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4.조선왕릉 41

남양주시 금곡 (홍릉.유릉) 대한제국 황실 후궁들의 묘

사적 남양주 홍릉과 유릉 홍릉은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 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明成皇后閔氏 1851~1895의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純宗:1874~1926과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1872~1904, 두 번째황후 순정황후 윤씨 1894~1966의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왕릉 형식과 다르게 대한제국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황제릉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 황제의 예를 참조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기존 조선왕릉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제향공간에 있던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을 두었고, 침전 앞부터 홍살문까지 향로를따라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홍릉..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 희릉, 효릉, 예릉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서삼릉은 "서쪽에 있는 세 기의 능' 이라는 뜻으로 희릉禧陵, 효릉孝陵, 예릉譽陵이 있는 곳이다. 처음 헌릉(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근처에 있던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정경왕후의 희릉이 1537년(중종 32년) 이곳으로 옮겨졌고, 이후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철종과 철인 황후의 예릉이 조성되었다. 서삼릉 안에는 왕릉 3기 외에도 소경원, 의령원, 효창원 3기와 회묘, 왕자, 왕녀, 후궁 등의 묘 47기, 태실 54기가 있다. 희릉 禧陵 : 11대 중종의 두번째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효릉 孝陵 :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 예릉 睿陵 :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쌍릉 소경원 昭慶園 : 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원 의령원 懿寧園 : 추존 장조의 황제(사도..

고양시 서삼릉 : 희릉 禧陵(중종비 장경왕후)

고양시 서삼릉 : 희릉 禧陵(중종비 장경왕후) : 사적 200호 희릉은 조선 11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 (章敬王后 尹氏 : 1491~1515) 의 능이다. 장경왕후는 1506년 (중종1년)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507년(중종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사이애 1남(인종) 1년(효혜옹주)를 낳았으며, 1515년(중종10년) 인종을 낳은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에 헌릉(채종과 원경왕후의능, 서초구 내곡동 소재) 서쪽 언덕에 조성 되었으나, 1537년 (중종32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1544년(중종39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 (현 철종 예릉 자리)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이 되었다가, 1562년(명종 17년) 중종의 능이 선릉 동쪽 (현 강남구 ..

고양시 서삼릉 : 예릉 譽陵 (철종과 철인왕후)

예릉 譽陵 (철종과 철인왕후) : 사적 제 200호 예릉은 조선 25대 철종 哲宗 (1831~1863, 1849~1863 재위) 과 철인왕후 (哲仁皇后 金氏)의 능이다. 철종은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의 아들로 강화도 유배지에서 생활 하던중, 1849년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황후 純元皇后 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봉기가 일어나 삼청이정청을 설치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세도정치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철인왕후는 1851년(철종 2년)에 왕비로 책봉 되었고,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대비大妃 가 되었다. 철종과 철인왕후는 1908년(융희2년)에 각각 철종황제와 철인장 황후로 추존 되었다. 예릉은 영조(英祖) 대에 편찬한 『국조상례보편 』 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

고양시 서삼릉 : 효창원 (문효세자). 의룡원 (의소세손)

효창원 孝昌圓 (문효세자) : 사적200호 효창원은 조선 22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 의 원* 이다. 문효세자는 정조와 의빈 성씨 宜嬪成氏의 아들로 1784년 (정조8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정조10년) 5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처음에 온효세자 溫孝世子에서 문효세자로, 무덤의 이름도 효창묘孝昌墓 에서 1870년(고종7년) 효창원으로 격상되었다. 처음에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194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입구에는 정조의 글을 지은 **신도비가 있다. *원圓 : 왕의 사친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신도비 (神道碑) : 왕과 대신들의 무덤 앞에 세워 업적을 기리는 비 의령원 懿零圓 (의소세손) :..

경기도 김포 장릉

김포 장릉 金浦 章陵 사적 제202호 장릉(章陵)은 조선 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元宗: 1580~1619) 과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 1678~1626)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宣祖)와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셋째 아들로 1587년에 정원군에 봉해졌고 1619년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양주 곡촌리에 (현 남양주시 금곡동)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623년에 아들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大院君)으로 추존되고 1626년에 묘를 원으로 높여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1632년 원종으로 추종되고 원을 능으로 높여 장릉이라 하였다. 인현왕후는 구사맹(具思孟)의 다섯째 딸로 1590년에 연주군부인에 봉해졌고 1623년에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계운궁(啓運宮) 연주부부인이 되었다. 16..

서오릉 (명릉)

명릉 明陵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 사적 제198호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肅宗 : 1661~1720. 1674~1720 재위)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 씨 (仁顯王后閔氏,1667~1701)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 씨 (仁元王后 金氏1687~1757의 능이다.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쌍릉* 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왼쪽 단릉이 인원왕후의 능이다. 숙종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3차례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의 전국실시, 화폐 유통(상평통보), 백두산정계비 설치, 왕실 규율 확립 등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는 1681년 (숙종 20년) 복위되었다. 1701년 (숙종 27년)에 세상을 떠나 명릉에 처음 모셔졌다. 인원 왕후는 1702년 (숙종 28년)에..

서오릉 (익릉)

익릉 翼陵 (숙종비 인경왕후) 사적 제 198호 익릉은 조선 19대 숙종肅宗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김씨 仁敬王后金氏 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11세에 왕세자빈이 되었다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본되었다. 그러나 천연두에 걸려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익릉은 승릉(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구리 동구릉 소재) 의 양식에 다라 능에는 난간석만 둘렀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익랑*이 있다. 홍살문 부터 정자각까지 경사진 당에 박석**을 깔고 지형에 맞춰 향로 香爐 와 어로漁撈가 조성된 점이 독특하다. *익랑 翼廊 : 문의 오른쪽과 왼쪽에 잇대서 지은 행랑 **박석 薄石 : 얇고 넓적하게 돌로 궁궐이나 왕릉 등에 깔아 놓음

서오릉 (홍릉 /장릉)

홍릉 弘陵 (영조비 정성왕후) 사적 제198호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英祖)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 씨 왕비(貞聖王后 徐氏)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처음 연잉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1721년 정종 1년) 왕세제 빈 (王世弟嬪)이 되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조선 역대 왕비 중 재임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1757년 (영조 33년) 66세로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홍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나, 정자각 족에서 능을 바라 보았을 때, 능의 왼쪽이 비어 있다. 이는 영조가 생전에 정성 왕후와 함께 묻히려고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비워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조의 능이 현 구리 동구릉의 원릉(元陵)에 조성되면서,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