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6.한일관계신간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 (2015) - 멸치를 통해 본 조선의 어업 문화와 어장 약탈사

동방박사님 2023. 4. 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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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근대를 상징하는 멸치,
멸치에 숨은 식민 지배의 역사


멸치는 우리 밥상머리에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이며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 멸치는 지역에서 소비되고 유통되는 ‘작은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학질을 일으키는 물고기로 터부시되기까지 한 ‘천한 물기고기’였다. 그러던 것이 멸치를 비료[魚肥]로 삼는 일본인들이 조선 어장에 등장하고 일본 정부의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조선의 멸치어장에 어업근거지를 건설하면서 멸치는 가장 잘 팔리는 물고기의 하나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는 한국 어업사의 전개 과정에서 멸치가 주요 어종으로 자리매김하는 숨은 그리고 아픈 역사를 살피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조선에서 멸치는 뭐라고 불렀을까?
물고기에 얽힌 금기와 속설
병을 일으키는 물고기, 멸치
작은 물고기, 멸치
| 부록 01 | 제주 멸치 ‘행어’의 어원을 찾아서
『우해이어보』와 『자산어보』의 멸치 기록
반당어와 밴댕이
중국 황제가 찾은 반당어젓
| 부록 02 | 반당어젓을 넣은 김치

2장 조선에서 멸치는 어떻게 잡았을까?
조선의 물고기
빛을 좋아하는 멸치
불을 이용한 챗배어업
바다에서 펼치는 챗배의 난타 공연
| 부록 03 | 한강의 잉어잡이
모래사장을 이용한 후릿그물
강원도 어민의 행복한 비명
제주 지형을 이용한 돌살어업
| 부록 04 | 사천만 죽방렴 멸치어업

3장 일본 어민은 왜 조선 바다로 건너왔을까?
일본 농가를 살리는 멸치
현해탄을 건너온 일본 어민
| 부록 05 |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나카이 요자부로
도미에서 멸치로 눈을 돌린 일본 어민들
진해만, 일본인 멸치어업의 최초 근거지
차별받는 부락민에서 조선 어장의 지배자로
어촌형 마을 구조라
우오시마 어민들의 구조라 어장 침입
‘형제의 의’와 일본인 지배 확립
일제강점기 구조라 멸치어업의 실태
일본인 어촌 건설에 숨은 식민지성

4장 일본 정부는 왜 조선 어업을 장려했을까?
‘통어(通漁)’의 숨은 뜻
「조일통상장정」 제41관의 해석
어업근거지 건설의 입안자들
러시아와 일본의 진해만 쟁탈전
거제도, 조선의 전초기지에서 일본의 근거지로
군용식량 공급지로 이용된 어업근거지
러일전쟁기 거문도 어장에 이식된 멸치어민
동도에서 고도로, 거문도 어장의 영고성쇠
| 부록 06 | 거문도의 전신기사 오야마 히데마사
‘군용 어부’로 조선에 온 지바현 어민들
어업근거지에서 죽어나간 멸치어민들
| 부록 07 | 고래어장을 둘러싼 러·일 간의 어업 경쟁

5장 강원과 제주에서는 왜 멸치 어업이 성행했을까?
일본 어장에서 개발된 머구리어업
제주 어장에 뿌리 내린 전통식 해녀어업
일본 머구리어업의 제주 어장 진출
| 부록 08 | 무법자를 낳은 「범죄조규」
제주의 멸치 어구와 어업 조직
민란에서 드러나는 제주 사회의 종속성
강원도 멸치어업의 상업화
후릿그물 어업과 자본의 성격
| 부록 09 | 어비 제조와 일본 어촌 형성
멸치어구를 불태운 의병들
공동어업, 어장 지배의 타협책

6장 일제는 어떻게 조선 어장을 독점했을까?
소청어가 돌아왔다
정어리어구 유자망의 변천
청진항과 멸치제조업
폭약의 원료가 된 어유
세계 대공황과 정어리 통제책
조선의 경화유공장 설립 붐
개발 성장론의 논리 비약
| 부록 10 | 전래동화 「멸치의 꿈」

〈권말부록〉 한일 멸치 음식문화

주석
그림 및 사진 출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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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김수희
 
김수희는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학예대학(東京學藝大學) 및 도쿄경제대학(東京經濟大學)에서 역사 및 경제사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현장이 중시되는 한·일 양국의 어업사를 연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 일본어민의 한국진출과 어업경영』(2010), 『植民地朝鮮と愛媛の人びと』(2011, 공저), 『독도 영유권...

