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6.현대사상고전

상호주관성 (에드문트 후설)

동방박사님 2022. 11. 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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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루뱅대학교 후설아카이브 연구원 이소 케른(Iso Kern)이 ‘상호주관성’이라는 주제와 관련 있는 후설의 유고를 편집해 1973년 출간한 후설전집 제13권(1905-1920년), 제14권(1921-1928년), 제15권(1929-1935년까지)에서 선별해 옮겼다. 워낙 분량이기 방대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부록은 제외하고 본문 가운데 길이가 짧아 전체 속에 그 위상과 의의가 다소 적게 드러나거나 다른 편과 내용이 상당 부분 중복되는 것은 제외했다. ‘상호주관성’(환원, 감정이입, 신체, 타자, 독아론 등의 문제)이라는 중심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 후설 현상학이 발전해나간 시기에 따른 다양한 논의를 총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목차

일러두기
선험적 현상학의 중심축인 상호주관성의 문제│이종훈

제1권 (1905년~1920년)
제1부 감정이입의 문제제기(1905년 여름~1911년 초)
1. 1909년 이전 감정이입에 관한 가장 오래된 원고의 개요
2. 감정이입. 1909년 본문
3. 감정이입의 단계
4. 순수 심리학과 정신과학, 역사와 사회학. 순수 심리학과 현상학
제2부 1910년 가을학기 강의 「현상학의 근본문제」
5. 현상학의 근본문제
1절 자연적 태도와 ‘자연적 세계 개념’
2절 근본고찰: 순수 체험을 향한 태도를 획득하는 현상학적 환원
3절 현상학적 환원의 의도에 대한 반론을 잠시 규명함
4절 현상학은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의 영역을 넘어선다
5절 통일적으로 연관된 의식의 흐름 전체를 현상학적으로 획득함
6절 다수의 현상학적 모나드를 획득함
7절 현상학적 인식의 유효범위를 끝맺는 고찰
제3부 상호주관성의 문제(1914년경~1920년 6월)
6. ‘감정이입’과 ‘유비에 의한 전이’ 비판. 공감하는 통각의 ‘근원’
7. 자연화된 주관성과 순수 주관성. 상호주관성으로의 선험적 환원

제2권 (1921년~1928년)
제1부 타자의 신체(1921년 봄~1922년 봄)
1. 자신의 신체에 대한 지각과 타자의 신체에 대한 통각의 간접성
2. 모나드의 주관은 어떻게 명백하게 규정되고 인식될 수 있는가
3. 사물의 초재와 타인의 자아의 초재. 선험적 자아론의 확장
제2부 타자에 대한 경험(1923년~1925년)
4. 감정이입, 타자에 대한 경험. 신체성과 표현의 문제. 본능과 공허한
표상
5. 독아론이라는 반론에 대한 반박
제3부 「현상학 입문」의 제2부(1926년~1927년)
6. 다른 사람의 자아와 상호주관성에서 현상학적 환원
7. 내적 신체성. 원본적 경험에서 ‘심리물리적인 것’
8. 원본적 경험의 영역에서 공간의 구성

제3권 (1929년~1935년)
제1부 「데카르트적 성찰」의 생성과 1차 개작(1929년 3월~1930년 3월)
1.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상호주관성의 문제
제2부 ‘체계적 저술’의 준비(1930년 여름~1931년 봄)
2. 타자에 대한 경험의 이론
3. 정상성에서 세계를 선험적으로 구성하는 문제
제3부 「데카르트적 성찰」의 2차 개정(1931년 7월~1932년 2월)
4. 상호 모나드의 시간의 구성. 회상과 감정이입
5. 환원 이후에 모나드론까지의 체계적 기술
제4부 환원의 방법과 현상학(1932년 봄~1935년)
6. 원초성으로의 환원. 원초적 환원과 선험적 환원의 관계
7.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 고향세계와 타자, 동물을 이해함

후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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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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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후설은 1859년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기 독일과 프랑스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현상학의 창시자로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와 더불어 현대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다. 1876년부터 1882년 사이에 라이프치히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철학과 수학, 물리학 등을 공부했고, 1883년 변수계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84년 빈대학교에서 브렌타노 교수에게 철학강의를 듣고 ...

역 : 이종훈 (李宗勳)

 
이종훈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후설 현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춘천교대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는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2017), 『현대사회와 윤리』(1999), 『아빠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전 3권, 1994-2006), 『현대의 위기와 생활세계』(1994)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형식논리학과 선험논리학』(후설, 2010, 2019), 『논리연구』(전 3권, 후설, 2018...
 

