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역사기행 (책소개)/2.역사문화산책

현충원 역사산책

동방박사님 2022. 5. 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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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충원에 담겨 있는 한국 근현대사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국 근현대사가 오롯이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들을 모신 독립유공자 묘역,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의 아픈 현대사 속에서 전사한 군인과 군무원이 자리한 군인·군무원 묘역,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안장된 국가원수 묘역,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모시는 국가유공자 묘역, 대한민국의 치안을 담당하던 이들이 안장된 경찰 묘역 등이 조성되어 있다.

첫 출발을 국군묘지로 시작하였기에 군인들의 묘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묘역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친일파들의 볼썽사나운 묘를 보면, 이곳이 영광과 환호, 가슴 뿌듯한 자부심 못지않게 분노와 탄식, 회한이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의 거울 같은 곳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묘역에 자리 잡은 친일파 묘처럼 안타까운 일도 있지만, 앞으로 장군과 장교, 사병의 묘역 크기를 차별 없이 통일하기로 하고 위패나 비문 등에서 남녀평등을 시도하는 등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도 일고 있다.

 

목차

펴내는 말 …8

프롤로그 한국 근현대사와 국립서울현충원 …13

한국 근현대사와 국립서울현충원/ 국군묘지로 출발한 국립서울현충원/ 헌법정신과 현충시설의 불일치?/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해방 직후의 노력/ 이승만이 독립유공자를 모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4·19 직후에도 독립유공자 표창이 있었다?/ ‘독립운동에 기반한 나라’ 대한민국/ 죽은 사람마저 차별하는 현충원?

탐방 1 독립운동가 길 …35

해방 20년 만에 조성된 독립유공자 묘역/ 이인영과 신돌석의 묘는 있는데, 전봉준의 묘는 왜 없을까/ 독립유공자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건국포장·대통령표창/ 의병, ‘대한제국’을 지키고자 일어선 사람들/ 반외세 반봉건 투쟁의 동학농민군과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가짜 독립운동가 묘가 있다?/ 현충원에서 만나는 영화 [암살]과 [밀정], [박열]의 주인공들/ 대한의 독립을 위해 ‘씨를 뿌린 사람들’/ 홍범도 장군, 의병장에서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로!/ 윤준희·임국정·한상호,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인공들/ ‘신출귀몰’ 이수흥, 혈혈단신으로 일제 식민지배를 뒤흔들다/ ‘신출귀몰’ 서원준, 평안도·황해도 일대를 뒤흔든 제2의 이수흥/ 스코필드,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푸른 눈의 외국인/ 해방 후 48년이 지나서야 조성된 임시정부요인 묘역/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의 독립운동가들/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 충혼당의 독립유공자들/ 부부위패판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 현충탑 위패봉안관의 독립운동가들

탐방 2 친일파 길 …115

국립서울현충원의 ‘친일파 길’을 걷는 의미는?/ 해방 이후 진행된 친일청산을 위한 노력/ 국립현충원 내 친일반민족행위자 안장 현황/ 부부위패판의 친일파 김홍준과 김호량/ 국가유공자 제1묘역의 친일파들 백낙준·엄민영·황종률·김정렬/ 장군 제1묘역의 김백일과 신응균/ 국가원수 묘역의 박정희 전 대통령/ 장군 제3묘역의 이종찬과 정일권/ 장군 제2묘역의 이응준과 신태영, 임충식/ 국가유공자 제2묘역의 안익태와 조진만/ 독립운동가 묘역의 친일파들(김홍량·이종욱·윤익선·임용길)/ 일송정의 추억, 가곡 [선구자]의 조두남과 윤해영/ 현충원 친일파 묘 정리 없이 친일청산 없다!

