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역사기행 (책소개)/2.역사문화산책

키워드 한국현대사 기행2 (충청.강원.경기.서울)

동방박사님 2022. 9. 2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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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02개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사
―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의 한국 현대사 기행


윤석열 정부가 새로 만든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은 ‘프락치 특채’ 의혹을 받는다. 군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마음을 바꿔 ‘녹화 사업’에 협력한 대가로 출세한 이가 ‘자유’와 ‘공정’을 지고의 가치로 내세운 ‘민주주의’ 정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민주화된 한국에서, 왜, 지금도 반복될까?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2』는 4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친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발로 쓴 한국 현대사 기행이다. 라틴아메리카, 중국, 쿠바,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에세이를 낸 ‘길 위의 정치학자’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틈을 타 한국을 탐사했다. 2020년 6월부터 1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 3만 5000킬로미터를 달렸고, 길 나서기 힘든 이들하고 함께하려 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강을 건너고, 길을 걷고, 산을 올랐다. 서울과 부산을 40번 넘게 왕복한 셈이었다. 중요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장소 102곳을 골랐다. 가야 할 현장은 점점 늘어나 150여 곳이 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감옥에 갇힌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도 발견해서 ‘한국 현대사 기행 가이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다.

찾아가기 쉽거나 벌써 유명한 곳은 솎아내고 짐을 꾸렸다. 우리 땅 곳곳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열린 박물관(open air museum)’이었다. 승리와 환희보다는 패배와 죽음에 연관된 현장이 많은 탓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이름 없이 스러진 민초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런 정도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여러 전문가들이 도와준 덕분에 잘 안 알려진 역사적 장소를 중심으로 오늘 또 다른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무게를 두기보다는 사회과학 이론으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설명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끊임없는?대화’라는 에드워드 할렛 카의 저 유명한 말을 실감한 여정이었다.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은 모두 두 권이다. 한 권에 다 못 담을 만큼 많은 곳을 다니며 발자국을 남겼고, 해야 할 이야기도 넘쳐흘렀다. 48개 키워드를 골라 제주와 호남과 영남을 아우른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54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충청, 강원, 경기, 서울을 종횡으로 훑으며 뿌리의 소리를 들으러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목차

4부|충청

49. 대전|명학소 민중 봉기 우리의 현재를 빚진 저항의 씨앗
50. 공주|우금치 동학혁명의 정신을 되살린 5·16과 유신?
51. 아산|김옥균 재주는 비상하지만 ‘상식’을 모른 자의 비극
52. 제천|친일 문학 두 얼굴의 문학, 반야월과 ‘종천 친일파’ 서정주
53. 예산|박헌영 한반도의 저주받은 자
54. 대전|전시 작전권 ‘전작권 없는 대한민국’의 시작
55. 영동|노근리 학살 ‘미라이 학살’ 예고편, 쌍굴다리의 비극
56. 대전|대전형무소 ‘사상범의 유배지’에서 생각하는 사상과 이념
57. 영동|경부고속도로 고속으로 지은 고속도로는 산재 왕국으로 달리고
58. 청주·청송|사회안전법 한국의 알카트라즈, 격리와 보호 사이에서
59. 공주|4대강 사라진 ‘녹차라테’와 반‘그린 뉴딜’

5부|강원

60. 강릉|허난설헌과 허균 중세 조선의 근대인 남매가 꿈꾼 세계
61. 평창|이승복 반공 영웅의 신화 뒤에 숨겨진 이야기
62. 춘천|베트남 파병 ‘용병의 나라’와 한강의 기적
63. 원주|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64. 원주|장일순 생명사상과 한살림 운동의 선구자
65. 정선|사북 탄광 항쟁 어용 노조에 맞선 ‘사북의 봄’
66. 태백|산업 재해 4104, 아무도 찾지 않는 ‘땅 위의 세월호’
67. 화천|평화의 댐 ‘평화의 댐’인가, ‘사기의 댐’인가

