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문교양 (독서)/2.에세이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2021) -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동방박사님 2024. 3. 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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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외의 질주를 멈추고
생명과 마음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기!!
동양의학과 불교의 지혜가 전하는 양생과 해탈의 길!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동양의학의 집대성인 『동의보감』, 그리고 청년 붓다의 육성이 담긴 불교의 초기 경전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구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숫타니파타』, 이 두 권의 고전을 통해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문제에 대해 성찰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화폐에 대한 집착과 소비 중독, 집과 가족에 대한 집착, 인정욕망과 고독 등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생명의 베이스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거리만큼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소외의 질주를 멈추고 고통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생명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동의보감』과 『숫타니파타』를 통해 그러한 진리 탐구의 길을 시작하자고 이야기한다.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양생의 길’을 대표하는 『동의보감』, 그리고 2천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의 마음과 고통의 문제를 고민해 온 불교의 사유를 지금-여기로 불러와 우리의 생명력과 영성을 되살리고,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삶, 지혜와 우정이 충만한 삶으로 나서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첫번째 강의 _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1.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
2. 동의보감과 숫타니파타: 존재와 우주에 대한 탐구

두번째 강의 _ 청년의 파토스, 노년의 로고스

1. 『동의보감』, 노년의 로고스 60
2. 청년의 파토스, 『숫타니파타』

세번째 강의 _ 정기신과 탐진치(1) : 생명과 존재의 근원

1. 존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
2. 정기신과 탐진치

네번째 강의 _ 정기신과 탐진치(2) : 업장과 윤회의 원천

1. 욕망을 다스리고 정을 보존하라
2. 기, 운동과 순환의 에너지
3. 신, 삶의 지도를 그리는 정신활동

다섯번째 강의 _ 칠정을 조율하라, 감관을 수호하라

1. 칠정의 조율과 양생
2. 감관의 수호와 청정함

여섯번째 강의 _ 몸-타자들의 공동체 vs 나는 ‘내’가 아니다!

1. 사대오온이 다 공하다?
2. 몸, 타자들의 공동체
3. 나는 ‘내’가 아니다!

일곱번째 강의 _ 음양오행론과 연기법

1. 『동의보감』의 원리, 음양오행론
2. 연기법, 마음과 우주의 상호작용

여덟번째 강의 _ 수승화강과 니르바나

1. 음허화동에서 수승화강으로
2. 번뇌의 독화살을 뽑아라

아홉번째 강의 _ 사주팔자와 까르마

1. 사주팔자, 운명의 지도-그리기
2. 까르마와 업의 지도

열번째 강의 _ 통즉불통과 고집멸도

1. 고집멸도-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2. 스승과 친구와 길

저자 소개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 20대에는 청년 백수, 30대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40대 초, 중년 백수가 되었다.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공동체를 꾸렸다. 현재 [감이당] & [남산강학원]이 나의 본거지다. 2080세대가 함께 꾸려가는 지성의 네트워크라 생각하면 된다.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 이렇게 살아도 밥벌이가 되고 수많은 벗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이 행운을 많은 이들과 나...

책 속으로

그러면 무엇을 보고 사는 거죠? 바깥을 보고 살아갑니다. 외부에 설정된 기준에다 그냥 나를 맞추는 거예요. 물론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외부의 기준과 내 생명의 척도가 잘 맞을 리 없잖아요? 그러니 근근이 맞추면서 살기 때문에 모든 게 소외로 드러나게 됩니다. 열심히 뭘 하긴 하는데, 가슴 한구석엔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거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소외, 공부도 소외, 직장도 소외. 성공을 해도 소외, 성공하지 못해도 소외. 결국 인생 자체가 소외로 점철되는 거죠. ‘소외’는 ‘멀다, 낯설다, 어긋나다’, 이런 뜻입니다. 이 소외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면 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죠.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사는 거예요.
--- p.19

