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문교양 (독서)/6.작가인물탐구

르네상스인 김승옥 (2005) - 김승옥의 문학과 예술에 바침

동방박사님 2023. 10. 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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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60~70년대 대중소설·영화·만화 등 대중예술 각 방면에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친 ‘문화예술인’ 김승옥에게 각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바치는 헌정집. 김승옥에 관한 글 6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당시에 그가 왜,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려준다.

저자 소개

저 : 송은영
 
1970년대 초반 서울에서 태어나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자랐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동아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초빙교수 및 연구교수 생활을 계속했다. 현재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도시문화, 청년문화, 대중사회와 대중문화, 대항지식의 체계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앞으로도 문학, 역사, 문화연구를 접목하여 동아시아 도시공간의 역...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각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탁월한 문화예술인 김승옥에게 바치는 헌정집입니다.
비록 지금 김승옥 하면 소설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1960~70년대 그는 대중소설.영화.만화 등 대중예술 각 방면에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친 ‘문화예술인’이었습니다.
김승옥에게 문학은 소중했지만, ‘모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필자들은 김승옥의 문학 바깥활동이 그저 개인적인 여기餘技나 ‘외도’의 소산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글은 유종호나 김윤식 세대로부터 40여 년간 씌어진 수많은 김승옥론이나 그 작품론을 계승한 것이면서, 결코 한 번도 제대로 씌어지지 않은, 그러나 꼭 씌어져야 하는 새로운 작가론과 작품론입니다.


김승옥, 누구입니까

‘김승옥의 感受性은 世紀의 감수성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스무 살 언저리에 김승옥 소설의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1964년 단편소설 「무진기행」으로 한국 문단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했던 김승옥.
그때 그의 나이 스물하고도 넷이었습니다.
『사상계』 1964년 10월호에 처음 발표됐으니, 꼭 40년 됐군요.
그러나 그는 5년 여의 짧은 작품활동 끝에 돌연 ‘순문학장’을 떠나버립니다.
한국 문단에 소위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유망한 청년 작가가,
서른 즈음의 전성기에 자신의 문학과 문단을 버린 것입니다.
그는 왜, 어디로, 가버린 것이었을까요?


김승옥은 왜 문학을 떠났습니까

이 책은 그때 그가 왜,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필자가 발로 뛰어 작성한 상세한 ‘연보’에 따르면, 그는 『선데이서울』로 대변되는 대중문학, 그리고 영화계로 갔습니다.
〈어제 내린 비〉〈영자의 전성시대〉〈겨울여자〉…모두 김승옥이 각본을 맡은 영화작품들입니다. 〈감자〉라는 작품에선 직접 감독을 맡아 “한국의 장 콕토”라는 광고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입증하지요.
왜 그랬냐구요? “먹고살기 어려워서”였답니다.
“책은 아주 잘 팔렸지만, 인세를 전혀 못 받아서” 그랬다고 이 책의 인터뷰에서 처음 밝혔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여성지나 대중잡지 가리지 않고 글을 쓰고 싶고, 순수소설도 쓰고, 흥미 위주의 소설도 쓰고, 드라마나 시나리오도 해보고 싶”어서.
일부 평론가들의 말처럼, 그가 “타락해서” 혹은 “상업주의에 물들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김승옥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많았던 겁니다.


왜 르네상스인일까요

이 책에 실린 필모그라피를 보면 아시겠지만, 1967년 〈안개〉로 시작된 그의 영화 이력은 1986년 〈무진 흐린 뒤 안개〉까지 근 20년간 16편에 이릅니다. 참고로 이 영화목록, 작품목록은 그간 알려진 잘못된 기록과 오류를 모두 잡아내어 새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 이미 일간지에 4단짜리 시사만화도 연재할 만큼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서울대 불문과 대학생 시절 김현.김치수.염무웅 등과 같이 만들었던 동인지 『산문시대』에는 그가 그린 멋진 캐리커처들이 실려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간이 삽화도 그리고, 본인과 다른 작가들의 책 장정까지 직접 했다고 하는군요.
가히 ‘르네상스인’ 아닌가요?


여전히 유효한 ‘세기의 감수성’

그러나 김승옥은 소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김승옥의 感受性은 世紀의 감수성입니다.’
이 문구는 1980년 신문지상에 등장한 그의 단행본 광고 문안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돌아오지 않아도, 그의 ‘화사한 감수성’을 잊지 않고, 아니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에 화답하듯, 그는 그해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이라는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연재 14회 만에 그는 붓을 꺾습니다. 5?18 직후의 일입니다.


가슴속에 있는 못다 한 이야기들

그 이후의 일은 잘 알려져 있듯, 신神을 만나고, 시나리오를 쓰고, 『샘터』 주간을 맡고, 여행을 다니고, 세종대 교수가 되는 등 문학활동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이문구의 부고를 들은 그날, 그는 뇌경색으로 쓰러집니다.
이 일로 그는 언어를 잃어버렸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머릿속 문자체계가 고스란히 날아가버립니다. ‘시대의 천재 작가’에게 내린 벌치고는 너무 가혹하죠.
그런데 부인의 표현을 빌자면 ‘어버버’하는 그의 얼굴에선 절망의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말로 그는 자신의 장애를 부끄럽거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자체계가 날아갔다니요. 말은 불편해도, 그의 기억력은 정밀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다시 쓸 수 있어. 마음속으로 구상하는 게 있어.”
믿고 싶습니다. 아니, 믿습니다.
우리는 그가 돌아올 걸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의 오랜 친구 김지하 시인은 김승옥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승옥이는 반드시 다시 쓴다.
하나님의 소설을 쓸 것이다.
이 혼탁한 고통의 땅에서 그레이엄 그린이나 엔도 슈사쿠보다 훨씬 훌륭한 실존적인 복음소설을 쓰고 말 거다.……
초월적 기쁨과 함께 너만이 해낼 수 있는 글쓰기 작업에 대해 사명감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이 이후 김승옥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작은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