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1.독일역사와 문화

메르겔

동방박사님 2022. 7. 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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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장수 총리 메르켈
세계를 움직인 리더십의 비밀


『메르켈: 세계를 화해시킨 글로벌 무티』는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이 메르켈이 총리가 되고 퇴임하기까지 16년 동안 메르켈을 집요하게 추적한 전기다. 저자는 메르켈만큼 자신을 매혹하고 궁금하게 만들고 삶의 일부가 되는 지도자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메르켈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이 책은 ‘역사를 만든 여성’인 독일 총리의 어린 시절 친구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 그리고 라이벌들을 대상으로 저자가 수년 동안 조사한 결실이다.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메르켈의 인물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메르켈 리더십의 진면모를 조명한다. 저자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로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시기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메르켈의 면모를 파고든다. 우리는 저자의 날카로운 필치를 따라가며 메르켈 리더십의 비밀에 도착하고, 책을 덮으면서 비밀의 상자를 여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목차

1 메르켈이 떠나다 9
2 메르켈의 자아는 어디에? 27
3 아주 특별한 푸른색 45
4 템플린, 나토의 수도 77
5 미스 카스너에서 메르켈 박사로 87
6 프렌츨라우어 베르크의 혼란 105
7 발트해에서 받은 수업 113
8 메르켈의 오두막 131
9 비르기트의 다과 모임 137
10 아세닉 앤드 올드 레이스 151
11 걸스 캠프 173
12 총리실의 세 여성 193
13 글로벌 무티 209
14 총리 한 명, 대통령 네 명 235
15 2016, 끔찍한 한 해 271
16 마지막 메르켈 289
17 마크롱이 말하는 메르켈 315
18 행복한 독일을 이끄는 총리 329
19 안녕히 343

감사의 말 ·351
사진 저작권 ·355

 

 

저자 소개 

저 : 마리옹 반 렌테르겜 (Marion Van Renterghem)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프랑스 저널리스트로, ‘알베르-롱드르상’(Prix Albert-Londres)을 비롯해 수많은 저널리즘상을 받았다. 『르몽드』(Le monde)와 『배너티 페어』(Vanity Fair)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2017년 앙겔라 메르켈에 대한 첫 번째 전기 『앙겔라 메르켈, 정치계의 UFO』(Angela Merkel, L’ovni politique)를 냈고, 이를 보...
 
역 : 김지현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여행 및 문화 예술 콘텐츠 제공 업체에서 취재기자 겸 에디터로 근무하며 도서 기획과 출판 업무를 담당했다. 그 후 홍보 컨설팅 회사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홍보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번역 및 언론 홍보를 맡아 진행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이자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콘텐츠를 소개하려 노력한다. 옮긴 책으로 『디...
 

책 속으로

메르켈이 떠나는 데에서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나는 메르켈을 그리워할 것이다 … 그 누구도 메르켈처럼 민주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강대국의 수장을 맡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처럼 지지율이 80%에 달하는데도 자발적으로 은퇴를 결정하지 않았다.
--- p.12

서구 강대국의 모든 주요 지도자 가운데 오직 메르켈만이 다른 지리·정치·심리적 세계를 통과했다. 지리적으로는 동독에서 자랐고, 정치적으로는 베를린 장벽 너머의 악조건을 경험했으며, 심리적으로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겪었으니 말이다. 서방 지도자 중 민주주의와 자유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메르켈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박탈당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남성들 한가운데에 있는 여성이고, 가톨릭교도에 둘러싸인 개신교 목사의 딸이며, 보수주의자가 가득한 곳에 있는 이혼녀이고, 서독 출신이 넘쳐나는 곳에 선 오시(Ossi, 동독 출신 독일인)다. 동쪽에 있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은 오히려 그에게 강점이 되고 깊이가 되었다.
--- p.17

메르켈은 자신의 지역구인 슈트랄준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50년 후 역사책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라고 묻자 단 한 문장으로 놀라운 답을 내놓았다. “그는 노력했다.”
--- p.19

메르켈은 말을 아끼는 지도자다. 그는 자신이 하는 발표보다 현실을 우선시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했다가 지키지 못한 적이 없다. 메르켈은 아마도 민주주의를 ‘피곤하게’ 실천했을 것이다. 가장 영웅적인 민주주의 투사로 꼽히는 하벨 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말했듯이 “민주주의에는 본래 단점이 있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정직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드는 반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을 허용한다.”

