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자본.경제.기업. (책소개)/2.부자&돈

로스차일드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1. 12. 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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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로스차일드 가문은 산업혁명이 불길처럼 번지고 금융업이 전에 없이 번성하던 시대에 탄생해 성장하고 시대를 주도했다. 지역 대부업 수준이었던 금융업을 온갖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글로벌 금융 산업으로 바꿔놓았다. 이들이 ‘금융자본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대륙을 하나의 금융권으로 묶었고, 정보를 토대로 돈을 벌었다. 정보를 통해 축적한 천문학적인 자금과 저금리로 산업혁명을 전 세계로 전파했으며, 세계 각국에 금본위제를 확장시키면서 금은 세계 통화시스템의 근간을 마련했다. 주식회사, 주식거래소, 중앙은행 등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끈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과정을 추적하며 가문의 역할을 살펴보는 일은, 경제 흐름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목차

1장 자본주의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1. 자본주의를 잉태한 청어 이야기 11
2. 17세기 네덜란드는 어떻게 2~3%대 저금리가 가능했을까? 31
3. 주식회사 민간 중앙은행의 탄생 비화 43

2장 영원한 금융 황제, 로스차일드

1. 로스차일드 가문의 탄생 69
2. 고화폐 상인에서 황실 대리인이 된 마이어 78
3. 로스차일드 시대의 서곡,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92
4. 영국으로 세력을 확장한 로스차일드 가문 105
5. 단기간에 유럽 금융계를 장악한 나탄 114
6. 마이어의 유언과 그가 남긴 다섯 화살 129
7. 로스차일드, 영국을 사다 137
8. 로스차일드, 세계 금본위제에 시동을 걸다 152
9. 산업혁명 전파의 원동력, 로스차일드의 자본 163
10. 나탄 잠들고 야콥의 시대로 174
11. 로스차일드 3대의 활약 182
12. 로스차일드 후손들 191

3장 커튼 뒤의 로스차일드

1. 로스차일드, 모건 시대를 열다 203
2.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탄생 228
3. 미국 산업을 양분한 두 재벌, 모건과 록펠러 243
4. 로스차일드, 이스라엘 건국을 돕다 252
 

저자 소개 

저 : 홍익희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를 나와 1978년 KOTRA에 입사했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무역관 관원을 거쳐 경남무역관장, 뉴욕무역관부관장, 파나마무역관장, 멕시코무역관장, 마드리드무역관장, 밀라노무역관장을 끝으로 2010년 정년퇴직했다. 32년간의 KOTRA 생활 중 18년을 해외 7개국에서 근무했다. 인생 2막은 대학교수로 탈바꿈해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7년 8월 세종대에서 정년퇴직함으로써 인...
 

책 속으로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에서 그들이 했던 방식을 토대로 영국의 금융혁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먼저 의회로 하여금 ‘국가채무에 대한 의회의 지불 보장’을 법으로 제정토록 하였고, 이를 근거로 1694년 런던 금융가의 중심인 ‘더 시티 오브 런던’에 영란은행(잉글랜드은행)을 설립했다.

영란은행은 여느 개인 기업과 마찬가지로 주식 공모를 통해 설립 자금이 마련됐다. 이때 은행 경영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지 않도록, 누구도 2만 파운드 이상은 청약할 수 없도록 했다. 당시 영국 왕이 요구한 돈은 120만 파운드였으나 투자자들인 런던 상인 1,286명에게서 주식 공모 형태로 거둬들인 돈은 80만 파운드에 불과했다. 그 무렵 상인이라 함은 유대인과 동의어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까지만 해도 영국은 양털 판매와 해적질이 국가의 주 수입원이었는데, 당시 양털을 수거해 수출해주던 사람이 유대인들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그들을 ‘모험상인’이라 불렀다. 당시 영국 수출의 80% 이상을 그들이 주도했다.
--- p.54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외가 친척들은 왕실 상인들이라 살림이 넉넉했다. 외삼촌은 쾰른 대주교의 어용상인이었다. 마이어는 외삼촌 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궁정 유대인들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은행에서 업무 차 그들과 직접 접촉하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업을 할 때는 귀족과 부호의 돈줄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취미와 생활, 사고방식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사환에서 견습생으로, 다시 은행원으로 승진한 그는 환전 업무를 하며 희귀 동전과 옛날 화폐도 취급했다. 주된 고객은 수집광들인 귀족들이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예술작품 또는 골동품, 옛날 화폐를 수집해 자신의 명성을 과시했다.) 마이어는 복잡한 ‘화폐 분류 체계’에 대한 지식을 요하는 업무를 하면서, 고(古)화폐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추게 되었다. 또 그는 은행업을 랍비 학교에서 배운 탈무드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종합하며 금융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금융업의 웬만한 기법과 수단을 다 습득했고, 일을 잘해 어린 나이임에도 주니어 파트너로 승진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을 장악한 시작점은 바로 오펜하임은행이었다.
--- p.75

