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한반도평화 연구 (책소개)/1.한반도평화

평화에 미치다 (2021) - 박한식 회고록

동방박사님 2022. 10. 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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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평화에 미치다』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한겨레》에 격주로 연재된 글을 기본으로 편집되었다. 첫 장인 ‘우리가 살아낸 역사, 우리가 꿈꾼 역사’는 1994년 지미 카터가 박한식의 중재로 북한을 처음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한 이야기로 문을 엶으로써, 현재까지도 세계적 중대 사안인 북핵 문제를 다루었으며, 1939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혼란기에 평양을 거쳐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전쟁의 참상과 유랑의 고통을 체감하며 ‘평화병’에 걸리게 된 박한식의 남다른 성장기를 소개했다. 다음 장 ‘미국에서 배운 미국’은 1965년에 시작된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그가 바라본 미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풀어내면서, 평화를 배우러 온 나라에서 바로 맞닥뜨린 베트남전쟁과 학계를 지배하던 행태주의를 언급한다. 그다음 장 ‘조선을 이해하는 길’은 북한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내용과 더불어 주체사상을 연구한 과정을 담았고, 역지사지의 눈으로 보아야 북한의 체제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이 책 안에서 ‘북한’은 북한 독자를 고려한다는 저자의 뜻에 따라 공식 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자인 ‘조선’으로 표기되었음). 마지막 장인 ‘우리의 평화, 우리의 통일’은 그가 미국을 거점으로 남북을 오가며 터득한 진정한 평화, 그리고 통일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독일식 통일이 아닌 우리만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제시되는 ‘변증법적 통일론’,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 모델과 ‘개성 통일·평화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겼다.

목차

들어가는 말 나의 병 나의 소명

우리가 살아낸 역사, 우리가 꿈꾼 역사
카터의 첫 번째 조선 방문
미국 정부의 영변 폭격 시나리오
굶어 죽는 아이들과 인권
CVID, 그리고 깜깜한 야경 사진의 진실
김일성의 이율배반적 유훈
어린 시절에 평화병을 얻다
해방과 귀향, 또다시 전쟁
전쟁고아와 양민학살
인생 동반자, 인생 스승을 만나다
사상의 바다를 헤매다
4·19와 한국 민중민주주의

미국에서 배운 미국
백 달러로 시작한 워싱턴살이
미국 행태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
미국의 지적 식민지가 된 한반도의 냉전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
미국의 첫 번째 원죄, 노예제도
미국의 두 번째 원죄, 인디언 정복
민주주의 이데알튀푸스로 민주주의 이해하기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한국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조선을 이해하는 길
사회주의 이데알튀푸스로 사회주의 이해하기
조선 사회주의의 이상과 현실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주체사상을 역지사지의 눈으로 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 김일성
어버이 수령의 거대한 가족국가
조선을 지탱하는 주체사상
조선과 중국의 특수관계
부럼 없는 조선 사람들의 행복지수
35년 만에 다시 만난 중국의 가족
한, 그리고 사랑

우리의 평화, 우리의 통일
미국의 조선 악마화 바로 보기
두 기자의 석방을 위해 두 나라를 연결하다
조선 농업대표단과 조지아대 농대의 왕래 시작
평화상을 받는다는 것
재외동포는 통일 자산
내 삶의 평화학의 갈림길
조지아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
1970년 미국 남부와의 만남
내가 학문하는 목적은
통일을 설계하는 학자
한국, 조선, 미국 민간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초청하다
독일식 통일이 아닌 우리의 통일
한국과 조선의 동질성 찾기
통일의 꿈은 이렇게 실현된다
 

책 속으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고할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물론 한국 전쟁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쟁을 맞닥뜨렸다. 만주에서 국공내전을 목격하며 몸서리를 쳤던 나에게 해방 뒤 귀국길은 전쟁 없는 안식처를 찾아 나선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미국 전투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상징되는 한국전쟁이었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무차별 살상했던 미군의 폭탄은 국공내전에서 사용했던 원시적 무기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폭격 소리에 놀란 소가 길가에서 이리저리 날뛰던 모습, 빗발치는 전투기의 폭격에 사람들이 도망 다니다 무참하게 고꾸라지는 모습, 주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 가족들이 주검을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모습……. 어린 눈에 반복적으로 각인된 그 장면들은 나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 전쟁을 방지하는 일에 헌신하겠노라고. 내 온몸을 휩쓴 ‘평화병’을 결코 치료하지 않겠노라고.
--- pp.59-60

