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과학의 이해 (독서)/7.생명과학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2024) - 생물학의 미래를 보여준 세균학의 결정적 연구들

동방박사님 2024. 3. 1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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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장균에서 맞는 것은 코끼리에게도 맞다”_프랑수아 자코브

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결정적 순간.
현미경으로 세균을 보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세균 없는 세상, 세균 없는 생물학은 존재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생물의 발견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작아서 볼 수 없던 생물을 보게 되면서 자연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그것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보여주었다. 생물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부모와 자식은 왜 서로 닮는지에 대한 힌트도 주었다. 이런 수많은 생물학의 지식과 응용에는 세균을 연구한 여러 과학자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눠 담아냈다. 미생물학, 그중에서도 세균학의 모든 것을 만들어 온 결정적인 연구를 모았다. “대장균에게 맞는 것은 코끼리에게도 맞다”라는 자크 모노의 말은 미생물 연구가 단지 작은 세균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비밀을 밝히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생명체는 반드시 생명체에서 나온다는 파스퇴르의 발견이 채 200년이 안 되었지만, 이제는 인간이 컴퓨터의 힘을 빌려 인공 생명을 창조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시간의 제약으로 실험할 수 없었던 진화의 미스터리는 생애 주기가 짧은 대장균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그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DNA를 비롯한 유전물질을 찾아내며 거대한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분자생물학은 PCR과 제한효소, 유전자 가위라는 멋진 도구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지식과 산업의 영역을 거침없이 열어가고 있다. 세균에서 밝혀진 생명의 원리가 이제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지난 과거와 현재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앞으로 나갈 미지의 세상이 어디로 뻗어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목차

들어가며
네덜란드의 한 포목점에서 시작되다 | 세균에 관한 결정적 연구들

1부 생명 LIFE

1장 모든 생명체에는 부모가 있다 - 루이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
생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 자연발생설과 생물속생설 |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 원하는 결과에 맞춘 실험이긴 하지만
2장 인간, 신의 위치를 넘보다 - 크레이그 벤터의 인공 생명체 합성
"빨리 하라. 발견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 인공 생명체를 창조하다 | 자연에 없는 능력을 가진 생물을 만들고 싶다

2부 질병 DISEASE

3장.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다 - 로베르트 코흐의 병원균 최초 발견
피부가 까맣게 썩는 탄저병 | 탄저균이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다
4장. 이 병도 세균 때문이라고 - 배리 마셜의 헬리코박터균 발견
보았으나 발견되지 않은 세균 | 발견의 시작 | 거절당한 논문 | 스스로 기니피그가 되어 증명하다 |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발견 이후

3부 치료 THERAPY

5장. 인류, 감염병에 맞설 무기를 갖다 -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곰팡이 주위에 죽어 있는 세균을 보다 | 페니실린 논문에는 무슨 곰팡이인지 나오지 않는다 | 플레밍은 페니실린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 푸른곰팡이와 페니실린의 탄생 신화 | 누가 뭐라 해도, 수많은 생명을 살린 위대한 발견
6장. 새로운 항생제 찾기와 세균 잡는 바이러스 - 킴 루이스의 테익소박틴과 프레더릭 트워트의 파지 요법
새로운 항생제, 테익소박틴은 어떻게 찾아냈을까
세균 잡는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
_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하다 | _ 파지의 최초 발견자를 둘러싼 논란 | _ 독성과 부작용이 없는 파지 요법

4부 분류 CLASSIFICATION

7장. 세균을 구별하다 -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의 세균 염색
세균 관찰의 기본이자 분류의 표준 | 세포벽의 두께에 따라 염색이 달라지다 | 단순한 관찰 도구를 넘어 진화적인 생물 구분까지 | 그람 염색법의 원리와 한계 | 세균의 관찰과 분류는 물론 항생제 처방의 필수 정보로
8장. 세균은 한 종류가 아니다 - 칼 우즈의 고세균 발견
"실질적 가치는 거의 없는 연구” | 염기서열을 비교해 생물을 나누어 보자 | 리보솜 RNA는 진화의 시간을 측정하는 분자시계 | '명예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5부 분자생물학 MOLECULAR BIOLOGY