탐방 3 여성 길 …157

애국은 남성만의 전유물인가/ ‘신여성’의 선구자 김란사, 여성 해방의 새 장을 열다/ 국가유공자 제3묘역의 여성들/ 2021년 봄, 독립유공자 묘역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 안경신·김마리아·유관순 등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이렇게 바뀌는 데 56년이 걸렸다/ ‘홍일점 의병’ 양방매/ 비극적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 임수명/ 임시정부요인의 뒷바라지 도맡았던 오건해/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오광선·정정산의 묘와 묘비/ 조선혁명군과 한국광복군의 여전사 오광심/ 민족해방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나선 신순호/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의 한국광복군 오희영/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는 왜 여성 독립운동가가 없을까?/ 국가유공자 제2묘역의 김마리아/ 외규장각 「의궤」 반환의 주역, ‘직지 대모’ 박병선/ 국가유공자 제1묘역의 이태영,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에 합장되어 있는 프란체스카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에 합장되어 있는 이희호 여사/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육영수 여사

탐방 4 4?3길 …217

“4·3이 머우꽈?”/ 제주 4·3 사건과 베트남전쟁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경찰묘역, 제주 4·3 사건의 의인 문형순의 묘는 어디에?/ 무기력했던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안재홍(미군정 민정장관) vs 조병옥(미군정 경무부장)/ 제주 4·3 사건에 대해 ‘가혹한 탄압’을 지시한 이승만/ 서북청년회를 이끌고 제주 4·3 사건에 개입한 경찰간부/ 장군 제1묘역의 김익열, 제주 4·3의 의인/ 장군 제1묘역의 문용채와 최석용, 김정호와 채병덕/ 박진경 대령(11연대 연대장), 그는 왜 부하의 손에 살해되었을까?/ 장병묘역의 김명, ‘산사람들’로 위장한 특수부대 부대장

탐방 5 5월 길 …255

국립서울현충원 ‘5월 길’/ 5·18 계엄군의 묘, 40년 만에 ‘전사’에서 ‘순직’으로!/ 12·12 쿠데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김오랑 중령/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신군부 세력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 12·12 쿠데타 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또 한 명의 군인/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순직 경찰관의 묘/ ‘민주·인권 경찰’은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가/ 12·12 군사 반란을 저지하고자 했던 정병주 특전사 사령관의 묘/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한 전직 대통령

탐방 6 대통령 길 …277

‘대통령길’을 걸으며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본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위상과 역할은?/ 이승만 전 대통령(초대~3대)의 묘/ 이승만은 스스로 자신의 묏자리를 정했다?/ 시비에 새긴 [헌시]와 시대 인식/ 김대중 전 대통령(15대)의 묘/ 박정희 전 대통령(5대~9대)의 묘/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진행 중/ 김영삼 전 대통령(14대)의 묘/ 죽어서도 차별?

탐방 7 평화 통일 길 …303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우리의 아픈 현대사/ 서울현충원의 ‘평화·통일 길’/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과 소년병의 ‘부치지 못한 편지’/ 현충문 폭파 사건/ ‘육탄10용사’ 현충비 앞에서 겪는 복잡한 심경/ 현충원에 안장된 ‘실미도 사건’의 피해자들/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발견하다/ 남과 북에서 동시에 잊힌 독립운동가 장재성/ 북에는 진묘, 남에는 허묘… 조선혁명군 총사령 양세봉 장군의 묘/ 임정요인 묘역의 손정도·박신일 부부와 두 아들(손원일, 손원태)/ 국가유공자 제2묘역의 주시경과 그 제자들/ 6·15 남북공동선언의 주역,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 ‘전쟁 영웅’이 아닌 ‘평화 영웅’이 부각되는 시대를 기다리며

