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일제, 식민지, 근대 한국 (2023)

동방박사님 2024. 2. 1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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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에는 우리가 다소 낯설어할 법한 사건들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발생했지만,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 사건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일본인에게 사상과 문화를 탄압당했던 조선인의 삶을 오롯하게 보여 준다. 당시 초등교원이 받았던 민족 차별, 교내 여성들을 대상으로 발생했던 성폭력과 성차별,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당했던 경제적 착취 등 조선의 비통한 식민사를 들여다보며, 현재에도 잔존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조명한다.

목차

발간사
자괴감과 자부심 사이?―?일제강점기 초등교원으로 살다 _김광규
일제강점기의 ‘스쿨미투’ _김광규
근대의 화장술, 화장 _정일영
사상 사건과 치안유지법의 탄생 _전명혁
‘101인 사건’과 치안유지법 _김국화
우생학, 과학에서 미신의 경지로 _정일영
1930년대 정다산 기념사업의 재조명 _조형열
노동자의 시각으로 본 원산총파업 _현명호
외국 석유회사의 조선인 노동자 _현명호

저자 소개

저 : 김광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 관내 중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했고 고려대학교, 인천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우리 역사 어떻게 읽고 생각할까』(공저)가 있고, 논문으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조선인 유학생 연구」, 「일제강점기 학교의 이면: 성차별과 성폭력」, 「조선의 ‘문...
 
저 :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학전공 조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 졸업
논저: 「해방 후 한센인 자녀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양상: 1960~70년대 한센인 자녀 공학 반대 사건과 미국 입양 사례를 통하여」 외
 
저 : 전명혁
 
(현)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 (현) 한국외국어대 정보기록학과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문학박사 역사학연구소 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과 연구소 책임연구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문위원,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부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근현대 사회운동사 전공으로 최근에는 사상사, 법제사, 기록과 역사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최근 주요 저작으로 ...

책 속으로

이들은 초등교원이라는 직업이 보장하는, 비록 아주 대단하진 않더라도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거나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을 실천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초등교원으로서의 삶에 만족한 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학이나 시험으로 개인적 성취·상승을 시도했던 인물들과 같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딘 것은 불만족의 내용과 문제의식이 본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이겠다. 그 선택과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p.38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일제 식민지 시기의 화장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식민지 시기의 화장 증가는 한국인의 죽음 문화가 변화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화장을 선택함으로써 의미를 상실하게 된 사람들의 증가를 뜻한다는 것. 식민지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의 의미를 되새기며 애도를 표하고 슬픔을 공유할 기회를 박탈당한 현상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최근 전국의 화장률이 90%를 돌파했다. 이 수치가 한국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잘 알고 있다. 아니면 바쁜 현대의 한국인이 죽은 이를 재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기에 화장률이 증가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사건이기에, 우리는 항상 죽음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일제 식민지 시기에 있었던 화장의 미화, 권유, 강요는 근대를 앞세운 폭력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91

일제강점기인 1930년 2월 『동아일보』에는 ‘사상 관계 사건’이 격증하는 반면 재판소의 인원은 예전과 같아 진행 중의 사건도 처리가 곤란하고 공판에 회부된 이래 수개월이 지나도 공판기일이 결정되지 못하여 곤란한 상태였다고 하였다. 또 1933년 3월 16일 자 『조선일보』에는 ‘사상 사건’이 격증해서 법무국에서는 사상 사건의 ‘취체와 처분에 관하여 긴급한 문제로 연구 중’이며 ‘사상 신문 전문 검사와 사상 전문(專門)의 사찰관을 증원’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와 같이 일제하에는 사상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일제는 사상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서 치안유지법이란 악법을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사상 사건이 무엇이고 주요한 사상 사건은 어떠한 것이 있었고, 이러한 사상 사건, 사상운동에 대한 대응으로서 치안유지법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일제의 재판제도는 어떠하였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 p.95~96

101인 사건은 식민지 조선에서 치안유지법이 적용된 가장 대규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비밀결사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검거된 피고인은 재판에 회부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들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예심과 공판을 거쳐 판결을 받고 이후에 오랜 시간 복역을 해야 했다. 재판이 끝난 이후에 복역하면서 권오상, 권오설 등이 사망했다. 피고인이 복역을 다 마친 이후에도 다시 운동 일선으로 복귀하는 피고인은 얼마 없었다. 출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피고인도 있었고, 정신을 놓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고문에 의한 희생이었다.
--- p.151

이처럼 이갑수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과학이라는 시대적 권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뒤틀린 신념을 계속 고수한 식민지 지식인의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고통은 감수할 만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우생학의 논리를 오늘날 우리도 내면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p.174

출판사 리뷰

일제가 조선에 가한 폭력과 차별에 관한 보고서

과거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일삼았다. 이들은 먼저 배움의 터와 노동의 현장에서 조선인들을 부당하게 대우했다. 당시 초등교원들은 조선총독부의 관료 신분이었음에도 민족 차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적정한 노동 시간을 빈번히 보장받지 못했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교원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아야만 했다. 교내의 여성들은 남교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성차별과 성폭력을 당했다. 하지만 누구도 피해자를 온전히 피해자로 간주하지 않았고, 이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연애 문제 정도로 치환했다. 일제의 폭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인의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조선인의 고유한 장법을 폐기하였고, 그들이 애도하고 슬픔을 공유할 기회를 박탈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통치에 반하는 모든 저항 세력을 막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투옥했다. 이때 많은 독립투사들이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겪었던 구조적인 폭력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들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뒤틀린 사회 구조에 순응하며 출세를 지향한 인물들이 있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제에 저항하고 대립했던 인물들도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과 그들의 편에 섰던 조선인에게는 분노를, 가진 것을 포기하며 폭력에 맞섰던 이들에게는 경의를 표하게 된다.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차별과 억압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차별과 폭력의 총구가 이제는 같은 민족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탄한 식민사를 되짚어 본다면, 현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