출판사 리뷰

한국 근대를 상징하는 멸치,
멸치에 숨은 식민 지배의 역사


멸치는 우리 밥상머리에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이며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 멸치는 지역에서 소비되고 유통되는 ‘작은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학질을 일으키는 물고기로 터부시되기까지 한 ‘천한 물기고기’였다. 그러던 것이 멸치를 비료[魚肥]로 삼는 일본인들이 조선 어장에 등장하고 일본 정부의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조선의 멸치어장에 어업근거지를 건설하면서 멸치는 가장 잘 팔리는 물고기의 하나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는 한국 어업사의 전개 과정에서 멸치가 주요 어종으로 자리매김하는 숨은 그리고 아픈 역사를 살피고 있다.

조선시대 멸치는 ‘작은 물고기’를 뜻하는 통칭, 병을 일으키는 물고기로도 여겨져
조선시대에 멸치는 그 명칭조차 통일되지 않은 존재감 없는 물고기였다. 지역별로 행어, 잔어, 멸오치, 몇, 멸, 명아치 등으로 제각기 불리면서 그 지역에 국한되어 유통되거나 소비되었다. 당대의 문헌에서도 멸치라는 이름은 ‘작은 물고기’의 통칭이었으며 건조되어 유통되면서 ‘말린 물고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정도였다. 담정 김려가 유배지 진해에서 ‘특이한 물고기[異種]’를 관찰하고 저술한 『우해이어보』(1800)에서는 멸치가 장마철 습한 날씨에 잡히는 데서 미루어 ‘장려병’ 즉 학질을 일으킨다고 적고 있어 멸치가 터부시되기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어업근거지 건설로 본격화된 일본의 조선 어장 침탈

멸치는 바다에서 길어 올려 뭍에서 건조하는 가공의 절차를 거쳐 유통되었기 때문에 멸치 제조가 이루어지는 연안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일본 어민들은 남해안을 비롯한 인근의 도서 지역에 ‘어업근거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조선 어장에 진출하였다. 그중에서도 진해만 부근, 거제도 구조라 등지에서 가장 먼저 어업근거지가 건설되었으며 일본의 히로시마(廣島) 현, 에히메(愛媛) 현의 어민들이 하나둘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 어민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것이었으나 본국에서는 천민 취급을 받던 ‘부락민’이 생활조건의 개선과 지역정부의 장려책에 힘입어 조선 어장으로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일본 어민들이 조선 어장에 진출하면서 지역민들이 겪게 되는 수난과 조선 멸치어민들이 받던 낮은 처우 등을 책은 생생하게 소개한다.

어업근거지를 기반으로 하는 멸치어업은 러일전쟁 전후로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제국주의 정책의 하나로 이용된다. 메이지시대 수산 관련 관료들의 발언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 수산국을 창설한 세키자와 아키기요는 조선 어장을 “일본 해군의 예비군을 육성하는 훈련장”이라고 하였고, 1900년 러시아의 마산포 점령 이후 흑룡회 간부 구즈우 슈스케는 일본 어민의 ‘배설 장소’로 일본인 어업근거지 건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 입안자들의 계획에 따라 거제도 장승포에는 군용식량인 통조림 공장 건설 계획이 세워졌고, 대한해협의 관문으로 오랫동안 주목을 받은 거문도에는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어업근거지가 설치되었다. 또한 지바 현의 어민들은 러일전쟁 시 일본 육군의 상륙지로 계획된 마산만에 ‘군용 어부’의 명목으로 파견 정착하기도 했다. 책은 일본 정부의 군국화와 우경화로 변모하는 어업근거지의 실상과 침략성을 양국 사료의 구체적 사례들을 이용하여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종속화가 심화되는 조선 어장과 그 중심에 선 멸치

