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5.서울역사박물관

의금부 금오계첩

동방박사님 2020. 2. 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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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 금오계첩

 

전시를 열며

공평 도시유적관은 도심의 정비사업에서 출토된 도시유적을 원위치에 전면 보존한 현장 박물관입니다.

전시관 개관 1주년을 맞아 첫 기획전 "의금부 금 오계첩"을 개최합니다. 전시관 길 건너편  건평 방 건평 방

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최고의 사법기관이었던 의금부 義禁府의 기능과 활동, 의금부도사 義禁府都事 들이 신입 관료의 신고식인 면신례 과정에서 게첩을 제작해 동료들과 나누어 가졌던 모습과 각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금 오계첩>을 모아 전시에 담아냈습니다. 이번 전시가 <금 오계첩>이라는 기록물을 통해 의금부와 관료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면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장  송인호

 

 

 

 

도시유적 발굴지도

한양도성 내부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도심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생활유적이며, 두 번째 경복궁 전면에 위치하였던 육조와 배후 건물지, 종친부 등과 같은 관청 건물 유적이다. 이밖에도 경희궁지, 청계천, 한양도성 등 다양한 유적이 복원정비와 개발 등을 위해 조사되었다. 2004년 청진 6 지구를 시작으로 도심 지역에 대한 대규모 개발사업 시사 사전에 매장문화재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서울특별시에서는 4대 문 안 지역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완료하였고, 매장문화재 관련 법령이 더욱 정비되어 감에 따라 개발사업 전 매장문화재 조사를 반드시 실시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조사되었던 한양도성 내 다양한 유적의 조사 성과를 축적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건평방과 의금부터 <조선경성도>, 19세기 중반

의금부와 건평 방 義禁府 건平坊

건평 방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의금부, 전의 금 및 순화궁을 비롯한 여러 관아들과 궁가들이 위치한 도성 내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또한 운종가는 건평방을 아우른 한양의 대표적인 상점가로 중심에는 종루鐘樓 가 있었고, 의금부 맞은편에는 전옥서典獄署가 위치하였다. 의금부 뒤편으로는 금부후동禁府後洞으로 불리는 동네가 자리 잡았다. 조선 초기부터 의금부가 이 터에 자리 잡은 후 같은 자리를 지켜왔으며, 근대에 들어 한성재판소, 대심원大審院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는 종로경찰서, 해방 후에는 신신백화점과 SC제일은행 등으로 사용되며 오랜 장소성을 유지해 왔다.

 

전의감: 조선시대 궁중에 쓰이는 의약을 조제하고 재배하던 관아

수진궁: 조선시대 봉작을 받기 전에 죽은 대군, 왕자와 출가하기 전에 죽은 공주.옹주를 제사지내던 사당

순화궁: 조선시대 헌종의 후궁 경빈(慶嬪)  김씨의 서당

종  루:  조선시대 도성을 여닫고 인정과 파루를 알리는 종을 달았던 누갇

전옥서: 조선시대 감옥과 죄수에 관한 일을 맡은 관아 

 

조선경성도  (19세기중반)

조선 후기 한양도성 내 부部 와 방坊 그리고 관청, 교량 등을 자세하게 그린 지도이다. 목판보능로 간행된 <수선 총도 首善總圖>와 내용이 거의 유사하여, 이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하천을 점선으로 표시하였으며, 필사본이므로 지형, 글시 등의 표현이 좀 더 유연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의금부를 중심으로 건평 방 일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의금부의 역활과 활동

1414년부터 1894년까지 약 480년에 걸쳐 운영된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사법기관으로 왕명王命을 받아 죄인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관아였다. 심문부터 형률 적용, 형벌 집행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왕의 명령을 받아 시행하여 왕부王府라고 불렀으며, 왕의 교지 [조서:詔書]를 받아 죄인을 가둔다 해서 의금부의 옥을 조옥詔獄 이라고 하였다. 형조가 일반 잡범에 대한 치죄治罪을 담당한 반면 의금부는 주로 양반관료의 범죄를 취급하는 양반재판소 역활을 하여 완권의 확립과 강화에 기여하고 조선왕조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반역 및 강상鋼常에 관련된 사건을 추국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정치재판소 역할을 하였다. 뿐마 아니라 의금부는 각종 미해결된 사건이나 중대 사건의 최종판결기관 역할을 맡았다.

