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서울시 관광 109

서울 문래창작촌 (2024-03-14)

자생적 예술마을 : 문래창작촌 문래동에는 1941년 오백채마을 (영단주택단지)이 생기고 60년대부터 이곳에 철공단지가 조성되어 80년대까지 철강산업의 호황기를 누렸지만 90년대 이후 금속제조업의 침체로 문을 닫는 철공소가 늘어났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작업 공간이 필요한 예술인들이 문래로 유입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문래역 일대는 철공소 옆에 예술가들의 공방과 전시품, 레트로 감성의 카폐와 식당이 함께 존재한다. 도보관광을 통해 천천히 숨은 작품 찾기를 시작해보자.

삼각산옥천암(보도각 백불) 홍제천홍지문. 세검정터. (2024-02-03)

홍제천(弘濟川)은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의 일부 또는 전지역을 포함해 흐르다가 한강의 하류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1974년 지방 2급 하천(현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과 1988년에 각각 하천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해 1999년 2월 현재 18.94km에 달하는 유역의 하천 개수가 완료되었다. 평균 너비는 50m이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 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으며, 같은 유래로 홍제원천(弘濟院川)이라고도 한다.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모래 밑으로 흘렀다고 해서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리며,세검정 인근의 상류 부근에서 세검천(洗劍川)이라고도 불린다. [출처: 위키백과] 이 불상은 옥..

친일파 이완용의 저택으로 추정되는 집 / (구)우당기념관

이완용 전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관료이다. 을사조약, 기유각서, 정미 7조약,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을사오적을 포함한 주요 친일파, 매국노로 평가된다. 본관은 우봉, 자는 경덕, 호는 일당이다. 창씨명은 리노이에 간요이며, 작위는 후작이다 출생:1858년 7월 17일,낙생면 /사망 정보:1926년 2월 12일,서울특별시 옥인동/자녀:이항구,이승구/묘지:익산시 낭산리 국적:대한제국/ 부모:이호석/이전 담당 공직: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1910년–1910년) 우당기념관 소재지: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22 / 우당기념사업회 우당기념관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우당 이회영 선생 및 형제 (건영, 석영,철영,시영, 호영)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한 애국열사 동지들을..

2023-04-30 성공회,구세군,고종의길,서울시청,청계천.

서울주교좌 성당은 주교의 의자(주교좌)가 있는 곳으로 대한성공회와 서울 모든 교회의 중심입니다. 서울주교좌 성당은 바쁜 도심 속에 마련된 거룩한 장소입니다. 한국근현대서 함께하며 예언자의 자취가 새겨진 곳입니다. 언제라고 바라보몀 경건하고, 누구라도 들어오면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영혼이 쉼을 얻고, 몸과 마음이 치유됩니다. 이 성당은 이땅에서 이 백성을 위한 선교의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전례를 드리고. 미래건축의 모범이 되게 하자는 염원을 담아 아더 딕슨 (A.Dixson)의 설계로 1926년에 건축하였습니다. 초기 성당은 원래 설게에서 축소한 형태로 건립되었다사, 199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무늬기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물로 991.7제곱미터 면적에..

민영환 자결터. 3.1운동기념비. 승동교회. 탑골공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1905년 11월 30일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장소. 민영환이 자결한 곳은 조계사 경내에 있는 자택이었다는 설과 의관 이완식의 집이었다는 설로 나뉜다. 현재는 이완식의 집이라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증을 거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시종무관 어담(魚潭)과 김우현 목사, 민병진의 회고에 따르면, 민영환의 집에 민영환의 어머니와 가족이 있었기에 자결 장소를 청지기였던 이완식의 집으로 택했으며, 그의 유해가 이완식의 집에서 발견된 뒤 본저(本邸)로 옮겨졌기 때문에 자결한 당시 모습을 하인 한 사람과 청지기 식구만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로 하나투어빌딩 앞 이완식의 집 터에 김충현이 글씨를 쓰고 백문기가 조각한 추모 조형물이 ..

천도교서울교구. 독립선언서 배부 터. 경운동 민병옥가옥.

독립선언서 배부 터 인류평등의 큰 뜻과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선언한 '선언서' 에 담긴 가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서부터 오늘날 헌법 전문에 이르기까지 머리글로 새겨 계승되어 왔습니다. 3.1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 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사 (천도교경영, 지금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찍어낸 뒤 신축 중이던 천도교 대교당 마당에 갈무리해두었다가 종교계 학생 대표들에게 미리 나눠주었습니다. 시민참여 이름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는 3천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서울시 자매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교민들과 중국계.일본계 미국인들을 포함하여 2천명 넘는 시민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이 길 네 곳에작은 시민공원를 만들고 먼저..

인사동 서울미래유산 (통문관, CAFE: 귀천)

통문관 1934년 창업주로 이겸로 씨가 금항당으로 개업한 이래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고서점으로, 1945년 해방을 맞아 통문관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문관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서적 전문서점으로 고서 발굴 및 보급에 크게 공한 하였으며 관훈동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조계사주변 (보성사터, 숙명여학교터, 신흥대학터. 중동중학교터, 우정총국터, 도화서터, 민영환집터)

보성사 191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인쇄소이다. 천도교와 보성사 당시 천도교에서는 중앙교당에 창신사(彰新社)를 설립하고 천도교관계 서적 및 교회기관지인 『천도교월보(天道敎月報)』를 간행하였다. 1910년 말 천도교에서 보성학원(普成學院)의 경영권을 일체 인수하면서 학교에 있던 보성사인쇄소를 창신사와 병합하고 그 명칭은 그대로 보성사라 하였다. 보성사는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광문회(光文會)의 신문관(新文館)과 더불어 당시 인쇄계를 주도하였다. 보성사는 비단 『천도교월보』나 교회서적 및 학교교과서의 인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한국출판문화 향상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한때 보성사의 적자가 누적되자 교회 간부가 손병희(孫秉熙)에게 보성사의 폐쇄를 건의한 적도 있었다. 독립선언서 인쇄 보성사의 가장 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