9장. DNA가 유전물질이다 - 오즈월드 에이버리의 형질전환 실험
그리피스의 폐렴구균 실험 | “예측 가능하고 유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 | 100퍼센트 인정받지 못한 연구 | 허시와 체이스의 파지 실험으로 종지부를 찍다
10장. 유전자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의 오페론 발견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프랑수아 자코브 | ’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을 밝혀내다 | '낮의 과학'과 '밤의 과학'

6부 진화 EVOLUTION

11장. 세균에도 성(性)이 있다 - 조슈아 레더버그의 대장균 접합 현상 발견
세균이 유전 정보를 주고 받는 방법들 | "대장균에서 성 활동이 일어난다” | 22살에 이룬 업적으로 받은 노벨상 | 남편 옆에서 빛바랜 에스더 레더버그의 과학적 성취 | 수평적 유전자 전달 현상의 의학적·진화적 의미
12장. 진화를 실험실에서 보여 줄게 - 리처드 렌스키의 대장균 장기 진화 실험
장기 진화 실험의 시작 | 대장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사람은 바뀌어도 연구는 계속된다

7부. 생명공학 BIOENGINEERING

13장. 이젠 너무나도 친숙한 기술, PCR - 케리 멀리스의 PCR 개발과 토머스 브록의 호열성 세균 발견
PCR은 DNA 분자를 증폭한다 | 여자 친구와 드라이브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 호열성 세균의 발견으로 실험실의 필수 도구가 된 PCR | 잘못 활용된 노벨상의 권위
14장. 세균의 면역 도구가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로 - 해밀턴 스미스의 제한효소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
제한효소는 무엇을 ‘제한’한다는 걸까 |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세균에서 찾아낸 제한효소 | 크리스퍼는 세균의 후천 면역 체계 | '크리스퍼'라는 반복 서열의 발견 |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가 '발명'한 유전자 가위

8부. 소통 COMMUNICATIONN

15장. 세균은 서로 소통한다 - 우들런드 헤이스팅스의 쿼럼 센싱
세균이 동시에 빛을 낼 수 있는 이유 | 세균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 | 쿼럼 센싱이 보여 준 세균의 사회성
16장. 더불어 사는 미생물 - 제프리 고든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미생물과 우리 몸 대사 활동의 상호작용 | 내가 뚱뚱한 게 장내 세균 때문이라니 | 장을 넘어 뇌로 넓혀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저자 소개

저 : 고관수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도 같은 대학에서 받았다. 아시아태평양감염연구재단(APFID) 연구실장을 거쳐 2007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에서 항생제 내성세균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생 때 문과와 이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글은 나중에도 쓸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이과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그 길을 가고 있다. 300편 가까이 논문을 발표할 ...

책 속으로

페트리 접시를 고안한 것도, 한천으로 고체 배지를 만드는 것도, 나뭇가지와 같은 감염 도구를 개발한 것도 모두 코흐와 그의 제자들이 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현대 세균학의 기본 도구를 고안하고 만들어가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세균을 순수 배양하는 방법에 관해 코흐는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다른 것과 접촉하지 않는 액체 방울에는 밖에서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코흐는 이에 착안하여 간단한 배양 장치를 만들었다.
--- p.63

그는 위 속에서 발견되는 세균에 대해 발표하려고 어느 학회(오스트레일리아 소화기 학회)에 초록을 냈는데, 그에 대해 학술대회 조직위원회가 보낸 거절의 편지를 보관하고 있었다. 제출된 67개의 초록 가운데 56개‘만’ 발표가 허가되었다는 완곡하지만 냉정한 거절의 편지였다. 발표가 거절된 11편의 초록 가운데 20년 후 노벨상을 받게 될 연구가 있었다니!
--- p.75~76

