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7.한국현대소설

하이라이프 (2024) - 한국단편소설

동방박사님 2024. 3. 3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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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금정연 추천사)
망해가는 세상, 과연 무엇이 ‘최고의 삶’인가
독보적인 문제의식과 날카로운 시각
리얼리스트 김사과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초상

2000년대 출현한 가장 새로운 가능성으로 불리며 어떠한 계보도 따르지 않는 신선하고도 놀라운 작품을 발표해온 소설가 김사과가 『더 나쁜 쪽으로』 이후 7년 만에 세번째 소설집 『하이라이프』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 특유의 독보적인 문제의식과 당대를 읽어내는 기민함이 돋보이는 단편소설 아홉편을 묶었다.

더 나쁜 쪽으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망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적인 희망을 이야기했던 소설가 김사과가 이번에는 독자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묻는다.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어떤 인생의 양태가 ‘최고의 삶’인가를 묻는 동시에 환멸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망해가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허위를 읽어내되 한가닥 희망을 잃지 않는 끈기, 그 불균형과 안간힘 사이에 놓인 김사과의 작품은 지금 이 시대의 위태로운 징후를 예리하게 묘파한다.

목차

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귀신들
하이라이프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두 정원 이야기
♡ 1 0 0 4 7 9 ♡
소유의 종말
벌레 구멍
몰보이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 

저 :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N. E. W.』 『바캉스 소설』,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헨리 제임스』(근간)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결국 도시란 영원히 이어지는 실험을 위한 장소. 이 끝없는 실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실험은 이어지는 걸까?

물론 고통.
---pp.8-9 「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중에서

세상에 대해 정직하게 묘사하려고 했을 때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결과물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걸신들린 귀신들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세상은 우습다. 하지만 절대로 웃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p.24 「귀신들」 중에서

그는 아주 간단하게 그들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 할 일 없는 그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가열찬 도시의 일꾼인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굉장히 올바른 묘사이다!

그는 자신을 이 도시의 진정한 일꾼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부지런히 꽤 많은 돈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진정한 일꾼은 나와 같은 소비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라!
---p.61 「하이라이프」 중에서

그녀의 독특한 웃음, 묘하게 유혹적인, 엉뚱하게 선머슴 같은 순진한 표정과 반대로 수상하게 반짝이는, 상상 속의 일본 미니멀리스트 패션 브랜드의 뮤즈 같은, 납작한 검은 눈동자와 통통한 입술, 핑크빛 팔꿈치……

아아 그녀는 정체불명의 열대 해변 같은 향기를 풍겼다. 이수영은 한비가 적어도 세 종류의 향수를 섞어 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몸에서 나는 향이 뭐야? 나는 전혀 모르겠는걸……’ 하고 속삭이는 미스터리한 열대 과일 같은 …… 도대체 저 생명체의 정체는 뭐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왜 굳이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거지? 도대체 뭐가 되어가는 중인 걸까? 진화일까 아니면 퇴화일까? 이수영은 궁금해졌다. 그녀를 거기에 이르게 한 그녀의 창조자, 커튼 뒤의 진짜 얼굴, 그러니까 진실을 말이다.
---p.117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중에서

안 본 사이 윤은영은 가장 세련된 2020년대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즉 에코주의는 그녀의 핵심가치였다. 언제 어디서나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한 수 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전기자동차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빌 게이츠가 얼마나 인류를 사랑하는지, 그레타 툰베리가 얼마나 영웅적인 인간인지 그녀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떠들고 다녔으며, 그런 사회적 관점의 정당성은 명품 신발과 에코백을, 파타고니아의 합성섬유 점퍼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실크 블라우스를 감각 있게 매치하는 것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윤은영이 커다란 별이 새겨진 스타벅스 리저브의 값비싼 텀블러를 손에 든 채로 잿빛 전기 표범을 닮은 테슬라 전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대단한 스펙터클이었다.
---pp.159-160 「두 정원 이야기」 중에서

사진 밖의 나를 누가 기억하지? 넌 기억나니?
난 안 나. 사진 밖의 너란 존재, 나에겐 귀신보다도 낯설어.
사진이란 정말로 신기함. 옛날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영혼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이따금 들지 않니? 난 들거든.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렇게나 많이 사진에 찍혀버렸으니까 영혼이 완전히 닳아 없어졌겠네?

없는 거야, 우리의 영혼은.
---p.189 「♡ 1 0 0 4 7 9 ♡」 중에서

그가 두살이던 2025년 유례없는 위기가 인류를 덮쳤다. 전쟁, 하이퍼인플레이션, 전염병, 대기근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다시는 과거의 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혁명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실세계에 어떠한 악영향도 끼치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의 삶을 최소화한 채 원하는 삶을 가상현실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으며 임대주택에서 살아간다. 가상현실은 위기 직전이었던 2024년의 현실과 유사하게 세팅되었다. 그곳에서 모두가 행복한 현실을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그때의 방식으로 말이다. 마음껏 돈을 벌고 무한정 소비하고 아무렇게나 사랑에 빠지는 삶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사악하고, 폭력적인, 고통으로 가득한 과거 멍청한 인간들의 삶을 말이다. 모두가 최대치의 욕망을 향해 광기 어린 포즈로 다가가던 바로 그때의 사람들처럼, 스스럼없이 스스로의 야만성을 극대화하는 데 온 인생을 바치던 미개한 인간들의 삶을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pp.201-202 「소유의 종말」 중에서

