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1.서양고전문학

98.슬픔이여 안녕

동방박사님 2022. 1. 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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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매혹적인 작은 괴물’ 프랑수아즈 사강을 탄생시킨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_11쪽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슬픔이여 안녕』이 프랑수아즈 사강 15주기를 맞아 김남주 번역가의 유려하고 감각적인 새 번역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슬픔이여 안녕』은 사강에게 ‘문단에 불쑥 등장한 전대미문의 사건’ ‘매혹적인 작은 괴물’이라는 수식을 안기며 또 다른 천재 작가의 출현을 알린 데뷔작이자 사강 문학의 정수를 이루는 대표작이다. 열여덟 살의 대학생이 두세 달 만에 완성한 이 소설은 프랑수아 모리아크를 비롯한 쟁쟁한 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비평가상을 받았고 전후 세대의 열광 속에 ‘사강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모리아크가 “첫 페이지부터 탁월한 문학성이 반짝이고 있다”고 평한 이 작품은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사건 앞에서 자기 내면의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 십 대 후반의 섬세한 심리를 더없이 치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어느새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간명하고 예민한 필치로 보여준다.

책에는 40여 년이 지나 『슬픔이여 안녕』을 쓰던 때를 돌아보며 쓴 사강의 에세이, 사강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는 풍성한 사진 자료, 프랑스 비평가 트리스탕 사뱅이 촘촘하게 사강의 삶을 그리는 글을 함께 실어 탐닉과 몰아의 경지에서 자신을 끝까지 불태웠던 한 천재의 다양한 면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목차

1부 9
2부 83

에세이: 슬픔이여 안녕 _프랑수아즈 사강 189
옮긴이의 말: ‘사강다움’의 원전, 그 소설 속에서 ‘나’를 만나다! _김남주 215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_트리스탕 사뱅 231

작가 연보 263

 

저자 소개

저 : 프랑수아즈 사강 (Francoise Sagan,본명 :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
 
설득보다는 매혹을 원했던 프랑스 최고의 감성,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우는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그녀는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 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9세 때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어 ...

역 : 김남주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1990년 장 그르니에의 책이 첫번째 결과물이 되었고, 현재 번역목록의 맨 밑을 차지하는 작가는 가즈오 이시구로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이다. 이시구로는 최근에 만난 작가이고, 로맹 가리는 10년 동안 드문드문 본다. 오랜 시간,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글들, 그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을 번역해왔다....
 

책 속으로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 p.11

함께 자동차에 타자 아버지는 갑자기 기쁨에 찬 듯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그와 꼭 닮은 눈과 입을 가진 나는 이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가장 멋진 놀이 친구가 될 터였으므로.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파리를, 사치를, 편안한 삶을 보여줄 터였다.
--- p.30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보석 같은 경구를 일부러 읊조리곤 했다. “과오란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생한 색깔이다.” 나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이 말을 금언으로 삼았다.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이상으로 그 말을 확신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삶이 이 구절로 대변되고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그 구절로부터 도착적인 채색 판화처럼 솟아오를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삶에는 작동하지 않는 시간, 논리와 맥락이 닿지 않는 때, 일상적인 좋은 감정 같은 것들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저속하고 부도덕한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 p.33

내가 다른 것들은 모두 잃어버리는데 어째서 그것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 내 손안에 있는 조가비, 체온으로 데워진 그 분홍색 조가비는 나를 울고 싶게 만든다.
--- p.42

“넌 사랑을 너무 단순한 걸로 생각해. 사랑이란 하나하나 동떨어진 감각의 연속이 아니란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한 사랑은 모두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어떤 얼굴, 어떤 몸짓, 어떤 입맞춤 앞에서 문득 솟구친 감정……. 일관된 맥락 없는, 무르익은 순간들이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진 기억의 전부였다.
“그건 다른 거야. 지속적인 애정, 다정함, 그리움이 있지……. 지금 너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안이 말했다.
--- p.47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견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었다. 어쨌든 나의 삶, 아버지의 삶은 그런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안은 그것을 경멸함으로써 내게 상처를 주었다.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안은 나를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게 잘못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갑자기 시급한 일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 p.51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나는 점토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토는 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 p.80

