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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조선 소설사 : 근대적 소설 개념에 입각한 한국소설사

동방박사님 2021. 12. 2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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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제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金台俊)이 1930~31년에 집필해 당시 신문에 연재한 글을 일부 수정해 1933년에 단행본으로 펴낸 『조선소설사』를 되살린 책이다. 근대적 소설 개념에 입각한 한국소설사로는 최초의 저작이다. 저자의 생전 마지막 저술인 「연안행」을 부록으로 실었다.

목차

서를 대신하여
자서
필자의 머리말

제1편 서론
제1장 소설의 정의
제2장 조선소설의 제 문제
제3장 모든 유학자의 소설에 대한 공죄론
제4장 조선소설 개관

제2편 설화시대의 소설
제1장 조선소설의 기원
제2장 삼국설화와 잔존한 문헌
제3장 고려의 패관문학과 불교문예

제3편 전기소설과 한글 발생기
제1장 이조의 주자학과 소설계에 던진 영향
제2장 이조 초창기의 전기소설
제3장 전기문학의 백미인 『금오신화』
제4장 한글의 창제와 여명운동

제4편 임진·병자 양란 사이에 발흥된 신문예
제1장 임진란 후에 배태된 신문학
제2장 『화사』와 그 시대
제3장 『홍길동전』과 허균의 예술
제4장 명대 소설의 수입

제5편 일반화한 연문학의 난숙기
제1장 숙종조를 중심으로 한 황금시대의 문예
제2장 소설가로 본 서포 김만중
제3장 동화·전설의 소설화

제6편 근대소설 일반
제1장 영정시대의 소설
제2장 중국문학의 일 방계로 본 한자소설
제3장 『삼한습유』
제4장 대문호 박지원(연암)과 그의 작품
제5장 『장화홍련전』과 기타 공안류
제6장 걸작 『춘향전』의 출현
제7장 『춘향전』 이후의 염정소설
제8장 전대 계승의 문학

제7편 신문예운동 40년간의 소설관
제1장 서론
제2장 계몽운동시대의 문학
제3장 발아기(1911~1919)의 소설
제4장 신흥문학의 발전
제5장 결론

부록: 연안행
교주자의 후기
 

저자 소개

저 : 김태준 (金台俊)
 
일제강점기의 한문학자이자 국문학자. 호는 천태산인(天台山人). 1905년 11월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영변농학교와 이리농림학교를 거쳐 1926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고, 1928년 예과를 마친 뒤 같은 대학 법문학부 중국어문학과에 진학해 1931년 졸업했다. 이후 명륜학원 강사, 명륜전문학교 조교수, 경성제국대학 강사를 지냈다. 1940년부터 경성콤그룹(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어 1941~43년 옥고를 치렀다. 항일 무력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일제의 경계망을 뚫고 국외로 탈출해 중국 연안으로 갔다가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듣고 11월 귀국했다. 12월 경성대학 총장에 선출됐으나 미군정청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46년 11월 남조선노동당의 문화부장에 임명됐고, 1947년 ‘8·15폭동 음모사건’ 연루자로 연행되어 일시 투옥됐다가 석방됐다. 이후 남조선노동당 간부로 문화공작과 특수정보 분야의 지하활동을 하다가 1949년 7월 체포되어 이적간첩죄로 재판을 받고 11월 총살로 처형됐다.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저서로는 『조선소설사』·『조선한문학사』·『청구영언』·『고려가사』가 있고, 신문·잡지·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나 수필로는 「조선의 한문학 원류」·「강담 중국영화」·「임제의 연문학」·「연암소설 경개」·「중국의 한자폐지 운동」·「성씨·문벌·족보의 연구」·「열두 달의 명칭」·「진정한 정다산 연구의 길」·「조선역사의 변천과정」·「단군신화 연구」·「조선민란사화」·「야담의 기원에 대하여」·「원조선인에 대한 고찰」·「조선가요개설」·「신라 화랑제도의 의의」·「연안행」 등이 있다. 이들 저작은 1947년에 발표된 「연안행」 외에는 대부분 1930년대에 집필되고 발표됐다.
 
 
 

책 속으로

『열녀전』의 번역은 조선 소설번역 사업에 선편(先鞭)을 착수(着手)시킨 것이며 선조 이후의 창작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요, 『중경지(中京志)』와 같은 책을 보면 『열녀전』을 역독(譯讀)한 부녀(婦女)들이 상당히 많았다. --- p.85

『홍전』은 균배(筠輩)의 자서전이었을수록 더욱 귀중하다. 갖은 포학(暴虐)과 천대(賤待)를 다하는 양반정치(兩班政治)에 반기를 든 풍운아 홍길동의 성격이 전후(前後)에 모순 없이 완전히 묘사되었으며 장회소설(章回小說)의 시조가 되었다는 점으로써 조선소설사상에 가장 거벽(巨擘)이라 하겠다. --- p.118

흥부·놀부 형제의 박 타는 이야기. 우리는 어려서 이 이야기를 어머니의 반짇고리 옆에서 듣고, 자라서는 광대 북 앞에서 듣고, 들을 뿐 아니라 연극을 보고, 책으로 외어서 뼈에 박이고 살에 들도록 연습한 것, 그리고 특별히 조선 냄새가 무럭무럭 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조차 향토 특유의 것은 아니요 대륙으로부터 조선·일본에까지 광포(廣布)된 것인 줄을 알겠다. --- p.179~180

