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문화예술 입문 (책소개)/2.음악세계

모짜르트의 편지

동방박사님 2022. 7. 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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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모차르트는 35년 10개월 9일의 짧은 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 10년 2개월 동안 여행을 했다. 열세 살 때 이탈리아에서 보낸 이 책의 첫 편지부터 죽음을 약 두 달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까지 평생 동안 500여 통이나 되는 편지를(추산, 현재 남아 있는 편지는 300통) 쓴 것은 그의 수많은 여행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낸 『모차르트의 편지』에는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 중 209통과 아버지의 편지 5통을 합해 총 21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모차르트가 편지에서 그의 심오한 예술론이나 인생에 관한 철학을 전개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 편지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그가 남긴 편지의 대부분은 신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다. 참새가 지저귀듯이 명랑하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소년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배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편지부터, 잘츠부르크 대주교와의 결렬 경위를 가족에게 분노를 곁들여 자세하게 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지, 그가 타고난 음악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하지만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기회를 얻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은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초조감이 엿보이는 편지, 궁핍한 가운데서 친구에게 무려 20회에 걸쳐 돈을 빌려 달라는 안쓰러운 편지, 그리고 때 이른 그의 삶의 만년에 온천으로 요양을 간 아내에게 보내는 너무도 애틋한 사랑의 편지 등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된 한 편의 ‘로망’이자 한 음악가의 연대기적 자서전이다.

 

목차

이탈리아 소식
대주교와의 알력
‘베즐레’, 알로이지아
어머니의 죽음
상심
대주교와의 결렬
이사
결혼, 부자간의 갈등
영광과 궁핍, 아버지의 죽음
핍박, 분주
권태, 저녁놀
죽음
폭풍의 장례

모차르트 연보
작품 색인
인명 색인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

역 : 김유동

 
1936년생. 연서대 의예과를 중퇴했고 한글학회, 잡지사 등을 거쳐, 경향신문 부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편집자도 헷갈리는 우리말』(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선집』 『메이지라는 시대』 『모차르트의 편지』 『고전과의 대화』 『유희』 『주신구라』 『잃어버린 도시』 『빈 필-음과 향의 비밀』 『투명인간의 고백』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우리는 늦은 시간 침대에 들었습니다. 여행을 하느라 피곤했거든요. 그래도 25일에는 7시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카락이 아주 엉망이었기 때문에 10시 반에는 제아우 백작 댁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백작은 벌써 사냥을 나갔다는군요. 참자, 참자!

오늘 셴보른 백작과 대주교의 자매가 되는 부인네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저는 마침 극장에 가 있었습니다. 알베르트 씨가 말씀하시는 중에 제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제가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백작님에게 말씀드려주셨습니다. 두 분은 의아하게 생각하시며, 제가 그리운 추억의 액수인 12플로린 30크로이처라는 급료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그만 마차를 갈아타셨지요. 저와 말씀을 나누시기를 원하신 것 같았는데…… 그 뒤로는 두 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잘레른 백작 댁에서 사흘 동안 여러 음악을 악보 없이 암보로 연주하고, 다음에는 백작 부인을 위해 2개의 카사치오네하고 마지막으로 론도가 있는 종곡(終曲)을 암보로 연주했습니다. 잘레른 백작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빠는 상상할 수 없으실 겁니다. 어찌 됐든, 그분은 음악을 알고 계십니다. 다른 귀족들은 코담배를 만지작거리거나, 코를 푼다거나, 기침하기도 하고, 아니면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지만, 백작은 언제나 “브라보”라고 하셨거든요.

약속 시간에 갔더니, 마치 학생처럼 보이는 처남 두 사람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구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건만, 랑겐만텔 씨는 깜박하고 슈타인 씨에게 “이제 피아노의 명수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러면서 싱긋했습니다. 나는 즉시 이에 항의를 하고 “뮌헨의 지겔 씨의 불초 제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지겔 씨로부터 천 번의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슈타인 씨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있었는데, 마침내 “혹시 모차르트 씨 아니십니까” 하는 거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트르차모라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먼저 슈타인의 피아노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슈타인 씨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 저는 슈페트의 피아노가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슈타인 쪽이 훨씬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쪽이 레겐스부르크의 제품보다도 공명 억제를 한층 잘하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치면, 손가락을 놓고 있건 떼고 있건 울리는 순간 그 소리가 사라지고 맙니다. 마음대로 건반을 쳐도 소리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까딱까딱 소리가 난다거나, 강해진다거나 약해지지도 않고, 물론 소리가 나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두가 일정합니다.

저는 시처럼 쓰지는 못합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글귀들을 멋지게 배치해서, 그늘과 빛이 피어나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니까요. 손짓과 몸짓으로 기분과 생각을 나타낼 수조차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소리를 가지고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입니다.

