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한국역사의 이해 (독서)/3.고려시대사

역동적 고려사 (2004)

동방박사님 2023. 11. 28.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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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고려의 역사를 일국사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보고자 시도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역사건 주변 국가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봐야겠지만 특히 고려 시대 오백년은 유목민족에 의한 정복왕조가 잇달아 일어나던 시기였기에 더욱더 국제관계가 중요했다. 고려는 거란, 금, 몽골에 의한 계속되는 외침을 굳건히 막아냈을 뿐 아니라 요동지역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고려인들의 불굴의 기상과 뛰어난 전투력, 능란한 외교술을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생동감 있게 재생시켰다.

목차

머리말

1장 변혁기의 동아시아
중국 최조의 정복왕조 - 요 / 혼란의 시대 - 오대십국 / 고려의 건국

2장 고려 국가체제의 정비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성립 / 고려의 천하관 / 고려 여성의 지위

3장 거란이 주도한 10세기 동아시아
거란이 중원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 / 중원을 통일하고 군주권을 강화한 송 / 발해를 멸한 나라와는 통교하지 않는다

4장 고려, 송, 거란의 삼국 관계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을 막다 - 1차 여요전쟁 /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다시 침략한 거란 - 2차 여요 전쟁 / 강감찬의 활약으로 거란을 물리치다 - 3차 여요 전쟁 / 고려와 송 사이의 활발한 관민교류

5장 고려 귀족사회의 동요와 금 제국의 성립
고려의 동북면 확장 / 금의 시조 함보는 신라 출신 /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다/강성해지는 금, 쇠퇴하는 거란 / 이자겸의 난 / 금에 대한 충성서약 / 서경반란

6장 무신정권의 성립
문신 귀족의 횡포와 무신반란 / 무신 집권 초기의 정치적 혼란 / 무신 집권하의 농민항쟁 / 최충헌의 집권

7장 몽골의 세계제국 건설과 고려의 대응
몽골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 / 칭기즈 칸의 대외원정 / 고려와 몽골이 협력하여 거란을 물리치다 / 고려와 몽골의 전쟁 / 태자의 입조로 전쟁을 끝내다 / 개경 환도에 항거하는 삼별초 / 남송의 멸망

8장 개경 환도 후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
원의 정치 소용돌이 속에 선 충선왕 / 원 황실의 내분 / 원과 고려에서 기씨 세력의 성장

9장 개혁과 국난 극복
원말의 혼란 / 공민왕의 부원세력 처단 / 고려를 침략한 홍건적 / 쇠퇴의 조짐들 -흥왕사의 변, 공민왕 폐위 음모 / 신돈의 등용과 개혁

10장 고려와 명의 대립
원의 쇠퇴와 고려의 삼각외교 / 고려의 요동 원정 / 부원이냐 친명이냐 / 고려와 명의 줄다리기 / 화약병기의 개발과 왜구 소탕 / 이성계 세력의 성장 / 요동 지역의 위기와 위화도 회군

11장 고려의 멸망
제비뽑기로 공양왕을 세우다 / 윤이?이초 사건으로 반대파를 숙청하다 / 정몽주의 반격 / 이성계의 찬탈
 

저자 소개

저 : 이윤섭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 다. 졸업 후 국제관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작업 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어릴 때는 동네 아이들과 극성스럽게 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책 읽기’에 몰두했다. 한국 경제사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갈 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선택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학문 연구할 뜻을 접었다. 대학시절에는 팸플릿, 소책자, 자료집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경험...

책 속으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자처했고 따라서 압록강 이북의 만주 지역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려는 정복왕조보다는 중원왕조에 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실제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함으로써 격변의 시기에도 국체를 지켰다.
고려는 고구려 못지않게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다. 고려가 우수한 외국 문화를 수입하기 위해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거란족, 여진족, 발해인, 송나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귀화의 문호를 열어 놓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것도 개방성과 포용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p.9
고려는 국내와 자국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천자?황제를 자칭했으나 외부의 송과 거란에 대해서는 왕을 칭했다. 이러한 면에서 외왕내제(外王內帝)라 할 수 있으나 주변의 강대국인 거란과 송이 고려의 내부적인 칭제를 알고도 문제 삼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는 인정했다는 점에서 베트남의 경우와는 차이가 난다. 고려의 군주를 천자로 설정한 팔관회(八關會)에 많은 수의 송나라 사신이나 여진족이 참석하여 고려의 칭제가 널리 알려졌다. 고려 스스로가 황제국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설정한 것이 주변 여러 나라와 교류하거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 p.65
 

출판사 리뷰

한국의 역사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지금,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한 고려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고려는 고구려와 발해의 주무대이던 요동 지역을 되찾는 일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은 단지 영토회복이라는 목적에서만이 아니라 요동 지역을 중국에 빼앗기는 경우 한반도가 맞게 될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고려 시대 470년간은 중국에서도 격동의 시기였다. 유목민족과 한족왕조 혹은 유목민족들간의 항쟁이 끊임이 없었다. 중국에 통일왕조가 서 있던 시대와 달리 거란ㆍ남송ㆍ금 ㆍ몽골 등 여러 세력들과 다각적인 외교관계를 맺어야 했던 고려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외줄타기 외교를 했다. 그러나 그런 곤경 속에서도 고려는 결사의 항전 정신과 세력 균형을 이용한 외교술을 발휘해 500년 역사를 당당하게 이끌어 왔다.

고려시대 왕들은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며 강대국인 중국에 유연한 외교술로 대응했다. 금이나 송과 같은 중국 왕조들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을 만큼 고려는 동아시아 세력관계에서 무시 못 할 세력이었다. 고려가 일방적인 사대로 나아가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술을 구사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불굴의 정신으로 외침을 막아냈던 고려인들의 강인함에 있었다. 거란과의 3차례에 걸친 전쟁, 7차에 걸친 대몽항쟁을 거치면서도 나라를 잃지 않았던 고려의 역사는 수양제와 당태종의 간담을 서늘케 한 고구려사의 맥을 잇고 있다.

조선의 지배층은 국호까지도 명의 승인을 받아 정했을 정도로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었으나 고려는 거란, 홍건적, 몽골의 잇따른 침략에 두려움 없이 맞섰고 이런 측면에서 고려의 역사는 읽을수록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이야기를 하듯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일반 통사류의 역사서와 달리 생생한 역사의 숨결을 살려냈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이성계에 의해 왕위가 찬탈될 때까지의 역사가 한 권의 장편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북방 침략자들과 고려인들 간에 계속된 전쟁도 긴장감 있게 서술돼 있다.

곳곳에 삽입된 고려시대 풍습과 인물에 대한 일화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그리스의 마라토너를 연상시키는 ‘천리인’ 이야기, 승마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격구 놀이, 몽골 제국의 4대 목마장 중 한 곳으로 지정되어 많은 몽골인들이 들어와 말을 기르던 제주도 이야기 등 다른 역사책에서 읽을 수 없던 많은 일화들이 고려시대의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