책 속으로

후설은 현대가 객관적 실증과학의 의미기반인 생활세계를 망각한 학문(인식)의 위기뿐 아니라, 인격의 주체인 자아가 매몰된 인간성(가치관)의 위기에도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때 마주하는 것은 이 위기를 불가피한 재난이나 암울한 운명으로 간주해 이성을 적대시하는 회의적 비합리주의로 전락하는 길과 이 위기를 궁극적으로 극복할 이성의 영웅주의(Heroismus der Vernunft)로 재생하는 길이다. 어느 길을 걸어도 하나의 삶이다.
---p.44

술어 이전에 감각되는 지각을 분석하고, 주관적 속견의 권리를 복원하고, 생활세계의 심층구조로 선험적 주관성, 즉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부단히 새롭게 형성해나갈 인격적 주체로서의 선험적 자아를 해명하고 그 당위성을 역설한 후설 현상학은 이제까지 어둠에 가려져 은폐된 곳을 밝힌, 따라서 ‘애매성의 철학’이 아니라 오히려 ‘여명의 철학’이다. 그리고 과거의 철학들이 당연하게 간주한 것 자체를 문제 삼아 그 근원을 캐물은 ‘철학 가운데 철학이’다.
---p.46

이처럼 후설 현상학 전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는 선험적 환원과 그 영역을 이해하지 못해 맹목적으로 비난했던 문외한은 물론 자아보다 타자의 우선성과 타자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레비나스, 생활세계와 상호주관성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근거해 민속 방법론(ethnomethodology)을 전개한 슈츠 등 가까운 제자조차, 심지어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 행위로 이루어진 생활세계의 도식화(圖式化)와 식민지화(植民地化)를 비판한 하버마스, 의사소통과 공감을 통한 정신상담 병리학을 개척한 빈스방거(L. Binswanger), 블랑켄부르크(W. Blankenburg)도 전혀 몰랐다.
---p.49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나의 장(場)에 머물러 있지만, 이 장은 감정 이입에 의해 다수의 완결된 의식의 흐름(이것을 자아의식이라 부른다)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이 의식의 흐름은 감정이입의 동기부여 연관을 통해 ‘나의’ 의식의 흐름과 연결되고 서로 그렇게 결합되거나 결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연결은 그 의미상 결코 실재적 연결이 아니라, 감정을 이입하는 정립을 통한 독특하고 유일한 연결이다. ‘분리된’ 의식은 의사소통(Kommunikation)의 가능성에 지배받으며, 이 의사소통은 신체에 대한 지각과 여기에서 발산하는 동기부여의 방법에서 더 상세하게 기술해야 할 방식으로 일어난다.
---p.104

어쨌든 내가 타자의 자아, 타자의 의식을 재생산으로 표상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나의 자아, 나의 의식과 유사하게 표상하며, 심지어 내가 타자의 자아에 동일한 의식의 내용과 동일한 경험적 가능성을 배분할 때 그것을 나 자신의 것과 동일하게 확인하며 동일하게 간주함으로써 나의 것으로 옮겨놓는다. 여기에서 다시 무한한 존재에서 생각해보면, ‘순수 의식은 두 번 존재할 수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모든 신체성과 경험적 자아의 구성은 도외시하고, 동일한 자아가 두 번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p.212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나의 신체로 타자의 신체 대신 그에 상응하는 공간의 위치에 있었다면 바로 그렇게 지닐 수도 있을 나타남을 지닌, 나에게 주어진 나타남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가능한 나타남이지만, 나는 이 동일한 실제의 나타남의 주관으로서 타인을 정립한다.
내가 이전에 타자가 있는 그곳으로 갈 수 있었고 타인이 지금 지니는 이 나타남을 그런데 지금 지닐 수 있던 한, 그것은 본래 나에게 단지 가능한 나타남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타나는 관련된 사물이 정지하고 변화하지 않은 경우에만 [타인과] 동일한 나타남을 얻지만, 이것 역시 그 현존재가 그 후에 나타나는 시점에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p.308

그렇다면 원초성을 넘어서는 더 높은 등급의 지향적 간접성에 근본성격은 무엇인가? 따라서 감정이입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모나드의 구체적 현재는 다른 모나드의 구체적 ‘함께 있는 현재’ (Mitgegenwart)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 어떤 원초성은 두 번째 원초성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 요컨대 모든 것은 원초성이라는 개념과 이 속에 밝혀지는 ‘타자’의 개념, 즉 단순한 상징적 지시도 아니고 단순한 현전화도 아닌-자신의 것에 대한 현전화일 수도 없는-간접성인 타자에 대한 의식의 간접성이라는 개념에 달려있 다. 이것들 가운데 무엇이 처음에 바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p.423

물론 여기에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할 어려움은 새로운 태도가 자연적 태도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적 태도에서 나에게 단적으로 타당한 우주인 세계는 가령 나에게 타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가령 적어도 의심받지 않고 자연적인 말의 의미에서 의문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원초성으로의 전환과 원초적으로 경험하고 판단하며 인식하는 삶의 순수한 활동은 작업수행이며, 나의 동일한 자아의 활동이다. 이 자아는 자연적으로 살아가며, 자연적 방식으로 세계를 타당하게 지니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러한 세계의 인간으로 지닌다.
---p.512
 

출판사 리뷰

상호주관성은 선험적 현상학이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오해에 대한 단순한 반론인가