로스차일드는 20년 이상 궁정상인으로 일하며 정치적 실세들과 교분을 쌓아갔다. 관리해야 할 귀족 고객들에게는 동전과 골동품을 남보다 싸게 팔았다. 이렇게 신용이 쌓이자 1789년에는 빌헬름이 돈을 빌려주고 받은 비교적 큰 금액의 채권 할인 업무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아들들은 프랑크푸르트 대형은행들을 찾아가 독일계 유대어인 이디시어로 인사를 하면서 “빌헬름 백작과 당신 은행을 연결하는 중개인으로 저희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독일 금융가는 배트만 브러더스, 루펠 운트 하니에르 등 프랑크푸르트 기반의 게르만계 대형은 행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대형은행들은 처음에 이들을 무시했지만 이들의 열의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때 부데루스가 로스차일드 가문 아들들을 은밀히 후원하면서 마침내 대형은행들이 이들을 받아들여 적은 액수나마 채권을 맡기기 시작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유럽 전역이 전쟁에 휩싸였는데, 이는 마이어에게 사업을 확대할 기회가 되었다. 그가 진정한 은행업이라 할 만한 사업을 시작한 것은 막내아들 야콥이 출생한 1792년 직후였다. 빌헬름 공이 그에게 새 은화 등 화폐 제작을 위임하곤 했기 때문이다. 1794년에 마이어가 헤센 주 재무부에 상당량의 은을 최적의 가격에 팔겠다고 제안할 정도로 사업이 커졌다. 1795년 이전의 20년간 마이어의 세금 납부액은 대략 2천 굴덴 정도였는데, 1795년 한 해에만 그 2배가 되었으며, 그다음 해에는 1만 5천 굴덴으로 껑충 뛰었다. 이는 게토에서 가장 큰 액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p.86

마이어의 아들들 중 가장 두뇌가 비상했던 사람은 셋째 나탄이었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온 나탄은 처음에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기에 우선 영어를 배워야 했다. 영어와 영국식 상업 관습을 배우기 위해 런던에 있는 아버지의 거래처 사람들과 교류하며 몇 달을 지냈다. 영국의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젊은이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그들은 나탄에게 면직물 장사에 도움이 되는 여러 유대인들을 소개해주었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와주었다. 먼 길을 찾아온 동족을 돕는 관습은 유대인 공동체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 뒤 나탄은 초기 산업혁명의 시발지이자 면직물 산업의 중심지인 맨체스터로 가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면직물을 구입해 독일 게토에 보내는 게 주 업무였다. 그 무렵 독일의 15개 유대인 회사가 영국산 섬유를 수입했고, 8명이 맨체스터에 정착해 직수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의 직물업은 석 달 외상거래가 관례였다. 그러나 나탄은 자신이 구입하는 물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가능하면 어음보다는 현금으로 거래했고, 이 덕분에 가장 좋은 물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이는 경쟁력 있는 가격과 품질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경쟁력 있는 직수입 덕분에 프랑크푸르트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유럽 대륙을 대상으로 면직물 도매업을 할 수 있었다.
--- p.108

