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양사 이해 (책소개)/2.서양고중세사

서양 중세 문명

동방박사님 2021. 12. 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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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세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은 ‘중세사의 교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중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그 본질로 깊숙이 들어간다. 넓게는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그중 10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서양 중세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사료와 생생한 이야기들을 통해 서양 중세를 선명하게 복원해낸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서양 중세는 우리에게 특정한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한다. 기근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지옥에 대한 공포와 부패한 성직자들, 이단재판과 마녀사냥이 난무하던 시대 등이 바로 그런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서양의 중세가 '암흑'인 이유는 그 시대가 어두웠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무지'로 인해 암흑으로 여겨진 것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중세를 보여준다.

저자는 중세인의 삶의 실제가 무엇인지, 그러한 삶을 지탱하면서 제약하는 장기 지속적 구조란 무엇인가를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현실과 상상, 지상과 천상을 넓게 관련지으면서 중세인의 삶의 실제와 구조를 총체적으로 복원해낸다. 이를 위해 역사적 ‘사실’의 범위를 상상 세계로까지 확대하고 문학·이미지·구전·꿈까지도 구체적 사료로 이용하여 중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즉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는 세세한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말

장기 중세를 위하여
프롤로그

제1부 중세사의 전개

제1장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1. 로마 세계의 위기(2~4세기) 2. 로마인들과 게르만족들 3. 게르만의 침략과 서양의 새로운 지도 4. 중세 초의 서양: 새로운 구조 5. 결론―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 연속인가 단절인가?

제2장 게르만적 재편의 시도(8~10세기)
1. 카롤루스 왕조 치하의 서양 2. 9~10세기 위기: 새로운 침략자들 3. 카롤루스 왕조의 위기: 내분 4. 오토 황제들에 의한 제국의 부활 5. 10세기 르네상스 6. 결론―중세적 ‘도약’: 외적 자극인가 내적 발전인가?

제3장 기독교 세계의 형성(11~13세기)
1. 기독교 세계의 발전: 건축과 농업의 발전, 인구 증가 2. 기독교 세계의 팽창: 북유럽과 동유럽의 기독교화, 에스파냐 재정복, 십자군 원정 3. 도시의 부활 4. 상업의 부활 5. 지적·예술적 발전 6. 기독교 세계의 발전에서 교회와 종교 7. 서양의 봉건제 8. 정치적 사건: 교권과 제권 9. 정치적 사건: 국가 10. 결론―중세 공간의 조직: 도시인가 국가인가?

제4장 기독교 세계의 위기(14~15세기)
1. 중세적 프런티어의 종말 2. 14세기 위기 3. 위기의 의미: 총체적 침체인가 진보의 조건인가?

제2부 중세 문명

제5장 탄생(5~9세기)
1. 이교 문화와 기독교 정신 2. 전통적 지식의 분해 3. 퇴보와 적응 4. 문명의 외딴섬들: 도시·궁정·수도원 5. 중세의 ‘기초자들’ 6. 카롤루스 왕조의 르네상스

제6장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1. 숲과 숲 속의 빈터 2. 중세의 유동성: 여행 3. 자연과 우주 4. 기독교 세계와 비잔티움: 분리주의자 5.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교도: 이교도 6. 기독교 세계와 이교도: 개종 문제 7. 기독교 세계와 몽골 신화 8. 기독교 세계는 개방적인가 폐쇄적인가? 9. 지상 세계의 저편: 신 10. 지상 세계의 저편: 악마 11. 천상과 지상 사이: 천사들 12. 시간·영원·역사 13. 시간에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 14. 사회적 시간: 자연적 시간과 농촌적 시간 15. 사회적 시간: 영주적 시간 16. 사회적 시간: 종교적·성직자적 시간 17. 세속으로부터의 도피 18. 천년왕국이 꿈: 적그리스도와 황금시대

제7장 물질생활(10~13세기)
1. ‘중세의 발명’ 2. 중세적 ‘기계’의 빈약 3. 목재와 철 4. 농촌의 기술 5. 동력원 6. 선박 7. 기술의 발전 8. 생존의 경제 9. 경제적 망탈리테 10. 극한 상황의 세계: 기근 11. 생리적 재난과 전염병 12. 고갈과 불안 13. 경제적 성장: 중세적 주기 변동 14. 자연경제와 화폐경제 15. 경제적 성장: 사회적 반향