고귀한 사람들은 결코 애정이나 취미가 아니라, 이해와 기타 갖가지 부수적인 의도로 결혼합니다. 아내가 빚을 갚아주고, 촌스러운 상속인을 낳아준 다음까지도 그 아내를 사랑하는 따위의 일은, 신분이 높은 그런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들 하찮고 가난한 인간은, 서로가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져야 할 뿐 아니라 그런 아내를 취하는 게 허용되고,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요. 우리는 고귀하지도 않고 명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며 또 부자도 아니면서, 신분이 낮고 단순한데다 가난하므로, 우리의 부는 우리가 죽으면 동시에 없어질 터이니, 부자 아내는 필요하지 않은 거지요. 우리들의 부는 머릿속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부는 우리 머리를 잘라내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잘라내진다면, 그때는 아무것도 필요없게 되지요……

그럼 그 딸은 어떨까요. 화가가 악마를 진짜배기처럼 그리려 한다면, 이 딸의 얼굴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꼭 농부의 딸처럼 뚱뚱하고, 보기만 해도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땀을 흘립니다. 그리고 살갗을 드러내놓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여기 좀 봐줘요’라고 분명 얼굴에 써놓은 형국입니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정떨어집니다. 장님이 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재수 없게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간, 그날 하루는 벌을 받는 꼴입니다. 그럴 때면 주석(酒石)[토사제]이 필요합니다! 그처럼 메스껍고, 더럽고, 게다가 몸서리 쳐집니다! 쳇, 망할 놈의 것!

제가(아시는 바와 같이)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사랑하는 조국 독일이 저를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면(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나 영국에, 재능 있는 독일인 하나가 또 추가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독일 국민의 불명예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걸출한 사람이라면 으레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어디에서 명성을 발견했을까요? 그곳이 독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금 5시 반입니다만, 조촐한 음악회를 하기 위해 6시에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어서, 매우 서둘러서 써야 합니다. 대체로 매우 바쁘기 때문에, 때로는 야단법석을 떨어야 합니다. 아침부터 2시까지는 계속해서 레슨을 위해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식사입니다. 식후에는 무슨 일이 있건, 저의 불쌍한 위장에게 소화 시간을 주기 위한 1시간을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그 뒤부터가, 약간의 작곡이 가능한 유일한 저녁 시간입니다. 그것조차도 대체로 발표회에 불려가기 때문에 확고한 것은 아닙니다.

일찍 시내로 돌아갈 결심이 좀처럼 우러나지 않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요. 오늘 프라터[빈의 자연 공원]에 가 있었는데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식사를 하고, 이처럼 밤 8시나 9시까지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란, 즉 임신한 저의 아내와 그 아내의, 임신은 하지 않았지만 뚱뚱하고 건강한 남편입니다.

있잖아, 여보! 당신하고 아주 솔직한 기분이 되어 이야기를 하지. 당신에게는 쓸쓸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며, 가능한 일은 무엇이든지 해 줄 남편을 가지고 있어. 다리 문제는 참고 있노라면 반드시 나을 거야. 당신의 기분이 밝을 때면 나는 기뻐. 정말로 그래. 다만 때때로 너무 상스러운 언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저 순수하고 선량하고 씩씩한 웃음’