메르켈은 권력을 행사하느라고 피곤했다.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냉소주의보다는 지루한 것들, 즉 도덕, 원칙, 법치주의, 유럽 통합을 중요시하느라 피곤했다. 평화와 민주주의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으로 반(反)트럼프, 반(反)존슨, 반(反)포퓰리즘이었다. 그는 염려를 놓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하나의 기준점이었다. 그가 떠나는 것이 두렵다. 우리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켜주던 둑이 무너져버렸다.
--- p.25~26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게임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어요. 우리 부모님들은 삶을 재창조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으셨지만, 우리에겐 완전히 변화할 가능성이 열려 있었죠. 앙겔라와 우린 열차 창문으로 장벽 너머 서베를린을 바라보곤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공간이 열려버린 거예요.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두 독일을 하나로 연결해서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려는 도전에 뛰어들었죠. 앙겔라가 권력을 열망하게 된 건 바로 그 도전이에요.”
--- p.43

메르켈이 논문 심사를 받고 3년 후인 1989년 겨울 어느 저녁, 자신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 던졌음을. 그리고 같은 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촉발한 범세계적 해방 운동을 향해 이곳을 떠났음을. 양자물리학 연구는 이제 끝났다. 메르켈은 떠나기 전에 같은 부서의 러시아인 동료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간결하게 메르켈이 말했다. “정치가 나를 사로잡아요.”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 p.88

서두르지 말고, 먼저 분석하고, 그다음에 행동하라. 이것이 메르켈 리더십의 비밀이다. 신중함을 가르치는 동독의 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 p.103~104

그날 이후로 메르켈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분석한 결과, 절대적인 필요성 면에서 정치인이 물리학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1990년 3월 이후, 그 누구도 과학 아카데미에서 메르켈을 다시 볼 수 없었다.
--- p.104

메르켈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신중함을 배웠다. 그리고 과학에서 느림을 받아들였다. 가설, 실험, 이론화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항상 시간을 가지며, 한번 결정하면 단호하게 고수하는 것이다.
--- p.107

여성 3인방에 짜증이 난 CDU 내 남성들은 마치 이들이 걸스카우트 캠프에 있는 소녀들 같다는 의미로 이들을 ‘걸스 캠프’라고 불렀다. 앙겔라는 그 표현에 내포된 남성들의 거만함을 알아차렸고 뮐러-포그에게 이렇게 언급했다. “‘걸스 캠프’라니, 내가 들어본 표현 중 가장 흥미로운 발상이에요. 여성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고 다른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항상 이상해 보이고 쉽게 험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죠. 그게 바로 ‘걸스 캠프’라는 표현이 위험한 동시에 흥미로운 이유예요.”
--- p.177~178

‘권력을 쥔 여성은 언제나 의심을 받는다.’ 그릇이 못 된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통치에 필요한 기질과 강인함이 부족하다고, 모든 것에서 의심을 받는다.
--- p.189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말을 하면 그들은 내가 머리를 어떻게 손질했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부터 쳐다봐요. 한 10분은 지나야 내가 하는 말을 듣기 시작하죠. 여성 정치인이 주의를 끌려면, 남성 정치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 p.206

“나는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느림 속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았으니까요.”
--- p.262

올랑드는 독일 총리와 닮은 점이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메르켈은 타협을 정말 좋아해요.” 그는 엘리제궁 정원에서 그 닮은 점은 바로 그들의 자질임을 강조했다. “메르켈은 언제나 열심히 할 겁니다. 자신의 정당에, 대연정에, 지역구에, 프랑스에… 협상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언제나 타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 우린 그 점이 일치해요.”
--- p.264

“제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정을 늦게 내리죠. 하지만 결정하고 나면 그것을 지킵니다.”
--- p.271

“미국은 세계를 저버렸습니다. 유럽의 어떤 지도자도 오늘날 메르켈이 가진 정치적·도덕적 힘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차관보를 지낸 제임스 루빈(James Rubin)이 한 말이다.
--- p.277

히틀러가 집권한 때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독일 지도자 메르켈은 개방성, 이민자 포용, 범세계주의, 다자주의, 자유 수호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지도자 트럼프는 어리석은 역사적·비극적 반전을 나타냈다. 새로운 민족주의자들은 예전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이끌었던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가장 끔찍한 범죄의 발상지였던 독일은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희망이 되었다.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기 전 베를린을 방문해 서구 가치의 횃불을 메르켈에게 전달하러 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1945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더는 그 가치를 보증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p.283