테라스에서 나는 식당 창문이 반사하여 생긴 환한 빛의 사각형 속에서 안의 길고 생기 있는 손이 망설이다가 아버지의 손을 찾아 쥐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시릴을 생각했다. 매미들과 달빛으로 가득 찬 이 테라스에서 그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 p.81

별장까지 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 손을 찾아 쥐고 놓지 않았다. 믿음직하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손이었다. 그 손은 내가 처음으로 실연을 당해 슬퍼할 때 눈물을 닦아주었고, 완벽한 행복과 고요의 순간 내 손을 잡아주었으며, 우리가 함께 일을 꾸미며 정신없이 웃을 때 살그머니 내 손을 쥐어주었다. 자동차 운전대에 놓여 있던, 저녁이면 열쇠를 쥐고 엉뚱한 구멍에 넣던, 어떤 여자의 어깨에 놓여 있거나 담배를 쥐고 있던 그 손, 그 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
--- p.91

지금도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다 실패할 때면 나는 그 기묘한 순간을 다시 떠올린다. 내 행동과 나 자신 사이에 놓인 그 간격을, 안의 눈길에 담긴 무게, 그 주위의 공허, 그 공허의 강렬함을…….
--- p.125

나는 지루함이 죽도록 싫었다. 시릴을 진심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된 후 권태의 영향을 훨씬 덜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시릴과의 사랑은 많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엇보다도 권태가, 고요가 두려웠다. 우리,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는 내적으로 고요해지기 위해 외적인 소란이 필요했다. 그리고 안은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으리라.
--- p.159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 p.186

속도에, 알코올에, 약물에 취한, 빠르고 아찔하고 요란하고 화려한 삶. 이런 삶 이면에 프랑수아즈 사강에게는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우주가 있었다. 책 속의 세계라는 ‘평행하는 우주’의 주민이었던 그녀는 열대여섯 살 무렵 그 세계의 입구를 발견했다. 그녀가 수업에 자주 빠진 것도, 시험에 떨어진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 p.218

“문학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었다. (……) 최선의 것이며 최악의 것이자 치명적인 것으로서, 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었다. 문학과 더불어, 단어와 더불어, 문학의 노예이자 대가인 이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었다. 문학과 함께 달리고,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문학을 향해 기어올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을, 조금 전 읽고서도 내가 결코 쓰지 못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같은 방향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을 향해.”(프랑수아즈 사강,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
--- p.219
 

출판사 리뷰

요란하고 화려한 삶 이면의 또 하나의 우주
사강이 ‘평생에 걸쳐 사랑한 그 무엇’, 문학


“문학과 더불어, 단어와 더불어, 문학의 노예이자 대가인 이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었다. 문학과 함께 달리고,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문학을 향해 기어올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을, 조금 전 읽고서도 내가 결코 쓰지 못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같은 방향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을 향해.” _프랑수아즈 사강

‘매혹적인 작은 괴물’ ‘문학계의 샤넬’ ‘열여덟 살 난 콜레트’. 사강을 수식하는 수많은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사강은 등장과 동시에 자유로운 성, 속도감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문장의 아이콘으로, 한 시대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20세기를 열광시킨 이 작은 괴물은 말년까지도 쉼 없이 작품 세계를 연마하며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속도와 알코올, 도박과 약물에 탐닉하는 자유분방한 삶으로도 유명세를 치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집약되는 사강의 삶은 소진과 탐닉으로만 이뤄진 듯하지만, 사실 사강의 삶을 지탱한 것, 사강이 끝까지 고수한 것은 오로지 문학뿐이었다. 그리고 사강이 쓴 모든 작품들의 기원, 사강 문학의 성소가 바로 《슬픔이여 안녕》이다. 문학적 재능이 반짝이는 대담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와 인간 본성에 관한 치밀한 성찰, 지극히 효율적인 구성, 독특한 인물들은 그 누구와도 다른 사강만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준다. 특히 ‘슬픔’이라는 삶에서 처음 마주하는 감정에 관한 성찰과,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른의 세계로 입문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관한 묘사에서 사강의 문학성은 빛을 발한다.

