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2.한일과거사

일본군 '위안부, 가 된 소녀들

동방박사님 2021. 12. 1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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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개정판을 내며

1. 동갑내기 소녀들의 경험
2. 연행되어 간 소녀들
3. ‘위안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4. 전쟁 말기의 광기 속에서
5. ‘위안부’는 왜 만들어졌나?
6. 소녀들의 전후
7. 히노마루 휘날리는 ‘위안소’
8.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자 : 이시카와 이쓰코(石川逸子)
평화사상가이자 시인.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오랫동안 중학교 사회 교사로 근무하다 1983년에 퇴직했다. 반핵 메시지를 담은 미니통신 계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다. 《지도리카후치에 가보셨습니까》, 《부서진 꽃들의 레퀴엠》을 비롯한 시집과 《‘일본의 전쟁’과 시인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같은 책을 펴냈다.
역자 : 손지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나고야대학에서 일본 근현대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동아시아 근대 한국인론의 지형》(공저), 《근대 한국인의 탄생》(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근대 일본의 연애론》, 《섹슈얼리티의 근대》, 《전쟁이 만들어낸 여성상》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황군’ 병사의 선물로 전락한 소녀들

70여 년 전, 꽃다운 소녀들이 중국의 쓰촨 성,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싱가포르, 오키나와, 남태평양의 팔라우 섬까지, 그야말로 이역만리에 끌려가 고통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때의 소녀들은 얼굴과 손에 주름이 패고 백발이 되었음에도 성치 않은 몸으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 선다. 더 많은 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패전 70주년이 한 해 앞으로 다가오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NHK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여 《아사히신문》을 공격하여 우익과 보수 세력을 벌집 쑤시듯 자극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와 언론계의 ‘위안부’ 문제 인식은 사실상 ‘고노 담화’(1993년) 이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담론’ 공방과 ‘정치적’ 해석은 진실과 역사인식을 놓치고 있다. 우리는 올해도 이렇게 한일 강제병합, 이른바 ‘국치일’(9월 28일)을 맞고 있다.
“종군 위안부라는 제목에서 ‘종군’은 자칫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군에 따라간 것처럼 생각되기 쉬우므로, 이번에 일본군 ‘위안부’로 바꾸었습니다. 본문에도 나오겠지만 ‘위안부’ 제도는 일본 국가가 만들고 군인과 군속들이 이용한, 글자 그대로 ‘성노예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일본 정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보상을 하기 바랍니다.”

한 일본인이 20년 만에 《‘종군위안부’가 된 소녀들》의 개정판을 내놓으며 덧붙인 말이다. 최근 일본의 여론 상황은 그렇다 치고, 놀랍게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가 창립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상에 처음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1993년이었다. 올해로 82세가 된 이 일본인은 지난날 직접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한국의 나눔의 집까지 찾아와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취재하여 책을 썼다.


일본의 양심, ‘죽은 역사에 바치는 레퀴엠’

이와나미 주니어신서로 출간된 이 책은, 지금은 성인이 된 수많은 일본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운 양심의 목소리였다. 야만적인 전쟁의 광기 속에서 조선인 소녀들이 성노예로 끌려가 강간을 당하고 있을 때, 같은 또래 일본인이었다는 부끄러움과 현직 교사로서 대면한 역사의 아픔이 이 책을 쓰게 했으리라.
일본의 양심, 이사카와 이쓰코 시인은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반핵과 반전 평화를 실천해 왔다. 계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고,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등 일본 근현대사의 치부를 파헤치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최근에도 3·11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시집 《애도와 분개: 벚꽃나라의 슬픔》을 펴내는 등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