제8장 기독교 사회(10~13세기)
1. 세 위계의 사회 2. 세 위계의 사회에서 신분사회로 3. 쌍두마차의 사회: 교황과 황제 4. 갈라진 사회: 바벨탑 5. 개인과 공동체 6. 가족 공동체 7. 여자와 어린이 8. 장원 공동체 9. 촌락 공동체와 도시 공동체 10. 도시와 도시사회 11. 계급투쟁: 도시사회와 봉건사회 12. 농촌사회에서의 계급투쟁 13. 도시사회에서의 계급투쟁 14. 계급투쟁에서의 여성 15. 계급 내 투쟁 16. 계급투쟁에서의 교회와 왕권 17. 사교 공동체: 신도회와 동년배층 18. 사교 중심지: 교회·성채·방앗간·선술집 19. 이단과 계급투쟁 20. 소외 집단들: 이단자·나환자·유대인·마법사·남색가·불구자·이방인·낙오자

제9장 망탈리테·감수성·태도(10~13세기)
1. 불안감 2. 오래된 것(권위)에 대한 의존 3. 신적 개입(기적과 신명재판)에 대한 의존 4. 상징적 망탈리테와 상징적 감수성 5. 추상과 구체의 의미: 색과 빛, 미와 힘 6. 도피와 꿈 7. 사실주의와 합리주의로의 발전 8. 스콜라 정신 9. 내향화와 도덕주의 10. 근대적 사랑으로서의 궁정식 사랑 11. 자연의 탈신성화 12. 거짓과 위선 13. 외관의 문명: 음식과 음식의 사치, 육체와 몸짓 14. 옷과 옷의 사치 15. 집과 집의 사치 16. 놀이의 문명

에필로그 지속되는 것과 새로운 것(14~15세기)
1. 지속되는 것 2. 격동과 격분 3. 인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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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자크 르고프 (Jacques Le Goff)
 
1924년 남프랑스 항구도시 툴롱Toulon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역사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아날학파 제3세대를 대표하는 심성(心性)사학자인 그는 고등연구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 제6부 교수와 사회과학대학원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s 원장, 그리고 같은 대학원 서양중세역사인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페르낭 브로델을...

역 : 유희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서양중세사학회·프랑스사학회·서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제와 광대』 『서양 중세사 강의』(공저) 『서양의 가족과 성』(공저) 『몸으로 역사를 읽다』(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서양 중세 문명』 『매너의 역사』 『몽타이유』 『거룩한 도둑질』 『죄수 마차를 탄 기사』 『...

책 속으로

우선, 이러한 장기 중세는 단기 중세에 대한 두 잘못된 이미지 사이의 대조를 해소시킨다. 한편으로는 중세를 ‘암흑시대’와 동일시하는 어두운 이미지와,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신앙, 조합들에서 실현된 사회 집단들의 조화, 민중들 속에서 태어난 불가사의한 예술의 만개 등으로 중세를 아름다운 시대로 보는 찬란한 이미지 사이의 대조를 해소시킨다. 〔……〕 이러한 장기 중세는 한 시대의 포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기근과 전염병과 빈곤과 장작이 시대일 뿐만 아니라, 성당과 성채의 시대이자 도시?대학?노동?포크?모피?태양계?피의 순환?관용 등을 만들어냈거나 발견했던 시대다. 〔……〕
마지막으로, 이러한 장기 중세는 우리의 뿌리이자 출처이며 어린 시절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방금 떠나왔던 원시적이고 행복한 삶에 대한 꿈의 시대인 중세에 대해 애착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더 잘 부응한다. 그것은 피터 래슬릿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지만, 그러나 우리가 아직까지도 향수 어린 기억을 간직한 시대요, 할아버지의 시대다. 그것은 또한 아직도 끊기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를 여전히 결부시키고 있는 중세인 것이다. --- pp.25~26, 「장기 중세를 위하여」 중에서

