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2.강화.인천

영화학교

동방박사님 2016. 6. 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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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초등학교 (영화학교)

2007년 9월 1일 현재 인천의 학교 수는 초등학교는 공립 215개교. 사립5개교. 국립 1개교로 합계 221개교 이고, 중학교는 공립108개교. 사립11교로 합계 119개교이며, 고등학교는 공립73개교. 사립31개교 . 국립1개교로 합계 105개교이다.여기서 특수학교 6개교, 고등 기술학교 2개교, 각종학교 1개교를 더하면 총454개교에 이른다. 인천에 이렇게 많은 학교가 있나 하고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나  이는 인천이 수도권에 위치해 중요 지역으로 전입 인구가 많았도 인천의 광역화로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돼 온 결과다.


선교와 근대교육

인천의 변화와 성장은 인천의 개항과 밀접하다. 인천은 강화도 조약 체결로 부산, 원산에 이어 1883년 개항되며 외세의 각축장으로 변모됐고  한편으로는 갖가지 새로운 서양문물이 유입되는 첫 관문이 됐다. 이로 인해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수많은 기록을 가진 곳이 되었고, 교육 분야 또한 그 중의 하나이다.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교육사업과 의료활동을 전개 했는데, 이는 인천지역 근대교육의 시발점이 되었다. 즉 내리교회의 미국선교사 존스목사는 1893년 3월12일 영화학당을 설립해 남학생들을 교육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로 기록 된다.

영화학교의 초창기 명칭은 1904년 세워진  교사의 현판에 "BOYS< DAY SCHOOL"로 기록돼 있는것으로 보아 "매일소년학교" 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永化)라는 이름은 안골예배당 (내동예배당)  건물을 빌려 수업하던 영화학당시절에 한문을 가르치던 박용래가 지은 것으로 영(永)은 영생(永生)을 의미하고 화(化)는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기독교신앙에 바탕을 둔 이름이다.


근대여성교육의 시작

한편, 1892년 4월30일 존스목사의 부인 (Mrs GEORGE HEBER JONES ) 또한 자기 집에서 한 명의 여아를 데리고 신식교육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현재 영화정보산업고등학교와 영화초등학교의 전신인 영화여학당의 시작이었다. 영화여학당은  1900년 4월2일 존스 여사의 집에서 안골예배당의 뒷방으로 옮겼다. 이때 학생은 7명이었다.1902년에는 미국인 카루렌이 희사한 돈 1천 달러를 희사해 싸리재의 학당 대지와 교사를 팔고 합처서 (쐬뿔고개: 현창영동)에 대지 1천226평 을 구입하고 2층교사를 1911년 건축했다. 현재 영화초등학교 본관은 초기건축에 1954년 건물 출입부 돌출부분을 증축한것 이외에는 원형이 그대로 잘 남아 있어 인천시 지방 유형 문화재 39호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