같은 또래 소녀들에게 일어난 일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10대 소녀인 아사코와 아키 자매, 아키의 친구 유미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웃에 사는 가와세 마키코 씨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녀들 간의 편지와 가와세 마키코의 ‘르포’는 부끄러운 과거와 역사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전쟁의 고통과 여성의 피해는 어느덧 현재의 인권과 평화 문제로 자각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뿐 아니라 직접 일본군 병사로 참전한 이들의 증언과 편지, 일기, 공문서는 충격적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낸다. ‘위안소’의 실태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 병사의 심리 묘사, 하루에도 수십 명한테 처참하게 강간당하고 성병에 걸리고 임신하는 소녀들. ‘황군 병사에게 주는 선물,’ ‘공중변소’로 취급되는 이 여성들은 그야말로 노예 신세였다.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20년이 흘러 어느덧 교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아사코가 가와세 마키코 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동생 아키는 서울로 유학을 가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도 참여하고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소식도 전한다. 유미도 지역 출판사에서 일하며 ‘위안부’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동일본 대지진 모금을 제의한 길원옥 할머니의 사연과 중국인 우이샤오란 씨 모자 이야기를 전한다.
강덕경, 김학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얼마 전에는 황금주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 시점이다. 가와세 마키코는 어른이 된 ‘소녀들’에게 답장을 보낸다. “내가 만나 뵌 ‘위안부’ 피해 여성 가운데 건강하신 분은 이용수 씨 한 분 뿐이네요” 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1999년 도쿄에서 그들이 함께한 국제여성전범재판을 떠올리기도 하고, 2003년 3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송신도 씨의 소송을 기각한 처사를 상기시킨다. 지난 20년 동안 ‘위안부’ 문제는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어느새 이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한시라도 빨리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죄와 보상을 하라고 촉구한다.


가해자의 증언과 편지, 공문서에 바탕을 둔 생생한 르포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자신이 어떻게 연행되어 ‘위안부’가 되었는지 낱낱이 세상에 밝혔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증언한 그 용기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에서 나왔다.
이 책에는 ‘위안부’의 진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밝힌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강덕경, 문옥주, 황금주,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에 거주한 배봉기, 송신도 할머니, 북한의 김영실, 중국인 완아이화, 일본인 시로타 스즈코, 네덜란드인 얀 루프 오헤른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형식이 다소 문학적이지만, 편지와 일기, 르포의 행간에는 역사를 대하는 엄중함이 담겨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후세에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 본 위안소는 육군과 해군 소속의 군인, 군무원 이외에는 외부인의 입장을 금함.
입장하는 자는 위안소 외출증을 소지할 것.
하나, 입장하는 자는 반드시 접수대에 요금을 지불하고 입장권과 콘돔 한 개를 수령할 것.

1938년 초에 일본군이 직접 운영하는 ‘육군 위안소’에 큰 글씨로 붙어 있던 사용규정 10개 항목 가운데 일부이다. 1938년 1월 2일, 군 특무부 명령으로 ‘위안부’ 검진을 담당했던 군의관 아소 데쓰오(麻生徹男)는 대부분 나이가 어린 처녀들이었다고 기록했다. 이 ‘육군 위안소’에 연행되어 온 여성들은 100명 가운데 80명꼴로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지나사변(중일전쟁) 전지에 위안소 설치를 위해 내지에서 종업부 등을 모집하는 데 있어 업자들이 트러블을 일으켜 경찰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파견군이 통제하고 이에 준하는 인물이 선정을 적절히 주도하며, 그 실시에 대해서는 관계 지방 헌병 및 경찰 당국과 긴밀히 연락하여 군의 위신 유지 및 사회 문제에 실수가 없도록 배려할 것을 통첩함.”(205쪽)

1938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군 위안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에 명기되어 있는 내용이다. 1992년 1월, 주오대학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가 구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통제를 증명하는 문서와 진중일지를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한일 외교 문제를 넘어선 인류 보편의 과제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 나비 필레이는 2008년 9월부터 6년간의 임기를 마치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즉각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행정적 입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모든 증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며, 이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연합뉴스, 2014. 8. 31) 유럽과 미국에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잔인한 전쟁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한일 간의 문제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떠올랐음을 보여 준다.
1993년 8월 ‘고노 담화’를 통해 국가가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피해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공식 사죄하고 보상하지 않았다. 9월 28일은 한일 강제병합 104주년이 되는 날이고 내년은 일본이 패전 70주년을 맞는다. 최근 들어서는 이 ‘고노 담화’마저 비판받는 등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이런 흐름을 타고 “강제 연행이 아니다”는 발언이 나오고,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서술을 삭제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자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올라온 비방 글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종군위안부의 실존 자체가 현 시점에서는 분명히 부정해야 할 일이며, 사실은 조선인 여성 업주에게 팔려간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비참함을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면 후지와라 테이의 《흘러가는 별은 살아 있다》로 충분할 것이다.”

“일본군에게 강제 연행되었던 소녀들은 없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이 책을 구입하는 분들, 이것이 ‘일교조’(日敎祖)와 일본을 훼손하려는 좌익의 수법입니다. 아이들에게 읽히기 전에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유소년기 책은 세뇌되기 쉬우니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