“메르켈은 ‘내가 총리로 있는 한 독일 국경에 철조망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바로 그날, 메르켈은 위대한 지도자가 된 거죠.”
--- p.297

장벽 너머 열악한 곳에서 자란 목사의 딸은 국경 너머 열악한 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다 너머 열악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핑계는 대지 않는다.
--- p.301

메르켈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이 잘 작동할 때 기뻐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 야망의 주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동독에서 수학 선생님이 이미 알아차렸던 것처럼 그의 지치지 않는 기쁨이다. 영광이라든가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크지 않다. 메르켈은 마지막 임기에 유럽 혁명을 시행했다. 역사에 남을 일을 하려고 혁명을 준비한 것이 아니다. 2020년 일어난 너무도 특별한 전염병과 경제 위기 때문에 혁명이 갑자기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 p.332

“메르켈은 그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했다. “메르켈은 거창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메르켈은 세상에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 p.336

에펠만은 메르켈을 격려하고 싶어 하고, 항상 그렇듯이 이 근엄하고 엄격한 남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난민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걸 안다. 바츨라프 하벨이 한 말을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동독에서 내게는 아주 도움이 많이 된 말인데 지금 네 상황에 맞을 것 같다 … 희망은 어떤 일이 잘될 거라는 믿음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일이 의미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 p.349~350
 

출판사 리뷰

한국 정치에 필요한 리더 - 포용 정신에 기반한 합리적인 중재자

2005년 11월 22일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최연소 총리 메르켈이 탄생했다. 이후 2021년 12월 7일까지 16년간 메르켈은 독일의 최장수 총리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우리는 왜 메르켈을 읽어야 하는가? 왜 작년에 퇴임한 지구 반대편 독일 총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가? 메르켈이 중심이 되어 독일에서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했기 때문에? 메르켈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16년간 독일 최고 권력자 자리에 있었던 메르켈은 전 세계적으로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약 70년 전, 독일에서 동독과 서독이 분리되었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고, 그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은 분단에 분단을 거듭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로, 서울과 지방으로, 부자와 빈자로, 남성과 여성으로, MZ세대와 586세대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분리는 갈수록 세분화되어 사람들은 자신의 울타리를 점점 더 공고하게 만들고 울타리 안에서도 또다시 가르고 나누며, 자기 안에 고립된다. 지난 3월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단 1퍼센트도 안 되는 득표율 차이로 당선 결과가 정해졌는데, 이는 한국 정치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리더는 모든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 정신을 갖춘 사람이다.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을 혐오하거나, 권력을 휘둘러 보복하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 여러 문제들이 얽힌 복잡다단한 사안들을 명쾌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합리적인 중재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비롯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위기를 잘 관리해줄 수 있는 위기관리자,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부드럽게 소통하며 다자간 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지도자, 본인의 주관에만 치우지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과학자, 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협상에 임하는 협상가, 때로는 정책 결정의 비효율을 경계하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용기 있게 구현하는 리더.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바로 그런 리더다.

왜 메르켈을 읽어야 하는가? 이 책에서 메르켈은 우리가 찾는 리더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포용 정신에 기반한 메르켈의 엄마(무티) 리더십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메르켈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쪽으로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서독에서 태어나 동독에서 자란 메르켈은 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사이 경계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일을 진정한 통일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훌륭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메르켈의 포용 정신은 자신과 반대되는 정당과의 연립정부를 꾸릴 수 있게 했고, 유럽의 중심 독일이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중심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메르켈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경제적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독일 원전 제로’를 선언하고,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난민 100만 명을 수용했다. 메르켈의 리더십에 전 세계인들이 감동했다. 메르켈의 정치 지평은 점차로 확장돼 독일을 넘어 유럽연합(EU)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메르켈 리더십의 비밀을 파헤쳐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자 메르켈, 정치인이 되다

앙겔라 메르켈은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메르켈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독에서 목사직을 맡겠다고 자처한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떠났다. 얼마 후 동독과 서독 사이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으므로, 메르켈의 가족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 셈이었다.