첫째는 중세의 시대적 성격 자체와 관련된 것이다. 이 점에서 교회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기독교가 제구실을 다한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다. 하나는 막강한 세속 권력에 기반을 둔 지배 이데올로기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종교 차원이다. 이 같은 역할 중 어느 하나를 무시하면 오해와 오류를 낳을 것이다. 이 점은 내가 흑사병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는 중세 말기에 대해서 특히 그렇다. 중세 말기에 이르면, 교회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독점 역할에 대한 항의를 어느 정도 의식하게 되자 스스로가 경직되었으며, 이 경직성은 마녀를 추방하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공포의 기독교를 전파하는 등의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역할과 기존 사회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에 한정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중세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중세가 평화와 빛과 영웅적 고양을 향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이라든지,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순례자로서의 중세인들이 과거의 영원이 아니라 미래의 영원을 향해 분발토록 했던 인간주의로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기독교 덕택이기 때문이다. --- p.35, 「프롤로그」 중에서

사회적 사실로서의 농촌화 현상은 서양 중세 사회의 발전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측면 가운데 하나로 직업적·사회적 칸막이 경향을 초래했는데, 이것은 물질적 현실보다는 망탈리테에 더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을 것이다. 몇몇 직업에 대한 회피와 농촌 노동력의 유동성 등으로 말미암아 제국 말기의 황제들은 일부 직업을 부득이 세습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대토지 소유자들은 수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노예 대신에 콜로누스들을 토지에 묶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품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장 생산에 얽매인 경제에 필수 불가결한 인력을 생산지 현지에 매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중세 기독교 세계는 자기 고향을 떠나고자 하는 욕구를 중죄로 여겼다. 제국 말기부터 물려받은 ‘대대손손의 계승’이 서양 중세에서는 하나의 법이 되었다. 한곳에 머물러 사는 것은 거처의 변화, 특히 이동 생활과는 대립되는 것이었다. 바람직한 사회는 ‘머물러 사는 사람들’의 사회, ‘붙박아 사는’ 사회일 것이다. 그것은 수직적으로는 성층(成層)화하고 수평적으로는 칸막이화한 사회였다. --- p.73, 「제1장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중에서

사실 프랑크 왕국의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카롤루스 마그누스는 사람들의 충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그들에게 토지(은대지)의 증여를 확대했고, 그 대가로 충성을 서약하고 주종 관계에 가입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는 이러한 개인적 유대를 통해 국가의 공고함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회 전체, 즉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빈틈없는 개인적 예속망을 통해 왕이나 황제에게 연계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왕실 봉신들에게 그들의 예민들을 주종 관계에 편입시킬 것을 권장했다. 일련의 외침이 이 같은 주종 관계를 강화시켰다. 외침의 위협이 약자들로 하여금 유력자들의 보호 아래 들어가도록 만들었고, 왕들은 봉의 양여에 대한 대가로 봉신들로부터 군사적 부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 봉신들은 봉의 상속을 통해 보다 확고한 사회계급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군사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특히 백작·공작·후작 등과 같은 대토지 소유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영주는 그의 봉신들과 왕 사이의 칸막이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811년 카롤루그 마그누스는, 일부 봉신들이 그들의 영주가 호출되지도 않았고 자신들도 그들의 영주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군복무를 거절하는 것을 개탄했다. 〔……〕 그러나 우리는 중세 세계에서 결정적이 될 사건이 카롤루스 왕조 때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차후 각각의 인간은 점점 더 그의 영주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처럼 영주와 보다 근접한 지평에서의 속박은 그것이 보다 좁은 사회에서 행사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무거워졌으며, 이것이 장차 법률에 근거를 두게 될 것이다. 토지의 소유가 점차 권력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리스-로마의 시민적 덕목을 장기간에 걸쳐 대체하게 될 충성이 도덕의 토대가 되었다. 고대인은 정의롭지 않으면 안 되었던 데 반해, 중세인은 충성스럽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차후 악인은 불충한 사람이었다. --- pp.108~109, 「제2장 게르만적 재편의 시도(8~10세기)」 중에서

