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7.라틴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 -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성찰

동방박사님 2022. 12. 2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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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고 있는 책.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였는가’라는 주제를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문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질문의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인지는 논자들마다도 다 견해가 다르고, 근대가 '언제'였는지를 묻기 보다는, 근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즉, 이 책은 '근대'라는 질문을 통해 라틴아메리카를 조명한다는 것이 명료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의 저자들은 주로 서구학계에서 만들어진 근대성 담론을 비판하면서, 서구에 의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어 온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성찰한다. 근대성이란 목적론(근대를 반드시 이루어야 하며, 역사에는 정해진 방향성이 있다는 견해)과 척도성(근대에 도달한 부분과 미달한 부분을 구분짓는 것)의 함정을 낳기 때문에, 이미 라틴아메리카의 일부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그 자체로 의미를 얻지 못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미성숙한 무엇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라는 프리즘으로 사회를 볼때 근대로 여겨지지 않지만 이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사건, 지역 등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저자들이 비판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 해서, 공통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지는 않다. 근대성,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방법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근대성에 대한 다양한 대안적 해석들을 그 하나 하나가 하나의 전략으로 여겨질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서구에 의해 이식된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천들에 유의미한 상상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목차

「트랜스라틴」을 간행하며
서론_라틴아메리카 근대성에 대한 학제적 접근

1부_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관점들
1장_라틴아메리카 근대성의 지리학:불균등하고 논쟁적인 발전
서론 | 근대성에 관한 지리적 관점들 | 비유럽중심주의적 근대성 공간 | 공간적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 근대성 | 발전 | 결론

2장_근대성과 전통:변동하는 경계, 변동하는 맥락
근대성의 정의 | 근대성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 목적론과 척도 |
목적론과 척도의 잔존 | ‘전통’과 ‘근대성’의 구성성(constructedness) |
전경화와 후경화 | 결론

3장_19세기 중엽 히스패닉 세계의 근대성들
선구적인 인류학에서 새로운 세계사(global history)까지 | 결론

4장_언제부터 라틴아메리카가 근대적이었는가?:어떤 역사가의 답변

2부_문학비평과 문화연구의 관점들
5장_언제부터 페루가 근대적이었는가?:페루 내 근대성 선언들에 대하여
마누엘 곤살레스 프라다와 근대성 선언 | 에구렌의 자동차 | 마르틴 아단의 뮬 | 대화로서의 근대 | 쿠스코의 담벼락 앞에서 | 알베르토 플로레스 갈린도의 역사와 메시아적 시간 | 에필로그: 메시아적 시간의 장면

6장_비판적 기획으로서 뒤늦음:마샤두 지 아시스와 표절자로서 작가
라틴아메리카의 예술과 사회:교차로 | 뒤늦은 작가―시대를 앞선 작가 | 독자로서의 마샤두 지 아시스, 마샤두 지 아시스의 독자들

7장_쿠바 영화:빛을 향한 긴 여행

8장_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바라본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관계
근대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의 양상 | 상상력과 상호문화적 오해들 | 북쪽과 남쪽에 존재하는 다문화성의 모순 | 결합 가능한 선택들

결론_언제부터 라틴아메리카가 근대적이었는가?

참고문헌 │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스티븐 하트 (Stephen Hart)
 
케임브리지 대학의 다우닝 칼리지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히스패닉연구학 교수로 재직하며 라틴아메리카의 문학과 영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스페인 아메리카 문학에의 동반자』(1999)와 『라틴아메리카 영화에의 동반자』(2004)가 있으며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2003)를 공동편집했다. 그는 또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세사르 바예호 연구의 공로를...
 
저 : 니콜라 밀러 (Nicola Miller)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라틴아메리카역사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소비에트와 라틴아메리카 관계, 1959~1987』(1989)와 『국가의 그늘에서: 20세기 스페인아메리카의 지식인과 국가 정체성 탐구』(1999)가 있다. 현재 그녀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의 역사와 근대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역자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서라연, SNUILAS)는 1989년 스페인중남미연구소로 발족하여 2008년 확대 재편된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산실이다. 라틴아메리카의 33개 독립국과 1개 준독립국, 인구 약 5억 5천만 명의 광대한 지역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연구소는 다양한 학제적 연구를 통해 지식의 식민성 극복과 학문의 대중적 소통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연구소가 기획하고 역사학, 인류학, 문학, 영...
 

