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이데올로기 연구 (책소개)/1.나치즘.파시즘

하이데거와 나치즘

동방박사님 2022. 10. 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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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철학자 하이데거는 1933년 11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서 학생들을 향해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라고 연설하면서 히틀러에 의해 영도되는 나치 혁명에 대한 지지와 참여를 호소한다. 이 책은 히틀러와 나치 혁명에 대한 하이데거의 기대와 좌절, 그리고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려는 그의 시도와 그러한 시도가 갖는 의의와 한계를 탐구하고 있다.

목차

1,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 과정과 행적
2, 하이데거는 왜 나치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3, 실제의 나치즘과 하이데거의 나치즘의 차이
4, 하이데거의 사상과 실제의 나치즘의 정신적 뿌리
5, 고향과 조국의 철학으로서의 하이데거의 존재사상
6, 총장 사퇴 후부터 패전까지의 입장과 행적
7, 하이데거와 반유태주의
8, 실제의 나치즘에 대한 사상적 대결
9, 나치 참여의 실패와 하이데거의 사상적 변화
10. 하이데거의 침묵?
11. 하이데거는 나치즘을 철학적으로 극복했는가
12. 하이데거 사상의 정치철학적 다의성과 수용의 문제

저자 소개

저 : 박찬국 (Park,Chan-Kook,朴贊國)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청송학술상), 『니체와 불교』(원효학술상), 『내재적 목적론』(운제철학...
 

책 속으로

파리아스는 하이데거의 총장 취임 연설이 다른 총장들의 취임 연설보다 당의 기관지를 비롯한 당시의 나치 신문들과 나치의 골수 추종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입증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총장 취임 연설에서 반유태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실제의 나치즘과 직접적인 연관을 발견해내기는 힘들다. 그것은 오히려 피히테가 했을 법한 연설이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1914년의 이념과 연관되어 있을 뿐이다. 한스 슬러가 역시 하이데거의「독일 대학의 자기 주장」이 무엇보다도 피히테의『독일 국민에게 고함』과 사상적 경향 면에서 근친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양자는 자신의 시대를 혁명적인 위기 상황으로 보는 의식,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 지도자와 공동체주의적 사회 질서에 대한 강조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슬러가는 피히테를 위의 네 가지 사상적 요소를 하나의 통일된 입장으로 결합하여 하이데거뿐 아니라 후대의 독일 철학자들에게 남겨준 사상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오히려 자신의 총장 취임 연설이 실제의 나치즘에 대한 하나의 반항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당시 바덴 주 교육부장관이었던 바커가 총장 취임 연설에 대해서 가했던 비난을 거론하고 있다. 바커는 이렇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1. 그것은 당강령에 표명된 관점과 무관한 일종의 사적인 나치즘이다.

2.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연설 전체가 인종사상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3. '정치적 학문'의 이념이 공식적으로 아직 충분히 정초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러한 이념을 거부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 pp. 175-176
 

출판사 리뷰

왜 우리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를 문제삼지 않으면 안 되는가
히틀러와 나치혁명에 대한 하이데거의 기대와 좌절 그리고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려는 하이데거의 시도와 그러한 시도가 갖는 의의와 한계에 대한 연구. 1933년 11월 대 철학자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서 학생들을 향해서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다'고 연설하면서 히틀러에 의해 영도되는 나치혁명에 대한 지지와 참여를 호소한다.

하이데거는 독일민족이 나치혁명을 통해서 미국의 물질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라는 기술적 전체주의의 위협에서 유럽을 구원할 것을 기대했다. 프랑스가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유럽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하이데거는 1933년의 나치혁명이야말로 독일민족이 기술문명의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이렇게 엄청난 기대를 걸었던 나치혁명은 홀로코스트와 세계대전의 도발이란 전대미문의 악마적인 범죄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 이 책은 히틀러와 나치혁명에 대한 하이데거의 기대와 좌절 그리고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려는 하이데거의 시도와 그러한 시도가 갖는 의의와 한계에 대한 연구이다.

