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5.서울역사박물관

붉은 벽돌의 집 딜쿠샤

동방박사님 2019. 3. 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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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마음의 궁전 딜쿠샤 (1923~1942)

메리L. 테일러는 평소 한양도성의 성곽을 따라 산책하면서 발견한 은행나무 아래에 집을 짓기 원했습니다.

이 자리는 권율 장군의 집터로 알려져 왔으며, 커다란 은행마무로 인해 행촌동으로 불리었습니다. 일제가 남산에 있는 조선신궁보다 높은 곳에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하여 집의 위치는 일제에 의해 결정 되었습니다. 1922년 테일러 부부가 토지를 매입할 당시 주변에 까치샘과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이를 신성시하는 인근 주민들과 불화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1923년 착공하여 1년만에 완공된 이 가옥에 " 딜쿠샤 DILKUSH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틸구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마음의 궁전" 이라는 의미이며, 메리L. 테일러가 인도 북부 러크나우를 여행할 당시 관심깊게 본 궁저의 이름 입니다. 정초석에는  "DLKUSHA 1923 PSALMCXX (시편 127정 1절 을 새겼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가옥이 완공된 1923년 봄부터 거주 하였다.




대경성부대관 1936년

대경성부대관에 표시된 딜쿠샤의 위치이다.


붉은 벽돌의 집 딜쿠샤

딜쿠샤는 지하1층, 지상 2층의 건물입니다. 화강석을 다듬어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올렸습니다. 건물 양쪽은 박공지붕을 한 날개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테일러부부는 뚜렸한 사계절의 날씨를 지낼수 있는 집을 원했습니다. 여름더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외벽에 여러개의 아치형 유리 창문을, 겨울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1,2층에는 벽난로를 설치하였습니다.

1층은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거실, 방, 주방 등이 배치 되어 있었습니다. 1층 거실은 너비가 14미터 였으며, 벽은 황금색 페인트로 마감하였습니다. 건물 동편에는 식당, 서편에는 게스트 룸이 있었습니다. 거물 2층에는 1층과 마찬가지로 거실, 응접실 등이 있었습니다. 2층 응접실은 채광이 좋았고, 테일러부부의 골동품 및 수집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동편에는 앨버트의 서재와 욕실, 서편에는 메리의 화실과 침실이 있었습니다. 지하실은 장작과 석탄, 포도주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 하였습니다.


딜쿠샤 건설 전 행촌동

딜쿠샤를 짓기 전 행동의 모습이다 (1922년)




딜쿠샤 내부사진 설명서

이 설명서는 메리L. 테일러가 작성하였다. 1948년 미국에 돌아온 후 그녀는 딜쿠샤와 관련된 자료를 정리 하였다.












매일신보 1926년 7월27일

"폭풍의 화재 행촌동"텔나" 씨의 집' 이라는 기사가 있다. (좌측상단) 


"브루스 테일러" 문패

앨버트 W. 테일러는 본명보다는 "브루스'라는 이름을 사용 하였다. 이 문패는 딜쿠샤 거주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0~1940년대)



딜쿠샤 서류 및 영역표시 지도

테일러 에이젼트 JK Woghn가 딜쿠샤 지도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영역을 따라 담장을 세우는 것을 요청하는 문서이다. 지도에는 딜쿠샤에 대한 경계표시와 함께 770평이라고 적혀 있다.


딜쿠샤 옆 은행나무시

조안 그린스비가 딜쿠샤 옆 은행나무에 대한 시와 나무의 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딜쿠샤 사진

딜쿠샤 내부, 서편, 뒷편의 모습과 은행나무 사진이 있다.




테일러 부부 사진앨범

딜쿠샤 외관사진이 많이 실려 있지만 이외에도 테일러 상회와 빌딩, 음첨골 등의 사진이 있다.(1917~1924년)





테일러 부부 사진앨범

딜쿠샤 외관사진이 많이 실려 있지만 이외에도 테일러 상회와 빌딩, 음첨골 등의 사진이 있다.





DILKUSHA 1923 PSALM C < 시편 127장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