출판사 리뷰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라틴지식인들’의 근대성 논쟁
-라틴아메리카의 지식과 담론을 말하는 「트랜스라틴」 첫번째 책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양 지역 모두 식민시대를 겪었고, 해방 이후에는 군부독재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경제·문화 등 많은 부문에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 그러나 최근 라틴아메리카 각국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결집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주창한 라틴아메리카 경제공동체 구상이 힘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얼마 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양국 간 무역 거래에 자국 통화를 사용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이 아직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몸짓은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에 뿌리 깊었던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는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런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였는가’라는 주제를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문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해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주로 서구학계에서 만들어진 근대성 담론을 비판하면서, 서구에 의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어 온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성찰한다. 그리고 근대성에 대한 다양한 대안적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서구에 의해 이식된 역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논쟁은 여전히 서구중심적인 지식 네트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풍토에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며, 나아가 전 세계적 지형의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우리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담론적·학문적 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트랜스라틴」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가 기획한 「트랜스라틴」(TransLatin) 총서의 첫번째 책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를 돌아봐야 하는가? 우리가 「트랜스라틴」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이다. 한국은 서구중심적인 지식네트워크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한국 사회의 주류 담론은 물론이고, 비판 담론, 혹은 저항 담론 역시 서구의 해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서구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인 양 해석하고,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종속의 틀을 깨기 위해서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체계를 보여 주는 가장 좋은 개념은 ‘혼종성’과 ‘이질성’이다. 일찍이 서구의 식민지가 되어 서구 문화와 원주민 문화가 혼종되었고, 독립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력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체계를 세웠기 때문이다. 원주민 문화와 서구 문화의 ‘혼종성’, ‘이질성’에 주목한 라틴아메리카의 사유는 서구와는 다른 제3세계 지식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트랜스라틴」 총서는 이런 라틴아메리카 사유를 통해 ‘지역과 세계 가로지르기’, ‘특유성과 보편성 가로지르기’, ‘소통의 장 가로지르기’, ‘분과학문 가로지르기’를 실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구 지식체계와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사유를 소개함으로써, 서구편향적인 한국의 지식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번 「트랜스라틴」 총서의 기획을 맡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지난 1989년 ‘스페인중남미연구소’로 발족한 이래, 각종 학술행사와 학술지 『이베로아메리카』를 통해 스페인어권 연구의 일익을 담당해 오다, 2007년 학술진행재단 인문한국사업 유망연구소로 선정되어 ‘라틴아메리카연구소’로 확대·개편되었다. 지식의 식민성 극복과 학문의 대중적 소통을 목표로 하는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이번 「트랜스라틴」 총서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연구서의 ‘고전’은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현주소를 적절하게 보여 주는 책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에서 근대성 논쟁:식민성을 극복하고 대안을 모색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을 역사학, 인류학, 지리학, 문학, 문화비평 등 학제적 접근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근대성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식민지 근대화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논쟁이 있었고, 박정희 정권의 발전주의 담론을 근대화와 연결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또한 서구화가 과연 근대화인가를 두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진행되기도 했으며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1980년대 말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라틴아메리카를 설명해 온 ‘근대화 이론’이나 ‘종속 이론’ 같은 사회과학적 분석틀이 신뢰를 잃게 되자, 라틴아메리카의 현재를 설명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1990년대 ‘근대성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논쟁은 ‘탈식민주의 연구’(Decolonial Studies) 경향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들은 서구 근대성이 아메리카의 ‘발견’ 및 식민지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면서,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논쟁은 ‘식민성 극복’이라는 테제와 함께 진행된 것이다.

▶ 상상된 근대성, 다양한 근대성
이 책의 1부는 ‘다양한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을 살펴본다. 세라 A. 래드클리프가 쓴 1장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의 지리학: 불균등하고 논쟁적인 발전」은 사회이론과 문화연구가 지리학과 결합할 때 풍요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래드클리프는 에콰도르의 지리적 통합과정을 예로 들면서,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어떤 공간이 근대적이었는가?’라고 질문을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콰도르에서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국민통합 과정 중 지리적 발견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의 주도로 지도가 만들어지고, ‘상상된 영토’인 에콰도르의 지도가 국민들에게 보급되고 교육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국민들은 ‘단일한 공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성에는 이렇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경험이 주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사례 분석을 통해 그녀는 통상적으로 근대성을 견인한 요소로 간주되는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두 주요 동력 중 어느 것 하나 균질적인 덩어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고정된 설명틀로는 근대성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 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 혼종성과 비목적론적 근대성
래드클리프가 지리학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을 고찰한다면, 피터 웨이드는 인류학을 통해 근대성을 살펴본다(「근대성과 전통:변동하는 경계, 변동하는 맥락」). 웨이드가 주목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의 ‘혼종화’이다. 그는 콜롬비아 음악 연구를 통해 전통이라는 것이 종종 혼종적이고 근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금 우리가 각 국가들의 전통 음악이라고 알고 있는 것―가령, 아르헨티나의 탱고, 쿠바의 룸바와 과라차 등등―들이 사실은 20세기 초 전통과 근대성이 함께 혼종을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웨이드는 전통과 근대성의 뿌리 깊은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근대성은 ‘좋은 것’, ‘발전된 것’이라고 보는 반면 전통은 ‘낙후된 것’, ‘발전되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해 왔다. 콜롬비아와 라틴아메리카 전통 음악에 대한 웨이드의 연구는 전통과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할 것이다.
기 톰슨과 앨런 나이트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을 논한다. 톰슨은 1850년대에서 1870년대까지 멕시코와 스페인의 일상생활을 상세하게 비교하면서, 비교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근대성의 구성물을 보여 준다(「19세기 중엽 히스패닉 세계의 근대성들」). 톰슨에 의하면 멕시코와 스페인 모두 ‘일상적인 경험’으로서 근대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런 근대성은 시민사회의 성립, 민주적인 제도의 정착 등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멕시코와 스페인 모두,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근대성을 향한 움직임이 후퇴하기도 한다. 우리는 톰슨의 사례 연구를 통해 근대성에 대한 비목적론적 사유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앨런 나이트 역시 사례 연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성이라는 단어가 20세기 말에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성은 ‘수입된 것’, 혹은 ‘낯선 것’으로 여겨 왔다고 비판한다(「언제부터 라틴아메리가 근대적이었는가?」). 이러한 분석은 라틴아메리카가 ‘독자적으로 근대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비평과 문화연구에서의 근대성 논쟁: 선형적 사유를 벗어나다

