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동양철학의 이해 (독서)/3.풍수지리학

우리 고을 명당이라오 (2023) - 풍수 따라 떠나는 도시 여행

동방박사님 2024. 2. 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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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수점수는 과연 몇 점일까?

풍수 하면 다들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 같은 단어는 떠올릴 만큼,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런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명당’이라 일컫는다. 다들 이왕이면 풍수가 좋은 곳에 살고 싶어 한다. 명당에 살면 재복, 건강운이 따르고 자손이 번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풍수지리에 딱 들어맞는 명당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집필한 이기봉 작가는 지리학 전공자로 오랫동안 고지도를 연구해오면서 그림식 고을지도 속에 담겨 있는, 명당에 대한 사람들의 강렬한 열망을 찾아냈다. 풍수학자가 아닌 지리학자가 지닌 색다른 관점에서 풍수와 명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국 각지의 대표적인 도시들의 풍수점수를 매겨 과거 명당이라 불리는 고을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명당이라면 으레 갖추어야 할 조건이 부족한 고을이 100점짜리 명당 고을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았다.

이 책은 오늘날 풍수라는 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을 읽은 후 국내 도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과연 이 도시는 풍수점수 몇 점짜리일까 생각해보고 책에 등장하는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1부 그림식 고을지도, 최고의 비보풍수 이야기

명당의 의미가 변하다
풍수사상, 개혁으로 나타나다
작고 웅장하지 않으면서도 크고 웅장하게 하라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개념, 지기를 만나다
명당은 임금의 무덤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풍수의 명당에 자리 잡은 고을의 읍치는 많지 않았다
최고의 비보풍수, 마음속의 명당을 그리다
이야기 속 그림식 고을지도를 찾아라

2부 풍수점수 빵점 고을, 100점의 명당 고을로 만들어라

풍수점수 빵점의 고을, 의외로 많았다
경상도의 ‘상(尙)’ 자가 유래된 상주(尙州)를 찾아가다
충청도의 ‘충(忠)’ 자가 유래된 충주(忠州)를 찾아가다
충청도의 ‘청(淸)’ 자가 유래된 청주(淸州)를 찾아가다
강원도의 ‘원(原)’ 자가 유래된 원주(原州)를 찾아가다
전라도의 ‘전(全)’ 자가 유래된 전주(全州)를 찾아가다
전라도의 ‘라(羅)’ 자가 유래된 나주(羅州)를 찾아가다
경상도의 ‘경(慶)’ 자가 유래된 경주(慶州)를 찾아가다
강원도의 ‘강(江)’ 자가 유래된 강릉(江陵)를 찾아가다

3부 우연히 풍수점수 25~75점이 되다

풍수점수 25~75점의 고을이 가장 흔했다
포천, 풍수점수 25점을 100점으로 끌어올리다
파주, 권율 장군이 주둔한 산성이 우뚝하다
부평, 현실의 비보풍수 알뫼〔造山〕를 만나다
김화, 남북분단이 초래한 슬픈 고을의 읍치를 찾아가다
평창, 비보숲을 만나다
청양, 풍수점수 25점의 읍치를 100점+α로 만들다
음성, 풍수점수 25점의 읍치를 100점+α로 바꾼 고을을 또 만나다
금구, 골짜기를 완전히 지우고 비보숲을 조성하여 명당을 그리다
장성, 비보숲으로 풍수점수를 무려 75점이나 올리다
개령, 지형으로 안 되면 비보숲을 만들어서라도 100점+α의 명당을 만들다
진주, 150점의 풍수읍치를 만들다

4부 풍수의 명당 논리에 맞는 읍치를 찾아라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읍치터를 잡은 고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00점의 명당, 낙안읍성을 낙안 사람들이 거부하다
고을 사람들이 낙안읍성처럼 거부했다는 곳, 보령읍성을 찾아가다
더 높은 풍수점수의 명당터를 찾아 두 번이나 읍치를 옮긴 고을, 거제를 찾아가다
울산, 2년에 두 번이나 읍치를 옮기다
양주, 풍수의 명당 논리로 터를 잡은 최초의 읍치가 등장하다
광주의 읍치, 풍수점수 0점에서 100점의 명당이 되다

끝맺으며
 

저자 소개 

저 : 이기봉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의 아끔말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저술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도, 지방 도시, 마을, 풍수, 고지도, 독도, 지명, 도로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

책 속으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 주거 공간이나 점포, 사무실 등을 찾은 사람으로부터 ‘야~ 여기 진짜 명당이네.’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일종의 대박이 날 것이라는 덕담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계곡에서 쉬거나 놀기에 좋은 자리를 잡았을 때도, 높은 건물이나 산에서 전망이 좋은 자리에 섰을 때도, 운동경기나 콘서트를 구경하기에 딱 좋은 자리에 앉았을 때도 우리는 ‘여기가 명당이네!’라는 말을 쓰며 행복해합니다. 명당이라는 말 속에는 돈을 많이 벌거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등의 기대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명당은 원래부터 그런 기대를 하게 하는 곳이었을까요? 그동안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멉니다.
--- p.14

