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인물사 연구 (독서)/2.한국인물평전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 김홍도 (2016) - 정조의 이상정치, 그림으로 실현하다

동방박사님 2023. 10. 1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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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조를 위한 민생보고서이자
국정 참고자료로 쓰인 단원 풍속화


조선 최고의 화가, 백성들의 삶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낸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1806년경, 경기도 안산 출생). 그는 평생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조선 제22대 왕)의 총애를 받은 국왕 직속 화원이었으나,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단 세 줄의 기록만이 전할 뿐이다. 그는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왕의 초상을 세 번이나 그렸지만, 용안을 그리는 영예로운 ‘어용화사’(御用畵師)는 아니었다. 다만 정조의 ‘이것’만은 그릴 수 있었다는데…… 도화서 화원 중 상위 10명을 선발, 화원으로서 최고 대우를 받은 자비대령화원 명단에도 김홍도의 이름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조선 최고의 화가였을까?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김홍도의 풍속화, 이 그림들에 담긴 비밀이 있다. 단순한 그림을 넘어 또 다른 쓰임이 있었던 것인데…… 실은 그의 풍속화는 정조의 명에 의해 그려진, 왕에게 바치는 민생보고서였던 것이다! 김홍도는 왕명을 받아 백성의 삶을 밀착 취재·보도하는 수석 엘리트 기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부제에 ‘아트 저널리스트’란 단어가 붙은 까닭이다.

18세기 조선, 백성들 속에서 진정한 군왕의 길을 가려던 정조를 위해 그의 눈과 귀 역할을 그림으로 담당했던 김홍도. 이 두 사람의 군신간 의리는 당시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씨줄과 날줄과도 같은 다양한 인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관계일 것이다. 김홍도는 정조의 가장 의미 있는 날들을 그렸다(74~79쪽, 347~365쪽). *1764년은 영조 즉위 40년 되는 해이자 70세가 되는 해라 잔치를 벌이려 했으나, 영조는 자식을 앞세운 아비라는 이유로 거절. 해를 넘겨 1765년 세손 정조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잔을 받기로 함. 이때 수작연희 의궤인 [경현당수작도景賢堂授爵圖] 병풍을 김홍도가 그림. 1795년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성으로 옮기는 행차를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행사로 진행. 이때 만난 백성들의 민원을 정조가 직접 만나 해결해주었으며, 김홍도가 의궤를 담당·수행하는 화가들은 직접 진두지휘해 [반차도班次圖]를 그림.

이 책에는 김홍도와 당대에 함께 활약한 걸출한 인물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백성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던 정조 곁에서 군신의 의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채제공과 정약용, 붓끝으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간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심사정을 비롯해, 산행가 정란, 그의 선후배 동기인 장혼·김응환과 이인문을 비롯한 많은 기인과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단순히 과거의 애틋했던 군신간의 의리를 다룬 역사서나 한 인물의 평전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자신을 알아주며 애민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군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바친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오늘의 정치 현실과 의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이 책을 펴내며-단원 김홍도와 함께하는 조선 후기 민생기행
추천사-조선 후기의 걸출한 한 화가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다

제1부 김홍도에게 묻다. 너는 누구냐?
인연의 늪에 빠지다1752~
묵장墨匠과의 만남
삼베실로 그린 그림
한지韓紙 공방
또 다른 스승
왕의 혈통을 세상에 고하라1762
영조, 그림 속의 개를 꾸짖다1763
대물림 인연 충신 채제공1755~1772
균와아집筠窩雅集에 가다1763
나를 넘어가라
그들의 화폭에는 호랑이가 산다
도화서에 첫발을 들이다1765~1775
인연의 시작 문방사우
[경현당수작도景賢堂受爵圖 계병契屛]을 그리다1765
[금강산전도]를 그려준 김응환1772
강세황의 기이한 정치 입문1773~1776
[군선도群仙圖]로 경하드리다1776
조선의 미래를 담은 [규장각도]1776
김홍도에게 묻다. 너는 누구냐?1777~1778. 가을
의리의 정치인연, 정조와 채제공1776~1786

제2부 네 붓끝에 내 꿈을 실어도 되겠느냐?
사도세자의 선물, 정약용1782
강세황, 기노소에 들다1782~1783
서민들의 숨결을 그려오라1783~1786
안기찰방 김홍도, 명사들과 풍류를 즐기다1784~1786
[단원도檀園圖]에서 옛 추억을 더듬다1781~1784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그려오라1788
정약용의 중용과 배다리1789
이보게 단원! 얼른 일어나시게1789~1790
화성 신도시를 건설하다1790~1791
정약용에게 하사한 연꽃 부채