 

군사기관에서 사법기관으로

의금부는 고려 말 치안 유지를 위해 원元이 설치했던 순마소巡馬所에서 비롯 되었다. 순마소는 충렬왕때 순군만호부 巡軍萬戶府, 공민왕 때 사평순위부司平巡衛府, 우왕때 다시 순군만호부로 개편을 거듭하면서 포도捕盜, 금란禁亂의 치안 유지와 친위군으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뒤 명칭이 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로 달라졌으나 여전히 병조에 소속하여 왕권확립에 기여하였고, 태종 때 왕권이 안정되자 의금부로 개편되어 사법전담기관으로 독립하였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1908년

조선 영조대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 을 1908년에 최종 증보하여 발간된 전통문화 백과사전이다. 상고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여러 문물에 대한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분류, 수록하였으며, 총250권의 분량이다. 직관고 부분에 의금부의 유래와 변천, 조직, 유성원 (~1456)등의 제명이 소개되어 있다. 

죄인을 추국하라

의금부는 경국대전經國大典 에 왕명을 받들어 추국推鞠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대역죄나 강상죄 등 중범죄를 다루었으며, 의정부나 사헌부, 사간원의 관원이 함께 참여하는 삼성추국三省推鞠을 주관하였다. 아울러 양반관료층의 범죄를 주로 관장하였으며, 포도청捕盜廳은 도성 내외의 도적 체포와 치안유지, 야간순찰 등의 업무를 주관하였다.

 

경국대전 經國大典 17세기

조선시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 된 법전으로 1485년 (성종16)부터 시행되었다. 이.호.병.형.고의 육조六曹 체제에 따라 6개의 전典으로 구성되었고, 각 전에는 해당 조曹의 담당 업무들이 항목별로 기술되었다. 이전吏典에 의금부의 직급과 업부, 조직 구성원에 관한 규정이 수록되어 있다.

 

 

금부도사와 나장

의금부는 종1품아문으로 판사判事 (판의금부사)를 비롯한 4명의 당상관堂上官과 낭청郎廳, 서리書吏, 나장羅將 등으로 구성된다. 낭청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또는 금오랑金吾郞으로 불렸으며, 정원은 10명으로 의금부의 운영을 주관하였다. 이밖에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서리書吏(18~20명), 죄인을 체포하고 압송하는 나장羅將(40~232명)이 있었으며, 여기에 형률적용을 위한 율관律官 1인과 죄인의 구호를 위한 월령의月令醫 1인이 있었다.

 

 

구수영 패찰 具壽永 牌札

1502년 (연산군8) 의금부판사를 지낸 구수영具壽永 (1456~1523)의 패찰이다. 구수영의 가옥은 공평동 유적(전시관)의 북동쪽에 위치하는데 패찰은 인근 청진동 유적(청진12-16지구)에서 발견되었다. 재질는 석회질 계통의 석재로 추정되며, 전면에 '...臣具壽永'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위를 금으로 칠하였다.   

한성백제박물관 15~16세기

 

금오계첩 金吳契帖

금오계첩 金吳契帖 : 1762년 (영조 38) 11월에 제작된 금오계첩이다. 좌목에 기록 (좌측에서 두번째) 된 심환지 沈換之(1730~1802) 는 조선후기 정조대 노론 벽파를 대표하는 문신으로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냈다. 심환지는 1762년 8월 소과에 급제하여 의금부도사를 제수 받아 근무하였고, 1769년 (영조45)에도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ㅣ 17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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