위기는 그것이 농촌경제의 기본적 수준에 충격을 주었을 때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1315~1317년의 일련의 일기불순은 흉작, 곡물가 등귀, 그리고 13세기에 서유럽, 적어도 극서(極西)유럽에서는 거의 사라졌던 총체적 기근의 재발을 가져왔다. 브뤼헤에서는 인구 3만 5천 명 중에 2천 명이 기아로 죽었다.
영양실조의 재창궐에 뒤이어 나타난 육체적 저항력의 감소는 1348년 이후 흑사병이 결정적으로 초래한 참상에 어떤 역할을 담당했음에 틀림없다. 이 흑사병은 하강하던 인구 곡선을 더욱 가파르게 하고 위기를 대파국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위기가 흑사병 이전에 나타난 것이며 흑사병은 그것을 재촉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위기의 원인은 기독교 세계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토대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봉건 지대의 격감, 농민의 세금 중 화폐 비중의 증가에 기인한 혼란 등이 봉건 영주의 권력기반을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 p.181, 「제4장 기독교 세계의 위기(14~15세기)」 중에서

13세기 기독교 세계는 자신의 변경을 벗어나고 싶었던 듯하다. 기독교 세계는 이미 십자군 원정 이념 대신에 선교 이념을 채택하기 시작했고 세계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놓았던 듯하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새로운 신자를 무력으로 받아들였지만(“강제로 개종시켜라”), 비신도들을 배척했고 사실상의 종교적 인종주의에 입각해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폐쇄된 사회였다. 기독교에 소속되었는지 여부가 그들의 가치와 행동을 판별하는 기준이었다. 기독교들 사이에서는 악으로 통하는 전쟁이 비기독교도들에 대해서는 하나의 의무였다.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금지되었던 고리대금업이 비신자들, 즉 유대인들에게는 허용되었다. 기독교 세계가 변경 밖으로 몰아내거나 배척했던 이 모든 비기독교적 이교도들이 한데 뒤섞인 채 기독교 세계 한가운데 존재했고, 또 우리가 후에 살피게 될 배척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공간적 지평의 범위 내에서 중세 기독교 세계를 규정하고자 할 따름이다. 기독교 세계는 기독교의 두 방향, 즉 한편으로는 구약성서에서 유래한 선민의 전유물로서의 폐쇄 종교와,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소명에 충실한 개방 종교의 두 방향 중에서 배타주의에 매몰되었다. --- p.246, 「제6장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중에서

사탄은 봉건사회의 산물로, 자신의 앞잡이인 타락한 천사들과 더불어 불충한 봉신의 전형 바로 그것이었다. 사탄과 신, 이는 중세 기독교 세계의 삶을 지배하는 한 쌍이었으며, 이 양자 사이의 투쟁은 중세인들에게 모든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였다.
〔……〕 그렇지만 중세인들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아주 명료하고 단순한 마니교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에게는 한편에는 신이, 다른 한편에는 악마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큰 구분이 그들의 도덕?사회?정치적 생활을 지배했다. 인간은 타협도 상봉도 하지 않는 이 두 권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똑같은 행위라도 그것이 신에게서 나온 것인 한 선하고 그것이 악마에게서 유래한 것인 한 악하다. 심판의 날에 천국으로 갈 선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지옥으로 떨어질 악인이 있을 것이다. 중세에는 비록 연옥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세에는 심판의 등급을 위한 본질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었다. 중세인들의 사고에 잠재해 있던 마니교가 그들로 하여금 불관용으로 나아가도록 강요했다. 성당 현관 위의 박공에 인간을 두 범주로 분류하여 묘사한 것은 바로 그러한 불관용에 대한 가차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중간이 없는 흑과 백의 양극단, 이것이 중세인들의 현실이었다. --- pp.261~262, 「제6장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중에서