제3부 내 평생 그대와 함께하였노라
인왕산 기슭에서 풍월風月을 논하다1791. 여름
가을 정취에 성은聖恩을 더하다1791. 가을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리다1791. 늦가을
비밀전교, 금등金?을 풀다1792~1793
충청도 연풍현감, 김홍도1792~1794
민심을 살펴 회갑연을 준비하게 하다1794
회갑연을 의궤와 그림으로 남게 하라1794
세 번의 북소리1795.윤2.9.~윤2.16.
낙성연落成宴 팔 폭 병풍을 그리다1796
공이 과인보다 먼저 죽어야 하오1798~1799
내 평생 그대와 함께하였노라1800

제4부 꽃술 단 채 눈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장혼의 「평생지」를 [삼공불환도]에 담아내다1801
궁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다1802
속 붉은 단매화丹梅花를 그리다1804
그림에서 누룩 냄새가 난다1804.12.20.
동갑내기 삼인방이 회갑모임을 갖다1805.정월
벗에게 화답하다1805
아들 연록! 보아라1805. 회갑
누가 내 흥취를 망치려 하느냐?1805
까치가 눈감고 입 다물다1805.윤6.
영혼이 빠져나가듯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1805. 늦가을
꽃술 단 채 눈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1806

제5부 못난 아들 양기가 삼가 꾸몄다
단원의 아들 양기1816

참고한 책들
김홍도의 주요연보
[징각아집도] 연구 노트
글을 마치며-그림으로 맺은 인연, 김홍도
 

저자 소개

저 : 이재원
 
그의 지적 상상력이 질주하기 시작하면 역사적 인물들이 살아 돌아온다. 조선의 최고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가 그랬고 실학자 정약용도 그랬다. 인목대비와 광해군에 얽힌 비밀을 푼 소설은 또 어떠했는가. 그런 열정들이 이번에는 300여 년 전, 조선의 풍경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조선의 대표적인 여행가이자 천생 산악인 ‘창해 정란’. 그는 산수에 관한 열정 하나로 평생을 여행에 바치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선 팔도를...

책 속으로

영조 “정치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피를 보게 되니 서로 힘의 균형이 맞추어졌을 때 비로소 나라가 안정된다 할 수 있다. 첫 그림에서 본 개처럼 집 밖을 나가 경계 없이 날뛰게 되면 집에 도둑이 들고 화를 입지 않겠느냐? 그러니 주인인 내가 그러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어두고 본분을 망각하지 않도록 단속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배부른 개가 자기 몸을 긁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다는 얘기일 터 백성도 다를 바가 없다. 궁핍함 없이 저마다의 삶에 흡족하니 이럴 땐 군주가 관여할 바 아니다.”
세손(정조) “소손, 할바마마의 깊으신 뜻을 가슴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 p.46「영조, 그림 속의 개를 꾸짖다」(1763) 중에서

정조는 우호세력인 노론 시파를 염두에 두고 노론 벽파, 소론 남인까지 고루 중용하는 탕평책을 이어가며 정치 안정을 도모하였다. 이즈음 주목해야 할 점은 정조의 사람들이다. 1772년부터 왕세손 교육을 맡았던 남인 출신 채제공을 발탁하여 곁에 두고 규장각의 핵심 역할을 하게 하였고, 화원 김홍도를 불러들여 [규장각 조망도]를 그리게 함으로써 정조가 쏟고자 했던 위민정치의 의미를 새겨두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조의 고뇌와 정치 역량을 곁에서 지켜봐온 김홍도는 자신을 총애하는 주군을 위한 일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 p.98「[군선도]로 경하드리다」(1763) 중에서

정조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 바로 이것이다. 놀라는 얼굴 표정을 곁에서 보는 듯하고 밥 한술과 한 사발 탁주에 만족해하는 너털웃음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구나. 길거리에서 송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 한번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서로 부대끼며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령이 있으니 과인이 바라던 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이토록 자세히 읽어내고 그려내다니, 마치 백성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구나. 더욱이 표암이 유려한 필치로 느낌까지 적었으니 그 강평이 날카롭게 풍자되어 읽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만 하다.”
강세황 “전하께서 풍속화를 보시고 이리 즐거워해주시니 소신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이 노상송사의 핵심은 형리에 두고 있사옵니다. 갓을 삐딱하게 쓴 것으로 보아 치기가 어느 정도 올라 있는 모양이옵니다. 수령이 탄 가마 앞뒤로 수행인들이 물건을 이고 지고 있어 행색이 초라하지 않으나 판결문을 적고 있는 형리는 취기가 오른 듯해 판결문을 기술하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는 있을까 걱정되어 조금 강평을 하였사옵니다.” --- p.154「서민들의 숨결을 그려오라」(1783~1786) 중에서