이제라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행태주의적 전쟁관이 남북 군비경쟁을 교묘하게 조장함으로써 한반도 냉전을 끝없이 지속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과 정치적 협상을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면서 조선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핵우산을 이유로 핵무장을 막고 있다. 그러면 북의 핵이 두려운 한국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로부터 첨단 재래식 무기를 무한정 구입해야만 한다. 더욱이 미국은 한·미 군사훈련을 한국과 세계에 미국의 최첨단 신무기를 홍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 pp.120-121

내가 미국에 유학 온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답게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원수를 사랑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깨달았다. 미국은 자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원수가 아니라 악마로 치환해버렸다. 그 악마를 제거하는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정당화시켰다. 이런 추세는 특히 냉전을 거치면서 심해졌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를 악마로 지목해서 한국 전쟁, 베트남전쟁을 자행했고, 9·11 테러 이후에는 이슬람권의 테러 세력을 악마로 지목해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자행하고 있다.
--- p.141

조선 연구의 여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나는 마침내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나 홀로 조선 연구라는 미답의 땅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선 내 학문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각종 질문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따라 다양한 가설을 구성했다. 그때부터 조선 방문은 준비한 질문을 제기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나는 조선에서 알게 된 정치인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누고, 학자들과 학문적 대화를 나누고, 인민들과 일상의 삶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준비한 질문의 안내에 따라 조선의 각종 기관, 유적지, 마을, 장터 등을 돌아다니면서 가설을 검증했다. 또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조선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내가 원하는 책들을 입수했다.
--- p.209

언젠가 조선 고위층 인사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그런 나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홀로 존재합니다. 마치 독도와 같은 나라라고 할까요?” 조선을 방문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조선을 이해하는 수준이 점차 깊어지면서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다.
--- p.235

나는 개성에 이산가족 상봉지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개성에 아파트 수백 채를 지어 이산가족이 상시적으로 만나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주일도 좋고 한 달도 좋고 원한다면 거기서 이산가족이 평생 같이 살면서 한을 풀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 개성 이산가족 상봉지구는 통일문화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할 것이며 우리가 꿈꾸는 통일의 첩경이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p.256

조선 관련 가짜뉴스는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조선에 대한 우리의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조선을 수박 겉핥기만큼도 모른다. 조선의 행동과 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동력과 요인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 미국과 한국을 통틀어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 민주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체제를 유지하는 근본은 국가의 정통성이다. 정통성의 원천은 단 한 가지, 즉 인민의 동의와 지지이다. 정치 체제가 인민의 지지를 잃으면 정통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 체제는 붕괴한다. 조선 체제는 인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줌으로써 인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서 정통성을 찾는 체제가 아니다. 조선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조선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선 인민의 삶을 옥죄는 경제제재는 오히려 조선을 똘똘 뭉치게 만들고 단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조선을 더 민족주의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 p.262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고려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봉오동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도 있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두고 한국과 조선 사이에 불거지고 있는 작금의 볼썽사나운 행태는 가히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평양이 고향인 홍 장군의 유해를 조선 측과 상의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로 봉환해 오겠다는 한국 정부와, 평양으로 송환해 오는 것이 조상 전례 풍습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의 유해 봉환을 책동과 도발로 폄훼하는 조선 측을 홍 장군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초라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던 홍범도 장군이 묻히고 싶었던 조국은 반목과 갈등으로 으르렁대는 반쪽의 조국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국 독립의 소원을 안고 국경을 넘던 당시의 그 조국은 사라지고, 죽어서도 한국인지 조선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것만 같아 가슴이 저며온다.
--- pp.297-298

통일 전 동·서독 관계는 장기간의 동방정책(Ostpolitik) 덕분에 이질성보다 동질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태에 있었던 데 반해, 지금의 남북관계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현격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흡수통일을 한민족 통일의 모델로 강제하게 되면 한반도는 ‘해방정국’ 때처럼 격렬한 혼란의 도가니로 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한민족의 통일방안은 외부의 통일 사례를 손쉽게 답습해서 마련해서는 아니되며, 반드시 남북 간의 특수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세심하게 반영해서 마련해야만 한다. 한민족 ‘특유의’ 통일방안만이 한반도에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 p.351