마셜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발견은 단순히 질병 하나의 원인균을 밝혀냈다는 것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왜 그럴까? 1980년대라면 사실 중요한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거의 밝혀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셜의 발견은 감염질환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질병이 세균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세균이 소화성 궤양을 일으킨다면, 다발성 경화증이나 류머티즘성 관절염은? 나아가 알츠하이머는? 그것도 감염질환의 일종이 아닐까? 이제 세균, 미생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폭이 달라진 것이다.
--- p.85

논문 발표 이후 플레밍도 한동안 페니실린을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모로 강구했던 것이 확실하긴 하다. (……) 아마도 페니실린이 분리가 매우 힘든 물질이었던 게 관심이 식어 버린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플레밍이 논문에도 썼듯이 페니실린은 에테르나 클로로포름에 녹지 않아 분리가 잘 되지 않았고, 농축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불안정해서 그냥 가만히 둬도 쉽게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임상적으로 어떤 기대를 갖기가 쉽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상하달 수도 있고, 아쉽다고 할 수도 있는 점은 플레밍이 그저 자신, 혹은 생물학자로 이루어진 자신의 팀만의 힘으로 분리나 농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후 옥스퍼드 대 학교의 하워드 플로리가 언스트 체인과 노먼 히틀리 등 미생물학과 화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제를 개발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 p.99

플레밍의 발견에는 과학적으로도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플레밍 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과 똑같은 상황을 아무도 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플레밍조차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즉 포도상구균이 배양접시에서 자라고 있는 상황에서 논문의 곰팡이를 사진에서와 같은 위치에서 자라게 했을 때 플레밍이 논문에서 제시한 사진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플레밍의 사진은 조작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 p.102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에 대해 굉장한 특이성(specificity)을 갖는다. 파지는 모든 세균을 공격하지 않는다. 특정한 세균만을 골라 공격하기 때문에, 인체 내의 미생물 군집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 또한 숙주인 세균이 죽으면 파지는 기능을 멈추기 때문에 원하는 효과를 넘어선 부작용이 없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환경에 독성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며, 적은 양만 처치해도 급격하게 증식한다는 점, 파지가 증식하는 장소가 바로 감염이 일어난 장소이기 때문에,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으며, 치료가 어렵다는 바이오필름을 형성한 세균에 대해서도 작용한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생산이 간단하고, 값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 p.124

세균학자들은 보라색을 띠는 세균을 ‘그람 양성균(gram-positive bacteria)’, 붉은색으로 염색되는 세균을 ‘그람 음성균(gram-negative bacteria)’이라고 한다. 염색 결과에 따라 그람 양성균과 그람 음성균으로 구분한 자의적 세균 분류가 구조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종류의 분류군이 자연 분류된 것, 즉 진화적으로 분화된 분류군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 p.131~132

그람 염색법은 20세기 중반에 그 가치를 다시 인정받았다. 특히, 1974년 당시 하버드 의대 교수 피어스 가드너는 급성 세균 감염 환자의 의학적 검사 항목에 그람 염색을 포함해야 하며, 그 결과를 1차 진료 의사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람 염색이 환자의 세균 감염 여부와 세균의 종류를 판별하는 데 기본적인 의학적 정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감염 세균의 그람 양성/음성 의 여부는 감염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1차 항생제 선택에 있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140

《사이언스》는 워싱턴 대학의 생화학 교수 앨런 웨이너의 “거의 모든 생물학자와 의사들이 우즈에게 명예 노벨상을 수여했습니다”라는 평가를 언급하고 있다.
--- p.156

