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알렌의 의료보고서

동방박사님 2023. 1. 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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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알렌이 쓴 의학과 관련된 글, 특히 조선의 의료 상황에 대해 쓴 보고서를 모아서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알렌은 제중원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에 서양의학이 도입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편의 보고서를 통해 독자들은 알렌이 구한말의 조선 사람들의 건강과 위생에 대해 얼마나 세심한 관심을 가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먼저 알렌이 작성한 4편의 보고서 번역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1886년에 작성한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 그다음은 1885년과 1886년에 작성한 「서울의 위생상태에 대한 의사 알렌의 보고서」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1902년에 작성한 「미국공사 알렌의 세브란스병원 정초식 기념사」를 실었다. 4개의 보고서 뒤에는 저자가 쓴 알렌 보고서 해제와 보고서 원문을 실었다.

목차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
병원에 관한 이야기 / 외래 환자 분류?/ 외래 환자에 대한 기록
입원 환자 분류?/ 입원 환자에 대한 기록?

서울의 위생 상태에 대한 의사 알렌의 보고서
서울의 위생 상태에 대한 의사 알렌의 보고서(1885) / 서울의 위생 상태에 대한 의사 알렌의 보고서(1886)

미국공사 알렌의 세브란스병원 정초식 기념사?

‘알렌의 의료보고서’ 바로 읽기?
알렌은 누구인가?/ 알렌을 둘러싼 논란?/ 알렌의 의료보고서에 나타난 구한말 의료상황?

Dr. H. N. Allen’s Medical Report

저자 소개

저자 ; 여인석
연세의대 의사학과 교수로,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소장 및 동은의학박물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생충학으로 의학박사학위를, 파리7대학에서 갈레노스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고대의학과 한국근대의학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출판사 리뷰

알렌은 격동의 한국 근대사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알렌은 1858년 미국의 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북장로회 해외 선교부에 선교사로 자원했고, 의사가 되자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중국에 도착한 알렌은 적응을 못하다가 막 개항한 이웃나라 조선에 선교와 의료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1884년에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다.
조선에 건너와 미국공사관의 의사로 활동하며 외국 거류민들의 건강을 돌보던 알렌은 갑신정변의 와중에서 민영익의 생명을 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한편, 1887년 조선정부는 미국에 공사관을 설치하기로 하고, 알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알렌은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선교사직을 사임한 후 참찬관으로 조선의 관리들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갔다. 1889년 조선으로 돌아온 알렌은 미국 선교부에서 부산에 선교 기지를 개척할 임무를 받고 다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중원의 책임을 맡았다가 주한 미국공사 겸 총영사로 임명받아 외교관으로 전직했으나 선교사였던 만큼 현지 사정에 어두운 선교사들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1901년 주한 미국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받았으나 1903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와 조선에 대한 정책을 두고 격론을 벌여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기 몇 달 전인 1905년 3월 미국공사에서 해임당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정착했으며 1932년 74세로 타계했다.

알렌을 둘러싼 논란
1876년 개항 이후 한국근대사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이 등장하나, 알렌만큼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알렌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근대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
먼저 그는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을 세우고 서양의술을 광범위하게 시술했으며, 아울러 학생들을 뽑아 처음으로 서양의학 교육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렌이 의료선교사로서 실제 활동한 기간은 그의 재한기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대략 3년 정도 일한 알렌은 이후 외교관으로 전직하여 처음에는 조선 정부의 외교관으로 다음에는 미국의 외교관으로서 한국 근대사의 증언자이자 참여자가 된다. 알렌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데, 부정적인 견해에 대해 반박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제중원 설립에 알렌이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조선정부는 서양의학을 수용할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알렌이 없었어도 어차피 제중원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에는 실현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역사로 기록되는 것은 실제로 실현된 단 하나의 가능성이다. 제중원이라는 조선 최초의 병원이 설립되기까지 ‘갑신정변-민영익 자상-알렌의 수술-「병원건설안」 제출-제중원 설립’이라는 사실의 연쇄가 성립된다. 그리고 이 사실의 연쇄에서 알렌은 그 중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렌을 빼고는 제중원 설립을 설명하기 어렵다.

2. 제중원에서 알렌의 직위
알렌을 제중원의 원장으로 보는 입장과 제중원에 고용된 의사로 보는 입장이 대립된다. 일각에서는 알렌이 조선정부의 고용의사에 불과했으므로 제중원장이 될 수 없고 초기 제중원을 관할하던 통리교섭통사사무아문의 책임자 김윤식이 제중원장이라는 주장을 편다. 병원장은 병원의 본질적 기능인 의료 행위를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것이 근대 이후 병원의 상식이다.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다. 따라서 그 병원 건물의 소유주가 아니라 의료 활동의 책임자 알렌을 그 병원의 원장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도 상식적이다.

3. 알렌은 조선의 이권을 팔아 넘겼나?
알렌이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비롯한 각종 이권을 미국에 넘겨 막대한 국부를 유출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운산금광이나 경인철도 부설권에 알렌이 관여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 이권을 미국에 주고자 했던 사람은 고종이었다. 알렌은 고종의 요청에 따라 광산채굴을 할 수 있는 업자를 찾아 조선정부에 소개시켜 준 것이다. 당시 고종이 보기에 미국은 강대국이었음에 불구하고 일본, 중국, 러시아와 달리 조선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힘을 빌린다면 다른 주변 국가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고종의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었다. 운산금광의 채굴권은 미국에 넘겼지만 양도받은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였다. 그 이후에도 전차, 전기, 도시 발전소, 상수도, 전화가설 등의 사업을 알렌을 통해 미국이 맡았다. 그런데 이러한 알렌의 활동을 조선의 이권을 팔아넘긴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철도와 같은 근대시설을 설치할 기술과 경험이 당시 조선에는 없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이러한 사업을 외국인 업자에게 넘겨야 했다. 문제는 어느 나라 사업자들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를 맡기 위해 각국 외교관들이 각축을 벌였을 것이고, 조선정부의 신임을 받던 알렌을 통해 상당수 사업이 미국인 업자들에게 돌아갔다. 알렌의 활동은 외교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었다.

알렌의 의료보고서에 나타난 구한말 의료상황
이 책에 실린 알렌의 의료보고서는 당시 조선의 의료상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알렌은 본격적인 의료보고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조선, 특히 그가 활동했던 서울의 지리적 환경과 기후에 대해 전반적으로 언급한다. 거기에 더해 집과 주거방식, 서울의 상하수도 상태, 음식 등 넓은 의미에서 건강과 관련된 환경적 요인들을 하나하나 기술한다. 알렌 보고서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앓고 있던 질병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는데, 콜레라나 매독, 말라리아에 대한 기술, 다양한 질병에 대한 치료 경험들은 당시 조선 사람들이 앓던 질병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