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계사 입문 (독서)/1.세계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2011)

동방박사님 2023. 10. 10. 07:58
728x90

책소개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전혀 다른 세계사

9·11 직후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그리고 2011년 봄, 빈 라덴은 죽고 재스민혁명의 물결이 아랍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 메카에도 자유와 민주주의가 입성하고, 테러리스트가 사라질까?

저자 타밈 안사리는 이런 생각은 단지 서구의 시각일 뿐, 이슬람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잘못된 분석이라고 말한다.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아온 무슬림에게 개인주의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통과 문화를 어지럽히는 이질적인 제도에 부로가하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싸우는 대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이상적인 이슬람 공동체다.

이 책은 무함마드의 일생에서 최근 몇 세기 동안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 운동의 흐름과 9·11을 낳은 근대의 복잡한 갈등에 이르는 이슬람 공동체의 진화를 체계적이고 공평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 매혹적인 이야기에서, 서구 세계사에서는 삭제당했지만 1500년간 세계사를 이끌어온 하나의 큰 줄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목차

지도 목록
이름과 날짜
한국어판 서문
저자 서문

제1장 중간세계
제2장 히즈라
제3장 칼리프조의 탄생
제4장 분열
제5장 우마이야 제국
제6장 아바스 시대
제7장 학자, 철학자, 수피
제8장 튀르크의 등장
제9장 대혼란
제10장 부활
제11장 한편 유럽에서는
제12장 서구가 동쪽으로 오다
제13장 개혁 운동
제14장 산업, 헌법, 민족주의
제15장 세속 근대주의자의 부상
제16장 근대성의 위기
제17장 조류의 전환

저자 소개

저자 : 타밈 안사리
타밈 안사리는 1948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유서 깊은 이슬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불 대학교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었다. 1964년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편집자로 일했고, 잡지 칼럼과 소설, 어린이책 등을 쓰고 있다. 안사리는 무슬림 가문에서 자라면서도 줄곧 종교와는 거리를 두었지만, 1979년 남동생이 ‘근...
 
역자 : 류한원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하고 『GEO』, 『모닝캄』, 『판타스틱』, 『루엘』 등 여러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소설만 읽고 지내던 청소년기부터 번역이 1차 창작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잡지사를 그만두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 번역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했다. 현재는 ‘바른번역’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위드아웃 유』, 『나부터 바꿔라』가 있다.

책 속으로

9·11 이후에 하나의 큰 드라마가 세계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과, 그로 인해 미국과 나토 동맹군이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벌인 전쟁이다. (두 진영 모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양쪽 진영의 선천적인 형질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슬람과 서구가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이야기를 줄곧 따라온 사람이라면 이슬람과 서구 사이에서 최근에 일어난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이슬람 사회들의 사회적 구조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9·11로 최전선에 나섰지만 이슬람 세계에는 다른 가닥들이 여태까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다양한 주제와 세력들은 이슬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사회적인 힘을 두고 수 세기 동안 경쟁해왔다. 사실 한때는 그 다른 주제들이 지배적인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 이른바 페이스북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무대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박탈당한 채로 현재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각 지역 고유의 이야기들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 p.17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예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역사 전체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다르다. (……) 지금 이슬람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위축된 현재를 세계사의 내러티브가 설명해야 할 현 시점이라고 상정한다면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눈으로 본 세계사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 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험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 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열: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 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 --- pp.30~31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현재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다. 각자 내부의 문제들로만 바빴고 각자 자신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각자의 흐름대로 살아오다가 17세기 후반에야 두 내러티브가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둘은 서로를 거스르는 물결이었기 때문에, 한쪽이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 서구가 더 강력했으므로 서구의 물결이 이슬람을 압도하고 휘저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빼앗겼다 해도 이슬람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역조처럼 수면 아래에서 계속 흘러왔으며 지금도 흐르고 있다. 현재 세계 분쟁 지역의 지도를 그려보면 공식적인 지도에서는 사라졌어도 죽지 않으려고 여전히 몸부림치는 독립체들의 경계선을 표시하게 된다. --- pp.32~33

몇 천 년에 걸친 역사 중에서 나는 오래전의 짧은 반세기에 어찌 보면 과도한 지면을 할애했는데, 거기에 오래 머무른 이유는 그 시기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최초의 계승자 네 명의 일생을, 즉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친근한 인생극으로 전달할 텐데 그것이 바로 무슬림들이 그 이야기를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그 이야기에는 회의적으로 접근하고 무슬림의 서술은 덜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비무슬림이 내놓은 자료는 더 신뢰한다. 그들이 주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는 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야기이며, 그것을 알아야 세계사 안에서 무슬림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p.33~34

