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의 이해 (책소개)/1.국가권력

체르노빌 히스토리

동방박사님 2021. 12. 1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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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학자이자 체르노빌 원전 사고 생존자인 세르히 플로히가 쓴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포괄적 역사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당시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들어 간 드네프르 강 중류의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경험한 당사자이자 사고 후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겪은 고난과 혼란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다.

플로히는 최근에 개방된 문서고 자료를 이용해 치밀하게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사고의 근본 원인이 소련의 허술한 관리 체계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오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과정의 허상과 위선을 드러내고, 소련 해체 역사의 큰 맥락에서 체르노빌 사고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열망, 소련 붕괴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원전 소장 브류하노프, 소방대원들, 사고대책위원회의 레가소프 같은 주요 인물들이 겪은 인간적 고뇌와 이들이 벌인 사투와 희생을 한편의 대하소설처럼 펼쳐내는 지은이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서술은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내려놓기 어렵게 만든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1부 약쑥

1장 공산당대회
2장 체르노빌로 가는 길
3장 원자력 발전소

2부 지옥불

4장 금요일 밤
5장 폭발
6장 화재
7장 부인

3부 폭발하는 분화구 위에서

8장 사고대책위원회
9장 대탈출
10장 원자로 잠재우기

4부 보이지 않는 적

11장 쥐죽은 듯한 침묵
12장 제한 구역
13장 차이나 신드롬
14장 희생자 집계

5부 결산

15장 말들의 전쟁
16장 석관
17장 죄와 벌

6부 새로운 날

18장 작가들
19장 핵 반란
20장 독립하는 우크라이나
21장 다국적 보호막

에필로그
감사의 말
덧붙임: 방사능의 영향과 측정 방법
옮긴이의 말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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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세르히 플로히 (Serhii M. Plokhy)
 
1957년 옛 소련 고리키(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University of Dnipropetrovsk)을 졸업한 뒤 1990년 타라스 셰브첸코 키예프국립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Habilitation degree)를 받았다. 1983~1991년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91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앨버타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책 속으로

나는 역사학자이자 논의의 주제가 된 사건들을 겪은 당사자로서 이 책을 썼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벌어졌을 때, 나는 파괴된 원자로에서 드네프르강 하류 쪽으로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은 이 참사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내가 교환교수로 체류하던 캐나다에서 나를 진찰한 의사들은 내 임파선이 과거에 염증을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이는 내가 방사능에 노출된 적이 있음을 말해 주는 우려스러운 신호였다. 다행히도 내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방사능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 p.18 「서문」중에서

고르바초프는 “사회경제적 발전의 부정적 면을 최대한 빨리 극복하고, 그 과정에 필요한 역동성과 가속화를 촉진하고 과거의 교훈을 최대한 배울 것”을 공산당에 요구했다. 그는 소련 경제와 사회를 위해 야심찬 과제를 제시했다. … 그는 이 과제 달성의 성패를 과학·기술 혁명에 걸었다. 이 혁명에는 새로운 기술 도입, 석탄과 석유와 가스 등의 화석 연료에서 원자력 에너지로의 전환과 같은 과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선언을 이어갔다. “이번 5개년 경제계획 기간에는 과거 5개년 계획 기간에 비교하여 2배 반 늘어난 원자력 발전 설비가 가동될 것이고, 낡은 화력 발전 시설은 대규모로 교체될 것입니다.”
--- p.38~39 「1장 공산당대회」중에서

원자로의 노심과 핵반응 영역 아래쪽에는 제어봉이 도달하지 않아 이 영역의 핵분열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되었다. 200메가와트 수준의 출력은 몇 초 만에 500메가와트로 뛰어올랐고, 그다음에는 정상 수치의 10배인 3만 메가와트로 치솟았다. 흡수되지 않은 중성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몇 분 전만 해도 원자로의 핵분열 속도 증가를 방해했던 제논-135를 연소시켜 버렸다. 이제 핵분열을 늦출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통제실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우르릉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아주 생소한 소리였다. 마치 사람이 신음을 내는 듯 아주 낮은 톤의 울림이었다”라고 라짐 다블렛바예프는 기억했다. … 이때 시각이 새벽1시 23분 44초였다.
--- p.127 「5장 폭발」중에서

그는 몇 분 전 원자로를 빠져나왔을 때 섬광을 보았고, 이미 과열된 원자로가 용융되면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원자로를 덮고 있던 200톤의 콘크리트 덮개인 ‘엘레나’가 달아올라 주변을 밝혔다고 생각했다. 그는 첫 폭발로 엘레나가 공중으로 날아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나요?”라고 낙담한 프로스쿠랴코프가 물었다. 트레후프는 댜틀로프에게 가서 자신이 염려한 바를 설명했다. “나가세.” 댜틀로프가 대답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트레후프는 그의 상사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했다. “이건 히로시마예요!” 댜틀로프는 처음에는 침묵을 지켰으나 잠시 후 트레후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악몽 속에서도 이런 일은 꿈꿔본 적이 없네.”
--- p.158 「7장 부인」중에서