194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세균은 이분법을 통해 증식하기 때문에 하나의 세균에서 나오는 모든 세균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균을 가지고 유전 연구를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확인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유전을 연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세균에서 분열을 통한 유전 정보의 전달 (이를 수직적 유전자 전달(vertical gene transfer)이라고 한다) 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 사이에 유전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인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도 존재한다는 것이 1940년대와 1950년에 걸쳐 발견되었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의 발견은 유전학의 개념과 방법론을 한꺼번에 확장했으며, 진화생물학에도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 p.199~200

세균에서 수평적 유전자 전달 현상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에는 세 가지가 있다. (……) 그런데 형질전환을 제외한 두 메커니즘, 즉 접합(conjugaion)과 형질도입(transduction)은 모두 한 명의 과학자가 주도적으로 발견한 것이다. 이는 세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꿨고,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에 강력한 도구를 안겨줬고, 또 진화에 관한 관점도 확장했다. 그 과학자는 바로 조슈아 레더버그다. 20대에 이것들을 발견한, 전형적인 천재 과학자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 p.200~201

그의 발견은 세균 사이에 유전자가 교환되는 방식을 처음 밝힌 것으로,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서 유전자를 전달하고 전달받아 새로운 조합의 유전자를 갖는 자손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즉, 세균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성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 p.202

수평적 유전자 전달을 통해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고 전파된다는 것은 진화의 분명한 예다. 항생제 자체가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을 갖는 세균이 선택되는 것이고, 그 압력에 세균 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응한 것이 바로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에서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 갖는 영향은 이런 항생제 내성 말고도 계통분류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p.214

대표적인 진화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제리 코인이 진화에 관한 실험적 증거를 제시했다고 극찬한 렌스키의 장기 진화 실험에 대해 알아본다. 이 연구는 연구의 결과가 나오는 장면도 중요하지만, 연구를 시작한 순간이 중요하고, 연구를 이어간 끈기가 압권이다.
--- p.219

1965년부터 옐로우스톤의 온천에서 샘플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분홍색 거품이 이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섭씨 82도가 넘는 온천물에서 나오는 분홍색의 물질에 단백질이 섞여 있다는 걸 확인했다. 무슨 얘기인가? 바로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매우 높은 온도에서도 멀쩡한 단백질을 만들고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생명체 말이다. 브록은 바로 연구에 돌입했다. 옐로우스톤의 뜨거운 온천물에 사는 세균에 관한 연구!
--- p.212

사실 PCR의 발명과 개발 자체에서는, 멀리스가 맨 처음 이용한 DNA 중합효소가 대장균에서 정제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세균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라고 하는 호열성 세균의 발견과 여기에서 내열성 DNA 중합효소의 정제와 같은 이야기는 세균학의 찬란한 순간이며, 그것 이 PCR이라고 하는 대단한 기술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업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 p.257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와 크리스퍼-카스(CRISPR-Cas) 시스템을 다룬다. 흔히 ‘유전자 가위’라 부르는 것들이고, 발견되자마자 곧바로 현대 생물학의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은 물질 또는 기술이다. (……) 이것들이 세균의 면역 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세균도 자기를 아프게 하고 죽이러 들어오는 존재에 대해 뭔가 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바이러스 침입에 대한 방어 작용으로 세균이 준비해 놓은 것 중에 제한효소가 있고, 또 크리스퍼-카스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세균이 가지고 있는 이런 방어 시스템을 이용해서 별별 희한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p.261~262

그들은 크리스퍼-카스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알아냈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갔다. 사실 그 한 발짝이 커다란 진전이었다. 크리스퍼-카스 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다 찾고 보니, 그것으로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어떤 염기서열의 crRNA를 넣느냐에 따라서 원하는 DNA를 잘라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유전자 편집 도구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다우드나의 실험실에서는 이를 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에는 crRNA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 정보를, 다른 에는 tracrRNA의 특성인 DNA에 결합할 손잡이 역할을 하는 RNA 분자, 즉 ‘단일 가이드 RNA (single-guide RNA)’를 고안해서 만들어 냈다. 말하자면 크리스퍼-카스 시스템이라는 자연, 즉 세균이 가진 도구에 기초하여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는 유전자 재프로그래밍 도구를 ‘발명’해낸 것이다.
--- p.277

