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 357

의친왕 이야기 (2024-03-10)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6일)은 조선의 왕족이고 대한제국의 황족 종실이며 고종의 두번째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의친왕 이강 고종 후궁 귀인 장씨(貴人 張氏)의 소생으로 출생한 그의 본관은 전주이고, 휘는 강(堈)이며, 초명은 이평길(李平吉), 호는 춘암(春菴)]이다. 일생 1891년 12월 28일 의화공(義和公)에 책봉되었으며, 불과 한 달 후 1892년 1월 28일 의화군(義和君)에 개봉된 그는 1894년에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6개국 특파 대사에 임명되었다. 1896년 미국에 유학하고, 1900년 대한제국 시기에 의친왕에 봉해졌다. 1905년 귀국하여 대한제국 육군 부장(3성 ..

덕혜옹주 이야기 (2024-03-10)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이다. 황녀로서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 ‘이덕혜’(李德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1]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일본 황족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여자 가쿠슈인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 외동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그러나 이즈음 조울증, 우울장애, 반복성 우울 장애와 더불어 정신장애인 조현병(정신분열증) 증..

덕혜옹주 묘/의친왕 묘 (2024-03-10)

덕혜옹주 묘 (德惠翁主 墓)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고명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의 묘이다. 고종은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 (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덕혜옹주를 아꼈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 때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에 봉혜졌고, 1925년에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에 데려갔다. 일본에서는 영친왕의 숙소에 기거하면서 학습원과 중등과정을 수료하였다. 19세에 소 다케유키 (宗武志 종무지)와 정략결혼을 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하다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의친왕 묘 (義親王 墓)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친왕(義親王 : 1877~1955)과 의친왕비 김씨 (..

홍릉.유릉 역사문화관 (2024-03-10)

유네스코 세계유산 홍릉. 유릉 조선왕릉은 조선(1392~1897)의 왕고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 (1897년~1910)의 황제와 황후 73면늬 무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능은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햇습니다. 풍수사상에 따라 최고 명당에 왕릉자리를 정하고 주변 지형과 경관을 그대로 살려 능을 만들었습니다. 왕릉을 짓고 관리하는 일을 상세하게 적은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고 지금 각 왕릉에서는 해마다 제항을 지내고 있어 살아 있는 문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홍릉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과 대한제국 1대황제 고..

탑골공원 역사 특별전시

조선시대 탑골 현재 종로 인사동과 낙원동 일대는 엣날 한양 경행방 (慶幸坊) 이었다. 불교를 숭상하였던 세조(1455~1468)는 이곳에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일명 백탑(白搭)이라고 일컫는 대리석 소쟁의 10층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그 주변을 탑이 있는 동네라하여 탑골(塔골) 또는 탑동(塔洞) 으로 불렀다. 원각사는 왕실의 사찰로 번창하였고, 탑골 일대는 외국 사신들도 즐겨 찾는 한양의 명소(名所) 로 발전하였다. 세조 이후 원각사는 예전의 위상을 점차 잃었고, 결국 1504년 (연산군10)에 폐사 (廢寺)되었다. 임진왜란이후 원각사 터와 탑골에는 백성들의 민가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과거 흔적을 찾을수 없었고, 10층석탑만이 우뚝 솟은 채로 옛 영광을 상징하고 있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동 룰 공평동 일대는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일반 서민부터 왕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다. 또 태화관, 종로YMCA등 민족운동과 관련된 근대유적도 다수 분포해 두터운 역사적 층위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78년 총 19개 도심개발지구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6개 지구의 재개발 사업이 2010년에 완료 되었다. 제1.2.4지구는 재개발사업의 시행에 앞서 2010년 문화재 지표조사, 2014~15년 매장문화재 발국조사를 실시하였다. 그결과 조선시대 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108동건물지, 500여 년전 조선시대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점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다. 한양도성 내 전모를 간직한 조선시대 생활유적으로 '조선의 폼페..

영원 (의민황태자 : 영친왕 & 의민황태자비 : 영친왕비). 회인원 (이구)

영원 (英園) 회인원 (懷仁園) 영원 (英園)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 (1987~1970, 영친왕) 의민황태자비 (1901~1989, 영친왕비) 를 합장한 원(園)이고 회인원 (懷仁園)은 의민 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 (李玖: 1931~2005)의 원(園)이다. 1970년에 의민 황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종의 홍릉(洪陵) 근처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영원이라 하였다. 이 후 1989년에 의민황태자비가 세상을 떠나자 영원에 합장하였고, 2005년에 황세손이 세상을 떠나자 영원 동쪽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화인원이라 하였다. 영원은 조선왕릉의 형태로 조성하여 재실,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배치하였고, 원침 (園寢)에는 남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

남양주시 금곡 (홍릉.유릉) 대한제국 황실 후궁들의 묘

사적 남양주 홍릉과 유릉 홍릉은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 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明成皇后閔氏 1851~1895의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純宗:1874~1926과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1872~1904, 두 번째황후 순정황후 윤씨 1894~1966의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왕릉 형식과 다르게 대한제국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황제릉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 황제의 예를 참조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기존 조선왕릉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제향공간에 있던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을 두었고, 침전 앞부터 홍살문까지 향로를따라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홍릉..

인천 영종역사관

조선 초기 자연도(현재: 영종도)의 삶 자연도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는 중국과의 무역 거점이자 조운수로 (漕運水路)의 역할을 수행하여 송의 사신과 상인들을 접대하던 객관 '경원정'이 있었다. 다라서 자연도에 주둔하던 수군과 말 목장 관리인, 소금을 생산하여 수익을 얻던 주민까지 적지 않은 수의 주민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한 고려시대 무신정권 이후 조선초기까지 유배지로 쓰였다. 당시 섬 주민들은 주로 막집(幕室)이나 초가집에 거주했다. 그러나 조선초, 고려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침략으로 섬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켜 섬을 비우고, 국영 말 목장을 설치하는 정책에 다라 적은 수의 주민들만이 살게 되었다. 수군(水軍) 목자(牧子) 염부(鹽夫)등의 집이 30여 호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리지에 전한다. 병인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