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이데올로기 연구 (책소개)/1.나치즘.파시즘

복종할 자유 - 나치즘에서 건져 올린 현대 매니지먼트의 원리

동방박사님 2022. 10. 9. 19:40
728x90

책소개

우리는 왜 이토록 자유롭고 민주화된 시대에
인간을 불안에 떨게 하는 노동을 감내하는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매니지먼트의 기본 원리에서
나치즘의 흔적을 발견하다

나치 친위대 장군이자 나치즘의 핵심 이데올로그에서
독일 경영학의 원로가 된 라인하르트 혼,
그의 머릿속을 추적한 역사 르포르타주


나치. 그들의 잔혹한 폭력성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인류에 쓰디쓴 자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 인류는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스스로에게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구원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시대와 환경을 만난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무자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신의 오만함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고 겸허함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인류는 이렇게 발전한다.

나치가 충격적인 이유는 인류를 학살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치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분노로 점철된 민족·인종 청소는 있어 왔다. 그럼에도 다른 사례에 비해 유독 나치가 지금까지도 더 많이 회자되는 까닭은 그 체제의 구성원들이 나름의 확고한 이념적·법적·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학살을 행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독일 민족, 나아가 인류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바이마르 민주 공화국의 시민들을 나치, 또는 나치에 협력하는 전사로 만든 것은 인종주의, 우생학, 사회적 진화론, 생활권(레벤스라움)처럼 상아탑과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발전시킨, 가장 세련된 형태의 이론들이었다. 그러한 사상이 든든히 뒤를 받쳐주었기 때문에 아이히만은 고도의 초연함과 효율성, 냉정함을 발휘하여, 수백 명의 유대인이 가득 들어찬 가스실의 레버를 당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 인류는 혐오스럽지만 탄탄한 논리 체계를 갖춘 그 이론들, 그것들의 주조자들을 연구해야 한다.

그런 이데올로그 중 하나로 라인하르트 혼이 있다. 그는 나치 친위대 산하 보안대의 고위 책임자이자 장군이었다. 법학자였던 그는 전체주의 체제의 핵심이었던 '공동체'를 집요하게 파고든 인물이다. 그는 왜 독일 '공동체'가 다른 민족을 정복해야 하는가, 왜 개인은 공동체에 헌신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나치의 대답을 만들었다. 특히 후자에 대한 나치, 즉 라인하르트 혼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아주 아이러니하다. 공동체에 헌신, 복종하는 개인은 자유롭다. 개인은 공동체에 복종하고, 공동체의 수족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개인은 공동체의 기계부품이 아닌 살점이고 혈액이고 뼈이기 때문에, 공동체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획득한다. 손톱과 발톱이 인체라는 공동체 없이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나치는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흩어졌던 독일 민족, 187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독일 민족에게 강력하게 호소했다. 복종하라, 자유를 누리리라.

물론 이러한 공동체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데에는 간사한 흉계가 숨어 있다. 이 개념은 본질적으로 독일 민족 구성원들의 노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적들과 대규모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일 민족 구성원은 일당백의 효율을 발휘해야 했다. 도덕적 망설임, 자아 고찰 따위의 비생산적인 행위에 탄환과 보급품을 만들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될 노릇이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프랑스, 영국, 소련 같은 강대국 틈에서 독일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인종적 우월성을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우월성을 오로지 생산에 투입해야만, 즉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대항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독일 민족은 마치 유기체처럼 한 몸이 되어 최대한의 효율성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나치는 패배했다. 종전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매니지먼트 학자로 변모한 나치 친위대 장군 라인하르트 혼은 나치가 패배한 이유를 충분히 '나치답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그와 그의 동료들이 주조한 나치즘을 현실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학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며 라인하르트 혼은 군 조직의 역사를 고찰한다. 그의 시선으로 기업체는 현대사회의 군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부흥기를 이끈 개혁가들, 특히 샤른호르스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나치 시대부터 쭉 이어온 그의 나치즘 공동체 사상에 더해 샤른호르스트의 가르침을 얹어 그는 '위임의 위계' 원칙을 만들어 낸다. 즉 관리직을 맡은 중간 간부급 직원들에게 권한을 거의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그의 자율성을 확보해준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의 참여, 게르만의 자유'를 울부짖었던 나치만큼이나 라인하르트 혼의 매니지먼트는 자율과 참여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인을 물상화하고 착취, 학대했던 나치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에는 크나큰 반도덕성이 내재해 있었다. 그의 '위임의 위계' 안에서 우리는 '도태 되지 않을까', '혹시나 상사의 눈밖에 나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그리고 하급 직원을 착취하고 학대하게 된다. 라인하르트 혼의 경영학은 바트 하르츠부르크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독일식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독일 경영학의 큰 뿌리가 되었으며, 그는 원로로 추대되었다.

이 책은 우리의 통념, 즉 너무 강력히 머릿속에 달라붙은 그 개념에 도전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이론들, 단지 도구라고만 여겼던 매니지먼트학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삶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우리가 직장에서 행했던 모든 소소한 일들이 지금껏 그토록 손가락질했던 나치의 모습과 어쩌면 닮은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내림차순으로 이어지며 반복되는 학대와 증오의 사슬을 단절하려면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어떤 원리에 의해 조장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한다.

 

목차

머리말

1장 대독일 제국의 행정을 재고하다

2장 이제는 국가와 결별해야 하는가?