이조의 문예는 세종 때에 발아하고 선조 때에 분얼(分蘖)하여 숙종 때에 지엽(枝葉)이 극번(極繁)하여 영정시대에 꽃이 피어 떨어지고 말았다. 영정시대란 영조·정조 양조 약 팔십 년 동안을 말함이다. 영정시대를 특히 획(劃)한 것은 영·정 양대 동안에 문화적 업적이 그의 전후와는 대차(大差)가 있는 발전과 특색을 보여줌으로 인함이다. --- p.204

“예의는 양반의 집에만 있어야 옳으냐. 기녀의 천가에는 정절도 없어야 옳으냐.” 사실상 춘향은 정절보다 인격을 주장하였다. 인간적으로 평등대우를 절규하는 것이 개성(個性)에 눈뜬 춘향, 아니 자유를 찾는 민중들의 구호였던 것이다. --- p.271

갑오경장을 경계로 조선의 역사는 이분(二分)되어 대략 갑오 이후는 신흥하는 시민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소설·연극은 물론이요 모든 문화형태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요구하는 기운(機運)에 당착(當着)하였다. 그 새것이란 것은 낡은 것 속에 배태되어 낡은 것을 부정하고 나온 것이다. 이때부터 조선의 신문예운동 내지 문화운동이 출발되는 것이다. --- p.302

조선의 신문예운동에 있어서 신도덕관·신연애관의 문학을 수립한 이가 춘원이라고 하면, 신흥문학(新興文學)을 고조(高調)하여 그 운동의 기운을 배태(胚胎)케 하여준 이는 팔봉 김기진(金基鎭) 씨이다. --- p.334~335

『백조(白潮)』 중심의 세기말적 시인에 이르러 비관의 정신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것이 기미 후 사회의 내적 조화를 상실한 지도적 시민층에 대한 지식인의 사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도향 씨에게 있어 단편 형식의 완성, 심리적 리얼리즘의 개척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소시민층의 규환(叫喚)이 들려오고 하층인이 그 생존과 존속의 확고한 지위를 단호히 요구하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소위 신경향파라는 것이 『백조』 일파 속에 분화되어 나왔다. --- p.341

수년 전에 감옥에 있을 적에 노모, 안해, 유아(乳兒)를 잃은 것은 출옥 후의 나에게 굳센 복수의 염(念)에 불타게 하였다. 우리 민족의 원수, 인민의 원수, 가족의 원수인 일제를 동해 밖으로 격퇴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집에 20살이 넘은 두 딸은 두 동지 김(金)·박(朴)에게 출가시켰다. 나의 가정부담은 경(輕)해졌다. 문학연구니 역사연구니 언어연구니 하는 것은 우리 정부(政府)가 수립된 후의 일이니 당분간 이 방면의 서적은 상자에 넣어서 봉해두자. 연안행
--- p.348
 

출판사 리뷰

김태준(金台俊)의 『조선소설사』는 근대적 소설 개념에 입각한 한국소설사로 최초의 저작이다. 표제의 ‘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이씨 왕조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역대 나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김태준이 20대 중반에 경성제국대학 재학생 신분으로 1930년 10월 31일부터 1931년 2월 25일까지 68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소설사」가 애초의 원본이다. 김태준은 그 원본을 깁고 더해 1933년 청진서관(?進書館)을 통해 단행본 『조선소설사』를 펴낸 데 이어 1939년 임화(林和)의 권유를 받고 학예사(學藝社)를 통해 『(증보)조선소설사』를 펴냈다.

이 책은 학예사판 『(증보)조선소설사』를 저본으로 하되 『동아일보』에 연재된 「조선소설사」와 청진서관판 『조선소설사』를 참고하면서 필요한 최소한으로 교정과 주석을 가해서 엮은 것이다. 교주자에 따르면 당시의 어법과 표현·표기법이 지금과 많이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세 가지 판본 모두에 적지 않은 오식과 오류가 있어 교주할 부분이 꽤 많았다고 한다. 교주자는 인쇄나 출판 과정의 오식 외에도 지은이 자신의 착각이나 그가 활용할 수 있었던 자료의 한계에 기인한 오류도 일일이 적출하여 수정하고 주석을 달았다. 독자는 주석을 통해 저본의 오식·오류와 교주된 내용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다.

원저에 오식과 오류가 적지 않았다고 해서 이 저작의 의의와 가치가 폄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소설사 내지 한국문학사 연구에서 그 위상이 그만큼 우뚝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물론이고 광복 이후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국문학 연구자를 비롯해 한국문학사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문학사의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됐다.

권말에 부록으로 실린 「연안행」은 조선문학가동맹 기관지 『문학』의 창간호(1946년 7월)부터 제3호(1947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연재된 지은이의 글을 되살린 것이다. 지은이가 좌익계 지식인이자 지하활동가로서 항일 무력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일제의 경계망을 뚫고 국외로 탈출해 중국 연안으로 가던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미완성 상태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읽기에 흥미로운 작품일 뿐 아니라 지은이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