하이데거와 같은 대사상가가 어떻게 해서 나치라는 야만의 극단에 동조할 수 있었는가. 20세기 사상가들 중에서 하이데거만큼 논란이 된 사상가도 없을 것이다. 철학적 해석학을 정초한 사상가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을 60세라는 늦은 나이에 출간하기까지 이렇다 할 저작을 내지 못한 이유를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스승 하이데거가 등뒤에서 굽어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외경을 바쳤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대해 '심오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내뱉는 허풍장이에 불과하다'고 보는 극단적인 비평가들도 있다. 이런 분분한 평가 속에서 하이데거의 사상이나 인격 그리고 생애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특히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전력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빅토르 파리아스의 『하이데거와 나치즘Heidegger et le Nazisme』이 1987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프랑스 지성계에 돌풍을 몰고 온 후, 전세계적으로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행해져왔다. 프랑스에서 점화된 이 논쟁은 하이데거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로 비화되었고 급기야는 미국에까지 옮겨 붙었다.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라는 문제는 이제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테마가 된 느낌이다. 그 동안 쏟아져 나온 문헌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뿐 아니라 그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데리다와 푸코의 철학이 이미 상당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우리 나라에서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대한 이렇다 할 논의가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이데거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하이데거와 같은 대사상가가 어떻게 해서 나치라는 야만의 극단에 동조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 지 2년만에 이 연구서를 발표한 저자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는 그의 사상과 무관한 일시적인 과오가 아니라 그의 사상과 본질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그의 나치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하이데거의 철학이 나치즘과 동일하고 하이데거는 구제불능의 골수 나치라는 말은 아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그의 나치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파시즘과 볼셰비즘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권력욕과 광기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소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의 병폐를 극복하려는 대 실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히틀러에 의해서 영도되는 나치 운동을 독일 민족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당시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독일인들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단지 생존과 쾌락을 위한 물품들을 획득하기 위해 노동하는 동물로 퇴락해 있었고, 대학은 밥벌이를 위한 전문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 학원으로 전락해 있었다. 하이데거는 이에 대해서 독일 민족 전체가 서로 하나가 되고 또한 독일의 산하(山河)와 사물들에서 발(發)하는 빛을 볼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나치 혁명이야말로 독일 민족을 총체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하이데거는 당시의 대학생들이 장차 독일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대학이야말로 민족 갱생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학생들이 모든 특권의식을 버리고 공장과 농촌에서 일하면서 민중과 일체감을 갖도록 촉구했다. 그리고 철학 교육을 통해 대학생들을, 조국의 자연과 사물들을 단순히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과 물질들로 보지 않고, 산을 ‘산으로’ 강을 ‘강으로’ 감득(感得)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인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대학 혁명이 민족 혁명의 기폭제가 되어 독일 민족이 미국의 물질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라는 기술적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할 것을 기대했다. 프랑스 혁명이 유럽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1933년의 나치 혁명이야말로 독일 민족이 기술 문명의 위기에 직면한 유럽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생각했다.

하이데거 사상과 나치 참여 사이에 우연 이상의 관계가 존재할 경우 우리는 그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하는 과정과 행적,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 하이데거가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정치사상, 제1차 대전을 전후로 독일 우파 지성계를 지배한 1914년의 이념을 수용한 하이데거 사상과 나치즘 사이의 유사성 살펴보기, 하이데거 나치 참여를 단서로 한 존재사상의 재해석, 독일 패전 까지의 하이데거의 행적과 나치즘에 대한 그의 입장, 하이데거가 과연 반유태주의인가 하는 문제, 나치즘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실패로 돌아간 후 하이데거 사상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검토, 나치 패망 이후 하이데거는 어떠한 입장을 취했으며 하이데거가 나치즘을 극단으로 비판한 이후 전체주의와 나치즘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성공하였는지의 문제 그리고 하이데거 사상과 나치 참여 사이에 우연 이상의 관계가 존재할 경우 우리는 그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부록으로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관련된 문헌들인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취임연설, 독일 학생들에게 고함 연설, 슈피겔지와의 인터뷰 등이 실려 있다. 독자들은 하이데거가 나치 참여 당시에 나치 운동과 히틀러를 어떻게 보았고 죽기 10년 전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하이데거의 육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