3장 ‘게르만의 자유’

4장 ‘인적자원’ 관리

5장 나치 친위대에서 매니지먼트로: 라인하르트 혼의 경영자 아카데미

6장 전쟁의 기술 (또는 경제 전쟁의 기술)

7장 바트 하르츠부르크 방식: 복종할 자유, 성공할 의무

8장 신의 몰락

맺음말
 
 

저자 소개

저 : 요한 샤푸토 (Johann Chapoutot)
 
파리 제1대학을 거쳐 퐁트네생클루 고등사범학교, 파리정치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현재 파리 소르본 대학 현대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치 문화사, 현대 정치 및 문화사 전문가로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 『피의 법칙:나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La Loi du sang. Penser et agir en nazi』(2014)로 2015 에밀 페로-소신 정치철학 부문, 2015 야드바솀 국제 도서상 홀로...
 
역 : 고선일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는 『금』, 『빨강의 역사』, 『광신의 무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국가 기관이나 제도는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게르만 민족이 발전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머물러야 하는데, 전문화된 행정조직이 구성됨으로써 법이나 국가를 목적 그 자체로 만들어버리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 연설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국가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국가에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국가가 우리를 탄생시킨 게 아닙니다. 우리가 국가를 탄생 시켰습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국가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그 목적이란 행정적이거나 추상적인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구체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족의 역량을 강화하고 민족을 영속화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이처럼 이론상으로 아주 명백했다. 놀랍게도 나치는 확신에 찬 반 反 국가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 p.37

… 라인하르트 혼은 나치 시대의 경력을 전혀 부인하지 않았다. … 그의 판단으로는 제3제국이 패배한 까닭은 충분히 ‘나치답지’ 못했기 때문에, ‘게르만의 자유’, 에이전시와 그 요원들의 유연성과 융통성, 그리고 ‘탄력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p.132

독일 경제계는, 샤른호르스트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도 훨씬 더 경직된 군대 계급 제도의 영향을 받아 우스꽝스러운 수준의 위계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 하물며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시경제 아래 독일은 훨씬 더 가혹하고 엄격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 세계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은 말들이나 하는 것. 말이 우리 인간보다 머리통이 훨씬 더 크지 않는가?’라는 오래된 군대 격언이 진리인 양 행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하르트 혼은 선구자 또는 예언가, 아니면 혁명가처럼 보였을 것이다.
--- p.141

1990년대 들어 라인하르트 혼은 더 이상 강단에 서지 않았으며, 자신의 저서 중 일부를 재출간하는 일에 전념했다. 91세가 되던 1995년에 그의 생애 마지막 책이 출간되었으며, 2000년에 만 96세를 얼마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독일 언론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기사에서 천재적인 매니지먼트 이론가, 능력 있는 교육자, 지칠 줄 모르는 학자라고 그를 칭송했다.
--- p.157

기계 중의 기계, 즉 탁월한 기계인 우리 인간은 스포츠센터에서 신체를 강철stghlern처럼 튼튼하게 단련해야 하는가? 우리는 ‘싸워야’ 하고 ‘전사’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을, 사랑을, 감정을 ‘관리’함으로써 경제 전쟁에서 승리라는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하는가? 이러한 사고는 자아, 타자, 세계의 물상화, 다시 말해 모든 존재들을 ‘사물’ 또는 ‘요소’(예를 들어 ‘생산 요소’)로 환원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며 결국에는 탈진 및 피폐에 이르게 한다.
--- p.173
 

출판사 리뷰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되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보고 사업자는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한 것에 반해 새로 시행된 법은 법인과 함께 사업주 역시 형사상 책임을 묻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지난 2020년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많은 이가 환영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기업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어 기업 활동을 위축 시킬 것이라는 염려가 담긴(또는 협박으로도 들릴 수도 있는) 입장을 발표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이런 물음을 던지기도 했으리라. ‘사업주가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지시한 것도 아닌데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하지 않아?’

과연 그럴까. 노동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죽어 왔다. 공장에 불이 나 죽고 아파트가 무너져 죽고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죽고 지하철 선로에서 죽었다. 그뿐만일까? 상사의 끊임없는 갑질과 공포 분위기 조성에 따른 따돌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얼마나 많은가?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위법을 일삼았던 사업주들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지시받은 임무를 어떻게든 이행하려 했던 일선 노동자들은 죽었다. 노동자를 위험천만한 작업에 투입했던 현장 간부들은 죄책감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한 발 뒤가 낭떠러지라는 생각에 외려 냉혈적이고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비겁한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질문을 던진다. 제품 기준치에 못 미치는 불량 콘크리트를 구매하는 문서에 서명을 한 이는 누구인가? 아니면 그런 콘크리트를 사게끔 '압박한' 이는 누구인가? 콘크리트 아래에서 죽음을 맞은 노동자일까? 그에게 작업 할당을 내린 현장 간부? 아니면 구매 기안을 올린 구매부 직원인 걸까...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그 콘크리트를 사게끔 했는지, 누가 소화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업장에 노동자들을 밀어 넣었는지, 누가 했는지. 5분 후 지하철이 들이닥칠 선로에 노동자가 선뜻 내려가게끔 했는지.

우리는 매니지먼트 이론의 위력을 과소평가한다. 오히려 상사의 호통과 잔소리를 더욱 겁낸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실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념과 원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잔혹하고 파괴적이다. 우리가 책임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 아무렇지 않게 하위 노동자를 인격체라기보다는 도구로 대하는 까닭은 매니지먼트라는 가치중립적인 원리가 면죄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중립적인 학문, 이론으로만 여겼던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한 원리가 어떻게 나치즘에서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유능한 나치 실무자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엿보았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자신은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항변하는 것을 보며,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스스로 분별하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말했다. 즉 사고의 무능성이 악과 연결 될 수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수많은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차디 찬 작업장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정작 살인죄에 버금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악이 생각보다 평범한 곳에 숨어 있음을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