (『신자유주의의 폐허 속에서』의 저자)
혁명가를 위한 책!
- 『소셜리스트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