그래, 잊자, 전부 잊고, 날자,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자,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이해한다고 말하지도 말자, 죄다 거짓말이잖아, 죽이고, 짓밟고, 비웃고 싶다고 말하지도 말자, 진심이라니 너무 민망하잖아, 근데, 네가 지금 이 도시에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잖아?
---p.227 「벌레 구멍」 중에서

최근 몰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들은 길을 잃고 싶어서 몰에 온다는 것이다. 스피드광의 은밀한 판타지가 치명적인 교통사고인 것처럼, 몰에 중독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몰에서 영원히 길을 잃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243 「몰보이」 중에서

출판사 리뷰

현대사회의 세태, 현대인의 판타지를
냉철한 시각으로 꼬집는 아홉편의 이야기

마치 연작처럼 읽히는 이 아홉편의 작품은 완전히 망해가는 나머지 인간조차 아니게 된 존재들이 등장하거나(「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귀신들」), 중산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현대인의 판타지를 꼬집거나(「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두 정원 이야기」), 환상적인 설정을 활용하여 현대사회의 현실과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내용(「소유의 종말」 「벌레 구멍」 「몰보이」)이 주를 이룬다.

표제작 「하이라이프」에는 코카인을 쉴 새 없이 흡입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상류층이 등장하는데, ‘high life’는 상류층의 삶을 뜻하는 동시에 마약을 하고 환각에 취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마약에 취한 채로 시시각각 많은 것을 부지런히 소비하며 이리저리 도시를 걷는 이 마약중독자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이 도시의 진정한 일꾼”이라고 말한다.

‘도시’는 김사과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만큼 작품 곳곳에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쥐새끼들을 위한 최상의 천국”인 이 “도시에 완전히 중독되었다”라는 신랄한 문장으로 책의 포문을 열 정도이다. 작가는 인간이 ‘비행기’와 ‘택시’ 안에서 이동하는 사이 창밖에서는 세계가 망가져 신음하고, 그 소리가 차단된 이동 수단을 통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당신은 영혼을 조금씩 잃어”가고 “그것이 바로 교환”이라고 지금의 현실을 진단한다. 하여 도시는 오직 “비행기와 택시의 좌석 뒤쪽에 달린 조그마한 스크린”(「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속에 존재할 뿐이다.

비교적 상징적으로 읽히는 처음 세편을 지나면 작가의 리얼리스트적 면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극점을 통해 계급을 보여주는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그리고 고급 아파트라는 배경을 통해 중산층의 욕망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두 정원 이야기」이다.

「두 정원 이야기」에 등장하는 같은 아파트 주민 ‘절약의 화신’ 김은영과 ‘소비의 화신’ 윤은영은 상반되면서도 본질은 똑같은 중산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쌍둥이 같은 인물이다. “올 샤넬”로 치장한 윤은영은 “파타고니아의 합성섬유 점퍼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실크 블라우스를 감각 있게 매치”하며 ‘에코주의’를 자신의 핵심가치로 선전하는 “가장 세련된 2020년대의 인간”이다. 김은영은 그런 그녀가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지만 어느 동네의 무슨 아파트가 사회의 신분 지표가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고급 아파트에 입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 그녀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르냐고,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있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에는 김은영과 윤은영의 대학 시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게 읽힐 만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현실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이수영과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한비이다.

이수영의 주위에는 그녀의 부모를 포함하여 자신처럼 적당한 불만족 속에서, 적당한 망상과 적당한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한편 한비의 주위에는 그녀의 부모를 포함하여 어딘가 황당한 꿈을 품고 둥둥 떠서 살아가는 비현실적인 인간들로 가득했다.(97면)

수영은 그런 한비의 모습에 끌려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하며 시인이 되지만 종내에는 예술가라는 명분이 만들어낸 높은 이상 때문에 부모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실업자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인물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계급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촘촘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은 김사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서늘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한편 인스타그램 시대 젊은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 1 0 0 4 7 9 ♡」,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종말하고 만 미래사회를 그리는 「소유의 종말」,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웜홀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되는 「벌레 구멍」, 쇼핑몰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몰보이」는 매력적인 설정과 강렬한 에너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한가닥 구원을 찾기 위한 안간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는지, 그 현실을 곧 터질 듯한 분노의 에너지로 날카롭게 직조하는 소설가 김사과. 하지만 그는 당대를 직시하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되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희망을 놓은 적이 없었다. 비록 “아직 확정되기 직전의 바로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몰보이」) 영원히 바라는 방식으로 꿈꾸는 희망일지라도, 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힘과 끈기를 잃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가닥 구원을 찾기 위한 김사과식 안간힘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추천평

한때 나는 김사과가 폭탄보다 커다란 소리로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망해가는 걸 경고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혹은 이루어지지 않기를 소원하며 쏟아내는 절망적인 예언처럼. 돌아보면 나는 다만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면 내 안의 소란에 귀를 막고 있었거나. 이제 나는 안다. 김사과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 우리의 안팎에서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굳이 따지자면 그것이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라는 사실을 충격이 아직도 중요하다면 말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현실’만큼 무섭고 또 우스운. 망해버린 세상에서 지나치게 오래 살아남은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때 누군가 내게 2020년대의 한국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공연히 시간 낭비하지 않고 먼지 덮인 도서관을 뒤져 그에게 이 책을 건넬 것이다.
-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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