만약 중국의 이상적인 도시처럼 허허벌판에 들어선 도시나 마을이 있다면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 어느 하나도 설정할 수가 없으니 0점입니다. 이럴 경우 보통 ‘배가 떠나가는 형국’, 즉 행주형(行舟形)이라는 풍수의 명당 형국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폐사찰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전해지면 그것을 배의 돛대라고 하고, 없으면 솟대 같은 것을 세워 배의 돛대로 여기면서 신성시합니다. 그리고 배의 밑바닥에 구멍을 내면 물이 새어 나와 결국엔 배가 가라앉는다고 하면서 우물을 파지 말라는 속설도 만듭니다. 때로는 배가 떠나가지 말라고 하천가에 숲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주형의 풍수 형국은 원래부터 풍수의 경전에 나오는 것일까요? 산과 산줄기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으니 나올 리가 없습니다. 즉 행주형이라는 말은 풍수의 경전에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 p.43

1872년의 원주 지도에서 감영이 주산 방향의 서쪽을 등지고 안산 방향의 동쪽을 등진 것처럼 그린 것은 풍수점수 0점인 읍치를 100점 또는 80점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에서 산과 산줄기의 방향에 맞게 감영의 방향을 변형시켜서 ‘우리 고을도 명당이라오!’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원주 사람들 대부분도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 p.86

원래 산성이나 요새성의 터를 잡을 때는 풍수의 명당 논리가 전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고을 대부분의 지역, 그것도 어려우면 주요 지역이 한눈에 조망되면서 일상적으로 오르내리기에 높지 않고 중소 규모의 단기전에 강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산성이나 요새성을 지을 수 있는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래로 내려온 것인데, 풍수가 문화 유전자로 잡은 조선 후기에는 모두 풍수의 명당 논리로 포장하여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풍수점수 25점의 경우는 주로 산성이 있던 산을 주산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고 나머지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의 산과 산줄기는 없던 고을들입니다. 50점의 경우는 산성이 있던 산을 주산으로 삼으면서 주변에 좌청룡이나 우백호, 안산 중 하나만 설정할 수 있던 고을들입니다. 75점의 경우는 산성이 있던 산을 주산으로 삼으면서 주변에 좌청룡과 우백호를 설정할 수 있는 고을들입니다.
--- p.125

삼산은 작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었습니다. 울산 시가지를 개발할 때 모두 없어졌다고 하니까 얼마나 작았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왜 그렇게 작은 삼산을 특별히 표시해 넣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풍수점수 0점의 병영성도 풍수의 명당인 것처럼 그렸습니다. 읍치가 있던 울산읍성 지역도 도저히 연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신학성의 작은 봉우리까지 끌어다가 풍수의 명당으로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울
산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울산읍성 지역에 안산이 없는 단점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동지도』의 울산 지도에서는 주산 함월산에서 뻗은 좌청룡과 우백호 방향으로 동동남쪽 멀리에 있는 삼산을 가까이 끌어다가 안산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병영성을 풍수의 명당으로 그린 것, 신학성의 봉우리를 울산읍성으로 끌어다 붙인 것, 멀리 있는 삼산을 울산읍성 바로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린 것, 이런 것들이 다 그림식 고을지도가 만들어낸 비보풍수입니다.
--- p.229~230

출판사 리뷰

비보풍수로 풍수적 결함을 극복하다

#마음의 눈으로 만들어낸 명당


조선 후기에는 풍수가 수도와 지방 도시(읍치), 궁궐과 관아, 마을과 집, 무덤 등 모든 곳의 터잡기에서 권위나 위엄을 표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양반 마을과 읍치 중에서 풍수의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곳이 많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 책에서는 주산, 좌청룡, 우백호, 안산 각각을 풍수점수 25점을 부여했다. 네 요소 모두를 갖추고 있으면 100점, 세 요소만 갖추면 75점, 두 요소만 갖추면 50점, 하나만 갖추면 25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으면 0점으로 보았다.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경우 부족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보충하여 풍수점수 100점의 명당터로 만들고자 했는데 이를 비보풍수(裨補風水)라 한다. 그래서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경우 예를 들어 주산과 좌청룡은 있는데 우백호와 안산이 없으면 우백호 부분에 비보숲을 조성하고 안산 부분에 인공 산인 조산(造山)을 만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심지어 풍수점수 0점인 곳을 100점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풍수 형국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빵점 고을을 100점짜리 명당 고을로 만들다

풍수점수 빵점짜리 고을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상주, 충주, 청주, 원주, 전주, 나주 경주, 강릉을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유명한 고을이 풍수점수 빵점이라니 믿기 힘든 사실이다. 가장 흔한 곳은 풍수점수 25~75점짜리 고을이었다. 포천, 파주, 부평, 김화, 평창, 청양, 음성, 금구, 장성, 개령, 진주다.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고을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런 고을들은 풍수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비보풍수를 이용해 100점짜리 명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해동지도나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 나와 있는 고을지도를 통해 내용을 확인해보고 그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명당 고을을 거부한 사람들

대부분의 고을이 100점짜리 명당은 아니었지만 20~30% 정도의 고을은 100점짜리 명당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을들은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읍치를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명당터를 반대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두 군데를 살펴보았다. 낙안읍성과 보령읍성이다. 나라에서 옮기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사람들이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탄원서까지 올렸다. 하지만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