모차르트는 35년 10개월 9일의 짧은 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 10년 2개월 동안 여행을 했다. 열세 살 때 이탈리아에서 보낸 이 책의 첫 편지부터 죽음을 약 두 달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까지 평생 동안 500여 통이나 되는 편지를(추산, 현재 남아 있는 편지는 300통) 쓴 것은 그의 수많은 여행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낸 『모차르트의 편지』에는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 중 209통과 아버지의 편지 5통을 합해 총 21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모차르트가 편지에서 그의 심오한 예술론이나 인생에 관한 철학을 전개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 편지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그가 남긴 편지의 대부분은 신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다. 참새가 지저귀듯이 명랑하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소년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배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편지부터, 잘츠부르크 대주교와의 결렬 경위를 가족에게 분노를 곁들여 자세하게 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지, 그가 타고난 음악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하지만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기회를 얻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은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초조감이 엿보이는 편지, 궁핍한 가운데서 친구에게 무려 20회에 걸쳐 돈을 빌려 달라는 안쓰러운 편지, 그리고 때 이른 그의 삶의 만년에 온천으로 요양을 간 아내에게 보내는 너무도 애틋한 사랑의 편지 등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된 한 편의 ‘로망’이자 한 음악가의 연대기적 자서전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음악가 모차르트와는 다른 비속한 인간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졌지만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억제할 수 없는 유머와 장난기는 실로 인상적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자신은 모차르트가 아니며 ‘트르차모’라는 사람이라고 말장난을 한다거나, 낙담하고 있는 아버지를 웃기려고 ‘몸이 한쪽만 있는 소를 봤다’고 하고, 유명한 ‘베즐레 서한’의 어이없을 정도로 저속한 편지들은 인간 모차르트의 강렬할 정도로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뚜렷하게 독자들에게 각인시켜 준다. 그런 반면에 여행에 동행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전할 때 가족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차르트가 한 용의주도한 배려를 보면 그가 또한 얼마나 사려 깊은 인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과중한 창작의 부담으로 나날이 깊어가는 병에 시달리면서도 온천에 요양 가 있는 아내에게 보낸 위안의 말과 일상적인 당부들을 보면 모차르트가 ‘그처럼 명랑하게 견뎌낸 불행’에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현재 유튜브에서 클래식 음악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이지만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음악의 신동으로 일찍이 전 유럽에 걸쳐 명성을 떨쳤지만 당시 예술의 후원자이자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 할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모차르트는 평생 안정적인 후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모차르트 음악의 천재성을 인정한 것은 음악가들과 일부 음악 애호가들, 그리고 대중들이었다. 모차르트 본인을 포함해서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가 왕실과 귀족들에게서 받은 푸대접에 대해 분개했다. 모차르트가 음악가로서 취업에 실패한 것은 당연히 그의 음악 때문이 아니었다. 한 편지에 나오는 대로, 모차르트가 재능은 절반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처신을 좀 더 약삭빠르게 하지 않으면 후원자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친지의 말은 당시의 신분 질서와 그것에 극도의 반감을 품었던 모차르트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편지에, 손이 아파서 편지를 길게 쓸 수 없다, 는 말을 여러 차례 썼다. 열네 살 때 첫 오페라를 써서 큰 성공을 거두는 등 36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차르트가 남긴 6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생각하면 모차르트가 작곡에 쏟은 시간과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그의 ‘손이 아프다’는 편지를 통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는 작곡을 할 때야말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재능을 내려준 신에게 가장 보답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천재임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당시 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모차르트의 짧은 비평들이나 자신보다 더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 글들을 보면 그는 노력하는 천재이기도 했다. 한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자신은 아무리 연습해도 저렇게 잘 칠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하자 모차르트는 자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더 이상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유머러스하게 답한 것은 노력하는 천재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편지는 인간 모차르트의 진솔한 면모를 전하는 것 말고도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무수히 담겨 있다. 건반악기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슈타인 피아노가 모차르트의 제안으로 개선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바티칸의 비곡인 『미제레레』는 모차르트가 성당에서 한 번 듣고 악보에 기록해서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탈리아풍의 음악이 음악계를 지배하고 이탈리아의 코믹 오페라가 무대를 석권하는 가운데서 모차르트가 얼마나 오페라를 쓰고 싶어 했으며 완벽한 독일 오페라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등의 걸작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수많은 걸작들의 배경 이야기와 모차르트가 자신의 작품들에 가졌던 자부심과 곡의 사연 등을 직접 모차르트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모차르트 안에는 천상의 선율을 인간 세상에 전달한 위대한 천재 작곡가의 면모와 천진난만하면서 자유분방하지만 ‘사람들을 너무 잘 믿는’ 호인 기질에 너무도 형편없는 경제관념, 시시껄렁하고 지저분한 농담을 즐기는 인간적인 모차르트의 모습이 공존했다. 그의 음악과 동떨어진 듯한, 그래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허구적으로 살리에리가 신의 불공평함을 원망하게 만들었던 어릿광대 같은 인간 모차르트의 모습은 일면 부조화의 극치로도 보인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차르트의 불멸의 선율들과 그의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숭고함은 인간 모차르트와 결코 따로 떼어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편지 곳곳에 남긴 ‘저 선량하고 순수하고 씩씩한 웃음’을 한번 듣고 나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 전과는 조금은 다르게 들릴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그의 음악을 평생의 반려로 삼게 만들 것이다.
 

추천평

내가 살고 있는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의 생가와 모차르트의 박물관이 있고, 미라벨 궁에서는 거의 매일 모차르트 연주회를 열 뿐 아니라 어느 가게에 가든 모차르트의 얼굴이 박힌 초콜릿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어, 모차르트가 전 도시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모차르트가 어떻게 생활했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고향을 매우 싫어했다. 그런 그가 죽은 지 200년이 훨씬 넘도록 은퇴도 하지 못한 채로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난다. 그러다 아버지가 번역한 이 『모차르트의 편지』를 읽어보니, 지금까지 음악을 통해서만 소통해왔던 그가 생생하게 나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 생활을 통해 그의 생애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생생한 감정이 담긴 편지들이라니! 클래식 음악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하더라도 『반짝반짝 작은 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250년 전의 월드 스타와 조용히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김원지(모차르테움 교수)

막 『모차르트의 편지』를 다 읽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장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예술가에게만 흥미가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당신이 한번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모차르트는 당신의 생애에 변함없는 반려가 되고, 곤궁할 때는 언제나 그 다정한 모습이 당신의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저 선량하고 순수하고 씩씩한 웃음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슬픈 때에도, 그처럼 명랑하게 견디어낸 불행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겠지요.-로맹 롤랑

베토벤으로부터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웃은 일이라곤 없는 일련의 위대한 인물이 있다. 모차르트는 달랐다. 모차르트에게는 억제할 수 없는 유머가 있었다. 거기에는 모차르트의 고독이 드러나 있다.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에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힐데스하이머

베토벤은 천재는 있었지만 취미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모차르트에게는 지고의 재능과 취미가 공존했다. -드뷔시

모차르트는 인간을 우롱하기 위해 악마가 보냈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