쿼럼 센싱은 같은 세균 종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종에 속하는 세균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서로 다른 계(Kingdom), 아니 서로 다른 역(Domain)에 속하는 생물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 생물들은 이렇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군집을 유지하면서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쿼럼 센싱을 세균들의 ‘사회성’을 의미한다고 여기고, 미생물들의 집단행동, 즉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를 ‘사회미생물학(sociomicrobiology)’이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 p.230

이는 장내 세균의 조성이 쥐에서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가리키는 결과였다. 분변 미생물 이식을 통해서 비만 형질이 개체 사이에 전달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결과였다. 사람에게서도 마른 사람의 미생물 군집을 이식하면 뚱뚱한 사람도 굳이 그 괴로운 다이어트라는 과정을 견디지 않더라도 체중을 뺄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결과였다. 여기서 왜 고든의 연구가 과학적 측면뿐 아니라 대중적인 영향 면에서 이정표가 되는 연구인지를 알 수 있다.
--- p.305

똑같은 먹이 혹은 음식을 먹더라도 퍼미큐테스의 세균이 많다면 더 많은 열량을 숙주, 그러 까 쥐나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셈이다. 만약 신석기 시대와 같이 음식이 충분 하지 않았던 시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세균이었을 퍼미큐테스가,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의 선진국에서는 쓸데없이 고효율을 발휘하는 세균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모든 조건이 같다는 걸 전제로 할 때 1년이 지나면 이 추가 열량은 고스란히 약 5킬로그램의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단지 내 몸속에 있는 세균의 차이 때문에.
--- p.306~307

출판사 리뷰

생명의 기본 원리에서
미래를 여는 첨단 연구까지,
생명의 비밀을 보여준 세균 연구의 모든 것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생물학, 그중에서도 세균학의 모든 것을 만들어 온 결정적인 연구를 한데 모았다. 저자가 항생제 내성을 연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들 덕분이고, 이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이 열어갈 세상도 바로 이 토대 위에서 시작할 것이다.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낸 과거의 세균 연구를 한눈에 돌아보고, 생물학을 새로운 산업의 원동력으로 만든 첨단 연구와 현재의 과학자를 짝지어 묶었다. 이 책을 통해 세균학 백오십년의 역사를 한눈에 돌아보고, 미래 생물학의 발전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레이우엔훅의 발견 이후 펼쳐진 세균학, 혹은 세균과 관련한 연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연구들을 소개한다. 다소 주관적인 기준에서 골랐지만, 이 연구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이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여덟 개의 키워드로 과학자들과 그들의 연구를 묶었다. 과거의 획기적인 연구를 먼저 고르고, 그에 상응하는 최근의 연구를 쌍으로 연결하기도 했고, 서로 비교되는 연구끼리 묶기도 했다. 해당 연구 분야의 전체적인 흐름도 이야기하지만, 우선은 그 분야의 처음, 혹은 가장 중요한, 아니면 인상적인 논문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오리지널 논문을 읽고, 그 논문을 중심으로 해당 분야를 파악하다 보니 학문과 연구의 독창성과 파급력이라는 걸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요약하고 정리하여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결의 내용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이들과 논문이면 세균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할 거라 믿는다.”