사강 15주기에 다시 만나는 사강 문학의 기원
풍성한 자료와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는 《슬픔이여 안녕》


사강은 1954년의 한 대담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작가는 같은 작품을 쓰고 또 쓰는 것 같다. 다만 시선의 각도, 방법, 조명만이 다를 뿐.” 사강이 열여덟 살에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했을 때 사강은 이미 사강이었다. 인간 본성에 관한 간결하고 예리한 고찰, 경쾌하고 우아한 문장, 기성의 도덕과 관념을 향한 냉소, 과감한 구성과 줄거리. 모든 천재의 첫 작품이 그렇듯이 사강의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에는 사강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강 본인이 말했듯 이후 사강이 발표한 수십 권의 작품들은 모두 《슬픔이여 안녕》에서 출발한, 《슬픔이여 안녕》의 다양한 변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랑수아즈 사강 15주기를 맞아 아르테에서 정식 출간한 사강의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은 번역가 김남주가 사강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를 세심하게 살려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다. 충실한 번역에 더해 풍성한 사진 자료, 작품의 이해를 돕는 글 두 편도 함께 수록됐다. 《슬픔이여 안녕》이 출간된 지 40여 년 뒤에 사강 본인이 그 시절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는 작품에 대한 생생하고 흥미로운 감상을 전하며, 사강의 삶을 출생부터 사망까지 추적한 비평가 트리스탕 사뱅의 글은 문학보다 더 문학적이었던 사강의 삶의 다양한 면면을 소개한다. 새로운 표지,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는 《슬픔이여 안녕》에서 독자들은 여전히 매혹적인 사강 문학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르 몽드》 선정 ‘세기의 책 100권’
1954년 프랑스 비평가상 수상
 

추천평

열여덟에 이 소설을 썼던 사강은 그래서 행복했을까 그런 만큼 불행했을까. 이 소설의 이 제목 이후로 내게 ‘슬픔’이란 아는 줄 알았는데 전에 없이 모르는 감정이 되었다. ‘안녕’도 역시. 마중하고 배웅하는 말이라지만 산다는 건 안녕? 하고 왔다가 안녕! 하고 가는 거니까. 강렬하면서도 복잡한 모든 감정을 직접 겪어내게 한다는 의미에서 읽으면 내가 좋아지는 소설!
- 김민정(시인)

인생이 백 가지의 색깔로 이루어졌다면, 사강은 아흔 가지 이상의 색을 고루 사용해본 사람이다. 비범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쩌다 우연히 히트작을 낸 게 아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 박연준(시인)

모든 문장이 파괴적이다. 이렇게 강렬했던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슬픔이여 안녕》을 썼던 열여덟과 주인공 세실의 나이 열일곱 사이 언젠가 처음 읽었던 이 소설을, 세실의 아버지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던 상대인 안의 나이에 다시 읽는다. 싫어했던 여자를 이해한다. 이해했던 여자를 두려워한다. 파국을 맞아들이는 이 감각을, 다시 겪는다.
- 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사강의 모든 소설은《슬픔이여 안녕》에서 출발하고, 《슬픔이여 안녕》을 뛰어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 김남주(번역가)

불꽃이 번득이는 바다, 격리된 숲, 동물적인 움직임, 학구적일 정도로 효율적인 구성, 라신의 완벽성에 신예의 매혹을 지닌 등장인물.
- 존 업다이크(소설가)

첫 페이지에서부터 탁월한 문학성이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프랑수아 모리아크(소설가)

사강에게는 앙드레 말로가 모든 것 위에 놓았던 것, 그가 ‘지성의 너그러움’이라고 부른 자질이 있다.
- 필리프 바르틀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