“담배를 피우러 발코니로 나가 보니 거리에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모래로 집을 짓거나 진흙더미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이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젊은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였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페트로프의 이웃은 그날 좀 여유를 부리기로 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선탠을 했다. “그는 잠시 술을 마시러 내려와서 오늘 선탠이 아주 잘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며, 피부에서 곧장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페트로프는 “그는 마치 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처럼 아주 신이 났다”라고 기억했다. 그는 페트로프에게 “해변에 갈 필요가 있나요?”라고 하며 같이 옥상에서 선탠을 하자고 부추겼다. 그날 저녁 앰뷸런스가 와서 그 이웃을 싣고 갔다.
--- p.171 「7장 부인」중에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관의 질문에 답하는 데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답을 했다.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새로 짓는 원자로 5호기에 사용하는 흑연 자재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흑연들은 원자로 4호기에서 나왔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는 원자로가 폭발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눈앞에 벌어진 일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 “이 사고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각성의 순간을 최대한 늦추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라고 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시시킨 에너지전력부 임원이 결론을 내렸다.
--- p.184 「8장 사고대책위원회」중에서

과학자들은 작업에 투입된 중장비의 진동으로 인해 건물의 기반이 흔들리고 균열이 발생해 원자로 노심의 방사능 물질이 지하수로 누출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광부들에게 중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사실상 손으로 터널을 파고 터널에 쌓인 흙을 손수레에 실어 날라야 했다. “공간이 만들어지면 좁은 수레 궤도(광부들은 터널에 즉시 궤도를 설치했다)를 이용해 토사를 실어 날랐다”라고 나우모프는 회상했다. “작업에는 0.5톤짜리 수레가 사용되었다. 각 교대팀마다 수레 90대로 흙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96대 분량의 흙을 나른 팀도 있었다. 계산을 해 보자. 한 팀이 일하는 시간 3시간은 180분이다. 2분마다 수레가 오갔다는 얘기가 된다. 0.5톤 수레에 흙을 담아 150미터를 궤도를 이용해서 밀고 나온 다음, 흙을 쏟고 다시 터널로 들어갔다. 5~6명이 손이나 삽으로 흙을 파내는 동안 두 사람이 흙을 옮기는 작업을 해야 했다.”
--- p.314 「14장 희생자 집계」중에서

“사고의 발생은 분명히 운영자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사고의 규모를 보면 원자로에 물리학적 결함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슬랍스키의 부하들에게 RBMK형 원자로를 계속 건설해 사용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슬랍스키 휘하의 부책임자 알렉산드르 메시코프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규정만 철저히 지킨다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이 답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놀라게 하는군요.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는 한 가지 결론을 가리킵니다. 원자로가 문제투성이이고 아주 위험하다는 것 말이오. 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자신이 하는 일을 옹호하는군요”라고 고르바초프가 말하자, 메시코프는 이렇게 받아쳤다. “나는 원자력 에너지를 옹호하는 겁니다.” 고르바초프는 지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 “어떤 이익이 우선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국내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답입니다.”
--- p.355~356 「16장 석관」중에서
 

출판사 리뷰

2018 배일리 기포드 논픽션 작품상 수상
2019 푸쉬킨하우스 러시아 도서상 수상

“나는 역사학자이자 사고 생존자로서 이 책을 썼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최초의 포괄적 역사서


2021년 5월 12일, 폐쇄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핵분열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방사능 누출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뉴스였다. 사고 이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는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제한구역이 되었으며, 체르노빌을 고향으로 둔 수십만 명이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운명의 밤과 그 이후, 여러 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폭발 직후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 논픽션 탐사보도와 소설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역사학자 중에 이 문제를 다룬 사람은 없었다. 지은이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사고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당시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들어 간 드네프르 강 중류의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의 생존자이자 사고 후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겪은 고난과 혼란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다. 플로히는 최근에 개방된 문서고 자료를 이용해 치밀하게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사고의 근본 원인이 소련의 허술한 관리 체계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오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소련 해체 역사의 큰 맥락에서 체르노빌 사고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소련 붕괴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원인, 과정, 결과, 그 후의 교훈과 대안까지 포괄적으로 다룬 역사서다.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 왜 일어났고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예견된 사고, 반쪽자리 진실, 은폐와 거짓…


