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1.독일이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독일사 (2001)

동방박사님 2023. 7. 1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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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일의 역사는 지극히 모순적이다. 루터와 구텐베르크 그리고 바흐와 괴테와 같은 지적이고 교양 있는 인물들을 길러 낸 나라가 왜 국민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겪은 것일까? 국가사회주의에 무릎을 꿇었던 나라가 어떻게 다시 유럽 연합을 만들어 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 책은 그와 같은 모순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내고, 유럽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한 오늘날 독일의 복잡한 역사를 쉽게 써 내려가고 있다.

목차

1. 독일 역사의 기원
2. 오토 왕조에서 잘리어 왕조까지
3. 호엔슈타우펜 왕조와 중세 말의 독일
4. 종교 개혁
5. 반동 종교 개혁과 30년 전쟁
6. 18세기
7. 개혁, 복고, 반동
8. 독일의 통일
9. 독일 제국
10. 바이마르 공화국
11. 국가사회주의 독일
12. 1945년 이후의 독일
13. 독일의 재통일
 
책 속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성공적인 선전 무대였다. 1933년 나치 정권을 올림픽을 유치해 전 세계에 새로운 독일을 보여 주고 싶어했다. 거친 폭력과 인종 차별은 매력적이며 활기 넘치는 국제 도시 베를린의 면모 뒤에 교묘히 감추어졌다. 독일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이들이 사는 나라요, 번영하고 사회 복지 제도가 잘된 나라로 비쳤다. 경기는 매우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경기장과 숙소는 화려했고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국가사회주의는 뒷전으로 물러났고 정치 구호들은 사라졌으며 흔하던 스바스티카도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잠시나마 안도했다.

웅장한 개막식 또한 나치의 정치적 승리였다. 몇 달전 히틀러는 라인을 점령했으나 프랑스 팀은 경기장에 입장하며 히틀러에게 인사했다. 각국 왕들과 왕실 관계자들, 대통령들, 정치인들은 경기보다는 독일의 위대한 구원자 히틀러를 보기 위해 왔다. 제3제국 고위 관리들은 외국 귀빈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괴벨스는 1,000영 명을 초청해 이탈리아식 만찬을 베풀었다. 괴링은 내무부 정원에 18세기 농촌의 완벽한 모형을 만들어 손님들과 몇 시간씩 말을 탔고, 저녁엔 전체가 크림색인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는 영국 주재 독일 대사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달렘의 별장에 700여 명을 초대하기도 있다.

그러나 연회는 나치 관료들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들은 연회를 통해 귀족들과 금융인, 실업가, 영화 배우, 운동 선수. 신흥 재력가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대해 뛰어난 글을 남긴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프랑수아 퐁세는 이렇게 술회했다.
"그렇게 예의 바르고 멋진 사람들이 살인자들이자 고문관이며 전쟁광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히틀러는 올림픽 내내 평화를 사랑하고 국제 정세를 잘 이해하는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군대와 산업계에 43년 이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올림픽 경기는 나치 독일의 승리였다. 독일 팀은 금메달 33개, 은메달 26개, 동메달 30개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이 2위를 했다. 이변은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영국이 캐나다를 누르고 우승한 것이었다. 가장 큰 충격은 베를린 올림픽 영웅이 금메달 3개를 획득한 흑인 제시 오언스라는 것이었다. 오언스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우승한 계주 팀에 속했다. 그는 천재적 재능과 밝은 인품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나치 인종주의자들은 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히틀러도 오언스와 악수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인종주의 성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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