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불교의 이해 (독서)/1.불교일반

불교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동방박사님 2022. 9. 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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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
경전의 근거와 출처를 명확히 밝혀 생생한 부처님의 음성을 담아 놓은 책


이 책은 많은 불교신자와 출가자들이 옳다고 알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 중 잘못 받아들인 교리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불교도들이 실천 가능하며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사실 경전을 읽다 보면 이것을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해서 해석해야 하는지, 경전의 난해한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혼란이 올 때가 많다. 왜냐하면 부처님 생전보다 현대사회는 훨씬 더 빠르고 복잡하며 오묘하고 미묘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책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교설을 필자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비록 칼럼이라는 형식을 빌려 쓴 글이지만 경전의 근거와 출처를 명확히 밝혀 글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 글머리에

제1장 위대한 스승, 붓다의 참모습

붓다는 전지자인가?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
고와 고의 소멸을 가르친 붓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복을 구하는 사람

제2장 붓다의 가르침, 담마의 특성

불교는 인간을 위한 가르침
‘지금·여기’에서 실현하는 열반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네 가지 왜곡된 견해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
괴로움의 원인은 감각적 욕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위험성
자기와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
뿍꾸사띠의 일화가 주는 교훈
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윤회의 주체와 관련된 문제
식(識)은 불변하는 자아가 아니다

제3장 불교도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병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익
승려들의 다툼에 대한 재가 신자의 역할
잘못을 알았을 때는 과감히 버려라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인간은 가변적인 존재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
게으른 자의 변명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우러난 말
자신의 행위를 늘 살펴라
재가자에게도 설법해야 하는 이유
돈과 재물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제4장 사회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붓다의 재난구제 활동
인류는 운명 공동체
잘못된 세계관이 미치는 영향
전 지구적 인류애, 보살의 이타행
남을 배려하는 마음
크나큰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
불교의 이상적인 통치자, 전륜성왕
사람이나 사물이 가진 속성
중도의 사회적 실천 방법
평화의 불교적 의미

제5장 불교 수행에 관한 가르침

불교의 수행 원리
사띠(sati)의 중요성
불교에서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
교학자와 수행자 간의 갈등
정진(精進)의 참뜻
번뇌를 제어하는 방법
범부와 성자의 차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
열 가지 성스러운 삶
역경(逆境)을 수행의 기회로
명상에 대한 오해

제6장 승려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재물의 상속자와 법의 상속자
네 가지 무리의 비구
네 가지 사문에 대한 해석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네 가지를 단정히 하라
나이가 많다고 장로는 아니다
묵언에 대한 붓다의 비판
동료 비구를 모함한 사례
승가 내부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
비구들을 가르치고 훈계하기 어려움
비구니를 위한 아난다 존자의 설법
이상적인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찮은 이야기에 몰두하지 말라

제7장 평범한 일상에 관한 가르침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
형상과 소리를 좇지 말라
사색해서는 안 되는 것
정적(情的) 포교와 지적(知的) 포교
옴(?)은 힌두교의 상징

· 약어표
·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마성 (摩聖)
 
속명은 이수창(李秀昌)이고, 법명은 마성(摩聖)이며, 법호는 해불(解佛)이다.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초기불교 인간관 연구」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영국 런던의 세계불교재단으로부터 명예 불교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국 마하출라롱콘라자위댜라야대학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 및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불...
 

책 속으로

많은 불교도들은 붓다를 일체지자(一切知者) 혹은 전지자(全知者)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체지자 혹은 전지자란 ‘모든 것을 다 아는 자(the Omniscient One)’라는 뜻이다. 만일 붓다를 전지자로 이해하게 되면 신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붓다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일체지자 혹은 전지자에 해당하는 빨리어 원어 ‘삽반뉴 (sabbannu)’는 니까야에 몇 번 나오지만, 모두 당시의 외도들이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사용했던 말이다. 예를 들면 자이나교의 교주 니간타 나따뿟따(Niga??ha N?taputta)는 자신을 ‘일체를 아는 자이고, 일체를 보는 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을 전지자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왓차곳따(Vaccagotta)라는 유행자가 붓다를 찾아와 사람들이 ‘붓다도 일체를 아는 자이고, 일체를 보는 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자 붓다는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자이다.”(MN.Ⅰ.482)라고 말했다. 이처럼 붓다는 자신을 ‘삽반뉴(一切知者)’라고 호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붓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일찍이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진리의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붓다는 전지자인가?」중에서

그리고 붓다는 마지막으로 아누라다 존자를 칭찬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누라다여, 나는 예나 지금이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가르칠 뿐이다.”(SN.Ⅲ.119) 이 부분을 각묵 스님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세존께서 사후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소멸에 도달하는 실천적인 길을 설할 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는 여래란 무상한 여러 현상이 합성된 것이요, 그래서 괴로움이요, 그래서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이것은 단지 인습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한 모든 사유나 설명은 단지 인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습적인 것에 대해 설명은 하지 않고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인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천명한다는 것이다. 각묵 스님은 첫 번째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번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자는 붓다가 “나는 예나 지금이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가르칠 뿐이다.”(SN.Ⅲ.119)라고 선언한 이 대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오직 붓다의 관심은 중생들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붓다가 평생 설한 가르침은 오직 중생들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설법이었다.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중에서