무엇 때문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일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즈라는 ‘단절’을 뜻한다. 메디나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은 자기 부족을 포기하고, 이 새로운 공동체를 부족을 초월한 연맹으로 받아들였다. 메디나 공동체는 무함마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메카의 대안이 될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는 장대하면서도 종교적인 사회 프로젝트였다. --- p.68

새 칼리프 아부 바크르는 그가 얕잡을 수 없는 전략가라는 것을 보여줬다. 배교자 전쟁이라고 불린 반란을 종식시키고 아라비아를 통합하는 데에는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하지만 아부 바크르는 무슬림 공동체를 대할 때면 이제껏 사람들이 그를 사랑해온 바로 그 이유였던 겸손과 애정, 자비심만을 보여줬다. 눈이 깊고 어깨가 구부정한 남자였던 아부 바크르는 소박한 옷을 입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부를 전혀 축적하지 않았다. 그가 즐기는 치장이라고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헤나로 붉게 염색하는 것뿐이었다. 분쟁이 일어나면 공정한 손으로 정의를 실현했으며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언제나 원로회와 함께했고, 평등한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통치했으며 자신을 종교적으로 승격하려는 주장은 전혀 하지 않았다. --- pp.90~91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는 10년 동안 움마를 지휘했으며 그 기간 동안 이슬람 신학의 진로를 정하고 이슬람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정립하고 이슬람 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부여했으며, 종국에는 로마 제국보다 더 큰 제국을 건설했다. 우마르는 사도 바울과 칼 마르크스, 로렌초 데 메디치에 나폴레옹까지 합쳐놓은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슬람 밖의 사람들은 그저 그의 이름만, 혹은 이름에 한두 줄 정도의 설명 정도만 알 뿐이다. 이는 아마도 우마르가 허세 부리지 않는 것을 자신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지배하지 않았으며, 모든 권위를 신에게 돌렸다. 우마르는 그의 마음속에서 이슬람을 완전무결하며 공정하고 만민 평등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그렸고, 그 이상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 pp.92~93

전사들과 함께 시인들도 여럿이(그중에는 여자도 몇 명 있었다) 이 전장에 따라갔으며 귀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서 카디시야 전투를 트로이 전쟁처럼(그보다 짧긴 했지만) 신화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예를 들자면 승리가 확실해지자 전령 하나가 곧바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말에 올라타서 아라비아로 내달렸다. 메디나에 가까웠을 때 전령은 길가에서 괴상한 늙은이를 지나쳤는데, 기워 고친 외투를 입은 그 소박한 노인이 펄쩍 뛰면서 전령에게 카디시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소.” 전령이 대답했다.
“어떤 소식인가? 어떤 소식인가?” 노인이 간절하게 물었다. 하지만 전령은 잡담이나 하느라 멈출 수 없다고 한 뒤 계속 달렸다. 노인은 빠른 걸음으로 전령을 따라오며 귀찮게 질문을 계속했다. 그들이 도시의 문을 지났을 때 군중이 모여들었다. “길을 비켜라!” 전령은 거만하게 소리쳤다. “나는 당장 칼리프를 뵈어야 한다. 칼리프 우마르는 어디 계신가?”
군중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바로 뒤에 있지 않소.”
겉치레를 하지 않는 것, 전설에 따르면 그게 바로 우마르의 생활 방식이었다. --- p.100

무함마드는 초자연적 기적을 행한 적이 없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힘을 보여서 지지자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함마드의 유일한 초자연적 재주는 예루살렘에서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었는데, 사실 이것도 군중 앞에서 행한 기적은 아니었다. 그 기적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났으며 나중에 무함마드가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준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가 행한 기적은 (쿠란 자체와, 그 내용을 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쿠란의 설득력을 제외하면) 무슬림들이 병력에서 1대 3으로 뒤질 때조차 전투에서 승리했던 일이다. 그 기적은 초기 칼리프 시절에 무슬림이 통치하는 영토를 숨 가쁜 속도로 확장해나갈 때 계속해서 이어졌으니, 신의 개입이 아니고서야 그처럼 놀라운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 p.141

9·11의 가해자들은 정말 자신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맞서서 반격을 했다고 생각할까? 자유에 대한 증오가 오늘날 정치적으로 과격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하드주의자의 담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담론은 자유와 그 반대 개념, 혹은 민주주의와 그 반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양 대 퇴폐, 도덕적인 청렴 대 도덕적 타락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수 세기 동안 서구가 이슬람 사회를 지배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와 가족이 파편화되고 이슬람의 사회적 가치가 침식되며 술이 확산되고 종교의 자리에 오락이 들어서고 부유한 상류 계층이 세속화되면서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깊어져가는 현상에서 기인한 표현들이다. --- p.543