마르크 블로크는 “시간에 대한 거대한 무관심”이라는 충격적인 구절로 시?에 대한 중세인들의 태도를 요약했다. 〔……〕 특히 집단정신의 차원에서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뒤섞어버렸다. 이러한 혼동은 무엇보다도 원시주의가 지속된 분명한 형태인 집단 책임 의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대해, 동시대의 모든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모든 이슬람교도는 무함마드의 이설에 대해 공동 책임이 있었다. 이미 지적했듯이 11세기 말의 십자군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처형자의 후손들을 책벌하러 간 것이 아니라 처형자들을 처벌하러 간다고 믿었다. 이렇듯 예술과 연극에서의 시대착오적 관습(주지하듯이 이것은 장기간 지속되었다)은 중세인들이 상이한 시대를 혼동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동시대가 중요하다고 그들이 느끼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매년 제의를 치를 때마다 수천 년을 뛰어넘는 축소판 성사(聖史)가 재연되었다. 마술적 사고가 과거를 현재로 만드는바, 역사의 본줄기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 pp.288~289, 「제6장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중에서

이와 같이 황금시대로의 복귀를 꿈꾸는 천년왕국 신앙은 국가가 완전히 사라지고, 국왕도 제후도 영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에 대한 믿음의 중세적 형태다. 천국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 천상의 예루살렘을 이곳 지상으로 가져오는 것은 바로 중세 서양의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 이 신화는 비록 공식적인 교회에 의해 가려져 있었고 또 논박당했지만 중세인들의 정신과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그것은 심층적 차원에서의 중세 민중들, 그들의 영속적인 생활조건(자연의 변덕, 기근, 전염병 등) 앞에서 그들이 겪었던 경제적·생리적 고통을 우리에게 드러내준다. 그것은 약자를 짓누르는 사회질서에 대한 그들의 저항, 그런 질서로부터 혜택을 입고 그것을 지키려 했던 교회에 대한 그들의 반항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천국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극에 이르러서야 희망을 엿보는 그들의 종교적인 꿈을 드러내준다.
이 신화에서 드러나듯이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미지의 끝까지” 가고자 하는 좀 쑤시는 욕망이 참으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중세인들이 꿈꾸었던 황금시대는 그들의 기원으로의 복귀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미래는 그들 뒤에 있었다. 그들은 머리를 뒤로 돌린 채 앞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 pp.323~324, 「제6장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중에서

우리는 중세인들의 육체적 허약함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집단적 발작이 돌연히 분출하는 가운데 심신의 질병과 종교적 행동의 기상천외함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해준 생리적 지형이다. 중세는 특히 집단적이고 공적이며 육체적인 대공포와 대참회의 세계였다. 1150년 성당 건설 공사장에 돌을 나르는 행렬들이 공적인 고백과 서로 채찍질하는 고행 행렬 때문에 이따금 방해되기도 했다. 1260년 새로운 위기를 맞아 이탈리아와 여타 기독교 세계에서는 채찍질 고행이 등장했고, 그 후 1348년의 흑사병은 환각의 행렬을 폭발케 했다. 일상생활에서의 차원에서도 질 나쁜 음식을 섭취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육체들은 꿈과 환각과 환영 같은 정신적 방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악마·천사·성인·성모 마리아와 신 자체가 출현할 수 있었다. 육체는 이런 것들을 지각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고, 또 정신이 이것들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했다. --- pp.398~399, 「제7장 물질생활(10~13세기)」 중에서