메르켈은 자유를 억압하는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성장하며 자유의 가치를 몸소 체험했고, 동독 체제로부터 자신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 즉 눈에 띄지 말 것, 타협할 것,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을 배웠다. 메르켈은 열아홉 살에 발트호프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카를마르크스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국가의 부당한 간섭을 피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 그가 훗날 ‘진실은 왜곡하기 쉽지 않다’고 표현한 분야가 과학이었기 때문이다. 카를마르크스대학을 거쳐 아들러스호프 과학 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메르켈은 과학자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과학자 메르켈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사건이 1989년 11월 9일에 일어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자 메르켈은 물리학 연구와 이전의 삶을 포기하고 모든 면에서 반대인 쪽으로 건너왔다. 정치는 그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메르켈에게 새로운 열망을 불어넣은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 메르켈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분석한 결과, 절대적인 필요성 면에서 정치인이 물리학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1990년 3월 이후, 그 누구도 과학 아카데미에서 메르켈을 다시 볼 수 없었다.” - 104쪽

메르켈은 먼저 소규모 야권 단체인 민주약진(DA)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에서 메르켈은 특유의 신중함, 진지함, 침착함, 겸손함, 성실함으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다. 민주약진의 공동 설립자인 라이너 에펠만은 선거에서 승리한 CDU(기독교민주연합)의 당수 로타어 데메지에르에게 메르켈을 소개시켜주었고, 메르켈은 데메지에르 정권의 부대변인이 되었다.

동독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장인 데메지에르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있었다. 바로 나라를 사라지게 할 목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그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함께 두 독일의 통일을 준비하고 그 이행을 보장하는 임무를 맡았다.

메르켈은 180일간 지속된 데메지에르 정부에서 이상적인 대변인이었다. 교육자 자질이 있고 사고가 유연했으며, 명확하고 간결할 뿐 아니라 변덕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데메지에르의 추천으로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 발탁되었고, 1990년 12월 선거에서 승리하여 여성청소년부 장관이자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메르켈이 정치에 입문한 지 채 1년도 안 된 시기의 일이었다.

메르켈은 개신교이자 이혼자이고 동독 출신인 데다 여성이었다. 어릴 때부터 정치 교육을 받은 서독 출신 가톨릭교도 남성 엘리트들과 비교했을 때, 그는 완전한 비주류에 속했다. 저자는 메르켈이 당시 미확인 비행물체, ‘정치적 UFO’였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메르켈이 어떻게 1년 만에 여성청소년부 장관이자 하원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헬무트 콜이 메르켈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명목상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콜은 좋은 평판을 얻고 자신의 개방적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동독 출신 여성인 메르켈을 발탁했지만, 메르켈은 여성청소년부 장관 말기에 이르면서 자기 실력을 발휘했고, 더 이상 ‘할당량’의 대상이 아니었다.

메르켈은 1994년 선거 이후 환경부 장관으로 직책을 옮기면서 노련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최초의 다자간 협정인 교토의정서 협약에서 자기 목소리를 냈고, 서독 남성들을 설득하는 자신만의 ‘스킬’을 갖게 됐다.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하기보다는 일대일 대화나 전화 통화 혹은 문자메시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때 당시 메르켈의 천재적인 정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은 헬무트 콜을 정치적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메르켈에게 헬무트 콜은 자신을 발탁해준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동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 역사의 거인이었다. 1999년 12월 22일, 당시 CDU 사무총장이었던 메르켈은 거대 보수 일간지 [FAZ](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콜의 뇌물 수수와 불법 비자금 조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고, 이로써 거인은 완전히 무너졌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메르켈이 그와 같은 일을 벌이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메르켈은 은밀하게 거물을 제거했다. 처음으로 권모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얼마 후 메르켈은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CDU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5년 후엔 최초의 여성이자 철의 장막 반대편 출신으로서 최초로 총리로 선출되었다.

걸스 캠프

메르켈이 혼자만의 힘으로 총리가 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 메르켈을 도운 충실한 두 여성이 없었더라면 헬무트 콜 총리에게 타격을 주고 CDU 당 대표로 선출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베아테 바우만과 에바 크리스티안젠은 메르켈에게 전적으로 충성했다. 여성 3인방에 짜증이 난 CDU 내 남성들은 마치 걸스카우트 캠프에 있는 소녀들 같다는 의미로 이들을 ‘걸스 캠프’라고 불렀다. 메르켈은 그 표현에 내포된 남성들의 거만함을 알아차렸다.

