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기독교 신학연구 (책소개)/4.사도바울연구

바울서신 (2012)

동방박사님 2023. 11. 5.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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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바울 서신은 성경 본문을 바로 읽고 해석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구약이 인용되고 있는 신약 본문의 문맥을 읽어가는 일, 인요되는 구약 구절의 문학적 문맥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구약인용구절이 신약 본문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성경 본문의 바른 해석의 방법들을 잘 예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하게 이 주석서들은 구약 구절의 인용 이면에 놓여 있는 신약 저자들의 성경-신학적 관점을 잘 드러내 줌으로써 이 주석서의 독자들이 성경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기회와 훌륭한 장을 제공한다.

목차

추천사 송영목박사
추천사 류호영박사
편집자 서문
역자 서문
약어표

서론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저자 소개

저 자 소 개
로이 E. 씨암파 : 스코틀랜드 University of Aberdeen에서 공부하였으며 미국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이다. 브라이언 S.로스너 : 영국 University of Cambridge 출신이며 호주 Moore Theological College 신약학, 윤리학 교수이다. 피터 발라 : 스코틀랜드 university of Edinburgh ...
 
역자 :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고, 남아공 University of The free Stare 박사이다. 현재 고신대학교 및 브니엘 신학교 외래교수이다.

책 속으로

“주”가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은 바울이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이 메시아 예언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제웟(Jewett 1971: 377)은 “2:16a의 “주”에서 2:16b의 “그리스도”로 표현에 변화를 줌으로써 참된 신적 지혜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연결한다”고 덧붙인다. 성령은 무에서 지혜를 부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과 십자가는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nothing)에 관한 사고에 의해 경험되지 않는다. 도리어 바울이 고린도전서 1:18-2:5에서 고린도교회 내의 분열을 직면하면 서 한 것처럼, 십자가로 항상 돌이키는 영적인 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2:8). 왜냐하면 십자가는 그런 행동에 대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발견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 p. 83

(5) 고린도전서 6장에서 창세기 2:24의 사용
고린도전서 6:16-17에서 창세기 2:24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114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시리즈(4) 마태복음 19:5 에베소서 5:31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후자의 두 가지 예는 각각 그 자체로 이혼과 결혼에 관한 논쟁에서 나타나지만, 고린도전서 6장은 음행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는 결혼에 의해 만들어진 고귀한 결합의 개념을 취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 인용은 세 가지 기능을 한다. --- p.114

(3) 초기 유대주의에서 출애굽기 32:6
금송아지 대실패는 유대주의 사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Childs 1974: 573-81).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7:39-43에 서 이스라엘의 강퍅한 심령과 우상숭배의 예로서 다시 언급된다. 필로는 이 사건을 몇 번 언급한다(Moses 2.161-162, 270 Drunkenness 95 Spec. Laws 1.79). 요세푸스는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Ant. 3.99). 이것은 아무 것도 생략하지 않기로 한 그의 약속에 대한 “가장 명백한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Thackeray 1930: 363). 이 이야기는 성경 고대사(L. A. B.) 12에서 다시 말해진다. 토셉타 소타(t. So†ah) 3:10에서 먹고 마심에 대한 집중은 이스라엘에 대한 교만함, 자기에 게 몰두한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 토셉타 소타 6:6에서 출애굽기 32:6의 “뛰놀더라”에 대한 명확한 우상숭배적 언급은 비슷한 방식으로 창세기 21:9에서 이스마엘의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이 사건은 우상숭배에 대한 유대주의 사상의 역사에 제거할 수 없는 오점을 남겼고 우상숭배의 원형적 행동으로서 기능한다(Hafemann1995: 279-81). --- p.144

실제로 골로새서 1:12-14에서 (역사적) 출애굽과 (예언적) 두 번째 출애굽 자료들의 결합이 나타난다. 왜냐하
면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빛과 흑암”의 결합은 이사야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출 19:6 23:22 70인역과 사 42:6-7, 12, 16 43:20-21을 결합하는 벧전 2:9이 하는 것처럼). 바울은 이사야의 두 번째 출애굽 예언들을 자신이 그것들을 인지할 정도로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두 번째 출애굽 예언들이 바울에 의해 명확하게 사용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독자들의 구원에 대한 그의 묘사에 영감을 주며, 그는 그의 생각에 자극을 주는 그러한 예언들과의 결합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 p. 456

주 예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바울의 선교(살전 215-16a)에 대한 유대주의 억압의 이 긴 역사는 논리적 결론을 가진다.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에이스 토 아나플레로사이 아우톤 타스 하마르티아스 판토테〈eis to
anapl??ai aut? tas hamartias pantote〉). 바울은 여기서 후기 유대주의 작품들에서 또한 발전된 구약의 주제를 사용한다. 즉 죄의 정해진 양이 채워진 그 후에 심판이 온다는 것이다. 동사 아나플레로오(anapl?ro?)
는 그릇 혹은 컵이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묘사하며, 그것이 완전하게 채워졌을 때 심판이 발생한다. 동일한 동사는 70인역 창세기 15:16에서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관영치 아니하였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사람의 죄의 충만하게 채워짐”의 이 주제는 다니엘 8:23 솔로몬의 지혜서(Wisdoms of Solomon) 516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시리즈(4) 19:4 마카비 2서(2 Maccabees) 6:4에 또한 나타난다.--- p.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