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한국정치의 이해 (독서)/2.한국민주주의

괴물이 된 권력 (2015) - 4·19 혁명과 민주주의의 외침

동방박사님 2024. 2. 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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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까지 4·19 혁명에 관하여 나온 서적은 대부분 학술적이거나, 혁명의 시대를 경험한 선배세대의 책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날짜 형식으로 구성된 ‘괴물이 된 권력’은 검증된 기록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진자료를 첨부하여, 해방 후12 년 동안의 대통령선거사와 4·19 혁명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현대사의 기억이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주권에 대한 권력자들의 부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4·19 혁명 이라는 현대사의 기록을 이용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왜 4·19 혁명이라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 왜 대한민국 헌법전문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는 말로 시작되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4.19 혁명을 소재로 자연스럽게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수많은 젊은 목숨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희생하여 너희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도록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 너희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목차

시작하는 말


제1장 대통령 선거사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사(1948~1960)에 대한 간단한 설명

제2장 권려의 욕망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2.28 대구학생운동
1960년 3월 1일 화요일 3.1절 삐라 사건
1960년 3월 3일 목요일 세상에 폭로된 부정선거비밀지령
1960년 3월 4일 금요일 자유당의 오리발
1960년 3월 5일 토요일 민주당과 장면의 서울운동장 유세
1960년 3월 6일 일요일 자유당의 본격적인 부정선거활동과 3인조 투표연습
1960년 3월 7일 월요일 압도적인 힘의 자유당
1960년 3월 8일 화요일 무력한야당, 비겁한어른, 그리고 정의를 외치는 학생들
1960년 3월 9일 수요일 지식인의 목소리에 힘을 얻는 민주당
1960년 3월 10일 목요일 한계점을 넘어버린 자유당의 폭력
1960년 3월 11일 금요일 또 다시 발생한 살인
1960년 3월 12일 토요일 계속되는 폭력 그리고 멈추지 않는 외침
1960년 3월 13일 일요일 매수되는 국민과 오욕의 거리
1960년 3월 14일 월요일 선거전야

제3장 괴물이 된 권력

1960년 3월 15일 화요일 3.15 부정선거와 3.15 마산의거
1960년 3월 16일 수요일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
1960년 3월 17일 목요일 조롱하는 외신들
1960년 3월 18일 금요일 국회의 정·부통령 당선선포
1960년 3월 19일 토요일 빨갱이로 몰리는 마산의 시민들 그리고 대통령의 담화

제4장 민중의 분노

1960년 4월 11일 월요일 아~김주열
1960년 4월 12일 화요일 걷잡을 수 없는 마산의 분노
1960년 4월 13일 수요일 식어가는 마산의 열기
1960년 4월 15일 금요일 잡혀가는 사람들과 대통령의 담화
1960년 4월 16일 토요일 시신유기의 장본인 박종표
1960년 4월 18일 월요일 4.18 고려대학교 학생시위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피의 화요일
제5장 4ㆍ19구 후

1960년 4월 20일 수요일 미국의 압박과 이승만 담화
1960년 4월 21일 목요일 매카나기 대사와 이승만
1960년 4월 23일 토요일 부통령직 자진사퇴로 압박하는 장면박사
1960년 4월 24일 일요일 이승만의 수습책
1960년 4월 25일 월요일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
1960년 4월 26일 화요일 이승만의 하야

저자 소개

저자 : 이남일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며 본격적인 현대사연구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와 정치사를 한줄기로 엮어 나아가는 그의 강연은 흥미진진하기로 유명하다.
정확한 현대사의 전달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성장 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저자는 『괴물이 된 권력』 후속 작으로 ‘권인숙양 부천서 성고문사건’과 ‘보도지침사건’에 대한 글을 집필 중에 있다.

책 속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도로는 설명 불가능한 정도의 희생을 보여준 ‘성재 이시영’ 선생과 그의 여섯 형제는 일명 ‘삼한갑족’이라 불리던 명문집안의 인물이다.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인 이항복을 10대조로 하는 조선 최고의 명문가 집안에서 고종 시절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이시영 선생은 17살에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었고 2년 후인 19세에 형조좌랑(정6품)이 되었으며 문과 또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정5품) 등에 관직을 역임했었다.
이시형 선생은 을미사변과 을사조약 이후 이승훈, 도산 안창호, 우당 이회영(이시영 선생의 형) 선생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나 수많은 명문가와 관리들이 친일파로 변절하여 국가와 민족을 팔고 제 뱃속을 채우던 모습을 목도하면서 국내에서 하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철저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시영과 그의 여섯 형제는 라고 통탄하다가 조선대대로 내려온 집과 땅을 포함한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이시영 선생과 가문의 재산 규모는 소유하고 있는 토지만 따진다 하여도 오늘날 명동의 거의 전 지역으로서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수조 원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조선의 최고부호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많은 재산을 40만 원(현재 가치 1,000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헐값으로 급하게 처분하고 60명의 대가족 모두를 12대의 마차에 나누어 태워 1910년 겨울에 서울 명동을 떠나 눈 내리는 만주로 망명한다.

