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로마카톨릭-천주교 (책소개)/4.한국천주교회사

추기경 정진석

동방박사님 2022. 2. 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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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추기경 정진석》은 가톨릭평화신문에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연재한 정진석 추기경의 회고록을 모은 책이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정진석 추기경의 구술과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엮은 이 책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삶과 신앙이 담겨 있다. 특히 다사다난했던 한국 근현대사와 현대 한국 교회의 흐름도 풀어내고 있어, 당시의 시대 상황도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삶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이 이루어 주심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이 흔들리며 하느님이 과연 내 바람을 들어주시는지 의문이 들 때, 정 추기경처럼 겸손하고 깊은 믿음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며 모든 것을 맡기면, 하느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추천의 말
한 사제의 삶을 넘어 교회와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 5
여는 말
추기경님의 추억 속 여행에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7

제1장 어머니, 그리고 유년 시절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던 그날 19
꿈나라의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저녁 기도 24
늘 인자하던 어머니가 불같이 화낸 날 30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주교와 담판을 짓다 34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준 어머니 39
책에 빠져 살던 소년, 보미사를 꿈꾸다 44
주교 흉내를 내며 명동 성당을 드나들던 꼬마 보미사 49
질풍노도의 시기, 흔들리는 신앙 54

제2장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 보낸 청년 시절
발명가의 꿈을 안고 서울대학교로 61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66
6·25 전쟁과 명동 성당 71
서울에서의 은신 생활 75
수많은 젊음에 빚지며 80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삶 85
눈물로 어머니를 보내며 전장 속으로 90
두 생명을 살린 어머니의 재봉틀 96
미군 통역사가 되어 전장의 사내들과 함께 101
“형! 우리, 인류를 위해 봉사하지 않겠소!” 107
영적 아버지와 함께 전쟁 고아들을 위해 113

제3장 신학교, 사제 서품, 그리고 로마로
마리아 고레티 성녀가 이끌어 준 사제 성소 121
기도와 공부에만 전념하는 지상의 천국, 신학교 126
진석이 그린 성모 자애 병원, 우뚝 서다 132
“네, 여기 있습니다!” 138
행복했던 첫 사목 생활, 그리고 영적 아버지의 선종 144
교사, 방송 진행자, 법원 서기로 동분서주한 나날들 150
교구장 비서로서 마주한 냉엄한 현실 155
노기남 대주교를 떠나보내며 160
혼란의 시간을 넘어 새로운 길을 찾아 165
새로운 세계, 로마를 향하여 171
39세 젊은 주교의 탄생 177

제4장 첫 한국인 청주교구장이 되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 185
주교관 옆 함석집에서 시작한 교구장 생활 191
“성소자만 발굴해 준다면 뒷바라지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196
여름에는 냉방기 없이, 옷장에는 낡은 옷 몇 벌뿐 201
교황청에서도 인정한 사제 양성의 결실 206
하느님의 집 하나씩 지으며 212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주교 217
스무 살 된 청주교구, 한 단계 더 성숙하다 222
배티성지, 그리고 최양업 신부와의 만남 228
꽃동네의 도전과 희망 234
교회법전 번역과 해설에 온 힘을 쏟다 239
돌아보니 주님의 은총이었네 245
수도회와 손잡고 사회 사목의 반석을 마련하다 251
하느님의 뜻으로 세운 병원 255

제5장 서울대교구장이 되어 다시 서울로
어린 시절 누비던 명동 성당으로 돌아오다 263
주님의 섭리와 교구장 지팡이 269
직접 뽑은 지구장, 서울대교구에 부는 새 바람 275
맞춤 사목으로 본당에 불어넣은 활기 280
소외된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교회 284
작은 본당으로 선교의 꿈을 이루고자 289
희망찬 2000년 대희년을 꿈꾸며 295
은총의 해 대희년, 그 새로운 시작 300
교회와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한 길, 교구 시노드 305
서울대교구 시노드의 시작 309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314
시노드 후속 작업과 의정부교구 신설 318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323
성인 교황의 위대한 발자취 327
새로운 목자,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332
생명 수호를 위해 고난의 길로 337
서울대교구 생명 위원회 출범 342
더 작은 교회, 신자들과 더 가까이하는 교회 346

제6장 한국 교회 두 번째 추기경이 되다
돌쩌귀, 추기경 353
로마에 울려 퍼진 ‘카디널 니콜라오 정진석’ 358
생명 나눔 운동에 호소하며 육신을 내어놓다 365
생명의 소중함을 사회에 전한 ‘생명의 신비상’ 370
꿈에도 못 잊을 북한 교회와 메리놀 외방 전교회 375
신자들과 함께한 ‘바오로의 해’ 성지 순례 381
영성 심리 상담으로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풀어 주다 387
청년들과 손잡고 부르는 꿈과 희망의 노래 392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397
해외 선교는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길 402
미래 사목의 중요한 방향은 바로 IT 사목 407
마지막 숙제, 명동 성당 종합 계획 412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 418

정진석 추기경 연보 423
 

저자 소개 

저 : 허영엽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 1984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수유동, 반포 성당 보좌 신부를 거쳐 독일 트리어 신학 대학교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구파발, 가좌동 성당 주임, 성서못자리 전담 신부로 사목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문화홍보국장으로 활동하다 교구장 수석 비서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서 교구의 공식 입장을 전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교구 문화 위원회 위원장, 영성 심리 상담 교육원 ...
 