6부|경기

68. 강화|개항과 척화 조선 양반과 일본 사무라이가 가른 운명
69. 수원|나혜석 ‘여자도 사람이외다!’고 외친 신여성
70. 양평|여운형 세 발 총탄에 쓰러진 ‘제3의 길’
71. 연천|38선 분단의 현장에서 생각하는 남침과 북진
72. 성남|71년 성남 항쟁 죽지 않으려 저항한 도시 빈민들
73. 부천|부천서 성고문 사건 경찰서에서 시작된 ‘원조 미투 운동’
74. 부평|대우자동차 아이엠에프 사태와 헬조선
75. 양주|효순·미선 사건 ‘소파’는 가구가 아니라 불평등한 한-미 관계다
76. 구리|원진레이온 산재의 또 다른 얼굴, 직업병
77. 남양주|모란공원 전태일부터 백기완까지, 투쟁하는 양심들의 안식처
78. 파주|임진각 월남 실향민은 발로 투표했다고?
79. 평택|대추리 미래형 미군 기지와 미래의 평화 세상
80. 안산|국경 없는 마을 글로벌 도시 속 보이지 않는 국경

7부|서울

81. 종로|조선호텔 미군정과 ‘좋은 제국주의’
82. 용산|효창공원 최고의 국가 비전을 제시한 ‘나의 소원’
83. 중구|반민특위 좌절된 꿈, 친일 청산
84. 용산|한강대교 가짜 뉴스 내보내고 서울 버린 대통령
85. 중랑|망우리공원 비운의 진보 정치인, 조봉암
86. 강북|4·19민주묘지 새 4·19기념탑은 광화문광장에
87. 종로|이화장 민족은 없고 반공만 있던 어느 대통령
88. 영등포|문래근린공원 우리 동네 공원은 역사 전쟁의 현장
89. 종로|평화시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못 다 이룬 꿈
90. 중구|장충체육관 99.9퍼센트 독재자는 미니스커트를 싫어해
91. 구로|구로공단 벌집 살며 칼잠 잔 여공들의 피, 땀, 눈물
92. 중구|중앙정보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 남산
93. 종로|삼청동 푸르고 서늘한 서울의 봄, 삼청교육대와 녹화 사업
94. 서대문|서대문형무소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이어준 역사의 학교
95. 중구|명동성당 민주화 운동의 결절점, 6월 항쟁의 빛과 그림자
96. 마포|서강대학교 ‘한국판 드레퓌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97. 서대문|연세대학교 사태와 항쟁 사이, 몰락한 학생운동
98. 종로|시민운동 새로운 권력 기관인가, 권력의 감시자인가
99. 영등포|이태영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 제자리 찾기
100. 영등포|민주노동당 여의도에서 시작해 킨텍스에서 끝난 어떤 실험
101. 중구|민주노총 자주적 노동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102. 종로|촛불 집회 광장을 밝힌 촛불은 어디로

마치며|역사의 토건화, 역사 지우기, 진실과 화해
 

저자 소개

저 : 손호철 (孫浩哲)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선배를 잘못 만나 운동권이 됐고,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신군부가 저지른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가야 했다. 귀국한 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사회과학대 학장과 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2018년 정년을 마친 뒤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책 속으로

반란으로 치부되던 동학의 명예를 회복시킨 사람도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자 경북 선산 지역의 접주로 동학혁명에 가담한 뒤 간신히 살아남은 아버지의 뜻을 살려 ‘동학난’을 ‘동학농민혁명’으로 승격시켰고, 1963년에는 황토현에 최초의 동학 기념물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세웠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동학혁명군 위령탑을 세울 수 있게 지원했다. 박정희가 동학 재평가에 크게 기여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5·16 쿠데타와 유신을 정당화하는 데 역사를 이용한 행동은 잘못이었다. 또한 박정희가 갑자기 동학을 띄우자 학계도 허겁지겁 동학 재평가 작업에 들어가면서 기초 연구 없이 일본군이 작성한 공초 문서 등에 의존한 바람에 동학 연구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지기도 했다.
--- p.20