내 생각에는 현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이라? 이해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만일 그 진술이 ‘우리는 서로 다르니 둘 중 하나만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말이다. 그보다는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무슬림은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다. 유럽인과 유럽에서 분가한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다. 그런데 두 무리의 사람들의 길이 교차하면서 부딪히고 부서지는 사건들이 벌어졌으며, 그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549
 

출판사 리뷰

“오늘자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지하드주의자의 자살폭탄테러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2011년 봄, 그리고 여름. 재스민혁명의 물결이 아랍 세계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이제 마침내, ‘자유에 대한 혐오’와 ‘여성 억압’을 원동력 삼아 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려던 그동안의 극렬 이슬람주의자들과는 달리,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는 새로운 혁명세력이 나타난 것일까? 재스민혁명과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테러리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리고 이슬람 세계는 과연, 자유와 민주주의의 축복을 얻고, 자유 시장경제체제로 편입될 수 있을까?

지은이는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보는 시각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빈 라덴에게 집착했던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서구의 시각, 서구의 내러티브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속도는 다를지언정 결국은 서구의 일부가 된다는 가정에서 나온 내러티브에 현재의 사건을 강제로 끼워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현재 무슬림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미 제국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이며, 그들이 혁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상적인 이슬람 공동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서구에서 이슬람 세계에 주입하려고 애쓰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무슬림들에게는 자신들의 오랜 공동체 지향적 전통과 부족 네트워크를 잘라내려는 칼로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지은이 타밈 안사리는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 무슬림들을 오랫동안 움직여온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 흐름을 모르고는 무슬림들이 지금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도대체 어쩌다가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무슬림들이 역사를 배우는 방식인 ‘인생극’ 형식으로, 이슬람의 눈으로 본 1,500년의 세계사를 그려낸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결코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서구 중심의 기존의 세계사, 서구 편향의 안팎의 언론보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매혹적인 세계사’가 펼쳐진다.

적개심으로 가득한 9·11 이후 세계의 필독서

“지난 10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안보와 개발, 인도주의적 지원에 힘을 썼지만,
국제사회는 (아프간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에 실패했다.”
- 민간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 2011년 8월 4일 아프간 보고서의 첫 구절
로이터 통신 보도

서구 언론이 그려내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이미지는 자살폭탄테러범, 여성의 머리에 검정 천을 씌우는 문화, 문란한 성문화의 상징인 할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 테러리스트들이 만들어내는 모자이크다. 이슬람과 가장 적대적인 이해당사자인 서구와 유대 세력이 추진해온, 이슬람에 폭력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이 프로젝트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을 서구 언론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통로는 무척이나 좁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오늘날 서구와 이슬람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적개심 뒤에 있는 움직임과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에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은 1,5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연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들의 일생에서 출발해 그 뒤로 펼쳐진 광대한 제국들의 시대를 거쳐, 최근 몇 세기 동안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운동들과 9.11에 이르게 한 복잡한 갈등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세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흡입력 있는 문체로 풀어낸다. 이 흐름은 이슬람과 서구를 갈라놓은 여러 단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슬람이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를 포괄하는 완전히 다른 사상이자 사회 프로젝트고, 예술·철학·건축 등 인간의 모든 문화적 성취를 아우르는 또 하나의 문명이며, 시대를 관통하는 공동체의 여러 목표가 한데 어우러진 광대한 복합체인 것이다.

“나의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지은이 타밈 안사리는 9·11 직후, 당시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해 친구 몇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이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그는 더 많은 대중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카불의 서쪽, 뉴욕의 동쪽』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사이에 서 있는 그의 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이 책에서는 더 커다란 틀로 이슬람 세계가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몇천 년에 걸친 역사 중에서도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 네 명의 일생을 친근한 인생극 형식으로 전달한다. 학계는 그 ‘이야기’에 회의적이고, 무슬림의 서술이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고 여긴다. 주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는 데에 집중하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의 자료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의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실제로 오랜 세월 무슬림들을 움직여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생극의 틀을 벗겨버리면 그 이야기가 무슬림들에게 지닌 의미가 변질되고, 그래서 무슬림들이 수세기에 걸쳐 전해온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해 ‘무슬림들의 세계사’를 튼실하게 재구성해냈다. 그 결과가 이 책, ‘서구의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완벽한 해독제’이자 ‘반대편의 시각을 활짝 열어주는’ ‘미래 세대의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