현미경이 나오자, 세균이 보였고,
더 이상 세균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발견은 균열이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균열이다. 그람이 세균을 염색하는 방법을 찾아내자 이후에는 그 어느 생물학자도 이전의 염색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코흐가 감염병의 원인이 특정 세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자, 이후에는 감염병의 원인을 세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토머스 브록이 물이 끓을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도 멀쩡한 세균을 찾아내자, 이제는 세균이 사는 환경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생각의 폭, 가능성의 영역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균열을 일으키고, 제한을 깨뜨린 사람들이다. 케리 멀리스가 PCR을 발명하자, 그 뒤로는 모든 사람들이 이 도구를 사용했다. 손바닥으로 못을 박다 둥근 돌을 이용했지만, 망치가 나오자 그 어느 누구도 손으로 못을 박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독기 혹은 미아즈마(miasma)’라는 과거와 단절해 질병의 원인을 세균(병원균)에서 찾았고, 쿼럼 센싱의 원리를 밝힌 후에는 세균이 서로 소통한다는 ‘사회미생물학’의 장을 열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세균학과 생물학의 ‘결정적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헬리코박터균의 발견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원하는 지식이 무엇인지 안다면, 아마 책 보다는 인터넷이 정보의 소스로 더 좋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균이 궁금하다면, 인터넷에 관련 단어만 치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누가 찾아냈는지, 어떤 병을 일으키는지, 화면에 하나 가득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아마도 그 편이 책을 찾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그럼 책에서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사람의 위에 헬리코박터균이 산다는데, 그걸 발견했다고 노벨상을 준다고? 그 세균이 그렇게 찾기 어려운 것이었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지금은 건강 검진할 때 헬리코박터균 검사도 하는데, 그게 1980년대에는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보통 노벨상은 한 분야를 열어 젖힐 정도로 획기적인 연구에 주어진다고 하는데, 헬리코박터 발견도 그 정도의 연구일까? 이 발견은 어떤 함의가 있고, 병원균 연구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우리가 책에서 원하는 건 잘 정리된 사실을 쉽게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사실들이 갖는 맥락과 영향, 파급 효과, 연관 관계 같은 게 아닐까? 그건 아마도 짧은 ‘세 줄 요약’만으로는 전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책만이 줄 수 있는 이런 특징을 살리려는 노력이 곳곳에 녹아 있고 스며 있다.

교양 과학서에는 왜 한국인 과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교양 과학서를 읽다 보면 한국인 과학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아마도 교양 수준의 과학 도서라는 것이 교과서 수준의 검증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그 정도의 대가가 아직 우리에게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챕터 하나 소제목 하나를 차지할 정도의 유명 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검증 받은 과학자라면 교양 수준의 과학도서에는 충분히 나올 만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설명의 근거로 외국의 연구 결과를 자주 인용하는 걸 보는데,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내놓는 한국 과학자는 분야마다 꽤 여러 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학과 연구소에도 실력 있는 연구자가 많고,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예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은 없을까? 신문 기사나 방송을 보면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논문도 많이 내고 주목 받는 결과도 곧잘 내는데, 왜 교양 과학서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사람의 이름만 나올까? 브라질이나 인도 사람도 적지 않게 나오는데, 왜 한국 사람은 나오지 않을까? 외국에서 박사 과정이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공부할 때 발표했던 논문 중에도 주목할 만한 결과는 적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이들 연구는 국내 저자의 교양 과학서에 언급이 되지 않는 걸까?

교양 과학서를 쓰는 국내 저자들이 동료나 선후배 과학자의 이름을 잘 넣지 않는 걸까?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다른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다 등장해도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여럿 나온다. 반갑고 친근하다. 이렇게 기왕이면 우리나라 저자의 글을 인용하고 언급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으면 모를까, 비슷한 연구 결과일 때 국내 연구자가 했다고 하면 관심이 먼저 가고, 흥미가 한층 이는 건 우리나라 독자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 책에는 대장균 장기 진화 실험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렌스키 교수를 소개하며, 연세대 김지현 교수가 렌스키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내용이 나온다. 쿼럼 센싱과 관련해서도, 항생제 내성을 설명하는 장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구 결과를 소개할 때도 국내 학자가 나온다. 이제 국내 연구자 중에도 일반인을 위한 글을 쓰는 분이 점점 늘고 있으니, 그들의 동료 선후배 이야기도 차츰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