이런 식으로 원리와 이치, 그리고 역사적 변화를 찾아가다 보면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죠. 일단 그렇게 되면 부질없는 인정욕망, 그리고 그 위에서 구축된 자의식이 떨어져 나가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져요. 그 가벼워짐 자체가 면역력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이건 다 아시잖아요. 그런데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정욕망과 관련이 있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훨씬 줄어듭니다. 인정욕망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자기에 대한 탐구를 해나갈 수 있거든요. 물론 자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정욕망을 벗어나기도 하구요. 그런 식의 상호작용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 p.27

그런데 이런 가르침을 일상적으로 닦기 위해서는 공동체 혹은 네트워크가 꼭 필요합니다. 수행은 일상과 분리될 수 없어요. 아무리 대단한 지식이 있고, 또 깊은 삼매체험을 한다 해도 일상 속에서 그 상태를 구현할 수 없다면 그냥 공염불입니다. 우리의 몸이 갖고 있는 습관과 업장이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것 같아도 탐진치가 바로 잠식해 들어옵니다. 그런데다가 자본주의의 위력이 또 얼마나 셉니까. 화폐와 상품과 쾌락의 유혹, 이건 정말 허리케인의 위력을 능가합니다. 혼자서는 이겨 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승가공동체를 꾸리신 거죠. 절대 혼자 공부해서는 안 돼요. ‘혼밥’도 위험하지만 ‘혼공’은 정말 위험합니다. 욕망의 구조, 성격의 틀이 바뀌기는커녕 더 악화됩니다.
--- p.101

마음의 행로 또한 마찬가지겠죠. 탐진치도 일종의 태과불급 상태라 할 수 있죠. 사람이든 물건이든 돈이든 명예든 우리가 대상에 집착하는 건 탐욕과 분노에 물든 판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뭔가에 탐착하게 되면 그 허상에 빠져서 마구 치달리다가 뜻대로 안 되면 분노가 폭발하는 식이죠. 그러면 다시 원한과 자책의 프레임 안에서 세계 전체에 대한 허상을 만들어 내죠.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 대상들이 꿈 같고 아지랑이 같고 먼지 같은 것임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것, 그것이 치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치심은 탐욕과 분노의 베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치심을 타파해야 탐착과 분노에서 벗어날 길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계속 의심하고 탐구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삼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고요.
--- p.138

우리가 탐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이 삼독에 묻어 있는 달콤함 때문이죠. 이렇듯 붓다의 가르침은 그냥 추상적인 계시가 아니라 아주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착하게 살라’, ‘붓다를 섬기라’, ‘열반을 믿어라’라고 하지 않아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합니다. 선택은? 당연히 본인의 몫이죠. 붓다는 괴로움을 대신 씻어 줄 수도, 번뇌의 늪에서 건져 줄 수도 없어요. 다만 길을 안내해 줄 뿐입니다.
--- p.141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거예요. 피곤에 쩔거나 아니면 불안에 휘둘리거나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이건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거죠. ‘나는 이것보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라,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이런 말들이 있어요. 이건 그저 단순히 힐링과 위안의 말이 아니었어요. 연기법을 깨달은 붓다의 환희심을 보면서 그걸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기쁨에 가까이 다가갈 권리와 소명이 있는 겁니다.
--- p.304~305

출판사 리뷰

▶지은이의 말

이 책의 서막은 2020년 코로나가 막 도래했던 그즈음이었다. 코비드19라는 낯선 미생물의 습격하에 전지구가 요동치던 그 시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지?’라는 질문과 함께 그동안 막연하게 품어 왔던 두 개의 고전에 대한 서사를 강의로 펼치게 되었다. 『동의보감』 vs 『숫타니파타』. 두 개의 고전을 교차하면서 삶과 문명의 지도를 다시 그려 보고 싶었다. 전자가 몸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경로라면, 후자는 마음에서 우주로 연결되는 행로다. 전자가 동아시아 문명의 역사와 전통이 무르익은 노년의 로고스라면, 후자는 브라만교라는 오래된 전통을 깨고 인류 지성사에 막 등장한 풋풋한 청년의 파토스다. 노년의 로고스와 청년의 파토스가 교차하는 지적 모험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물론 몸에서 자연으로 가는 여행, 마음에서 우주로 가는 여행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정화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온전히 물질이고, 온전히 영혼”이기 때문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