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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의 내한선교 - 파주 용미리 동방정교회

동방박사님 2018. 11. 16.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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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파주 용미리의 동방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의 내한 선교

  서울 정동지역 기독교 역사유적을 답사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신선하게 여기는 답사 코스가 바로 '구 러시아 공사관'이다.  캐나다 대사관과 예원학교의 사잇길로 제법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숨은 듯 서 있는 옛 러시아공사관의 동쪽 탑신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위용을 아쉬운 듯 증언하고 있다.

  서울의 구 러시아공사관은 1884년 7월 조로(朝露)수호조약이 체결되고 한말 우리나라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웨베르가 정동 15번지 언덕에 넓은 부지를 마련하고, 1890년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을 고용해서 당시로서는 가장 화려하고 큰 르네상스식 석조건물을 건축했다. 사바틴은 인천 제물포의 해관청사 건물을 비롯, 세창양행사옥, 제물포구락부, 만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 등을 건축하였으며, 서울에서는 러시아공사관과 손탁호텔을 비롯해 덕수궁의 첫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重明殿)과 석조전, 정관헌을 건축했다. 탑골공원과 독립협회가 주도해 건축한 '독립문(1897)'도 그의 작품이었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정치적 위기에 놓였던 고종은 1896년 결국 친러파의 계획속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성공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통해, 이 곳으로 옮겨와 1년간 거주하면서 친일 김홍집 내각을 파하고 새로운 내각을 수립,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새로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러시아 공사관이 교회사와 관계된 역사적 연결고리는 무었일까? 바로 '러시아 정교회'이다.  구 러시아공사관의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동쪽 탑 신부분이 사실은 공사관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정교회의 흔적이기도 하다.


  '정교회(正敎會)'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생경하고 낮선 이질적인 교회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주로 로마 카톨릭과 장로교나 감리교, 성공회 등으로 대변되는 개신교에만 익숙한 한국기독교 상황에서 정교회는 '혹시 이단아냐?' 라고 질문하기 쉬운 여가적 배경을 분명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 정교회는 세계교회사 속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정통교회이다.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열을 통해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서유럽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장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카톨릭과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등의 개신교파 들은 모두 이 '서방교회' 전통에 속한다.

반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동유럽과 발칸반도, 러시아, 소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떨치던 동방교회는 훗날 이슬람을 앞세운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왔으며 독립적으로 정교회 신학과 전통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러시아였다. 그런데 이러한 러시아의 정교회가 왜 한반도에서는 캐톨릭이나 개신교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1904~1905년에 걸친 러일전쟁 패배로 러시아가 일본에 의해 한반도에서 축출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는 애초부터 그 정치적, 권위주의적인 특성으로 인해 한국 선교과정에서 내한 선교사들의 강한 경계를 받았다.  또 아관파천 이후로 득세하는 러시아와 친러세력을 등에 업고 빚어지는 교폐(敎弊)문제도 심각했다. 1901년 정교회 교인을 자처하는 한국계 러시아 여인 '정길당'이 수하 양규태, 안종학 등의 한국인 '어깨'들을 거느리고 충청도 일대를 다니며 행패를 부리고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 형벌을 가하면서 자신들은 정교회 선교를 수행하는 자들이라고 십자가를 앞세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천주교 일부 신부들과 신자들 사이에도 드러난 모습이었는데, 프랑스, 러시아 등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들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기독교'의 전형을 잘 드러내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렇게 정교회가 한국사회 내에서 인심을 잃어가던 차에 러일 전쟁의 패배는 정교회의 한국선교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1917년 볼세비키혁명은 러시아정교회가 더 이상 한국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지 않았다. 러일전쟁 이후 정교회와 한국의 새로운 만남은 6.25 전쟁 당시 이루어졌다.  UN연합군 파견국가중에 그리스정교회 종군 신부가 다시 활동하면서 꺼져가던 정교회 선교의 불꽃이 살아났다. 하지만 정동의 옛 건물이 6.25전쟁의 포화로 유실되고, 많은 어려움 중에 교세를 확장해 나가다가 1968년 지금의 마포 애오개 언덕에 새로운 성당을 세우고 옮겨가게 되었다. 현재 한국정교회는 서울을 비롯해서 부산, 인천, 전주, 춘천, 울산, 파주, 가평 등지에 성당이 설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