당시 노비 문서를 전부 불태워 노비 모두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대다수의 노비들 역시 만주로 동행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6형제의 인품이 어느 정도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첫째 이건영, 둘째 이석영, 셋째 이철영, 다섯째가 이시영, 여섯째 이호영이었다. 그리고 만주행을 주도했던 인물은 넷째 우당 이회영 선생이었다. (서울시 종로구에 우당 이회영 기념관이 있다.)
이후 40만 원(약 1,000억 원)의 돈으로 형제들은 만주에 독립군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본격적인 무장 독립군들을 키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군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성 되는 것이다.
무관학교의 교장을 맡은 이시영 선생은 불철주야 노력하여 1920년까지 10년간 2천여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시킨다.
훗날 열악한 무기를 가진 1,500여 명의 독립군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5,000여 명의 일본군을 괴멸시킨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 주인공들이 바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또한, 1919년 초 이시영 선생과 이동녕 선생 등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집에 모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빛나는 3·1 운동의 기획을 주도하였고 1919년 4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이시영 선생은 신익희 선생(대한민국 3대 대통령 후보로서 이승만과 경쟁하던 중 총선을 10일 앞두고 유세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 등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이던 이승만에 의해 행해진 독립자금 횡령사건 때문에 매우 열악해진 정부재정을 안창호 선생에 뒤이어 이끌어가기도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밟게 되었으나 6형제 중 고향에 돌아온 이는 이시영 선생 혼자였다.
맏형인 이건영 선생과 그의 둘째 아들은 독립운동 중 병사하였고, 둘째 이석영 선생은 빈민가에서 80세의 나이에 돈이 없어 굶어 죽었다. 셋째 이철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과로사 하였고 형제의 중심이었던 넷째 이회영 선생은 독립운동 중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 끝에 죽는다. 막내였던 이호영 선생 또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행방불명된다.
오늘날 명동의 땅 전체를 소유한 집안을 상상해보라, 조선에 남아서 대대손손 잘 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는 그들의 말처럼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여섯 형제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조국의 광복을 맞았으나 오로지 다섯째였던 이시영 선생만이 홀로 돌아와 고향의 땅을 밟게 되었을 때, 과연 선생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성재 이시영 선생은 1953년 4월 19일 노환으로 사망하였고 정릉에 묻혔다가 수유리 북한산 기슭으로 이장되었다. 훗날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권유 받았으나 국가가 제공한 자리는 말석이었다.
선생에겐 아들이 4명 있었으나 첫째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1960년대에 사망하였다. 둘째아들 이규열씨는 아버지보다 100일 먼저 사망하였고 셋째와 넷째는 어린 시절 만주에서 구걸로 연명하다가 굶어죽었다. 둘째아들과 며느리 서차희씨 사이에서 태어난 4명의 손자와 2명의 손녀가 있었는데 6명 모두 최고의 명문고에 진학하였으나 단 한명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등록금조차 구할 수 없을 정도의 가난 때문이었다. 현재 그의 자손은 성재 이시영 선생의 묘소부근 허름한 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힘겨운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성재 이시영 선생은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독립운동의 톡톡한 대가는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_본문 중에서