기존의 다양한 통일론이 지닌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내가 제시한 바 있는 ‘변증법적 통일론’은 먼저 한국과 조선 간의 현격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나아가 동질성을 토대로 한국과 조선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민족 특유의 통일방안(Korean Style of Reunification Blueprint)’이다. 한국과 조선이 서로의 이질성을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이를 평화적으로 조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동질성, 즉 새로운 합에 도달할 때 비로소 통일의 지평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p.351쪽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개인주의와 집체주의의 조화가 가능하겠는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들이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며 조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통일 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헌법을 초안하는 과정에서 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우리의 과제이다. 아울러 한국과 조선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동질성을 발견해서 꾸준히 진작시키는 노력도 이질성의 조화만큼이나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일이다.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논란과 논쟁에 앞서,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통일 모델의 제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 통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열띤 논의로써 제대로 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356쪽

한민족 통일국가라는 전인미답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분단문화에서 육성된 한국과 조선의 강고한 분단 지향적 삶의 양식을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통일국가에 부응하는 통일 지향적 삶의 양식을 새롭게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국가 건설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한 한반도 통일을 모색하는 데에는 하버드대학에 버금가는 교육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 p.370
 

출판사 리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이다.”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왔던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며 세계 평화를 설계해온, 평화에 미친 삶…!


미국 조지아대학 국제관계학과와 국제문제연구소(GLOBIS)를 중심으로 45년간 수천의 청년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고, 그 평화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북·미 평화 설계자(architect)’로 불린 박한식 교수의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는 ‘평화에 미친’ 그의 삶을 담아낸 책일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2021년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아울러 이 책은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강의해온 세계적 석학의 목소리로 인권·민주주의·사회주의 등 정치의 기본개념들을 제대로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과 북한을, 그리고 오랜 세월 미해결 상태를 답보하고 있는 남북갈등, 남남갈등, 북한·미국 간 갈등을 비롯한 현안을 역사적으로 심도 있게 성찰한다.

박한식은 1981년 다른 재미 학자들과 함께 초청받아 평양 땅을 밟은 이래 50여 차례 개인적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의 실상을 직접 보고 각 분야 리더 및 시민들과 교류하며 이해하게 된 북한을 바깥세상에 널리 알렸고, ABC·CNN을 비롯한 전 세계 유력 언론들로부터 인터뷰·출연·기고 등을 요청받는 이른바 북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1994년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북핵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고, 2009년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북한에 억류된 미국 기자들이 석방되도록 애썼다. 정부 간 소통 창구가 닫힌 상황에서 남·북·미 간 트랙II 회담을 추진하고, 북한의 기아 완화를 목적으로 북한과 미국 농업대표단의 상호 교류를 성사시켰으며, 1980년부터 고향인 흑룡강성을 매년 방문하여 직접 녹화한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KBS로 내보냈다. 이러한 다방면의 공헌으로 박한식은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이라 일컬어지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온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2015년엔 TED콘퍼런스에 초청되어 평화의 개념을 ‘분쟁의 부재(absence of conflict)가 아니라 조화(harmony)’라고 정립하였다.

『평화에 미치다』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한겨레》에 격주로 연재된 글을 기본으로 편집되었다. 첫 장인 ‘우리가 살아낸 역사, 우리가 꿈꾼 역사’는 1994년 지미 카터가 박한식의 중재로 북한을 처음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한 이야기로 문을 엶으로써, 현재까지도 세계적 중대 사안인 북핵 문제를 다루었으며, 1939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혼란기에 평양을 거쳐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전쟁의 참상과 유랑의 고통을 체감하며 ‘평화병’에 걸리게 된 박한식의 남다른 성장기를 소개했다. 다음 장 ‘미국에서 배운 미국’은 1965년에 시작된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그가 바라본 미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풀어내면서, 평화를 배우러 온 나라에서 바로 맞닥뜨린 베트남전쟁과 학계를 지배하던 행태주의를 언급한다. 그다음 장 ‘조선을 이해하는 길’은 북한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내용과 더불어 주체사상을 연구한 과정을 담았고, 역지사지의 눈으로 보아야 북한의 체제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이 책 안에서 ‘북한’은 북한 독자를 고려한다는 저자의 뜻에 따라 공식 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자인 ‘조선’으로 표기되었음). 마지막 장인 ‘우리의 평화, 우리의 통일’은 그가 미국을 거점으로 남북을 오가며 터득한 진정한 평화, 그리고 통일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독일식 통일이 아닌 우리만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제시되는 ‘변증법적 통일론’,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 모델과 ‘개성 통일·평화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겼다.

