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교육의 이해 (책소개)/2.교육문제비평

기억은 역사를 어떻게 재현하는가 (2019)

동방박사님 2023. 3. 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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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는 하나가 아니다
기억의 수만큼 역사는 다양하다


국정교과서 사태로 획일적인 역사관에 대한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책은 역사를 박제된 과거로 보지 않고 현재와 대화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가능한 한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지닌 ‘기억’을 인정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글은 한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전개된 역사 이슈에 대해 입체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통해 역사가 한 편의 대서사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된 지나가버린 현재이자 미래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역사는 끊임없는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비판적 담론과 지적 논의에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목차

1부. 들어가는 글

‘기억의 장소’ 또는 ‘망각의 장소’ _양재혁

2부. 기억과 역사 서술

신화화된 기억의 속살: 영적 자유를 외친 독일 종교개혁의 민중규율화 _박준철
남북전쟁과 공적 역사 _김정욱
민간 기념물과 논쟁적 기억: 수하르토 기념관의 경우 _서지원
독일 통일 후 베를린장벽 역사 기념물 만들기: 냉전시대 관광의 풍경에서 기억의 터전으로 _육영수

3부. 이데올로기와 역사 기억

『공산주의 흑서』 논쟁과 자유주의의 역사정치 _윤용선
코먼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억에서 타자화된 원주민들 _이민경
뉴라이트가 역사를 읽는 법 _김정인
극우의 역사 서술 전략과 『제국의 위안부』: 역사적 사건의 상대화 _신동규

4부. 나가는 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재국정화 소동 이후의 역사 교육 _김육훈
 

저자 소개

 
서양사 전공 소장학자들이 새로운 역사 연구 방법론의 모색과 인문학제 간 연구의 필요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2000년 3월 창립한 문화사학회는 ≪역사와 문화≫ 발간과 학술대회를 통해 서양사학이라는 경계를 넘어 인접 학제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일반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최근 들어 문화사학회는 창립 취지에서 밝힌 대중과의 교류 가능성을 확대하고 시대적 고민과 연결된 역사적 지식 및 문제의식을 대중과...
 

책 속으로

역사학의 자기비판적 인식을 담고 있는 역사 서술(historiographie)의 주장처럼 과거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고 노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생생한 체험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과거의 것들, 곧 과거의 기억들이 어떤 장소에 존재한다. 기억의 장소에 대한 연구는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노라는 표현한다. 현재의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 균형, 곧 과거와 현재의 균형이 상실되었으며, 과거의 모든 것을 사라지고 죽은 것으로 다루는 역사의 가속화가 지배적이다. 죽은 과거만을 인정하는 역사는 현재의 지반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를 기초로 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현재에 생기 또는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지금 사회 공동체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 p.27

노라에게 장소는 생생한 체험이 불러일으키는 소속감을 보장하는 기억들이 남겨져 있는 곳,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사라진 것으로 파악하며 과거를 현재와 확정적으로 단절한 것으로 파악하는 역사학이 간과한 기억들을 간직한 곳이다. 이런 노라의 확신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마도 장소라는 표현이 환기시키는 감각적, 특히 시각적 존재 형식일 것이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즉 장소를 지금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학에서는 이미 죽은 자로만 이해되는 과거 사람들이 생생한 체험과 의지를 통해 그 장소들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 p.29

기존 구원론에서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없었던 것이 루터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터의 파격적 행보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주체는 다름 아닌 기존 교회의 작동 원리에 융화되지 못한 채 불안과 부담감에 시달린 자들이었다. 이들은 강압적 종교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내건 루터의 개혁운동에서 영적 자유의 희망을 엿보았고 그래서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1520년대 중후반 민중규율화 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이는 한낱 부질없는 희망이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상당수 민중은 자신들의 꿈을 무산시키고 오히려 과거를 답습하는 양태로 치닫는 개혁에 더 이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민중규율화 작업이 역경과 난항의 연속으로 이어진 근원적인 이유다. --- p.58

역사 교과서와 기념물, 그리고 영화에 관한 이상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남북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북부의 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적 역사, 즉 정의와 승리의 국가 서사는 자신을 지배적인 서사로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남부의 ‘잃어버린 대의’ 역시 국민주의에 복무해야 하는 화해의 서사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었다. 화해의 서사에 따른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누그러뜨리고 상대의 대의를 존중하도록 만들며, 국가 분열과 전쟁을 불사했던 남부의 대의를 현재에 위협이 되지 않은 과거의 것으로 박제시켜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해의 서사를 받아들임으로써 패배한 남부의 대의는 절대성을 포기하는 대가로 영속성을 얻었다. 도덕적 면죄부를 얻은 남부연합에 관한 기념물들은 당당히 공공장소에 자리해 ‘잃어버린 대의’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부 대의가 복권되는 과정에서 인종주의 사회를 청산하는 문제는 중요성을 잃었다. --- p.77

수하르토 기념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느 쪽도 기념관에 대해 논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기념관이 수하르토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며 “불신자를 전향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라는 지적도 사실이지만, ‘불신자들’ 측에서도 가족이 운영하는 민간 시설인 수하르토 기념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실정이다. 파푸아 독립운동 세력이나 1965년 피해자 그룹은 수하르토 기념관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으며, 수하르토 사건의 피해자들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수하르토에게 민족영웅 칭호를 수여하는 데 격렬하게 반대해 결국 이를 좌절시킨 인권단체도 수하르토 기념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수하르토 기념관은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은 채 편향적인 역사관을 통해 수하르토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기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 p.107