후설은 『이념들』제1권(1913년)에서 현상학의 원리와 규범, 문제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즉 현상학의 최고 원리는 ‘원본적으로 부여하는 모든 직관이 인식에 대한 권리의 원천’이며, 그 규범은 ‘의식 자체에서 본질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명증성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 영역은 순수 의식(이성)의 본질구조를 지향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인식비판이다. 그 방법으로 ‘판단중지’와 ‘형상적 환원’ ‘선험적 환원’을 밝혔다.
결국 선험적 현상학은 궁극적으로 선험적 주관성을 해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주관’(Subjekt)과 ‘주관성’(Subjektivitat)은 어떻게 다른가? 요컨대 ‘주관’은 ‘객관’(대상)과 대립된 것으로 독자적인 실체의 개념이라면, ‘주관성’은 주관과 본질적으로 연관된 것을 추상화한 후설의 독특한 용어로, 의식의 다양한 작용과 그 대상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동일한 의미를 구성하는 원천으로서 의식이 끊임없이 체험(지각)하는 포괄적 흐름 전체를 뜻한다. 이러한 점은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의식이 항상 본질적으로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지향성과 함께 (선험적) 상호주관성에 대한 논의에서 후설 현상학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극히 유념해야 할 핵심사항이다.

『이념들』제1권이 출간된 후 후설 현상학은 선험적 주관성(자아)으로 파고들어갔지만 빠져나올 길이 없는 주관적(절대적) 관념론, 즉 의식의 독아론으로 줄곧 왜곡되고 비난받았다. 그럼에도 1928년 봄 은퇴할 때까지, 후설은 부단히 자신의 문제의식에 몰두해 연구하고 강의하며 정진했다. 그러나 자신의 현상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반박하거나 새롭게 제시할 어떠한 자료도 발표하지 못했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29년 2월 프랑스학술원 주관으로 소르본대학교 데카르트적 기념관에서 선험적 현상학을 데카르트 전통에 입각해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강연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그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만 받아들인 셸러와 선험적 자아를 이념적 주체로 파악해 거부한 하이데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파했다. 그는 특히 선험적 자아의 구성 문제를 다룬 제4성찰과 모나드론(Monadologie)으로 상호주관성을 해명한 제5성찰에 집중해 이 강연원고를 독일어판으로 완성해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부단히 수정하고 보완해갔다. 하지만 1935년 『위기』의 모체가 된 프라하와 빈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자료는 1950년에야 후설전집 제1권『데카르트적 성찰』로 출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후설이 상호주관성의 문제를 다룬 근본적 동기와 배경은 자신의 현상학이 주관적(절대적) 관념론 또는 선험적 자아의 생생한 발생을 분석한 자아론(Egologie)을 외부 세계와 단절된 독아론(Solipsismus)으로 오해받기 때문에 뒤늦게, 즉 193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착수했다고 파악하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후설은 1910년 이전부터 “감정이입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정신적 주체인 단자) 모나드(monade)가 상호주관성의 언어, 문화, 역사 공동체 사회 속에 서로 의사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는 창(窓)”이라 규정한다. 결국 선험적 현상학을 일종의 절대적 관념론으로 파악한다면 주객 이원론과 자연적 태도에 갇혀 현상학의 중심문제인 지향성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며, 의식 속에 폐쇄된 독아론으로 이해한다면 후설의 논의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로 전혀 근거 없는 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나의 주관성과 타인의 주관성 사이에서
발생하고 구성되는 선험적 상호주관성


후설과 칸트 및 신칸트학파의 관계를 연구한 스위스 출신의 이소 케른은 ‘상호주관성’이라는 주제 로 후설의 가까운 제자나 연구조교조차 전혀 몰랐던 새로운 내용과 다양한 형태의 방대한 유고를 세밀하게 분류하고 편집해 후설전집 제13?14?15권으로 출간했다. 그것의 작성 시기(1905~1935년)로 보아 후설은 1905년 스위스 제펠트에서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과 대상의 구성 문제를 처음 다루며 선험적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즉, 1900년 출간한『논리연구』 이후 선험적 현상학을 새롭게 제시한 그의 마지막 저술인『위기』 바로 전까지 후설의 모든 관심사는 상호주관성이었다.

상호주관성은 개별적 주체인 나의 주관(자아)과 다른 주관(타자, 객관, 대상, 세계) 사이에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객관과 분리된 주관이 본래 독립해 존재한다고 전제한 바탕 위에 타인의 주관과 관련되는 2차적 사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관(성) 자체가 타인의 주관(성)과의 불가분한 관계 속에 생성되고 발생하는 ‘지향성’, 즉 ‘주관-객관-상관관계’(Subjekt-Objekt-Korrelation)다.
결국 상호주관성 문제는 후설이 선험적 관념론을 추구하다 선험적(순수) 자아(주관성) 속에 갇혀 독아론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자기모순을 해결하려 고안해낸 임시방편이나 불가피한 문제가 아니었다. 옮긴이 이종훈은 “상호주관성은 후설이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다룬 핵심주제이자 후설 현상학 전체를 관통해간 근본문제이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모르거나 외면한 어떠한 논의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