단다빠니(Da??ap??i)라는 삭까[釋迦族] 출신의 사람과의 일이다. 단다빠니가 붓다께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냐?”라고 공격적이고 무례한 질문을 했을 때, 붓다는 “나는 그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즉 세속적인 잣대로 따지는 사람에게 논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때는 차라리 논쟁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상윳따 니까야』(SN22:94)에서는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툰다. 법을 말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SN.Ⅲ.138)라는 경문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경전의 말씀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전에 설해져 있다고 해서, 아무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라한이 아닌 범부(凡夫)는 단 하루도 세상과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중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이상적인 인간 형성의 길을 제시한다. 즉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길을 제시한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아라한이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을 다 해 마친 사람’을 말한다. 불교의 궁극 목적은 열반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 열반을 실현한 사람을 아라한이라고 한다. 누구나 지금·여기에서 아라한이 되어야 하며,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나 다름없다.....내세의 존재 여부는 현재의 삶에서 증명할 수 없다. 붓다는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가르침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 내세의 생천(生天)은 보장된다. 굳이 사후에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生天]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불교는 인간을 위한 가르침」중에서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 즉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는 열반을 말한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현법열반(現法涅槃, di??hadhammanibb?na)’이라고 한다. 열반은 이승에서 실현하는 것이지 죽은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반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현법열반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불교를 신행하는 목적은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붓다는 현세의 즐거움을 버리고 내세의 즐거움을 추구하라고 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은 열반을 죽어서 얻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하지만 열반은 살아 있는 ‘지금·여기’에서 획득하는 것이며, 사후에 기대되는 낙원이 아니다.
---「‘지금·여기’에서 실현하는 열반」중에서

인간의 삶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현실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 깨달음을 이룬 성자라 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다. 육체를 가진 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어떤 사람은 현실을 아주 초월한 것처럼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깨닫기만 하면 배우지 않은 것도 모두 알 수 있고, 신통력까지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은 깨달음이라는 신기루와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깨달음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붓다는 비관주의자도 낙관주의자도 아닌 자기 경험에 바탕을 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르게 직시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모든 사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붓다는 과거의 일에 매달리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도 말고, 오직 현재의 삶에 충실히 하라고 가르쳤다. 이보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네 가지 왜곡된 견해」중에서
 

출판사 리뷰

『불교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는 70편의 글을 일곱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편집하였다.

제1장 위대한 스승, 붓다의 참모습에서는 후대에 신격화된 붓다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붓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붓다는 전지자인가?」라는 글에서 붓다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 즉 전지자(全知者, The Omniscience)가 아님을 밝혔다. 붓다는 자신의 신격화를 원하지 않았다.

제2장 붓다의 가르침, 담마의 특성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이 다른 종교 사상과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춰 불교만의 고유한 사상이 무엇인가를 다루었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은 ‘인간 완성의 길’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불교는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불교 궁극의 목적임을 밝혔다.

제3장 불교도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불교 신자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을 다루었다. 또 붓다는 가난을 찬양하지 않았다. 붓다는 가난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괴로움이고, 가난이 범죄와 타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붓다는 재가자들에게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더 많은 돈과 재물[財貨]을 획득하라고 가르쳤다.

제4장 사회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팬데믹(Pandemic, 세계적 유행병)과 같은 재난에 붓다가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고, 자연재해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붓다의 가르침들을 소개했다.

제5장 불교수행에 관한 가르침에서는 ‘왜 불교에서 실천을 강조하는가?’라는 문제에서부터 「불교의 수행 원리」 등을 제시했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불교 궁극의 목적인 열반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

제6장 승려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붓다가 출가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들을 모았다. 붓다는 출가자들에게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 자신이 입멸한 후 출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목적으로 출가하려고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승가에 합류시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제7장 평범한 일상에 관한 가르침에서는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곧 남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불교도의 사명은 포교라는 것을 언급했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은 변하지 않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교화 방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 사회는 위기의 연속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위기 상황 속에 들어가고 허우적거리다 겨우 한 발을 떼고 나면 또다시 위기에 빠지기 일쑤다. 인간은 누구나 크건 작건 위기의 순간이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상처를 받고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책에서 저자 마성 스님은 “자기 삶에 충실하지 못한 자들은 언제나 핑곗거리를 찾는다. … 위기를 계기로 슬기롭게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위기 극복형 인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위기 극복형 인간은 ‘위기’를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한다. 위기란 위험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 하여 ‘첫마음을 냈을 때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불교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그 힘을 키우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길에 대한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