“‘걸스 캠프’라니, 내가 들어본 표현 중 가장 흥미로운 발상이에요. 여성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고 다른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항상 이상해 보이고 쉽게 험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죠. 그게 바로 ‘걸스 캠프’라는 표현이 위험한 동시에 흥미로운 이유예요.” - 177~178쪽

메르켈은 정치 활동을 하면서 남성 우위론자들의 숱한 무시와 빈정거림을 들었다. 메르켈의 수수한 옷차림은 늘 조롱의 대상이었고, 무례한 발언을 피할 수 없었다. 메르켈은 자신의 소속 정당 내에서도 성차별적 편견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했다. 당원들은 메르켈이 총리직을 수행하는 정당성을 놓고 끝까지 망설였다. 남성과 가톨릭으로 이루어진 정당에서 동독 출신 개신교 여성을 지도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바댕테르가 [여성의 힘]에서 “권력을 쥔 여성은 언제나 의심을 받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다. “그릇이 못 된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통치에 필요한 기질과 강인함이 부족하다고 의심을 받는다. 모든 것에서 의심을 받는다.” 바댕테르는 책에서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부득이할 때만, 즉 남성이 없을 때만 군림한다”며, 여성 정치인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때 얼마나 많은 제약이 따르는지 설명한다. 메르켈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겉모습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성가셔하며 측근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말을 하면 그들은 내가 머리를 어떻게 손질했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부터 쳐다봐요. 한 10분은 지나야 내가 하는 말을 듣기 시작하죠. 여성 정치인이 주의를 끌려면, 남성 정치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 206쪽

10년 전 사진을 찍었을 때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지적한 어느 사진기자에게 메르켈은 이렇게 대답했다. “독일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선출된 거지 패션모델이 되라고 선출된 게 아니잖아요!” 메르켈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장 단순한 차림을 선택한다. 천성적으로 메르켈에게는 기교가 없다. 하지만 메르켈은 이를 전술적으로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독일의 무티 메르켈

2008년 메르켈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무티’(엄마, 어머니)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 별명이 처음 생겼을 땐 좋은 뜻이 아니었다. 메르켈이 당원들을 ‘강한 모성’으로 대하는 태도를 무티라는 표현으로 짜증스럽게 빈정댄 것이다. 이 별명은 메르켈을 총리가 아닌 어머니 역할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여성을 혐오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메르켈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애정을 담아 이 무티라는 별명을 계속 사용했다. 이 별명이 메르켈에게 그토록 잘 어울리는 이유는 메르켈이 집권 내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독일 국민을 보호했으며, 그들의 안정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메르켈 리더십은 어떤 점에서 남달랐을까? 메르켈리즘, 즉 메르켈주의라고도 불리는 메르켈 리더십의 독특한 면모는 실용주의, 신중함, 용의주도함, 문제해결, 타협, 도덕적 가치로 특징지어진다. 메르켈은 느리고 침착하며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무리 짓는 것을 경계하고 일대일로 나누는 은밀한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이뤄냈다. 메르켈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신중함을 배웠고, 과학에서 느림을 받아들였다. 가설, 실험, 이론화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항상 시간을 가지며, 한번 결정하면 단호하게 고수하는 것이다.

메르켈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이 잘 작동할 때 기뻐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 야망의 주 원동력이자 그치지 않는 기쁨이다. 영광이라든가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크지 않다. 메르켈은 마지막 임기에 유럽 혁명을 시행했다. 역사에 남을 일을 하려고 혁명을 준비한 것이 아니다. 2020년 일어난 너무도 특별한 전염병과 경제 위기 때문에 혁명이 갑자기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메르켈 시대는 재정, 경제, 기후를 비롯해 테러, 난민, 보건, 지정학 등 일련의 위기에 맞서 리더십 모델을 보여준 시대로, 독일은 세계 4위, 유럽 1위의 강대국 대열에 올라섰고, EU와 무조건적 연대를 시작했다. 메르켈 시대는 독일이 세계의 호감을 얻게 된 시대다. 메르켈은 독일에 권력, 신뢰, 도덕성, 호의를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정치를 중재한 글로벌 무티였다.

각국 정상들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메르켈』은 각국 정상들이 등장하는 한 편의 정치 드라마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메르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 여러 나라의 정상들을 만날 수 있다.