부록 전국 국립묘지 현황 및 참고문헌 …333
 

저자 소개 (

저 : 김학규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동작구에서 동작 지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동작공동체 라디오 동작FM에서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동작 민주올레〉를 2018년부터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동작FM, 2015)(공저), 《동작 민주올레 가이드북》(동작FM, 2017)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외국의 국가원수나 주요 인사가 국빈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르는 곳 가운데 한 곳이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이는 국립서울현충원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들을 모신 독립유공자 묘역,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우리의 아픈 현대사 속에서 돌아가신 군인과 군무원을 모신 군인·군무원 묘역, 4명의 전직대통령이 안장된 국가원수묘역,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모시는 국가유공자묘역, 대한민국의 치안을 담당하던 이들이 안장된 경찰묘역 등이 조성되어 있어그야말로 한국근현대사를 응축해놓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묘지는 근대국가의 산물이다. 하상복 교수(목포대)는 국립묘지의 전형을 프랑스형과 미국형으로 분류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국립묘지인 팡테옹Pantheon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탄생한 근대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미라보Mirabeau(1749-1791)를 비롯하여 볼테르Voltaire(1694-1778), 루소Rousseau(1712-1778), 마라Jean-PaulMarat(1743-1793) 등을 안장하면서 ‘자유 프랑스가 시작된 이후 위대한 사람들의 유골이 안치되는 장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반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는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거쳐 탄생한 나라임에도 독립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을 안장한 곳이 아니라, 1860년대 남북전쟁 과정에서 전사한 북군을 안장하기 위해 조성한 묘지로서 연방·군사주의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묘지인 국립서울현충원은 어떤 유형의 국립묘지라고 해야 할까?

국군묘지로 출발한 국립서울현충원

현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군묘지로 출발하였다. 이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감격을 채 누리기도 전에 닥쳐온 분단과 전쟁이라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특히 3년간 지속된 6·25 한국전쟁으로 최소 14만 명 이상의 한국군이 전사하자 이들을 수용할 묘지의 조성은 시급했다. 국군묘지는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지를 물색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9월 30일 이승만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지금의 자리를 묘지 부지로 ‘재가’ 받으면서 1954년부터 3개년 계획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54년 10월 30일에는 무명용사탑과 무명용사문이 완공되었고, 1955년 4월 22일에는 ‘제4회 3군 전몰장병 합동추도식’이 동작동 국군묘지에서 거행되었다. 1955년 7월 15일에는 국군묘지관리소도 창설되었다. 그 사이 1954년 12월 16일에는 태고사(현 조계사)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던 서울 출신 영현 135위 중 90위가 동작동 국군묘지로 처음 옮겨졌고, 1955년 6월 1일부터는 남한 각지에 가매장된 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여 국군묘지에 이장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어 1956년 9월 10일부터는 각 군軍별로 보관 중이던 유해의 국군묘지 이장도 진행되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동작동 국군묘지는 국립묘지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법률적 뒷받침 없이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군묘지령」에 근거해 운영했다. 이 「군묘지령」 제2조에 안장자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전조의 묘지에는 군인, 사관후보생 및 군속(其他從軍者를 包含한다)으로서 사망한 자 중 그 유가족이 원하거나 유가족에게 봉송할 수 없는 유골, 시체를 안장한다.”고 하여 국군묘지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현 국립서울현충원이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한 것은 1965년이다. 이때 비로소 동작동 국립묘지로 불리면서 군인만이 아니라 독립유공자, 경찰관, 전직 대통령, 향토예비군도 안장 대상에 ‘정식으로’ 포함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17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고 동작동 국군묘지 시절에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순국열사’ 등이 절대로 안장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7년 1월 개정된 「군묘지령」 제2조에 위에서 인용한 내용에 이어 “전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묘지에는 국방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순국열사 또는 국가에 공로가 현저한 자의 유골, 시체를 안장할 수 있다.”는 문구가 새로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묘지에 ‘순국열사’ 등을 안장할 수 있다고 한 이 ‘이상한 끼워 넣기’ 규정이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내내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이 규정은 1964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실제적인 힘을 발휘한다.

1965년 이래 20년간 대한민국의 유일한 국립묘지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동작동 국립묘지는 1985년 대전에 국립묘지가 준공되면서 다시금 위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996년에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바꾼 국립묘지는 2005년 7월 29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국립묘지법」)이 제정되면서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심지어 그 관할 주체도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국립대전현충원은 보훈처가 관할하는 식으로 분리되었다.