선거인 사전포섭요령


? 사전포섭대상으로는 ‘구 진보당원’, ‘국군하사관’, ‘언론기관’, ‘각종 시찰요인’및 ‘월북자 가족’ 등을 포섭대상으로 하고 ‘금전’, ‘이권’, ‘위협’, ‘회유’와 ‘공직에 임명’한다는 것을 포섭 조건으로 사용한다.
? 포섭대상자 중 명예심이 강한 자에 대하여서는 차기 ‘시장’, ‘읍장’, ‘면장’, ‘동장’ 또는 ‘도의원’, ‘시의원’등의 공직에 취임할 수 있도록 추진하여 줄 것을 암시할 것. (당시의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의원은 모두 임명직이었다.)
? 포섭대상자 중 정계에서 활약할 야심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자유당’ 및 ‘기간단체중요부서’에 ‘임시임명’ 하거나 차후 ‘정식임명’되도록 주선할 것을 암시하여 자진 협조하도록 할 것.
? 포섭자 중 생활이 곤란한 자에 대하여는 금전과 기타 이권으로 매수할 것.
? 포섭자 중 경찰의 취조대상자에 대하여는 위협과 회유로서 포섭하도록 할 것.
? ‘야당 극렬분자’ 는 공공연하게 접근하여 자유당이나 경찰과 내통한 것처럼 선전하여 동지들에게 ‘친경분자나 변절자로’ 의심을 사도록 유도하여 자기 스스로 도태되게 할 것.
? 민주당 참관인이나 선거위원의 매수가 불가능할 시에는 선거 당일 직계가족의 사망전보를 쳐서 귀가토록 할 것, 이에 각 기관과 협조하여 각 기관별로 대책을 수립, 실천 할 것.
? 경찰은 전 경찰력을 선거에 투입하고 미리 비협조 공무원을 숙청하며 전직 경찰관을 ‘동장’ 과 ‘이장’ 등에 임명하여 선거 반을 편성할 것.
? 야당의 선거자금유입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하여 ‘외국공관’ 및 ‘외국 정보원’의 동향을 사찰할 것.

? 야당 운동원에 대한 행동억제를 위하여 경찰관의 근접감시 정보원을 통한 미행, 자유당원 및 반공청년단원을 통한 미행, 일가친척과 친구를 통한 충고와 감시를 실행할 것.
_본문 중에서


하지만 치밀함을 다했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조차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선거 당일 계산된 전체 투표율은 94.3%였는데 개표를 진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만과 이기붕의 표가 각각 전체 유권자의 120%를 넘어서 버리는 코미디가 발생한 것이었다. 3·15 선거가 얼마나 지독한 부정선거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급해진 자유당은 전국의 개표소로 전보명령을 하달하였고 개표소에 있던 자유당원과 경찰들은 소중한 한 표라 일컬어지는 국민들의 투표용지를 부랴부랴 건물 뒤편으로 가져갔다.
증거가 남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불로 태우거나 화장실 변기 속으로 쏟아 붇기 위함이었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 완벽하게 말살 당했던 1960년 3월 15일. 민족의 대통령과 부통령선거였다.
_본문 중에서


아무리 열렬한 반공주의자라 할지라도 이 대통령 치하의 한국의 반쪽을 자 유세계의 일부라고 말하려면 다소 숨이 찰 것이다. 이번 선거가 국민의 의사 표시라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대접보다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독재적 통치의 대가로는 인플레이션은 어찌하여 되었고 추수는 다행히 조금 나아졌으며 산업은 경제에 약간의 생기 를 불어넣었다 하나 이런 것들을 위하여 치른 대가를 생각할 때 국민으로서 는 아직도 한참 밑지는 흥정이다. 공산주의자들이 공격을 한 이래 10년이 지 나갔다. 아시아의 여타정부들은 변화했고 그 변화는 환영을 받아왔다. 한국 만이 불행한 부동 상태에 억류되어 있다. 한국에서 3월 15일 선거가 실시되기 전에 야당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할 정부의
지시를 알아냈다고 폭로하였다. 만일 그들의 주장의 4분의 1이라도 사실이라면 이번 대통령 선거는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만일 이 박사가 유권자의 의사를 아는 것보다 승리 확보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 차라리 통일아랍공화국이나 북한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된 선거를 솔직하게 실시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인이 된 사람들이 살아 있기라도 했을 것이다. 야당이 반격할 그 힘만이 한국의 유일한 희망인 것 같다. UN이 한국의 남북한 통일 방안으로 마음먹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거’는 북한에 더하여 남한에서조차 실시할 수 없으므로 머나먼 일 같아 보인다.
_본문 중에서


