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4.조선왕릉

고종황제 : 홍릉

동방박사님 2016. 5. 1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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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생애 : 조선제 26대   묘호 : 고종 (高宗)  휘 :이휘

고종은 (1852년 (철종3년) 음력 7월25일 (양력9월8일)- 1999년 양력 1월21일)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민국 광무제 (光武帝 재위 1897~1907)이다.  연호는 건양. 광무이다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의 둘째 아들로 생부 흥선대원군과 헌종의모후 조대비와의 약속으로 삼종숙인 추존왕 익종의 양자로 입양되어 조선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1919년 1월21일에 사망하자 그가 독살당했다는 

독살설이 시중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윤치호 에의해  독살설이 기록으로 전하는 가운데 2009년 일본국회 헌정자료실에서 조선총독 데하우치 마사다케의 지시로 친일파 대신들이 약을 탓다는 주장이 적혀 있는 일본 궁내성관리 구라토미 일기의 사본이 발견되었다 

 

 

치적 : 고종은 1863년부터 1907년까지 재위했지만 1863년부터 1864년까지 삼종숙모이자 양어머니인 신전왕후 조씨가 섭정하였고 1864년부터 1873년 까지 생부 흥선 대원군이 섭정을 했다.

고종은 1880년대 이후 열강의 개항 요구와 정-일-러 3국의 3파전이 치열한 가운데 국권을 보존해 왔지만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양위하였고, 1910년에는 이태왕이 되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은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에 발 맞추어 내정개혁을 실시하였다. 내정개혁에서 고종이 관심을 가장 기울인 것은 군제 였는데, 과거의 구식 군대인 5군영 무위영(武衛營) 과 장어영의 양영으로 개편하고 새로이 일본의 신식 군사훈련을 도입하여 별기군을 조직하였다. 또한 행정기구의 

개혁에 착수하여 청나라 정부의 총리아문 기구를 모방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밑에 사대,교린, 군무,변정, 통상. 등 12사를 두어 각기 사무를 나누어 보게 하였다

임오군란 (1882) 갑신정변 (1884),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전쟁 (1894), 갑오개혁등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한다.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원구단을 짓고 국호를 대한제국 , 연호를 광무(光武)로 새로히 정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후 고종은 일본 침탈에 대비하여 1902년 6월 정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설치를 시작으로 1903년 5월 육군과 해군의 창설을 위한 준비를 지시한다. 군대 창설과 관련하여 서양의 징병제와 조선의 5위(五衛)제도를  절충하는 군제개혁을 에정하였고 용산에 군부 총기제조소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17일 일본의 강요로

을사조약을 체결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1907년 이준, 이상설 등 밀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한 것이 발단이 되어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황태자 순종에게 양위하고 태황제(太皇帝)가되었고 1910년 한일 합병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 제국으로 부터 이태왕 (李太王)의 작위를 받고 덕수궁에서 생활하다가 1919년 1월21일 아침 경운궁에서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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