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한국간호인물열전 (2024) - 10인의 인물로 본 한국 간호의 역사

동방박사님 2024. 5.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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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간호인들의 역사는
굴곡진 한국사 그 자체였다


이꽃메 상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가 정리한 한국 간호인의 역사. 개항 이후 조선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해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맡기기 위해 이와 관련된 훈련과 교육을 진행했고, 여기에는 환자의 간호가 포함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간호직은 교육이 강화되고 역할이 분화되면서 전문적 업무가 되었으며, 오늘날 간호사의 원조라고 할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간호사가 배출되었고, 이 책에서는 그중 10인을 선정해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간호사’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를 시작으로, 단재 신채호의 부인이자 산파였던 박자혜, 최초의 여성 공산당원 정종명, 모자보건사업의 개척자 한신광, 최초의 간호유학생 이금전, 대한민국 제1기 간호장교 조귀례, 마취 간호의 혁신을 이끌어낸 박명자, 과학적 연구와 실무발전을 연결한 박정호, 간호사 출신 보건소장 이순남까지 20세기 초에서 21세기 초까지 활동한 간호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한국 보건의료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다.

지은이는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간호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선택이 그 개인의 삶과 간호, 나아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전하는 동시에 이들의 삶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 시대와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근현대와 간호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목차

머리말

1장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 한국 최초의 간호사들
2장 박자혜: 궁녀, 간호부, 산파, 그리고 독립운동가
3장 정종명: 가장 유명한 산파이자 최초의 여성 공산당원
4장 한신광: ‘간호부’를 알린 모자보건사업의 개척자
5장 이금전: 최초의 간호유학생이 걸어간 지도자의 길
6장 조귀례: 대한민국 제1기 간호장교
7장 박명자: 실무, 행정, 교육을 넘나든 봉사자
8장 박정호: 비판적 사고, 연구, 실무 발전의 연결
9장 이순남: 자기 성장과 함께한 보건간호 40년

저자 소개

저 : 이꽃메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근대간호사』(2002), 『간호의 역사』(공저 1998),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공저 2008), 『지역사회보건간호학』(공저 2017) 등을 저술하였다.

책 속으로

1876년 개항 이후, 다양한 외국인이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본인이 가장 많았으며,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등에서 온 서양인도 있었다. 외교관이 아닌 서양인은 대개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입국했지만 조선 정부에서는 직접적인 선교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한 서양인은 대신 의료사업을 통해 한국인과 조선 정부의 호감을 얻고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남녀 간에 내외하는 문화와 생전 처음 보는 서양인에 대한 거부감이 겹쳐 남성 서양인 의사가 여성 한국인 환자를 치료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에서는 서울에 여성 전용 병원을 운영하기로 하고, 1887년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 1862~1930)를 파견했다. 하워드는 서울에 도착해 정동의 이화학당 구내에서 여성 환자를 보다가 곧 한옥 건물을 이용하여 여성병원을 시작했다. 조선 왕실에서는 이 병원에 ‘보구여관’, 즉 여성을 편안하게 치료해주는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내려서 격려했다.
---「1장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중에서

기사 중에 “간판은 비록 산파의 직업이 있는 것을 말하나 기실은 아무 쓸 데가 없는 물건으로 요사이에는 그도 운수가 갔는지 산파가 원체 많은 관계인지 열 달이 가야 한 사람의 손님도 찾는 일이 없어 돈을 벌어보기는커녕 간판 붙여 놓은 것이 도리어 남부끄러울 지경”이라는 문장이 있다. 정말 여기에 쓰인 대로 산파가 많아서 박자혜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까?