책 속으로

“감사하나이다. 오주 천주여, 너 나를 보호하사, 이 밤에 평안케 하시고, 다행히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오늘 밤까지 생명을 늘려 주심이로소이다. 주께 구하오니 오늘 밤에 나로 하여금 미혹하여 죄에 떨어지지 말게 하소서.”(감사경)
저녁에 긴 만과를 하다 보면 어린 진석은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사르르 잠이 왔다. 한참 지나고 나면 결국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고 말았다. 외할아버지, 외삼촌, 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한목소리로 저녁 기도를 바치는 소리는 꿈나라에서 들리는 노래였다.
--- p.28 '꿈나라의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저녁 기도' 중에서

“진석이가 신학교에 들어가면 자네 혼자 살아야 하는데, 어쩌려고 그러나.”
명동 성당 사목회장이었던 진석의 외할아버지 덕분에 노 주교는 진석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쉽게 물러서지 않고 떼를 쓰는 어머니를 노 주교는 재차 말렸다.
“제가 사는 것은 걱정하지 마시고 진석이가 꼭 신학교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어머니의 고집에 깜짝 놀란 노 주교는 이내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난 모르겠네.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밤이 되자 호롱불 아래서 말없이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조용히 진석을 불렀다.
“주교님이 허락하셨다.”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반짝이는 어머니의 선한 눈을 보며 진석은 생각했다.
‘아! 이게 하느님의 뜻이구나. 이건 인간의 생각이 아니구나.’
--- p.37-38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주교와 담판을 짓다' 중에서

미카엘이 세상을 떠난 날은 9월 27일이었다. 다음 날이 추석이었고, 달빛이 아주 밝은 밤이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도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동생이 이젠 저세상 사람이 되어 아무 말 없이 쓰러져 있는 걸 보니 너무나 허망했다. 사람에게 삶과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레는 미카엘 대천사 축일이었다. 자신의 축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으니 하느님이 데려가셨을 것이라 애써 스스로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손 뻗으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던 동생의 죽음은 평생의 슬픔이 됐다.
동생과 자리가 바뀌었다면 분명히 진석이 죽었을 것이다. 열아홉 살 청년 진석은 그날 깨달았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것임을 말이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어. 나는 그날 동생과 함께 죽었어. 그리고 나머지 삶은 덤으로 받아 사는 것이야.”
--- p.86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삶' 중에서

“아니, 교구장님이 그 많은 비용을 어디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것이지?”
신부들 중에는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당시 정 주교도 딱히 묘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겠지.’ 하는 ‘야훼 이레’ 믿음뿐이었다. 때로는 사람들이 정 주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 주교님은 지나칠 정도로 초긍정적이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 주교의 이런 성향은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 같으면 밤을 지새워 고민했겠지만, 정 주교는 묵주를 쥐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아이고! 하느님이 알아서 좀 해 주세요.”
하느님 아버지는 될 일은 잘되게 돌봐 주셨고, 욕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잠들 수 있게 은총을 내려 주셨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이에게만 내려오는 은총이었다.
--- p.199-200 '“성소자만 발굴해 준다면 뒷바라지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중에서

교황청 발표 직후 청주교구청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김 추기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 대주교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내일 보좌 주교님들과 꾸리아 신부님들을 청주로 보낼 테니 착좌식 날짜와 준비를 상의해 줘요. 고생 좀 해 줘요.”
“추기경님!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사람이 추기경님의 후임자가 돼 송구합니다.”
정 주교는 28년 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던 당시, 김 추기경의 연락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로마 유학 중 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모금 중이던 그에게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준비해 주겠노라 연락을 주었던 김 추기경이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인연이었다. 큰형님 같은 김 추기경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 주교는 평소에도 김 추기경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 p.268 '어린 시절 누비던 명동 성당으로 돌아오다' 중에서

정 추기경의 강론에 신자들은 또다시 박수로 화답했다. 서임식 전날 정 추기경은 기자들에게 “영예로운 자리임이 틀림없지만 그 영예의 기쁨이 며칠을 가겠어요? 그 이후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저를 짓누를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정 추기경은 서임 발표 며칠 후 사석에서 “두렵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지나쳐 어깨가 무겁고 두려운 감정조차 든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날 한인 신자들 앞에서의 강론은 사뭇 달랐다. 두려움 속에서 깊은 묵상을 한 끝에 깨달은 주님의 뜻이었다. 작은 별빛이 되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신자들과 하느님 앞에 맹세하는 정 추기경이었다.
'로마에 울려 퍼진 ‘카디널 니콜라오 정진석’' 중에서
--- pp.363-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