워털루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시장이 전반적으로 살아나 상승장, 즉 ‘불 마켓(bull market)’이 형성되었다. 특히 콘솔채를 비롯한 채권 가격이 상승해 주식시장 역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때 주식시장이 확대되어, 처음에는 운하 주식이, 그다음에는 철도 주식이 금융시장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이후 100년 동안 이 같은 주식은 수천 개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승기에 힘입어 로스차일드 일가는 채권시장과 금시장에서 대출을 동원한 투자, 즉 투자 원금의 십여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형제들의 정보 분석력과 단합된 힘으로 국채와 금, 환거래, 주식, 광산 투자 등에서 연이어 성공함으로써 로스차일드 일가의 자산은 매년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세계 금광업을 장악한 로스차일드는 영국을 1819년 세계 최초의 금본위제 국가로 만들었다. 그 무렵 로스차일드가 세계 주요 금 광산들을 사들여 금을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할 때였다. 이렇게 1819년부터 영국 파운드화는 공식적으로 금과 연계되었다.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가 시행된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이 여세를 몰아 아예 세계 전체를 금본위제로 유도했다. 유럽 주요국들과 미국의 금본위제 시행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이 지대하게 작용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 중개업무 수준을 넘어 금융과 외환시장의 글로벌화를 통해 시장의 성격을 바꿨다.
--- p.152
 

출판사 리뷰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좌우하게 되었는가
경제학자 홍익희가 주목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모든 것


미국의 노동 운동가이자 작가인 리오 휴버먼은 “역사책에는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과 정복 그리고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지는데, 왕들의 이야기보다는 왕권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곧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 역사를 이끌어온 힘은, 왕이 아닌 상인과 금융업자에게서 나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를 뒤흔든 전환점이라 일컫는 포르투갈의 대항해, 네덜란드 중상주의 발흥, 영국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전개, 신대륙의 부흥, 미국의 눈부신 성장 등은 상인과 금융업자의 역사이자, 특히 유대인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된 역사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유대인 이야기』의 저자인 경제학자 홍익희는 자본주의를 탄생시키고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유대인의 역사, 그 가운데서도 오늘날의 금융혁명을 일으키고 세계 산업을 재편한 로스차일드 가문에 주목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산업혁명이 불길처럼 번지고 금융업이 전에 없이 번성하던 시대에 탄생해 성장하고 시대를 주도했다. 지역 대부업 수준이었던 금융업을 온갖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글로벌 금융 산업으로 바꿔놓았다. 이들이 ‘금융자본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대륙을 하나의 금융권으로 묶었고, 정보를 토대로 돈을 벌었다. 정보를 통해 축적한 천문학적인 자금과 저금리로 산업혁명을 전 세계로 전파했으며, 세계 각국에 금본위제를 확장시키면서 금은 세계 통화시스템의 근간을 마련했다. 주식회사, 주식거래소, 중앙은행 등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끈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과정을 추적하며 가문의 역할을 살펴보는 일은, 경제 흐름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위기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은 로스차일드 가문
“창의성은 비상시에 더 빛을 발하는 법!”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하는 가치, 그 지혜를 배울 때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전쟁이라 해도 무방하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은 걸 바꾸어 놓았듯 금융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닌데, 나폴레옹 전쟁에 휩쓸려 있던 시기에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탄생했고, 이를 주도한 이가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일반적으로 상인과 금융인은 전쟁을 싫어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장사도 안 되고, 주식과 채권 등 자산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쟁을 기회로 활용했다. 이들은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으며, 정보를 토대로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데도 능했다.

전쟁 중 금 가격이 오를 것으로 판단해 과감히 금시장에 뛰어들어 금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성과를 이뤘고, 국채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당시 영국의 명문 재산가 대부분이 파산했는데, 오히려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쟁 후 영국 최고의 채권가로서 영란은행의 공채 발행을 주도하는 실권자가 된다. 세계 금융업의 정점에 올랐을 뿐 아니라, 영국에 처음 가지고 온 자금을 17년 만에 무려 2,500배로 불린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이 “유럽에는 오직 하나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로스차일드다”라고 한탄했을 정도다. 전시에 부를 쓸어 모으는 데 탁월한 창의적 재능을 발휘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금융과 외환시장의 글로벌화를 통해 시장의 성격을 바꿨다.

이들은 히틀러의 출현으로 어려움을 겪고 커튼 뒤로 숨은 뒤에도 은밀하게 움직이며 세계에 자본주의와 유대주의를 전파했다. 미국의 근대 산업과 금융 발전은 이들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건국에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가 전하는 가치, 곧 ‘신뢰, 단결력, 정보의 힘, 자본의 힘, 인맥, 자선’에 대한 의미를 짚고 있다. 이들의 지혜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