전근대 조선에서 출산은 주변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치르는 여성의 일이었다. (…) 개항 이후 분만이 무사히 이루어져 인구가 증가해야 부국강병해지므로 출산을 돕는 산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고, 1910년에는 사립 조산부양성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산파제도를 시작했는데,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본인 산파의 수도 늘어났다. 정상분만의 경우 산파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은 여전히 있었지만, 출산 자체가 많았고 난산도 많았던 만큼 산파에 대한 수요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2장 박자혜」중에서

박명자는 1956년 3월 31일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전역하고 곧바로 4월 1일 자로 서울대학교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출근해 보니 2개 수술실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군에서 선진 의학지식과 의료기술을 익힌 박명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환자 가족이 수술실에 들어와 수술을 참관하는 것이 허용될 뿐 아니라, 평상복과 신던 신발 그대로 수술실에 들어올 정도로 무균술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박명자는 무균술을 준수하기 위해 환자 가족이 참관할 때에는 수술 가운을 착용하고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술 환자의 회복을 위해 별도의 회복실이 운영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 수술과 회복에 중요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박명자는 자비로 참관인용 신발을 사다 놓고 갈아 신도록 하는 등 무균술 시행을 확대하고자 했고, “수술실 옆의 창고 같은 방을 청소하고 침대와 이불을” 마련하고 “그곳에 환자를 눕혀놓고 회복을” 기다리는 회복실을 도입했다.
---「7장 박명자」중에서

신축병원으로 이전하면서 추구한 병원 간호의 가장 큰 변화는 간호전달체계의 개편, 즉 기능적 간호에서 팀간호로의 변경이었다. 팀간호는 병동의 간호사들이 팀을 이루고 팀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환자의 간호 요구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환자 중심의 간호를 도입해 기존의 기능적 간호보다 간호체계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전달체계였다. 그렇지만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환자에게 좋다고 해서 바로 팀간호 체계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정호는 〈종합병원에 있어서 간호의존에 따른 간호인력 수요추정에 관한 조사연구〉(1975), 〈간호과정에 의한 간호시행 및 평가〉(1976),15 〈종합병원의 간호인력수요〉(1977) 등의 연구를 통해 팀간호 및 일차간호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박정호는 이에 더해 구체적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기존의 기능적 간호와 팀간호, 그리고 일차 간호를 비교하는 연구를 계획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간호전달체계를 간호단위별로 하나씩 채택하여 6개 병동에서 시범운영하면서 대상 간호단위의 환자, 간호사, 담당 레지던트 및 교수 등에게 시범운영 전후로 평가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기능적 간호보다 팀간호와 일차간호가 우수하다는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병원 강당에서 개최했고, 팀간호와 일차간호를 적용하기로 결정되었다.
---「8장 박정호」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 간호 역사 100년,
환자 곁에는 언제나 간호사가 있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몸살을 앓을 때 국민들은 숙련된 간호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돌봄’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오늘날, 간호사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간호인물열전》은 이처럼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간호사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개항 이후 조선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해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맡기기 위해 이와 관련된 훈련과 교육을 진행했고, 여기에는 환자의 간호가 포함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간호직은 교육이 강화되고 역할이 분화되면서 전문적 업무가 되었으며, 오늘날 간호사의 원조라고 할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간호사가 배출되었고, 이 책에서는 그중 10인을 선정해 소개한다.

지은이 이꽃메 상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간호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선택이 그 개인의 삶과 간호, 나아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전하는 동시에 이들의 삶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 시대와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근현대와 간호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독립운동가, 공산당원, 군인…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해온 간호인들

이 책은 ‘한국 최초사의 간호사’로 언급되는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를 시작으로, 단재 신채호의 부인이자 산파였던 박자혜, 최초의 여성 공산당원이자 가장 유명한 산파였던 정종명, 대한민국 제1기 간호장교 조귀례 등 한국 근현대기 시대의 부침과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해온 간호인을 조명한다.