대전형무소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상범을 가두는 특별 형무소이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1920년대에 대전형무소를 지을 때부터 장기수와 사상범을 가둘 특별 감옥으로 설계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은 뒤 형이 확정되면 이곳으로 내려와 감옥살이를 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을 거쳤다. 안창호와 여운형이 2년 반 동안 대전형무소에 갇혔고, 고문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김창숙은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아 손수레에 실려 대전형무소를 나왔다. 망루 옆에는 자유총연맹 대전지부가 운영하는 자유회관이 있다. 이곳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대전형무소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전시물과 유적이 나온다. ‘기억의 터’에는 안창호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와 신영복이 쓴 여름 감옥살이 글 등을 전시해놓았다.
--- p.60~61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서 북쪽으로 10여 분 달리면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나타난다. 이무기가 엎드린 모습 같다고 해서 교산蛟山이라 부르는 이 언덕은 허균의 외갓집이자 허균이 태어난 곳이다. 허균은 교산을 호로 삼는다. 빌라 공사장을 지나 숲속을 한참 헤매니 낡은 비석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너무 누추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라네’로 끝나는 허균의 시를 새긴 ‘교산시비’다. 서얼이 차별받는 시대에 서얼들하고 어울리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허균은 ‘시대의 서얼’이라고 한 어느 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중세 조선이라는 시대를 앞서간 ‘시대의 서얼’이었다.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 신분제를 타파한 프랑스 혁명, 이 혁명에서 획득한 시민권을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라고 요구한 마르퀴 드 콩도르세의 「여성의 시민권을 위한 청원」 같은 초기 페미니즘 운동보다도 200년 전 시대를 산 허난설헌과 허균은, 신분제와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향한 비판 의식을 지닌 ‘근대인’이었다.
--- p.93~94

1960년대 중반 한명희라는 청년 장교가 평화의 댐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다. 하루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 한국전쟁 때 전사한 어느 무명용사의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했다. 한명희는 무덤 주인이 자기하고 비슷한 청년이라는 생각에 시를 지었고, 이 시를 본 작곡가 친구가 곡을 붙였다. 평화의 댐에 가면 이 「비목」을 기념한 비목공원을 덤으로 볼 수 있다. 평화의 댐 왼쪽 끝에 비목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비목」에 얽힌 사연하고 가사를 새긴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이 나타난다.
--- p.141

1968년 서울시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 350만 평을 개발해 50만 명이 살 수 있는 자족 도시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토지 분양과 일자리 보장을 약속하고는 주택과 도로 등을 갖추기도 전에 판자촌 주민들을 광주대단지 허허벌판으로 쫓아냈다. 1971년 여름에 이르면 성남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2만 5000여 가구에 12만 명을 넘어섰다. 도로는 물론 전기, 수도, 화장실도 제대로 없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생지옥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 행상이나 일용직 노동 등으로 생계를 버는 주민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짓기로 한 공장은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았고, 서울로 출퇴근하려 해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농촌 버스 몇 대가 전부였다. 천막촌에는 굶주림에 지친 산모가 사산한 아이를 삶아 먹더라는 괴소문까지 나돌았다.
--- p.177

2003년 문을 연 녹색병원은 외관부터 밝다. 원장실은 볕도 잘 안 드는 지하 2층에 넣고 가장 전망 좋은 7층에 재활치료실을 만들어 직업병 노동자들이 쾌적한 분위기에서 치료를 받게 배려했다. 초대 원장을 지낸 양길승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장이 병원 임직원들은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녹색병원은 직업병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서 48일 동안 단식 농성을 하다 쓰러진 ‘세월호 최후의 생존자’ 김성묵 등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련된 이들에게 의료 지원도 하고 있다.
--- p.208

2019년 12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집 앞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녹화 사업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을 하라고 요구하는 자리였다. 전두환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남성 대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강제 징집은 박정희 때도 있던 일이라 새롭지 않았지만, 문제는 녹화 사업이었다. 녹화 사업이란 회유, 협박, 고문을 수단으로 학생운동 참여자들을 전향하게 하는 한편 학생운동 관련 정보를 수집하라고 강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84년 국회에서 문제가 돼 폐지됐지만, 선도 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1989년까지 계속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한 조사에 따르면 선도 공작을 뺀 녹화 사업 피해자는 1192명이다. 프락치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학생 정성희 등 9명이 의문사를 했다. 제대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도 적지 않다. 전두환이 남긴 비극은 너무도 컸다.
--- p.324~325

“가족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오백 년 묵은 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고 말해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1989년 제3차 가정법 개정 뒤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태영은 이렇게 말했다. 이태영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노력한 덕분에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 p.362
 