중세인은 근대적 의미의 자유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자유란 하나의 특권이며, 이 말은 흔히 복수로 사용되었다. 자유란 보장된 신분이요, 게르크 텔렌바흐의 정의에 따르면 “신과 인간 앞에 있는 정당한 자리”요, 사회에의 소속을 의미한다. 공동체 없이는 자유도 없다. 자유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그의 권리를 존중해주겠다고 보장하는 종속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유민이란 강력한 보호자를 갖고 있는 자다. 그레고리우스의 개혁 시기에 성직자들이 ‘교회의 자유’를 요구했을 때, 자유란 최고의 영주인 신에게만 직접 종속하기 위해 세속 영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 pp.462~463, 「제8장 기독교 사회(10~13세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날학파 제3세대 자크 르고프가 재구성한 ‘서양 중세 문명’
아날학파 제3세대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자크 르고프의 명저 『서양 중세 문명』(개정판)이 문학과지성사에서 현대의 지성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중세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중세사의 교과서’로 손꼽히는 이 책은, 1992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처음 한국에 소개된 이래로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으며 이번에 새롭게 개정되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르고프는 중세인의 삶의 실제가 무엇인지, 그러한 삶을 지탱하면서 제약하는 장기 지속적 구조란 무엇인가를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현실과 상상, 지상과 천상을 넓게 관련지으면서 중세인의 삶의 실제와 구조를 총체적으로 복원해낸다. 이를 위해 역사적 ‘사실’의 범위를 상상 세계로까지 확대하고 문학·이미지·구전·꿈까지도 구체적 사료로 이용한다. 이는 역사를 “물질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역사, 엘리트들만이 아니라 남녀 대중의 심리적 반응과 행동(망탈리테)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심성사(心性史) 세대이자 역사인류학 세대라 일컬어지는 아날학파 제3세대 역사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서양 중세를 생동감 있게 복원하고 있는 이 책은, 역사학 서술의 본류에 충실하면서도 문학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미덕이다. 따라서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과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독자들을 서양 중세라는 낯선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역사는 움직임과 변화다”
중세 역사를 단절된 역사, 즉 ‘암흑기’로 보던 과거와 달리 중세를 ‘장기 지속’의 개념으로 파악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중세사 연구에 힘입어, 오늘날 중세를 암흑시대로만 여기는 편향된 시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중세는 ‘암흑’과 다르지 않은 무지(無知)의 시기, 혹은 무관심의 시기라 해도 무방하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은 학술적 목적으로 쓰인 저술이라기보다 역사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다. 이를 위해 저자 르고프는 책과 글의 풍부한 인용, 신화와 민담, 전설을 넘나드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서양 중세를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의 제1부 ‘중세사의 전개’는 연대기적인 접근을 통해 시간별로 역사의 흐름을 좇아 서술하고 있으며, 제2부 ‘중세 문명’은 78개의 소주제들을 주제별로 접근해 풀어쓰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중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즉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는 세세한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다. 이는 저자가 다름 아닌 “문화인류학에 근접한 역사학, 즉 모든 인간을 추상성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구체성과 그들 존재의 총체성 속에서 포착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역사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는 아날학파 제3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심성사적 측면에서 중세 사회의 면면을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란 그것을 이루는 인간들의 행동 못지않게 꿈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으며, 물질적 실재 못지않게 상상적 세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상징 세계의 역사뿐만 아니라 상상 세계의 역사에 천착함으로써 이런 비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와 연결시킨다. 다름 아닌 “역사 속에서의 사회들은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상징들을 필요로 하며, 가시적인 세계를 비가시적인 세계와 연접시켜주는 몸짓?이미지?의례 등과 같은 온갖 상징적인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 특히 서양 중세 사회와 같이 심층에서 종교가 사회를 지배했던 경우, 이와 같은 연구방법의 의미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심성사가로서의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사회사, 경제사와 같은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와도 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놀라운 점이다.

1992년 초판 1쇄가 출간된 이후 16년 만에 새롭게 개정판을 내게 된 『서양 중세 문명』은 무엇보다 요즘 독자들을 배려해 읽기 쉽고 다가서기 편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본문 편집을 새로 하는 한편, 초판에서 발견된 오역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또한 지명과 인명 등 고유명사 가운데 소속 국가를 고려하지 않고 프랑스어 음으로 표기한 곳들과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 낡아 보이는 표기들을 바로잡았다. 이는 “전공자가 보기에 이 책이 최근의 연구 성과에 비춰 낡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만한 중세사 개설서가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유럽에서도 당분간 나오기 힘들다”는 옮긴이 유희수(고려대 사학과 교수)의 판단 덕분이기도 하다.
아직 숲으로 뒤덮인 중세의 서양, 기근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지옥에 대한 공포와 부패한 성직자들, 이단재판과 마녀사냥이 난무하던 시대……. 저자 르고프는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중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그 본질로 깊숙이 들어간다. 넓게는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그중 10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서양 중세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사료와 생생한 이야기들을 통해 서양 중세를 선명하게 복원해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처럼 중세에 대한 전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이미지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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