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서울시 관광

강감찬 전시관

동방박사님 2022. 1. 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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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상

1997년부터 낙성대 공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감장군상 입니다. 갑옷에 투구를 눌러쓰고, 매서운 눈매를 한 채 말에 올라 타 있어요. 왼손으로는 말을 다루고 오른손에는 검을 들어 흡사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將帥의 모습이지요?

최고의 명재상이자 명장인 강감찬

문무를 겸비한 강감찬

강감찬은983년 (성종2년) 36세 나이로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1009년 (현종즉위년) 예부시랑 (禮部侍郞)으로서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1010년 거란의  2차칩입 때에는 현종에게 거란과 끝가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남쪽으로 피신하도록 권하여 조정을 보존하였다. 1011년에는 충추사로 승진하여 사직단을 설치하고 의례를 정비하는 등 현종을 도와 왕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어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전임 되었을때는 자신의 땅을 바쳐 군인들의 집에 나누어 주도록 나라에 헌납하여  공직자로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하였다. 1018년 12월에 거란의 3차 침입이 있자 상원수(上元帥)로 임명되어 이듬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 무적으로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강감찬은 연로함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관직에 나아가 1030년에 고려의 최고관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귀주대첩 (거란의 최후)

1019년 정월 거란은 흥화진 전투후 개경 부근까지 남진하였으나 개경의 방어가 굳건하고, 연이은 패전으로 군사들의 사기마저 떨어져 회군할 수 밖에 없었다. 거란군이 회군하면서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