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2.강화.인천

광성보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등)

동방박사님 2016. 9. 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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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사적 제227호)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훍을 섞어서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 광해군 때 헐어진 곳을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에 강화유수 성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 ·정비하였다.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돈대로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표, 소포, 불랑기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신미양요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포 3문을 복원하였다.







 쌍충비각(향토유적 제10호)은 신미양요시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어재순 · 어재연 이하 전 수비군은 열세한 병기로 미국 아세아 함대의 해병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려 전 수비군이 장렬히 순국한 곳에 나라에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 신미 순의총(辛未 殉義塚)은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연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 손돌목돈대는 일명 손석항돈대라고도 하며 용두돈대에 못미쳐 구릉 정상부에 둥구렇게 쌓은 돈대이다.  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여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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