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 357

서울 은평한옥마을 전경

은평한옥마을 은평한옥마을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현대식 한옥마을이다. 2010년 서울 주택도시공사가 서울시 은평구 진관도 일대에 한옥마을 조성을 계획하면서 2012년부터 개발 착수, 2017년 대부분 한옥으로 완공되었다. 2016년에 방영된 옥수동 수제자에 나온다. 옥수동 수제자 촬영지로 유명하다. 상업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옥이 주민들이 거주하거나 개인 사유지로 되어있어서 한옥 내부관람은 불가하다. 다만 일부 가옥의 경우 소유주의 허락을 받으면 내부관람이 가능하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민가지역 이므로 일몰 이후 밤 시간대에는 소음행위를 자제해야한다. 전시관으로는 셋이서문학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있다. 셋이서 문학관은 시인천상병, 시인중광, 이외수 3인방의 작품세계와 문학론을 전시하는전시관..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 국보 제224호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밖에 과거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 12년 (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 (1867년) 중건한 것이다. 사정 전일원 (思政殿)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가정책 토론 등 각종 회의가 매일 같이 열렸다. 1867년 다시 지어진 사정전은 공식 업무공간으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 (千秋殿)은 비공식 업무공간으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 ..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근정(勤政)이란 이름에는 천하의 일부터 잘 다스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오늘날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가회당과 삼청동 내에 위치한 한옥마을이다. 지리상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왕조의 두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로 '북촌"이라 불리었으며, 현재의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계동 일대에 해당된다. 많은 사적과 문화재, 민족자료가 있어 도심의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는 삼청동길에 주변에는 많ㅇ느 갤러리가 늘어서있고, 화동길을 비롯한 곳에서는 각종 먹거리와 특색있는 카폐를 접할수 있다. 또한 원서동에는 전통기능의 보유자 예술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1990년대이후 다세대 가구 주택이 급속하게 들어서며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양호한 상태의 한옥이 군집을 ..

서오릉 (왕릉제실)

재실 齋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들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을 보관하고 축문을 준비하는 안향청 (安香廳)과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물을 전시하는 전사청(典祀廳)과 그의 부속 공간인 행랑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실은 기본적으로 능 하나에 재실이 하나식 별도로 지어졌으나 현재 서오릉에는 명릉(明陵) 재실의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재실 (齋室) :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담당하던 종 9품 능참봉이 쓰던 건물 행랑(行廊)채 - 행각(行閣) : 대문, 부엌, 마굿간, 창고 등이 있던 곳

서오릉 (명릉)

명릉 明陵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 사적 제198호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肅宗 : 1661~1720. 1674~1720 재위)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 씨 (仁顯王后閔氏,1667~1701)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 씨 (仁元王后 金氏1687~1757의 능이다.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쌍릉* 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왼쪽 단릉이 인원왕후의 능이다. 숙종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3차례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의 전국실시, 화폐 유통(상평통보), 백두산정계비 설치, 왕실 규율 확립 등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는 1681년 (숙종 20년) 복위되었다. 1701년 (숙종 27년)에 세상을 떠나 명릉에 처음 모셔졌다. 인원 왕후는 1702년 (숙종 28년)에..

서오릉 (익릉)

익릉 翼陵 (숙종비 인경왕후) 사적 제 198호 익릉은 조선 19대 숙종肅宗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김씨 仁敬王后金氏 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11세에 왕세자빈이 되었다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본되었다. 그러나 천연두에 걸려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익릉은 승릉(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구리 동구릉 소재) 의 양식에 다라 능에는 난간석만 둘렀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익랑*이 있다. 홍살문 부터 정자각까지 경사진 당에 박석**을 깔고 지형에 맞춰 향로 香爐 와 어로漁撈가 조성된 점이 독특하다. *익랑 翼廊 : 문의 오른쪽과 왼쪽에 잇대서 지은 행랑 **박석 薄石 : 얇고 넓적하게 돌로 궁궐이나 왕릉 등에 깔아 놓음

서오릉 (홍릉 /장릉)

홍릉 弘陵 (영조비 정성왕후) 사적 제198호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英祖)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 씨 왕비(貞聖王后 徐氏)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처음 연잉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1721년 정종 1년) 왕세제 빈 (王世弟嬪)이 되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조선 역대 왕비 중 재임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1757년 (영조 33년) 66세로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홍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나, 정자각 족에서 능을 바라 보았을 때, 능의 왼쪽이 비어 있다. 이는 영조가 생전에 정성 왕후와 함께 묻히려고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비워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조의 능이 현 구리 동구릉의 원릉(元陵)에 조성되면서, 현재..

서오릉 (순창원 / 경릉 / 대빈묘)

순창원 順昌圓 (순회 세자와 공회빈)- 사적 제198호 순창원은 조선 13대 명종 (明宗)의 맏아들 순회 세자 (順懷世子: 1551~1563)와 공희빈 윤 씨 (恭懐嫔 尹氏: 1552?~1592)의 *원이다. 순회 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은 1561년 (명종 16년)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남편이 일찍 떠나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1592년 (선조 25년) 세상을 더 났는데, 임진왜란 혼란 속에서 시신이 수습되지 못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신주**를 만들어 순회 세자와 합장하였다. *원 圓 : 왕의 사친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신주 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경릉 敬陵 (추존 덕종과 소혜..

서오릉 (소나무길/인성대군초장지)

인성 대군 초장지 仁城大君 草葬地 이곳은 조선 8대 예종睿宗의 첫째 아들인 인성 대군 (1461~1463)의 묘가 있던 자리이다. 처음 인성 대군이 세조 9년(1463)에 세상을 떠나자 의경세자 (추존 德宗)의 무덤 근처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서삼릉西三陵 경내왕자. 왕녀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서삼릉 경내의 인성 대군 묘에는 봉분과 이장하면서 새로 제작한 표석이 있으며, 이곳에는 조선당시에 만든 문석인文石人 상석 牀石. 표석表石이 남아 있다. 인성 대군은 예종과 장순왕후章順王后 한 씨韓氏의 아들로 세조 7년 (1461)에 원손元孫으로 태어났으나, 세조 9년 (1463) 3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어린 손자에게 효소孝昭라는 시호를 내리고, 인성 군仁城君으로 추봉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