20세기 현대사 관점에서 베를린은 ‘유령도시’, ‘악의 도시’, ‘분단도시’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소개된다. 앞의 두 별명이 히틀러가 총지휘했던 나치즘의 심장부로서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악몽에 사로잡힌 도시 이미지를 반영한다면, ‘분단도시’라는 닉네임은 냉전체제가 구축했던 베를린장벽을 연상시킨다. 1961년에 건설되어 1989년에 해체될 때까지 28년 동안 건재했던 장벽이야말로 베를린의 독특한 운명을 보여주는 명소 아닌 명소다. 21세기 베를린이 “창조적 파괴의 파우스트적 국면”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다면, 1989년 이후 사반세기 동안 베를린장벽이 온몸으로 경험한 흥망성쇠야말로 ‘창조적 파괴’의 모범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 p.111

『흑서』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밝히는 데 만족하고 공산주의의 전면적인 부정과 비난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이웃의 비극을 내 집안을 살피는 계기로 삼았더라면, 이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서는 없는지 돌아보았더라면, 그래서 자유주의 사회의 사회·경제적 폭력 역시 스탈린주의적 폭력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더라면 『흑서』는 자유/자본주의에 매우 의미 있고 생산적인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 p.174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많은 언어군의 원주민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통합적으로 추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이에 따른 공존의 양상과 문제의 발생이 다를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던져준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사고의 범위가 광범위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한편, 인종적 계층질서에 관한 역사 서술자의 사고 및 문맥이 개척자의 기억과 연계된 시대·사회·계급 및 젠더적 특성과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서술의 인식과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될 수밖에 없다. --- p.194

이렇게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보수의 이념적 보루인 반공주의와 거리를 두려 한다. 남북 관계와 국가보안법 문제에서 다소 유연한 입장을 개진한 이유도 과거 반공주의와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올드라이트가 반공주의를 절대시하고 북한을 척결 대상으로 보았다면, 뉴라이트는 공산주의가 자유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기에 반공주의를 수용하며 남한 민주화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민주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 p.213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개인의 기억과 증언이 서로 어떻게 충돌하고 있으며, 일본의 근대적 국가 기구의 폭력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제될 때 다양성을 보여주는 내러티브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대항 담론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유하가 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고립된 개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파편화된 경험의 불일치를 어떻게 재현하고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박유하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역사가들에게 던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 p.234

재국정화 반대운동 역시 오랫동안 국가주의에 포섭된 역사 교육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국권 상실, 분단과 전쟁,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독재 정치를 거치면서 국가주의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렸다. 국정교과서는 그 산물이면서 이 경향을 심화 확장하는 데 기여했고, 재국정화가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역시 이 같은 국가주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정화·재국정화 소동은 뿌리 깊은 국가주의가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침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재국정화 반대운동은 바로 역사 교육에 내장된 국가주의에 맞서는 운동이었다.
--- p.259
 

출판사 리뷰

역사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선택된 기억이다

역사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기억은 그간 연구 방법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기억은 그저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개념으로 치부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과거와 현재의 존재조건으로 인정하는 순간, 역사는 훨씬 생동감을 얻는다. 역사가 박제되고 건조한 과거형이라면 기억은 지금 이 순간을 구성하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독재 유신시대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기억은 이들에게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역사학에서 기억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기억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했다.

이 책은, 역사는 가능한 한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명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국정교과서 사태로 왜곡된 역사 교육을 우려하고 획일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한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전개된 역사 이슈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입체적인 해석을 제시한 10편의 글을 묶었다. 이 책은 역사는 지나간 과거를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가치관에 의해 선택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한다.

각국의 역사 논쟁을 입체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10편의 글 모음집

양재혁은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기획을 분석함으로써 기억과 역사 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박준철은 독일 종교개혁을 분석하면서, 종교개혁의 이념적 혁명성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이 신앙의 개인화와 동떨어진 모습으로 전개된 과정을 추적한다. 김정욱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기념한 버지니아 기념비와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에 남부 군인들까지 영웅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학술 서사와 공적 역사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서지원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기념관을 통해 민간 기념물은 정치적 공동체가 기억을 통해 지속시키거나 극복해야 할 가치를 담는 매개라고 설명한다.

육영수는 독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이후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을 되돌아보면서 베를린장벽은 통일독일이 여전히 직면한 딜레마이자 세계사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냉전체제의 생채기임을 상기시킨다. 윤용선은 공산 정권이 자행한 테러 행위를 다룬 『공산주의 흑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분석하며, 이민경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정복한 자들이 원주민을 다룬 서술과 기억에 주목한다.

김정인은 뉴라이트가 반북주의 사관에 기대어 북한을 비판하고 경제성장의 성과를 내세우며 권위주의 체제를 수긍하면서 반공주의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동규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벌어진 논쟁을 다루면서, 이 논쟁은 논리의 적합성보다 대항 담론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프랑스 부정주의와 유사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육훈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재국정화 소동을 주제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를 활용한 국민 편 가르기이자 정체성 정치의 일환이었다고 비판한다.

기억에 대한 논의는 다차원적인 역사 인식을 위한 첫 걸음

그간 한국사회가 겪은 굵직한 사건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물론 국가 정체성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쉽게 합의할 수 없는 다층적인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기억을 논의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망각하는 것이며 역사는 이 같은 선택적 기억을 토대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하나가 아니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역사의 다양성과 현재성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 교육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