남해안의 어업근거지 건설로 시작된 일본의 조선 어장 침탈은 강원과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멸치가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지역의 어장에서는 어업계가 조직되었으나 멸치어구가 과잉 운용되고 멸치어장이 고리대 성격의 자금으로 운용되던 탓에 자원은 남획되고 어민들의 삶 또한 궁핍해졌다. 또한 일본인이 자금 대여를 조건으로 마을 단위로 운영되던 지역 어장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면서 강원도와 제주도 어장의 종속화는 심화되어갔다. 제주도에서는 머구리(잠수기)어선 등장 이후 해녀어업의 경쟁력이 상실되고 현재 해수욕장과 관광지로 유명한 표선, 성산, 납읍, 곽지, 협지, 한림 등이 공동 어장이 되어가는 과정을, 강원에서는 후릿그물어장에서 일본인 상업자본이 고리대적 성격을 띠고 운용되는 실상을 소개하면서 책은 지역사회 전체가 종속적인 구조로 재편되어가는 상황을 강원도 의병과 제주도 민란 등의 사례와 결부지어 설명한다.

조선 어장이 식민지적 어업 구조로 재편되어가면서 결국에는 일제에 의해 독점되고 ‘조선공업화’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는데, 이것은 멸치(정어리)에서 뽑아낸 어유(魚油)로 화약 등의 원료인 경화유를 제조하는 공업(경화유공업)의 추진과 동해안의 경유화공장의 설립이 붐을 이룬 데서 정점을 이룬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관동대지진(1923) 전후로 정어리 떼의 동해안 회유가 이상적으로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어리는 조선에서는 멸치와 같은 자원으로 여겨졌으며, 정어리의 풍년으로 말미암아 동해안에서는 이를 가공 처리하는 어업이 발달하게 된다. 이는 일제의 군국화 정책에 따라 정책적으로 육성 운영되었으며 세계 대공황기에 실시된 「정어리 통제책」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정책의 혜택을 보고 달려든 일본 기업들에 의해서 동해안의 어장은 독점되다시피 한다.

따라서 조선 어장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운명을 같이하며 일본의 어업자원의 공급지, 군사적 목적을 띤 배후지, 군수 자원의 공급처 등 여러 기능에 동원되었고 그 중심에는 멸치가 있었음을 책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서술의 폭과 깊이

어업사는 실제 조업 과정이나 어망, 어구 등의 쓰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접근이 어렵다. 멸치의 경우만 해도 조선 연안의 지형이나 지세 등에 따라 챗배어업(남해안), 후릿그물어업(동해안), 돌살어업(서해안과 제주도) 등이 이루어졌고, 일본 어민들이 이용하던 근대적 어업기술(방진망, 머구리 등)이 조선 전통의 어업기술을 능가하는 점을 이해해야만 조선 어장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과 조선 어민의 곤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은이 김수희 영남대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국내에서 어업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전문가로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한 어업의 실제를 책 속에 녹여내어 근대의 조선 바다에서 일어난 변화와 침략성을 총괄적으로 설명해낸다. 또한 멸치와 관련된 한일 양국의 식문화와 에피소드 형식의 사례를 부록으로 싣고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운다.

추천평

나는 멸치광이다. 고향인 마산 앞바다에 떠 있는 돝섬에는 1960년대 말까지도 멸치 말리는 공장이 있었다. 돝섬의 멸치가 집에 선물로 들어온 날, 양조간장만 상에 놓여 있어도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이뿐인가? 한여름에 풋고추로 양념한 멸치젓 건더기를 흰밥과 함께 상추에 올려 한입 먹으면 불고기가 부럽지 않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쯤 먹는 잔치국수, 큰 멸치로 우려낸 국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먹
지 않는다. 몇 번 외국에 나가서 살 때도 내 짐 속에는 반드시 멸치액젓이 들어 있었다. 이게 들어가야 김장김치가 내 입맛에 맞다. 김수희 박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멸치광인 내 몸이 깜짝깜짝 진저리를 쳤다. 나의 멸치 즐기는 식성이 일제의 한반도 강탈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는 책 내용이 마치 바늘처럼 내 몸을 찔렀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식탁 위의 한국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