중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넘어오고, 또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을 거점으로 살아온 재외동포 학자로서, 남과 북을 비교적 자유로이 왕래하며 각각의 사회체제와 문화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에서 한반도 평화를 일궈가는 데 앞장서온 박한식. 그의 삶과 학문의 여정을 담은 『평화에 미치다』를 읽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내다보며 이 땅과 우리 개개인의 평화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학자의 존재 이유는 우리 시대의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안내하는 것에 있다고 박한식은 누차 강조한다. 『평화에 미치다』는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말과 글을 넘어 삶으로 보여준 한 학자의 감동적인 초상을 만나게 한다.

“1970년부터 45년을 조지아대학에 적을 둔 학자로서 나는, 학문의 목적은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에 있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발견해내고(identify) 원인을 찾아서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학자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평생의 지론으로 삼아왔다. 나에게 있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북 문제였고, 남북 분단과 군사적 긴장을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 사회를 도안하고 설계하는 것이 학자인 나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믿으며 평생을 애면글면해왔다. [...]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조선 모두 체제 경쟁과 안보 패러다임의 포로가 되어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통일은커녕 대화와 교류도 단절된 분단체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내 살아생전에 한국과 조선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감격과 환희를 누려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것이 시간적으로 어렵다면 평화와 통일의 단단한 초석이 놓이는 것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_‘들어가는 말’에서

“박한식 교수는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젊은이에게 평화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친 교육자이자,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니며 각 국가가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는 장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평화중재자이다. 그의 삶을 회고하는 이 책은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일제강점기부터 돌아보는 책이고, 인권·민주주의·사회주의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립해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통일과 남북 문제에 관한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실적인 길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화 뒤에 통일이 오는 게 아니라 통일 뒤에야 평화가 가능하다는 그의 이야기는 경청할 만하다.”_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우리는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박한식은 미국에 평화를 공부하러 왔으나 도착하자마자 베트남전쟁을 체험해야만 했을 뿐 아니라, 대학도서관은 평화 연구서 대신 전쟁 연구서만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그즈음 미국 정치학계에서 유행하던 ‘행태주의’를 통해서는 그가 염원하던 ‘평화병의 지적 처방’을 배울 수 없었다. 그는 미국이 ‘전쟁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함께 미국의 인디언 정복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볼 때 노예제도와 인디언 정복은 미국의 원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이다. 그는 미국의 역사,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깊이 있게 파헤치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미국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1981년부터 50회 이상 북한을 방문하면서 바깥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북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 즉 바깥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각으로는 절대로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시각으로 조선을 재단하는 행위를 ‘인식론적 제국주의’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아울러 인식론적 제국주의에 입각해 입안된 모든 북핵 위기 해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쪽에서 팀스피리트훈련 기간이 되면 조선 전체가 전시 상황으로 바뀌어 모든 이들이 밤마다 불을 끄고 긴장과 두려움에 떠는 것을 그는 북한에 머물면서 목격했다. 또한 주체사상이야말로 조선의 삶의 양식을 전반적으로 규율하는 살아 있는 이념이라는 사실도, 그렇기에 소련 붕괴 후 동구권이 무너지고 심지어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음에도 북한이 굳건히 건재해왔다는 사실도 이 역지사지의 눈으로 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파악했다.

평화 뒤에 통일이 아니라, 통일 뒤에 평화가 온다

작금의 한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1950년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박한식은 말한다. 남북 대치 상황도 여전하고, 북한은 이미 실질적인 핵 국가가 되었으며,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북·미 간에는 변함없이 험악한 말들이 오간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고 평화협정은 고사하고 종전선언조차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왜 지난 70년 동안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 관계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문제는 미국의 북한 악마화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평화가 통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남북 상호 대화와 협력을 통해 꾸준히 통일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만이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그럼에도 종종 언론 기관 등에서 실시하는 통일 관련 여론조사 설문지의 첫 번째 질문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점을 박한식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바람직한 ‘통일의 길’이 무엇이고 통일 한반도의 이상적인 정치사회 체제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전제 없이 이런 질문들을 묻고 대답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단 이전의 고향을 떠난 이산 1세대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이 당시 시대정신이었듯, 그리하여 이 땅에 독립이 찾아왔듯,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은 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통일 준비 과정에서 남북 양쪽을 모두 접할 수 있는 재외동포들이 그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