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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동방박사님 2019. 4. 26.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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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1818년 4월11일, 상하이프랑스 조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영토는 없었지만 태극기 아래 모인 국민이 있었다. 국민 대표로 구성된 임시의정원에서 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헌법과 정치체제를 제정하고 반포하였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국내의 한성정부, 러시아 연해주의 대한민국의회를 하나로 통합하여 9월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완성되었다. 임시정부는 전 세계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 받기 위한 외교활동과 무장 투쟁,의열투쟁, 한국광복군 창설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의 활동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선열과 국민들의 소중한 지원금이 있어서 가능했다.

임시정부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광복의 그날까지 새나라로 독립하려는 우리 국민의 구심점이 되었다.




상하이 1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사용하였던 마지막 청사건물이다. 임시정부는 1926년 3월 이곳에 정착하면서 독립운동의 활로를 찿기 위하여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고, 이벙창, 윤봉길 의거를 성공시켰다. 1993년 4월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상하이2

윤봉길 의사 전시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29일 의거를 거행한 홍저우 공원에 세워진 전시실이다. 2003년 윤봉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자싱1

임시정부 요인 피난처

윤봉길의거 후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이전할때,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도움을 받아 피신생활을 하던 곳이다. 1995년 자싱 시가 보수공사를 하고 임시정부 관련사진과 자료를 진여하여 전시관을 만들었다. 


자싱2

김구 피난처

윤봉길의거후 일제는 김구에게 60만 대양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현상그을 걸었다. 이곳에서 김구는 광동 출신 중국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아이바오라는 처녀 뱃사공과 숨어 지냈다. 2000년 자싱시의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사 활동 구지

이 건물에는 이청천을 중심으로 한 조선혁명당 본부가 있었다.  2009년 중국정무가 이곳을 기념관으로 복원하였다.


하이옌

김구피난처

김구는 일제가 맘살대를 자싱으로 보냈다는 보고를 받고 하이엔으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이곳도 위험해져 다시 자싱으로 돌아가야 하였다. 1996년부터 하이엔현 문물관리소는 이곳에 김구와 관련한 자료와 사진을 전시하였다.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저우 구지기념관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거로 황급히 상하이를 떠나야 하였다. 우선 항저우 청태 제2여사 32호에 임시정부 사무실을 마련하였다가, 중국의 도움으로 서호에 가까운 호변촌 23호에 청사를 마련하였다. 항저우시 정부는 이곳를 복원, 개관하였다.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 투쟁 활동 진열관

이곳은 1930년대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얼마간 머물렀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2004년 개관한 뒤 몇차례 개.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 투쟁 활동 진열관

이곳은 1930년대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얼마간 머물렀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2004년 개관한 뒤 몇차례 개.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회의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회의실을 재헌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하여 13도대표 29인이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모여 1919년 4월10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4월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임시의정원은 '국회'의 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