정조 “관아재가 그린 속화는 궁궐에서 일어난 익살스런 장면을 그려낸 것이라면, 서민들이 살아가는 사실적 모습들을 그려낸 것은 김홍도로구나. 과인은 백성들이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그러나 자유로이 궁 밖을 출입할 수 없으니 어찌해야 백성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가 고민하였었는데 오늘에야 그 답을 찾았다. (……)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의 고충도 헤아리며 과인의 정치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그림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구나.” --- pp.156-157「서민들의 숨결을 그려오라」(1783~1786) 중에서

정조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 체한다면 한 나라 군주로서 말이 되겠는가? 회화란 오해받지 않는 문화를 통하여 잘못된 점을 풍자하고 그 의미까지 전달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가히 사회 혁명이라 불러도 되지 않겠느냐. 굳이 창을 앞세워 시위하지 않아도 방패를 내세워 방어하지 않아도 평화적 대항마가 될 수 있어 과인에게는 큰 무기가 될 것이다.” (……)
김홍도 “전하의 깊은 뜻을 잘 알겠사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사이에 느끼는 전달력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사옵니까? 전하! 소신이 그림을 그릴 때면 스스로에게 엄격히 정한 기준과 가치가 있사옵니다. 그것은 그림에도 생명력이 담겨 있어서 보는 이에게 반드시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이라야만 살아 있는 그림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
정조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이라. 단원의 그림 속의 비밀이 여기 있었구나. 단원!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애쓰는 성군 정치를 하고 싶다. 네 붓끝에 내 꿈을 실어도 되겠느냐? 과인과 단원의 인연은 백성에서 시작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그대를 내게 보낸 이유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 나라 백성들의 숨결을 그려오라. 백성들이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숨김없이 고스란히 담아내어라.” --- pp.156-157「서민들의 숨결을 그려오라」(1783~1786) 중에서

정조 “단원! 올해는 과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구갑일에 맞추어 어머니 혜경궁 마마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성대하게 베풀 것이다. 그리고 관련된 내용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활자를 만들고 삽화를 그려 넣는 의궤를 편찬할 것이다. 주요 장면장면을 그린 삽화가 있어야만 행사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전달하는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과인이 알고 있고 기록 문화에 대한 과인의 애정은 누구보다 그대가 잘 알 터이니 그대가 이 일을 맡아주어야겠다. 행차는 여드레 동안 이루어질 것이니 수행하면서 주요한 장면을 그려내거라.” --- pp.360-361「회갑연을 의궤와 그림으로 남게 하라」(1794) 중에서

처음 도화서에 등청하던 젊디젊은 날의 큰 꿈과 최고의 화원을 향한 부단한 노력들이 기억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경복궁 강녕전에서 [군선도]를 펼쳐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왕 정조의 따뜻한 미소가 아직도 가슴 아리게 남아 있고 풍속화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에 담긴 해학과 풍자를 예리하게 잡아내던 주군의 호기심 가득했던 눈빛과 환한 웃음이 아직도 허공을 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은혜하고 존경하던 정조의 체취를 찾기 위해 대궐 구석구석을 그리움의 눈길로 되짚는 김홍도의 머리 위에도 세월이 내려앉아 하얗다. --- p.416「속 붉은 단매화丹梅花를 그리다」(1804) 중에서

김양기 “아버님과 많은 교유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룬 업적에 대해 혹 제가 모르는 부분을 일러주실 수 있으신지요?”
홍석주 “어찌 그 사람됨을 다 안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네의 선친을 대할 때면 늘 느끼는 일이었지만 외모는 선계仙界에서 내려온 듯 수려하였고 단정하며 청정한 손놀림으로 붓을 잡으셨지. 특히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생생하게 묘사한 풍속화는 신의 조화라고 말하고 싶다네. 게다가 산수화·도석화道釋畵·어진御眞을 비롯한 화조花鳥·계회도契會圖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능한 분이셨지. 오늘 이렇게 첩을 대하고 보니 단원은 그림에만 머물지 않고 서체까지 이처럼 유려하였음을 새삼 알게 되었네.”
--- pp.477~478「단원의 아들 양기」(1816)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민의 숨결을 그려낸 화선畵仙 김홍도!
정조 생애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을 그려내다