“그 소리는 아주 생소한 소리였다. 마치 사람이 신음을 내는 듯 낮은 톤의 울림이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은 널리 알려진 대로 잘못된 터빈 시험 과정에 있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정기점검을 위해 원자로 4호기의 가동을 중지하고, 이때 비상 정지 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시험을 개시한다. 그러나 가동 중지 후 원자로의 결함으로 인해 핵분열 반응이 증가하고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원자로는 폭발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일어나게 된 일련의 과정은 많은 매체에서 다뤄진 바 있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가 이미 예견된 결과였으며, 이전에 비슷한 대형 원전 사고가 이미 소련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57년 소련 우랄지역의 폐쇄된 도시 오제르스크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핵폐기물 탱크가 폭발하여 160톤의 콘크리트 덮개를 날려버리고 방사능을 누출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해당 지역의 주민 1만 2000명이 거주 지역에서 이주해야 했고, 주민들이 사용하던 주택과 장비를 땅에 파묻었으며, 해당 지역은 폐쇄되었다. 소련 정부는 오제르스크 원전 사고에 대한 정보 공표를 막았고, 해당 사고는 당국의 침묵 아래 완벽하게 은폐되었다.

1975년 레닌그라드 원전에서는 RBMK 원자로의 결함으로 인해 가동 중지 후에도 핵분열 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연료 채널 하나가 용융되고,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이후 RBMK 원자로의 기술적 결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원자로 설계자들이나 당국자들은 해당 원자로에 대한 개선 조치나 폐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원전 사고가 남긴 교훈은 전혀 학습되지 않았다. 원전 운영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었지, 이미 가동 중인 원자로를 개량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11년 후 체르노빌 원자로 4호기에서 똑같은 양상으로, 더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게 된다.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가 유럽까지 미치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소련 당국은 몇몇 발전소 운영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방사능 확산을 막는 조치가 즉각적으로 취해졌으며 더 이상의 피해는 없다고 단편적인 정보, 반쪽자리 진실만 공개했다. 게다가 사고 후 당국자들은 공황 사태를 염려해 주민 소개疏開를 지연시키고, 방사능 입자가 떠도는 거리에서 노동절 기념 퍼레이드를 강행해 시민들의 피해를 확산시켰다. 노동절 기념 행사에 참가했다가 사산했던 한 여성은 체르노빌 사고 청문회에서 “나는 모두를 저주한다. 나의 저주 대상은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한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다”라고 증언했다.

플로히는 이처럼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기 전, 소련 당국이 달성 불가능한 경제 성장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춰 결함 많은 원자로가 서둘러 건설되고, 관리자들이 할당된 전기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원자로의 방사능 누출을 묵인하는 등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과,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가 피해를 확산시키는 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일관적인 흐름으로 보여준다. 체르노빌 사고는 터빈 시험의 오류로 일어났지만, 사고의 규모를 키운 것은 소련 정치 체제의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결함의 상호작용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비극, 그리고
참사를 막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했던 일상의 영웅들


“그날은 주말이었고, 어린이 식당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부모와 아이들로 가득했고, 모든 것이 평온했고 좋았어요.”

소련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방사능 피폭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사고가 일어난 금요일 밤, 원전의 냉각수 연못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마치 불꽃놀이를 관람하듯 발전소의 폭발이 일으킨 불빛을 구경했다. 사고 다음날, 방사능 입자가 대기 중에 부유하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쇼핑을 하고, 빨래를 널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았다. 주민 소개가 이루어지고 시민들은 살던 집에서 떠나야 했지만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재난인가요? 독일군이 여기 들어왔을 때 그때가 정말 위험했지요, 그런데 지금은요? 해가 나고 날씨가 좋으니 우리는 텃밭을 가꿔야 해요.” 이후 주민들은 몇 년, 몇 십 년에 걸쳐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질병과 암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무고했던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재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강과 목숨을 희생했던 일상의 영웅들이 있었다. 체르노빌이라 불리는 아마겟돈에 던져진 과학자, 경찰관, 소방관, 광부와 노동자 들은 핵용광로를 잠재우기 위해 방사능을 내뿜는 원자로의 지붕 위에 오르고, 파괴된 원자로의 입에 모래를 쏟아붓고, 방사능 오염수로 가득 찬 원자로의 수조에 들어갔다. 플로히는 원전소장 브류하노프, 사고대책위원회의 레가소프 등 주요 인물들의 인간적 고뇌와 함께 일상의 영웅들이 벌인 사투와 희생을 한편의 대하소설처럼 유려하고 서정적인 서술로 펼쳐냈다.

