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조선시대사 이해 (독서)/4.조선사대부

허주 이종악의 삶과 풍류 (2017)

동방박사님 2023. 5. 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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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시리즈로 간행하는 [조선의 사대부]를 읽기 시작한지도 시간이 꽤나 지났다. 처음 조선의 사대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조선이라는 왕조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사대부라는 계층의 존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사대부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사대부는 조선시대 지배집단을 이루는 광범위한 지배계층이자 일반 백성들이 모방해야 할 기준이 되는 인간상이기도 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조선의 사대부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윤리문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대부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성리학에 맹종하는 보수적인 지배집단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사대부를 이루는 선비 개개인의 삶은 어쩌면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일생을 학문과 풍류를 즐긴 한 사대부를 통해 조선시대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허주 이종악은 영조치세 초반인 1726년 안동 임청각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임청각의 11대 주손으로 지녀야 할 세가의 법도와 의절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그러하듯 세상을 경륜해보고 싶은 원대한 포부를 품기도 하였지만 임오화변이 일어나자 출사의 뜻을 접고 초야에서 학문과 예술로써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허주 이종악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안동에 임청각을 짓고 낙향한 것은 이종악의 12대조였다. 고려말과 조선초기 유수의 문벌 가문이었던 임청각 사람들은 비록 영남에 터를 잡았지만 서울풍으로 집약되는 도회적 삶과 문화의 자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퇴계학을 존중했지만 퇴계학파라는 학문권력에 맹종하지 않고, 당쟁의 시대를 살면서도 남인이라는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며, 영남문화와 서울문화를 접목한 새로운 문화를 300년이라는 시간동안 다듬어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가풍속에서 자란 이종악의 삶의 지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종악은 평생을 서생으로 살았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18세기형 치자(治者)의 삶이었다고 한다. 그는 진부한 유교지식뿐만이 아니라 역사, 병법, 천문, 지리, 역법에 이르기까지 지적 외연을 넓혀 안동 선비사회를 대표하는 학인, 시인, 예인으로 등장했다. 특히 그가 안동주변의 경치 중 12곳을 주목하여 화폭에 담은 [허주산수유첩]은 당시 강호처사의 삶과 풍류를 담아낸 것으로, 그 이면에 깔린 에너지는 나날이 험악해지는 세상풍속에 대한 우려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종악이 명산 대천을 유람하며 시재를 드러내고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대부, 그것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사대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던 불편한 감정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는 유교적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을 세우고 500년을 이끈 지배 세력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끼쳤고 국운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비록 저자는 허주 이종악의 삶을 통해서 그런 사대부의 가치와 힘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지만, 그들의 삶 이면에서 묵묵히 고통의 삶을 살았을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어떠했을 지가 궁금해 진다. [조선의 사대부] 시리즈를 읽어가면서 한편으로 계속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