저자 이재원은 평소 정조가 펼쳤던 이상정치와 문예군주로서의 면모를 좋아하고 연구하던 중,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 인물들 속에 얽히고설켰던 군신의 예와 의리, 충정에 깊은 감동을 받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었다. 그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그림 한 점에 정신이 빼앗긴 탓에 정조와 김홍도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동안 옛 글와 그림에 대한 큰 관심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오던 차에 그 그림이 단원 김홍도의 [징각아집도]임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홍도와 정조를 중심에 두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길을 가고자 했던 스승과 도반,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다소 힘들고 고됐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작은 역사 만들기라 생각했다. 어쩌면 뜻하지 않게 인연이 된 한 장의 [아집도]를 통해 새로운 인문학에 물꼬가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또한 김홍도의 일생과 작품연대를 시대순으로 배치, 어린 시절부터 죽은 후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정조시대에 활동한 문인, 예술가와의 교유를 있었음직한 대화(이른바 팩션)로 구성해 써냈다.

이미지를 정치에 적극 활용한 정조가
오늘날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면?


김홍도가 살다 간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동안 김홍도에 관해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단편적 그림 중심이거나 회화적인 접근뿐이었다. 1805년 의재(宜齋) 남주헌이 김홍도에게 그의 전기를 기록하고자 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홍도는 ‘나는 그럴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거절하며 육 폭 병풍을 그려 의재에게 건넸다.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남겨지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연유가 있었던 탓일까? 그의 겸손이라고 미루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인지 많은 인물의 전기가 수록된 『의재집』에도 「단원편」은 빠져 있다.
만약 정조가 살아 있다면 오늘날의 한국정치를 과연 어떻게 볼까? 선거철에 이미지 정치라 불리는 것이 고작 자신들의 당색을 보드판에 어떻게 하면 잘 보이게 할까에만 관심을 둘 뿐, 정작 민생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책을 통해 불통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단원의 풍속화를 통해 과연 이 시대 통치자들은 민생과 민심을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책 끝에 김홍도의 주요연보(479~484쪽)와, 이 책에 처음 소개되는 [징각아집도]에 대해 저자가 연구한내용(485~493쪽)이 실려 있다.

추천사

우리나라 그림이 중국의 그림에 짙게 물들어 있을 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선각자가 몇몇 있었는데 그가 겸재요 단원 김홍도였다. 김홍도는 어려서 스승을 잘 만났고 현명한 임금 정조를 만나서 맘껏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 궁궐에 앉아서 바깥세상이 궁금한 임금에게 백성들의 사는 모습들을 그려다보였다. 그것이 오늘날 ‘풍속화’라 이름 붙은 조선미술사에서 특수한 양식이 된 것이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조선 사람의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을 예술로서 승화시킨 화가 단원! 그의 아름다운 화업 일생을 되살려, 250여 년 전 옛일들을 마치 어제 일을 보는 것처럼 이재원이 생생하게 그려냈다.
- 최종태(서울대 명예교수)

그 옛날 230여 년 전 단원 김홍도는 강릉 선교장의 과객이었다. 어명으로 떠난 금강산 사행길에 경포대를 붓끝에 담으며 잠시 머물다 간 인연인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지나 이렇게 단원의 이름을 마주한다. 그의 눈길 하나하나가 스쳐 갔을 고택의 추녀 끝에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하여 노는 풍월주인風月主人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단원의 세월을 마주하니 감회가 깊다. 감사하다. 오늘은 그를 위해 선교장 솟을대문 활짝 열어야겠다.
- 이강백(강릉고택 선교장 관장)

한 사람에게 꽂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역사적 인물에 꽂혀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시간을, 돈을, 열정을 쏟는다는 것은? 그건 그 사람 속에서 ‘나’를 보았다는 뜻이고, 그 사람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는 뜻이리라. 이재원 선생은 오랜 시절 김홍도에 빙의되었다. 왜? 그것이 이 책이다.
-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과)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김홍도에게 초상화 초본을 그리게 했다’는 『정조실록』의 한 구절에서 이 방대한 저술은 출발했다.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하다. 최근에 발굴된 간찰사료까지 등장하고 있어 저자의 사실 확인에 대한 집요함이 엿보인다. 사실에 뿌리내린 만큼 이야기는 탄탄하고 리얼하다. 독자가 개연성을 의심할 소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걸출한 한 화가의 삶과 생각이 당대의 정치사와 결합하기도 하고 화론과 결합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정 시공간 속에 살아 움직이던 고뇌하는 김홍도로 입체화될 수 있었다. 김홍도의 다양한 그림 하나하나를 세밀히 보고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듣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덤이다.
- 장영주(KBS PD·前 역사스페셜 책임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