메르켈과 푸틴
메르켈과 푸틴의 관계는 특별했다. 푸틴은 KGB 요원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고, 메르켈은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메르켈과 푸틴은 실무 회의를 할 때 통역에서 나올 수 있는 완화된 표현을 피하려고 서로의 언어로 말한다. 이는 예의의 표현이자 서로를 통제한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메르켈과 푸틴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메르켈은 경직된 얼굴로 개를 피하려고 슬쩍 뒤로 기대는 반면, 푸틴은 가학적이고 흡족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가만히 즐기고 있다. 동독에서 공산주의 정권을 경험했던 메르켈은 전 세계 국가원수들 가운데 푸틴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며, 푸틴은 메르켈의 가치관에 가장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메르켈과 프랑스 대통령들
메르켈은 16년간 총리직을 네 번 연임하며 총 네 명의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다. 메르켈의 임기 네 번에 공통점이 있다면 언제나 위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위기는 프랑스의 각 지도자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 시라크 시절에는 유럽헌법조약에 대한 프랑스의 거부, 사르코지 시절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국가부채 위기, 올랑드 시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난민 위기, 브렉시트 국민투표, 도널드 트럼프 당선. 마크롱 시절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유럽 구제 계획이다.

메르켈과 트럼프
2017년 5월 25일 브뤼셀 NATO 본부에서 트럼프는 경제 호황을 누리는 나라들이 모든 재정적 의무를 미국에 떠넘긴 채 극히 적은 금액만을 NATO 방위비로 지출한다며 비판했고, 이로써 동맹국 간 내전이 선포되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과 세계에 등을 돌린 것이다.

히틀러가 집권한 때부터 80여 년이 지난 시기, 독일 지도자 메르켈은 개방성, 이민자 포용, 범세계주의, 다자주의, 자유 수호의 가치를 구현했다. 그리고 미국 지도자 트럼프는 어리석은 역사적·비극적 반전을 나타냈다. 인류에 대한 가장 끔찍한 범죄의 발상지였던 독일은 자유민주주의의 희망이 되었다.

2021년 동시에 퇴임을 맞이하는 두 정상 트럼프와 메르켈은 우리에게 트럼피즘(트럼프주의)와 메르켈리즘(메르켈주의)를 남긴다. 소셜 네트워크의 힘에 휘둘리는 민주주의 세상에 두 가지 상반되는 상징, 두 정치적 모델, 두 적대 세력이 있다. 내셔널리즘-포퓰리즘을 기치로 내세우는 트럼피즘은 진실에 대한 체계적 의심으로 특징된다. 소셜 네트워크가 확대하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모호함은 체제에 대한 불신을 형성했다. 내셔널리즘-포퓰리즘의 해일은 위협적이다. 브렉시트 옹호자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프랑스의 마린 르펜 등 트럼프의 편에 선 자들, 극우주의자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안정과 반포퓰리즘의 축인 메르켈의 퇴임하면서 우리는 그 이후 세상을 걱정하게 된다.

독일의 무티에서 글로벌 무티로

메르켈이 독일의 무티를 넘어 글로벌 무티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난민 위기다. 메르켈은 극우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해 시리아에서 탈출한 난민 100만 명을 포용했다. 메르켈이 보여준 인류애에 수많은 국제 언론이 찬사를 보냈다. 유럽녹색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이었던 프랑스계 독일인 다니엘 콘-벤디트는 난민을 끌어안은 일을 계기로 총리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메르겔은 ‘내가 총리로 있는 한 독일 국경에 철조망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바로 그날, 메르켈은 위대한 지도자가 된 거죠. - 283쪽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독일 원전 제로를 선언하고, 2015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인 일은 메르켈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두 사건이다. 계산적이기보단 본능적이고, 합리적이기보단 인간적인 메르켈. 이 두 결정은 당의 이익에도, 자기 이익에도 반했기 때문에 가히 의외의 선택이었다. 메르켈은 도덕적 선택을 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장벽 너머 열악한 곳에서 자란 경험은 국경 너머 열악한 곳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했다.

독일의 ‘어머니’는 팝 아이콘이 되었다.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을 이끄는 메르켈은 미국 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열 번 이상 이름을 올렸다. 메르켈은 유럽의 기준이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세계 남성 지도자들의 보스, 글로벌 무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