남편의 폭력에 코와 손가락이 잘린 채 보구여관에 환자로 들어왔던 김마르다와 어느 집안의 노비였다가 병에 걸려서 내쳐진 이그레이스는 전근대 가부장제의 폭력과 신분제의 그늘에 희생당한 피해자였다. 이들이 보구여관 환자에서 간호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시대가 이행하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조선 왕실의 궁녀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원의 간호학생을 거쳐 산파가 된 박자혜는 독립운동가의 부인이자 그 자신도 열혈 독립운동가였기에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극심한 경제적 궁핍을 견뎌야 했다. 여자고학생상조회, 여성동우회, 근우회, 신간회 등의 사회조직을 만들고 대중연설가로 이름을 떨쳤던 정종명은 조선여성의 억압적 현실과 계급혁명에 골몰했던 사회주의운동가로서 해방 이후 북한으로 갔으며, 그 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제 말 경성제대에서 간호교육을 받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 제1기 간호장교가 된 조귀례는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견뎌야 했고, 종전 후에는 간호인력 파독 사업을 담당하는 등 한국사회의 격변기를 몸소 겪은 인물이다.

지은이가 간호인들이 간호교육을 받고 간호사로 살아간 경험뿐만 아니라 삶 전반을 포괄적으로 그려냈기에 이들의 삶에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부 출범, 한국전쟁, 종전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과 변화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간호교육 일원화, 분야별 간호학 연구 등
한국 보건의료와 간호의 개혁과 발전에 앞장섰던 간호인들

간호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보건의료의 변화가 보인다. 보구여관, 조선총독부의원, 세브란스병원, 동대문부인병원 등 의료기관과 간호교육기관이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했으며, 의료와 간호에 관한 법과 제도도 변화해 왔다. 책 전반에는 ‘간호부’, ‘산파’, ‘간호원’, ‘조산원’, ‘간호사’, ‘조산사’ 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는데, 시대에 따라 그리고 법과 제도에 따라 간호·조산 관련 면허 소지자에 대한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간호인들은 보건의료의 변화와 발전의 적극적인 협력자이자, 스스로가 변화와 발전을 주도한 개척자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모자보건사업을 시작했던 한신광은 조선인 간호사들의 조직인 조선간호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보건의료 지식을 전파하는 대중강연을 통해 ‘간호부’라는 직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한국 최초의 간호유학생 이금전은 해방 후 보건의료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간호 조직의 안정화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한국 현실에 적합한 간호학 교재인 《보건간호학》을 출간하는 등 평생을 간호계의 전문가이자 지도자로 살았다.

20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박명자, 박정호, 이순남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간호사의 모습을 만든 주역이다. 박명자는 한국전쟁기에 익힌 수술과 마취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마취간호의 확대와 회복실 도입 등의 개혁을 이끌어냈고, 고려병원의 초대 간호관리자로 활동하였다. 더불어 방송통신대학교의 간호학과 개설에 기여하여 간호교육의 일원화를 촉진하는 등 그야말로 실무, 행정, 교육을 넘나들며 간호의 발전에 헌신한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제1회 입학생인 박정호는 서울대학교병원 간호행정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병원 물품관리와 사용 등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의 개선과 변혁을 주도했다. 기능적 간호에서 팀 간호로 간호전달체계를 전환하고, 병문안 시 과도한 화분과 화훼의 반입을 금지한 것도 환자 중심의 간호를 원칙으로 박정호가 이끌어낸 변화다.

한국사회에서 세 번째로 간호사 출신 보건소장이 된 이순남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부터 보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보건사업이 확장되고 변화되는 현장을 지켜온 인물이다. 보건사업이 질병관리 중심에서 건강증진사업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양주시 보건소장으로 활동했던 이순남은 지역 주민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한방의료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선도적 사례를 제시하며 주민의 건강과 보건간호사업의 발전에 기여했다.

한국 간호인들의 역사는
굴곡진 한국사 그 자체였다

20세기 초에서 출발해 21세기 초까지 이어진 간호인 10인의 삶은 각 인물이 살아간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면서 한국 근현대의 굴곡과 변화와 발전, 한국 간호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준다. 이들 간호인은 모두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었지만 각자의 삶에서 어려움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삶에 주어진 선택은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의 선택이 각자의 삶은 물론이고 시대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 세기에 걸친 간호인들의 삶의 연결로 드러난 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 간호의 역사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