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5.서울역사박물관

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

동방박사님 2019. 3. 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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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부부의 서울 생활 (1917 ~1922)

운산금강(평안북도 운산군 소재) 에서 감독관이었던 앨버트W. 테일러는 1905년경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여 직산금광 (충남-천안부근)을 매입하였고 7년간 관리인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준설기 구입을 위해 일본으로 출장 갔을때. 요꼬하마 그랜드 호텔에서 순회공연 중이던 연극배우 메리 린리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1917년 인도 봄베이9현 뭄바이) 성 토마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해 가을, 서울에 온 테일러 부부는 서대문 근방 벽난로가 설치된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19년 2월 28일 그들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고종 인산일이 있어 전국 각지에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앨버트W. 테일러는 AP통신원 자격으로 고종의 국장을 촬영하는 등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기 노력했습니다. 



결혼 발표 전보

1917년 6월17일에 메리L. 테일러 부모님에게 보내는 앨버트와 메리의 결혼발표 전보이다.(1917년)



앨버트와 메리 결혼 신문기사

테일러 부부가 인도 봄베이 성 토마스 성당에서 결혼했다는 신문기사이다. 이 기사에서는 앨버트가 광산기술자 Mine Engineer라고 소개되어 있다 (1917년)


앨버트와 메리테일러의 만남.

메리L.테일러 가문인 무아트-빅스가의 가풍은 활발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선물들이 넘쳐났습니다. 그중 호박목걸이가 메리L. 테일러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호박목걸이와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그녀는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메리L. 테일러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극단에 입단하여 순회공연을 하였고, 일본 요꼬하마에서 앨버트W.테일러를 만났습니다. 둘이는 호박목걸이를 매개로 친해졌으며, 인도 봄베이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들의 결혼은 당시 센간의 관심사였으며,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메리L. 테일러는 앨버트W. 테일러에게 금광산업과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동경과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17년 가을, 테일러 부부는 조선을 향해 출발 하였다.


테일러부부 결혼증명서

인도 봄베이 성 토마스 성당에서 발급된 것으로 앨버트와 메리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으며, 수석 사제 채플린이 확인 서명을 하였다.  


서울에서의 신혼생활

1917년 9월 테일러 부부는 부산에  입국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메리L. 테일러 에게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서울에 도착하여 서대문 근처 신혼집으로 이동 하였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이집을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ay Home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주소로 '죽첨정 2정목 187번지"이며 현재 위치는 서대문구 충정로 7길 부근 입니다. 이집은 원래 한옥식 온돌집 이었으나 이전에  살았던 외국인들이 설치한 벽난로가 있었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딜쿠샤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습니다. 호기심 많은 메리L. 테일러는 정동거리. 충무로 등 곳곳을 돌아보며 자신이 보고 느낀 서울의 모습을 기록 하였습니다.




테일러의 가족앨범

메리L 테일러가 22세 때 찍은 사진, 메리L 테일러의 가족사진 등 테일러 부부의 조선생활 초기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1910년)


한국 풍속 풍경 사진첩

1910~1920년대 조선의 풍속과 풍역이 찍힌 사진첩이다. 1917년에 조선에 온 메리L. 테일러는 이 사진첩에 실린 풍속, 풍경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0~1920년대)







인도-한국 사진 앨범

1914년 안동에서 1917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사진들이 수록 되어있다. 서대문에 있었던 The gray Home 외에고 인도에서 촬여한 사진, 일본 신혼여행 사진 등이 있다. (1914~1917)





조선에서 그린 수채화

메리L. 테일러 1924년에 조선의 풍경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1924년)

 





"벽돌과 돌로 지은 그 집의 독특한 팔각형 창문을 통해 주황색 빛이 새어나왔다.

이 집은 원래 조선의 양반이 지은 것으로 몰론 지을 당시에는 다른 집 들과 마찬가지로

바닥 밑으로 온돌을 놓았다. 그러나 후에 그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외국인들이 벽난로를 설치하면서

온돌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호박목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