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4.한일관계역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동방박사님 2021. 12. 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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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고대사와 한일교류사 분야의 권위자가 들려주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 일본 천황 아끼히또(明仁)의 모계백제설 관련 발언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끈 천황가의 혈통문제는 물론, 우리 조상들은 왜 일본으로 갔고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임나일본부설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김춘추는 왜 도일했고, 일본은 왜 백촌강에 수많은 대군을 보냈는지 등을 한·중·일의 풍부한 사료와 역사적 개연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목차

1. 천상의 나라에서 일본열도로
백제 왕실과 일본 천황가의 인연
현해탄을 건너서
임나일본부설은 어떻게 생겨났나
백제에서 벼슬한 왜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아스까 산책

2. 백촌강싸움
김춘추는 무엇을 노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는가
일본은 왜 백촌강에 2만 7천의 대군을 보냈는가
국민통합의 총본산 토오다이사
백제의 피를 받았다는 캄무천황은 누구인가
일본은 신라와 어떻게 화해했나

3. 천황이 지배하는 나라 일본
쿄오또와 경주
만세일계의 통치자
일본 고대사 산책
 

저자 소개 (

저 : 김현구 (金鉉球)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일본사를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강단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쳤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이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 경제 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 한일 관계를 풀 해법은 역사에 있음을 역설해 왔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와 지리 조건, 사회·정치·경제 구...
 

출판사 리뷰

아끼히또의 고백, 한국과 일본이 상반된 반응
얼마 전 일본 천황 아끼히또(明仁)는 자신의 예순여덟번째 생일날 이런 말을 했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캄무천황(桓武天皇)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어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캄무천황(일본의 50대 천황)의 어머니인 타까노노니이까사(高野新笠)가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淳陀太子)의 자손이라는 것을 천황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방한을 염두에 둔 발언이란 평에도 불구하고, 모계백제설(母系百濟說) 발언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양측의 반응은 판이했다. 이미 많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만세일계의 황통사상에 대한 금기 중의 금기를 천황이 앞장서서 깨뜨렸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반응은 우리의 신문기사를 인용하는 수준이었다. 한국에 대한 고대의 콤플렉스를 공론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캄무천황과 천황가의 모계백제설을 다룬 보도가 연이었고, 심지어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학문적으로 채 입증되지 않은 오오진천황(應神天皇)이나 케이따이천황(繼體天皇), 사이메이천황(齊明天皇) 등의 백제인설(說)까지 소개했다. 요컨대 어떻게 해서라도 천황가가 백제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 대한 고대 콤플렉스를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았다면, 우리는 일본에 대한 근현대 콤플렉스를 고대의 우월성을 통해 해소하려 한 것은 아닐까.

저자 김현구(金鉉球)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한일합방의 역사적 근거로 동원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언급하며, 객관적 판단의 절실함을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은 한 조상에서 갈라진 형제이므로 강제합방이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이나 천황가에 백제의 피가 섞였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범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제와 일본이 어떤 틀 속에서, 무엇을 위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일본의 ‘습관적인 침묵’과, 양은냄비 같은 우리의 ‘과장된 반응’을 모두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 책에서 1500년 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풍부한 문헌과 당시의 정세를 바탕으로 재조명한다. 특히 일본고대사와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우리의 사료는 물론 일본과 중국의 사료까지 꼼꼼하게 검토한 후 논지를 전개한다. 물론 논지 전개의 필요조건은 사료의 적합성과 역사적 개연성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료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는 일본의 사료가 조작되었다는 ‘편리한 언급’으로만 치닫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료의 비교?분석을 통해 객관적이고 타당성 높은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역사소설 한 편을 읽었을 때와 같은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당시의 정황을 재조직한 후, 타당성을 근거로 역사적 판단을 내리는 서술방식 때문이다.

예컨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도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유의 비판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근거라 내놓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대목대목을 그들의 사료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치 스에마쯔 야스까즈(末松保和)가 정리한 임나일본부설을 도리어 ?일본서기?의 내용으로 반박한 김석형(金錫亨, 북한의 저명한 역사학자)의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론’처럼 말이다(본문 1부 3장 참고).

이런 시각은 백제 왕실과 일본 황실이 어떤 관계를 맺었고, 한반도 사람들은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건너가서 무엇을 하였고 또 무엇을 남겼는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데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