같은 기간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애국지사 묘역(1965)을 시작으로 무후선열제단(1975), 임시정부요인 묘역(1993),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2002)이 차례로 조성되거나 건립되었고, 이를 아울러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부르게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 현행 헌법(10호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문구는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의 전문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계승한 표현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을 선포할 때부터 ‘독립운동에 기반한 나라’라는 인식을 제헌헌법에 분명히 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도 정부수립과 함께 독립유공자를 모시는 국립묘지를 곧바로 조성했을 법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왜 독립유공자를 모시는 국립묘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곧바로 조성되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답할 차례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현충원에서 만나는 일곱 개의 주제별 길 이야기 소개

탐방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을 한번에 다 둘러보는 방식으로 탐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둘러볼 공간이 너무 넓고, 할 이야기도 너무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주제별 탐방 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립운동가 길’로 시작한 주제별 탐방 코스는 하나하나 늘어나면서 ‘친일파 길’, ‘대통령 길’, ‘5월 길’, ‘평화 통일 길’이 차례차례 생겨났습니다. 그러다가 ‘4·3길’도 나왔고, 마지막으로 ‘여성 길’이 완성되었습니다. 독자들은 길 이름만 들어도 어떤 주제의 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길’에서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의 희생과 헌신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왜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립묘지를 곧바로 조성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뒤늦게 ‘끼워넣기’식으로 독립운동가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서 걸으면 더욱 좋습니다.

‘친일파 길’은 해방 이후 제헌헌법에서부터 ‘독립운동에 기반한 나라’임을 천명한 대한민국의 국립묘지에 왜 친일 인물들이 이렇게 많이 묻혀 있는지, 그늘진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보면서 걸으면 그 해법 역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대통령 길’은 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를 전직 대통령의 행적을 통해 개괄해볼 수 있는 탐방 코스입니다. 거기에 묘소의 크기나 형태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보면서 걸으면 더 좋습니다.

‘5월 길’은 6·25 한국전쟁 이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아픔이 서려 있는 탐방 코스입니다. 이 길에 있는 5·18 계엄군의 묘는 지난 2020년 12월, 40년 만에 ‘전사’에서 ‘순직’으로 바뀐 묘비가 새로 들어서는 큰 변화도 있었습니다. ‘5월 길’은 시민운동을 통해 역사왜곡을 바로잡은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탐방 코스이기도 합니다.

‘평화 통일 길’은 국립서울현충원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 최대의 지상과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 속에서 나온 탐방 코스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이제 냉전 사고에서 벗어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이 길을 걸으면서 함께 그 답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일곱 개의 탐방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했던 코스가 ‘4·3길’과 ‘여성 길’이었습니다. “서울현충원에 제주 4·3과 관련된 인물들도 안장되어 있나요?”, “‘여성 길’은 뭔가요?” 등등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한국 근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라면 제주 4·3 사건의 역사가 담겨 있지 않을 리 없습니다. 요즘 제주 4·3 사건의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제주 탐방객들의 다크 투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4·3길’은 제주에 갔다 온 사람들, 제주에 가지 못한 사람들 누구나 걸으며 제주 4·3 사건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여성 길’은 일곱 개의 탐방 코스 중 제일 늦게 탄생한 코스입니다. ‘여성 길’을 걸으면서 ‘애국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인가?’라는 의문에 빠지기도 하고, 대한민국이 그동안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사회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최근 성평등의 관점이 반영되어 ‘획기적으로 바뀐’ 독립유공자 묘역의 묘비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를 더할 것입니다.

일곱 개 길에 대한 이상의 소개는 개발한 순서대로이지만, 책에 실린 순서는 다릅니다. 가장 늦게 개발한 ‘여성길’을 제일 마지막에 소개하기보다는, 국립서울현충원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평화 통일길’을 마지막에 배치한 탓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상투적인 의례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이 책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우리의 시대 과제를 밀착하여 고민하고 실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펴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