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2.한국전쟁기념관 49

육군박물관 (정부수립 &육군의 창군)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육군의 창군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연합국의 지지를 받아 카이로회담(1943)과 포츠담선언(1945)에서 독립을 약속받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광복이 되자 국내에서는 다양한 사설 국내단체들이 조직되었는데, 미 군정은 이에대한 해산령을 내리고 11월에 을 공표하여 국방사령부(1946년 통위부로 개칭)를 설치했다. 1946년 1월에는 현재의 육군사관학교 자리에서 국방경비대 제1연대가 탄생했다. 국방경비대는 곧 조선경비대로 개칭했으며 추가 창설을 통해 총 9개 연대를 두었다. 이후 1948녀네는 총 16개 연대로 증편하고 5개의 여단을 새롭게 창설 하였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조선경비대는 대한민국 육군으로 공식 출범하였다(9월 5일). 이해 11..

육군박물관 전시 (광복군)

광복군의 활동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를 민족해방과 독립의 기회로 여겼다. 그리하여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립군 부대들을 통합하여, 1940년 9월17일 중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에 지청천을 임명하였다. 1940년 11월, 한국광복군은 모병과 선전을 위해 총사령부를 시안으로 이전했으며, 충징에서 파견된 인우너과 군사파견단 인원과 군사파견단 인원을 중심으로 제1,2, 3지대를 조직했다. 이후 1941년 1월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편입시켜 제5지대 까지 조직을 확대했고, 1942년 4월 조선의용대를 편입하면서 제1지대(중칭), 제2지대(시안), 제3지대 (진화)로 재편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1941.1..

육군박물관 (의열투쟁 & 독립군)

의열투쟁 의열투쟁이란 소규모조직이나 개인적차원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을 의미한다.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침탈이 노골화 하면서 1909년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등 개인적으로 일제와 맞서려는 항쟁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만주길림성에서 조직된 의열단은 1920년대 가장 활발하게 투쟁을 전개하여 조선총독 등 일제 고관이나 부역자들을 처단하고 주요기관 파괴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대한광복회, 대한애국청년단, 한인애국단 등에 소속된 독립단원들의 개별적인 항일투쟁은 일제 강점기간 동안 지속하였다. 대표적인 의거로는 강우규의사의 조선총독 폭탄투척(1919),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1926), 이봉창 의사의 일왕 암살시도와 윤봉길의사의 홍커우공원 폭탄투척(193..

자유수호평화박물관(2022.1.15.이모조모)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잊혀져 가는 6.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유엔참전국과 우호증진을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6.25전쟁 참전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 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경기의 소금강으로 잘 알려진 "소요산'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및 등산 등 여가를 함께 즐길수 있다. 소요산 소개 소요(逍遙)는 '유유자적하다', '한가롭게 걸어다니다', '여기저기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 등이 이 산에서 '소요'했다 하여 소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있으나, 근거가 없는 야사이다. 오대산 소금강처럼 소요산도 산세가 수려해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산세가 웅장하진 않지만, 뾰족한 기암..

주한미군 주둔 (동두천 - 미군장비)

주한미군 주둔과 동두천 동두천시는 1951년부터 미군(미 보병 제24사단 휴양소 미 보병 제3사단 6연대, 미 보병 제25사단 24연대)이 주둔하기 시작하였으며 1952년부터 1970년대까지 미 제7사단이 장기 주둔하였던 지역이다. 동두천시에는 혀내 미 제2사단 캠프 케이시 (Camp Casey) 중심으로 캠프 호비(Camp Hovey), 캠프 님블(Camp Nimble), 캠프 모빌(Camp Mobile), 그리고 짐볼스 훈련장(Gimbols) 등 6개 구역으로 미군부대가 주둔해 왔으며 현재 캠프 님블과 캠프 캐슬의 일부, 짐볼스 훈련장만이 반환된 상태이다 동두천과 미군공여지 동두천 도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 미군공여지이다. 미군공여지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공여해 미군이 사용권을 가지..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실내전시관 (6.25 한국전쟁)

전쟁이전의 남한 (아래사진 참조)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의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게 되었다.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9월7일 남한에 진주한 후 군정을 실시하면서 소련과 한반도 문제를 협의. 처리하기 위한 회담의 개최를 모색하였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한국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소련의 반대로 평화적 정부수립에 난항을 겪는다. 결국 1948년 남한 안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열리고, 이승만대통령을 초대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수립을 대외에 선포하게 되었고 유엔 총회에서 이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 북한은 소련군 철수 이후 맘한내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미국은 한국정부가 요구한 무기지원에도 응하지 않은 채 1949년 ..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옥외 전시관 (6.25 사용무기)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개 잊혀져 가는 6.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유엔참전국과 우호증진을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6.25전쟁 참전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 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경기의 소금강으로 잘 알려진 "소요산'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및 등산 등 여가를 함께 즐길수 있다. 건립취지문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에는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우리 민족의 불굴의 정신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선열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습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의 이해 관계로 말미암아 벌어진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지만, ..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

이름 : 노르웨이 참전비 주소 : 동두천 평화로 2910번길 96-63 위치 : 소요산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 인근관광지 : 소요산,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이 비는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에 근무했던 종업원 70명이 1972년 3월 30일 노르웨이 정부의 지대한 공헌에 보답하고자 각자 정성을 모아 건립하였다. 이 비는 노르웨이 정부가 1951~1954년까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부상장병과 민간 전쟁고아를 의료사업으로 봉사하여 양국간의 우의를 증진했다. 박물관 건립에 따라 2000.12월 동두천시 하봉암동 298번지에서 소요산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