근대성이 역사학과 사회과학 관련 연구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소설과 영화와 같은 문화영역에서도 ‘근대성’의 단초는 관찰된다. 문학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근대성의 여러 요소들 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원주민의 전통성과 마주하는 장면은 라틴아메리카인으로서의 자각과정과 서구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는 이런 문화적 표현을 통해 서구중심적인 근대성을 비판하고, 라틴아메리카의 다문화성과 혼종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문학비평과 문화연구를 통해 ‘근대성’의 개념을 고찰하는 2부에서 월리엄 로우는 페루 내에서 발표된 근대성 선언을 분석하면서 지금까지 ‘직선적’으로만 해석해 온 근대성 개념을 넘어서고자 시도한다(「언제부터 페루가 근대적이었는가?」). 마르크스주의 역사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근대화론자들의 역사론 모두, 시간적 순서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로우는 시간적 순서에 따른 서사를 고수하는 통상적인 역사 방법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페루 문학 중 근대성의 장면들을 다룬 텍스트를 검토하면서, 연속성과 순차성을 거부하고 시간성과 공간성을 함께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근대성을 새롭게 사유하고자 한다.

▶ 서구 근대화와 비판적으로 거리두기
주앙 세자르 데 카스트로 호샤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마샤두 지 아시스(Mschado de Assis)의 텍스트를 통해 ‘비판적 기획으로서의 뒤늦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비판적 기획으로서 뒤늦음: 페루 내 근대성 선언들에 대하여」). 라틴아메리카의 소설가들은 ‘라틴아메리카 소설이 탄생하기 이전에 이미 소설을 읽어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작가이기 이전에 스스로가 독자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카스트로 호샤는 이러한 전제 하에 마샤두 지 아시스의 소설을 분석한다. 마샤두 지 아시스는 의식적인 표절자가 되어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인용함으로써 기존의 창조자라는 작가 개념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카스트로 호샤는 마샤두 지 아시스의 사례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화가 서구의 ‘복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독창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도리어 서구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인 거리두기를 통해 전통을 전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샤두 지 아시스의 전략은 획일화된 서구적 근대화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라고 볼 수 있다.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주의 세계화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서 ‘계몽의 근대성’이 ‘신자유주의적, 전 지구적 근대성’으로 변화된 양상을 분석한다(「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바라본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관계」). 최근 수십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칸클리니는 ‘북쪽’ 아메리카(미국)와 ‘남쪽’ 아메리카(라틴아메리카) 사이의 문화적 교환이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균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위주체(Subaltern) 간의 연대성 강화를 통해 불평등의 끈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향해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모색하는 과정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아마 라틴아메리카와 한국 모두 근대성이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촉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 근대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 줄 수 있다.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사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전제들을 근본에서 다시 사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는 한국보다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사실, 받아들였다는 표현보다는 강제로 이식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구 식민정책으로 인해, 소수의 지배세력에게 부가 집중되는 문제점도 발생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음에도 정치·경제·사회에서 불안이 가중되었다. 그 결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는 한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가 빈국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빈부 격차 문제와 정치의 불안정성은 지금 한국에서도 불거져 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한국보다 앞서 이런 문제를 경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원, 즉 근대성에 대한 논쟁을 시작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볼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잠재하고 있는 불안정성의 문제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해결점을 찾아 낼 것인지,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논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