지금 듣기는 마산폭동이 거반 정돈이 되어서 철모르고 덤비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 정돈이 되어가게 된 것을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국내외에서 들어오는 소식에 의하면 마산에서 일어난 폭동은 공산당이 들어와 뒤에서 조종한 혐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공산당의 선전에 속아서 이런 일을 한다면 가증가탄(加增可歎)할 일인 것이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또 선동하여 난동을 하다가 필경 이러한 불상사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것을 우리가 그냥 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정치욕 만으로 이런 일을 또 만들었으니 몰지각한 사람들이 밖에서 선동하는 것만 듣고 공산당의 선전에 놀아나는 것을 각오를 시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일 주의하여야 할 것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꾀어가지고 선동을 해 나가는 것인데 이것은 첫째로 그 부모들이 자식들을 방임한 책임이 있는 것이니 앞으로는 그렇지 않도록 각오하고 다시는 이런 일에 참석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과거 전남 여수에서 공산당이 일어나서 (여수 순천 항명사건 또는 여수 순천 반란사건)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 때에 조그만 아이들이 일어나서 수류탄을 가지고 저의

부모들에게 까 던지는 이런 불상사는 공산당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외국 기자들도 말하였지만, 공산당이라는 것은 부모도, 어른도, 아이도 모르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자행자지하며 이렇게 하는 것을 오히려 잘하는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난동을 일으켜서 결국 공산당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일이 없도록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노력해서 만전을 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_본문 중에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사는 고리타분한 갈등의 소재거리로 전락하였다. 특히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주입식교육과 무한경쟁 그리고 스팩 쌓기에 뒤돌아 볼 틈 없어진 젊은 세대들의 현실적문제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급속도로 잊혀지거나 왜곡되어져 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투표권에 있어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그 사실을 반증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의 역사이며 독재자가 유린했던 국민주권에 대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선거권이란 수많은 선배들의 피와 희생을 바탕으로 손에 쥐어진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1960년 4월이 외치던 “만약 선거에 있어서의 부정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서 선례를 남긴다면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명확한 상식을 후대가 가질 수 없다.” 라는 상식과 그로 인하여 발생했던 희생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_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괴물이 된 권력』을 출간하면서 ‘인간의 존재가치는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책을 읽은 것인가? 우리가 책을 출판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책이라는 기록물을 통해 무엇을 남겨주고자 하는 것인가? 책을 출간하는 동안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게 되었다.

『괴물이 된 권력』은 분명히 4·19 혁명의 전 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그것이 먼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게 해주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질문을 만들어주는 책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저자 이남일은 권력자의 욕심이 부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면, 그것이 국가라는 존재를 얼마만큼 괴물로 변모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인지를 현대사의 기록을 통해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4·19혁명이라는 소재를 통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왜 투표장에 나가 신성한 국민주권을 행사해야 하는지까지 역동적으로 설득시킨다.

역사를 통틀어 중요한 시대가 어디 있고,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을까 마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사건은 존재한다. 최소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국가역사에서만큼은 4·19 혁명이라는 사건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4·19 혁명의 과정과 정신이 우리 민족에게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확고하게 만들어 준 최초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들은 봄에 집중되어 있다. 3월 1일을 시작으로 4·19 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6·29 민주화선언까지 이어지며, 현대사의 기록들이 국민들에게 한 해를 시작하는 봄에 민주주의를 상기하라 유도시킨다. 이제 국가의 무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 4월 16일 세월호 사건까지 추가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의무로서 한 권의 책을 읽고자 한다면 ‘괴물이 된 권력’을 추천하고 싶다.

추천평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경찰의 총탄에 피 흘렸던 장본인으로서 아직도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혁명의 전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이남일 선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책을 통해 4·19혁명이 전하는 자유·민주·정의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이영민 4·19 민주혁명회 사무총장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실 그대로의 역사교육은 절실함으로 다가옵니다. 더욱이 4·19혁명 55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이남일 선생이 써 내려간 ‘괴물이 된 권력’은 역사에서 다시 오늘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남일 작가님의 ‘괴물이 된 권력’ 출간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생생한 기록과 사진으로 4·19 혁명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입니다.
- 김준현 경기도의원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현대사를 올곧게 가르치는 것이 참 소중한 일임을 일깨워준 좋은 책입니다.
- 황윤길 김포서초등학교 교사

4·19 혁명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면서도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집필을 마치신 이남일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자료 수집부터 탈고까지, 이 책에 그간의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만큼 명실상부 근현대사의 진실을 알리는 역사서가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 신명순 시의회 부의장

역사는 오늘을 있게 한 뿌리이자 미래를 열어나갈 원동력입니다. 이런 점에서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을미년에 이남일 선생이 써내려간 ‘4·19혁명’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역사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근거이자 미래의 좌표라는 인식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면 합니다.
- 정왕룡 시의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인 4·19 혁명에 대하여 최근 이처럼 자세하게 기술된 역사서가 존재하였던가? 4·19 혁명 완결판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 백효선 통폐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