출판사 리뷰

뿌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 다 다른 지역과 사건과 사람들이 다다른 진실


손호철은 평생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친 정치학자이지만 이번에는 책보다 길 위에서 더 많이 배웠다. 뿌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속의 사람들이 들려준 진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4부 ‘충청’은 망이·망소이의 난으로 알려진 ‘명학소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우금치’의 비극이 벌어진 곳이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한 ‘김옥균’과 ‘박헌영’의 자취가 남아 있고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학살’과 사상범의 유배지 ‘대전형무소’의 흔적도 뚜렷하다. 손호철의 발자국은 ‘녹차라테’로 가득한 ‘4대강’을 지나 ‘산재 왕국’의 문을 연 ‘경부고속도로’를 끝으로 강원도에 이어진다. 5부 ‘강원’은 접경지대다. 전쟁과 분단의 흔적은 반공 영웅 ‘이승복’과 ‘베트남 파병’의 현장을 거쳐 ‘평화의 댐’으로 완성된다. 지하자원의 보고인 만큼 산업화 과정에서 ‘사북 탄광 항쟁’을 비롯한 노동자의 저항이 벌어지고 ‘땅 위의 세월호’라 할 수 있는 ‘산업 재해’도 빈발했다. 또한 민주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정의구현사제단’이 태동하고 한살림 운동을 이끈 ‘장일순’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6부 ‘경기’는 현대사를 장식한 굵직한 사건 현장을 곳곳에 품은 땅이다. 수원에서 ‘여자도 사람이외다!’고 외친 신여성 나혜석을 만난 뒤 ‘여운형’의 고향 양평을 거쳐 ‘임진각’과 연천 ‘38선’에서 분단을 생각한다. ‘71년 성남 항쟁’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현장을 거쳐 투쟁하는 양심들의 안식처 ‘모란공원’에 다다라 민주화의 역사도 되새긴다. 부평 ‘대우자동차’와 구리 ‘원진레이온’에서 실업과 산재를, ‘효순·미선 사건’이 일어난 양주와 새 미군 기지가 들어선 평택 ‘대추리’에서 미국과 평화를 고민한다.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는 차별받은 우리가 저지르는 또 다른 차별을 돌아본다.

현대사의 모순이 응축된 7부 ‘서울’에서 손호철은 가장 많은 키워드를 찾아간다. 미군정 사무실이 있던 ‘조선호텔’, 김구가 잠든 ‘효창공원’, 실패한 친일 청산을 상징하는 ‘반민특위’에서 해방 공간의 아픔을 되새기고, 조봉암이 잠든 ‘망우리공원’을 비롯해 ‘4·19민주묘지’와 ‘이화장’에서는 반공 대통령 이승만을 기억한다. ‘문래근린공원’과 ‘장충체육관’, 남산 ‘중앙정보부’와 ‘삼청동’, ‘서대문형무소’에 들러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거쳐 지금도 이어지는 ‘역사 전쟁’의 의미를 돌아본다. ‘구로공단’과 ‘평화시장’에서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한 뒤 ‘민주노총’ 앞에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고민한다. 6월 항쟁의 함성이 아련한 ‘명동성당’, ‘한국판 드레퓌스’라 불린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벌어진 ‘서강대학교’, 학생운동의 몰락을 재촉한 ‘연세대학교’를 지나, 민주화 이후 권력 감시자에서 새로운 권력 기관이 된 ‘시민운동’과 진보 정당의 황금기를 대표한 ‘민주노동당’을 돌아, ‘촛불 집회’의 현장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나긴 여정을 끝마친다.

피, 땀, 눈물
―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찾아가는 ‘열린 박물관’ 기행


한국은,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은, 가슴 아픈 현장이 곳곳에 자리한 열린 박물관이다.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은 현장성, 사실, 관점, 서사라는 화두를 붙잡고 팬데믹과 고통스런 삶에 신음하는 이 땅을 톺아본다. 사건 현장을 두 번 세 번 발로 찾아가고, 진영 논리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하되, 진보적 시각과 관점에서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며,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전통적 서술을 넘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려 노력한다. 그리고 현장성과 역사성을 제거한 채 형식과 외형만 강조하는 역사의 토건화를 경계해야 하고, 개발 바람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역사 지우기를 멈춰야 하며, 사건 관련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진실을 밝히고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과 화해는커녕 상처만 덧내는 신임 경찰국장을 둘러싼 논란처럼, 지금 우리 역사를 만든 이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또다시 왜곡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손호철의 발자국을 따라 역사를 만든 이들을 만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