우리는 35년 전의 공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신화가 된 사건에서 현실의 교훈을 이끌어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에서 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그 사건은 신화처럼 보인다. 그리고 재난의 실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일어난 재앙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새로운 체르노빌식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로서 체르노빌은 소련의 원자력 산업뿐만 아니라 소련 체제 전체를 붕괴시킨 기술적 재앙의 이야기다. 사고가 일어난 지 5년 남짓 지난 후 세계 초강국은 와해되었다. 사고를 은폐하고 피해를 확산시킨 소련 정부에 대항해 언론과 국민은 ‘정보 공개 정책(글라스노스트)’을 태동시켰고, 대중 조직과 정당을 만들고,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일으켰다. 글라스노스트의 태동, 우크라이나의 독립, 소련의 해체가 전적으로 체르노빌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호 연계된 이 과정에서 체르노빌이 미친 영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을 폐쇄하고 손상된 원자로에 1986년과 2018년에 두 번의 석관을 씌우면서 사고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 후 2011년 3월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핵재앙의 위기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2021년 5월 12일에 감지된 체르노빌 원전의 핵분열 반응은 인류가 핵반응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체르노빌 이야기는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새로운 원자력 기술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일례로 2021년 6월 빌게이츠의 테라파워사는 좀 더 경제적이고 안전하고 환경적으로 깨끗한 원자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플로히는 체르노빌과 같은 핵재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핵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제기하는 위험에 맞서고 원자력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국가들 사이의 국제적 협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원전 사고나 코로나 사태와 같은 국가적, 환경적 재난이 일어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오만과 책임 회피가 재난의 규모를 키우는 일이 없도록 인류는 체르노빌에서 미래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추천평

스릴 넘치는 전개로 깊은 통찰을 담은 걸작이다. 강력한 기술과 무책임한 정치가 결합할 경우 발생하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의 저자)

소련의 관료주의적 역기능과 검열, 달성 불가능한 경제 목표 설정이 어떻게 재난을 야기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방해했는지 뛰어나게 설명한 역작.
- [뉴욕 타임스 리뷰 오브 북스]

치밀한 조사,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서술로 플로히는 소련 체제의 부조리와 공산당 관리들의 오만을 자비 없이 기록했다. 그가 체르노빌 남쪽에서 5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즉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한 원전 운영자, 직원, 소방관, 병사 들에 대해 생생하고 가슴에 와닿는 서술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다.
- [월스트리트 저널]

체르노빌 원전 화재와 소련의 침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하버드대학 우크라이나연구소장인 플로히는 사고 원인이 된 원전 건설 과정과 원전 운영 기술자들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잘못된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소련의 속임수가 소련의 붕괴와 우크라이나 독립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워싱턴 타임스]

원전에 대한 소련의 집착은, 산업 분야의 고질적인 부정직과 국가기밀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과 결합되어 1986년 재난을 발생시켰다. 지금까지 체르노빌 사고 역사에 대해 영어로 나온 책 중 가장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는 저술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체르노빌 재앙을 다룬 최초의 포괄적 역사서다. 드디어 이 재앙에 걸맞는 역사서가 탄생했다.
- 줄리 맥도웰, [타임스]

강렬하다. 플로히의 완급 조절 솜씨는 인간의 연약함과 설계 결함이 가공할 재앙을 만들어낸 운명의 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원전 통제실의 긴장 속으로 독자들을 던져 넣는다.
- [가디언]

플로히의 책은 사건에서 너무 거리를 두지도, 특정 주제에 과도하게 몰입하지도 않으면서 사려 깊은 관찰을 지속한다. 그는 소련 해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체르노빌의 정치적 낙진을 깊이 파헤친다.
- [뉴 스테이츠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책이다. 플로히의 목소리는 인간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모든 도시와 파괴된 목가적 전원이 그러하듯이 그의 글 속에서 체르노빌과 프리퍄트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 [스펙테이터]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위기와 그 여파에 대해 거의 완벽한 이야기를 썼다. 그는 과학 이야기, 체르노빌 복구를 위해 치른 인명과 경제적 희생, 이 사고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을 가속화한 과정,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촉발시킨 사건 등 모든 각도에서 사고를 바라보며 능숙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 앤드루 윌슨 (시드니 대학교 우크라이나학 교수)

세르히 플로히는 이 비극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저명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체르노빌 방사능 구름 아래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당사자로서 이 책을 썼다. 그 결과 소설과 같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이 탄생했다.
- 매리 엘리스 새로트 (『붕괴: 베를린 장벽의 돌발적인 개방』의 저자)

원자력 에너지 역사에서 최악의 참사가 된 체르노빌 사고를 서술하며 소련이 얼마나 크고 작은 모든 문제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국가였는지 치명적일 정도로 상세하게 보여준다. 세계는 35년 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공포를 망각할 수 있겠는가. 플로히의 저술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만든다.
- 헨리 파운틴 (『언다크』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